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76)
176 화 축축햇!
축축햇!
“크게 한탕…?”
카디쇼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펄리를 경계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탕이라는 단어는 딱히 좋은 일을 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니라고 알고 있다만. 마르낙, 그 한탕이라는 게 뭔지 내게도 조금 설명을 해 줬으면 한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동료 사이가 아닌가. 내게도 이 정도 알 권리는 있다고 보는데.”
카디쇼는 은근슬쩍 자신과 내가 한배를 탄 동료 사이라는 걸 강조했다. 어째 요즘 들어 자꾸 추궁만 당하는 기분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펄리와 내가 신의 그릇을 탈취하려 한다는 걸 카디쇼에게 곧이곧대로 보고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내가 무어라 거절의 말을 꺼내려던 그때.
“엣취! 나! 나! 춥다니까? 완전 흠뻑 젖어서 진짜 추워!!! 그쪽 빨강빨강 머리야!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해도 괜찮다고 생각! 생각해! 나는 지금 엄청! 엄청! 따듯한 담요와 바싹 마른 옷이 필요하거든!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그치?”
펄리는 카디쇼와 구면임에도 무척이나 능숙하게 처음 보는 시늉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지. 손님이 찾아온 이상, 저리 둬선 안 되는 법이지. 다 같이 뭘 하는 건지쯤이야, 조금 기다려서 들어도 되는 것을. 따라와라. 내가 옷을 챙겨 주겠다.”
“고마워! 고마워! 그런데 담요랑 새 옷을 여기, 갑판 위로 가져와 줄 수 있어? 있어?”
“선실 안에 들어가는 편이 더 따뜻할 텐데?”
“그냥! 그냥! 내가 그러고 싶은 기분이야! 안 돼? 안 돼?”
카디쇼는 두 눈을 크게 끔벅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기이한 손님이군. 잠깐만 기다려라. 안에서 마른 수건과 내 옷을 챙겨 와서 가져다주지.”
“그래! 그래! 내가 얼어 죽기 전에 얼른! 얼른! 가져와 줘!”
“…알겠다.
그녀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선실 쪽으로 사라졌다. 펄리는 카디쇼의 등을 향해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저 빨강 머리랑 용케 안 헤어지고 여기까지 왔네! 쟤 사제인 건 알지? 알지?”
“안 그래도 막 헤어지자고 하려던 차였습니다.”
“흐응!”
짧게 콧소리를 낸 펄리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방긋 웃었다.
“내가 보기엔 쟤 그냥 아주 찰떡같이 붙어서 안 떨어질 거 같던데? 네 생각은 달라? 달라?”
“쉽게 떠나진 않을 거 같긴 합니다만… 본성이 나쁜 사람이 아니니 솔직하게 말하면 충분히 이해해 줄 겁니다.”
“과연? 과연? 그런데 쟤 혹시 깨어나자마자 본 게 너야?”
수레에서 깨어나서 나랑 처음으로 눈이 마주치긴 했지.
“그렇습니다.”
펄리는 축축한 머리를 꾹 쥐어짰다. 갑판 위로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네가 떠나고 아테르가 말하기론, 쟤 깨어나면 처음 본 사람한테 꽤 집착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그 어린 거위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사람을 부모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야! 마수의 원천을 섞은 부작용이라나 뭐라나. 뭐, 확실한 건 아냐!”
뭐라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으면 진작에 해 줬어야지요!”
“아테르도 쟤 몸에서 채취한 샘플을 분석하다가 알아낸 거야! 거야! 나한테 뭐라고 해 봤자 나는 몰라! 몰라!”
펄리는 ‘힘내.’라고 짧게 덧붙인 다음 혼자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그녀에게 무어라 쏘아붙이려고 입을 벌리자, 카디쇼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싹 마른 수건 두 장과 헐렁한 옷을 챙겨 갑판 위로 올라왔다.
“일단 젖은 옷부터 갈아입어라.”
“아, 고마워! 고마워! 잘 입을게!”
“잠깐!!!”
펄리는 카디쇼가 옷을 내밀자마자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검은 가죽 옷을 그대로 훌렁 벗어 던졌다. 깜짝 놀란 카디쇼가 다급하게 펄리의 몸을 가렸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크게 소리쳤다.
“지, 지금 뭐 하나! 다, 다 과년한 여자가 다른 남자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다니!!! 어찌 이토록 망측한 행동을!!!”
정작 맨살을 노출한 펄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카디쇼의 손에 들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대꾸했다.
“뭐, 어때? 어때? 그냥 눈 호강 한번 시켜 준 셈 치면 되잖아! 되잖아! 히히. 좋았어? 좋았어?”
그녀의 짓궂은 질문에 나는 피식 웃었다.
“하얀 달덩이가 떠 있긴 하더군요.”
“마르낙!!!”
카디쇼는 이런 종류의 농담엔 전혀 면역이 없었다.
“어, 어떻게 그리 짓궂은 노, 농담을 하는가! 시, 실망했다!!!”
“다 입었다! 히히히!”
펄리는 바싹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비비며 무척이나 푸근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좋다! 수건 고마워! 고마워!”
“너도 문제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남녀가 태어나길 유별한데, 다 큰 성인이 되어서 그렇게…”
“아, 안 들려! 안 들려! 그렇게 꽉 막히게 살다간 너 시집 못 간다? 아주 아주 못 가!”
“뭐, 뭣이?!”
잔뜩 흥분해 있던 카디쇼는 시집이라는 단어 하나로 완벽하게 침몰했다.
“하지만 수건은 고마워! 고마워! 방금까진 장난이었구!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응! 응!”
사뿐사뿐 걸음을 옮긴 펄리는 개구쟁이처럼 카디쇼의 어깨 위로 어깨동무를 했다.
“너도 분명 아주아주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응! 분명!”
“…그런 말을 한다고 내 기분이 풀릴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미 목소리에서 반쯤 풀려 있는데.
펄리는 아주 카디쇼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그녀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대충 머리를 말린 펄리는 막 욕탕에서 나온 사람처럼 목에 수건을 걸곤 활짝 웃었다.
“그런데 아까, 아까 크게 한탕이 뭔지 궁금하다고 했지? 응?”
“그렇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크게 한탕은 말이야! 아주 간단해! 저기 저 멀리, 북제국의 수도 피데스 보이지?”
“보인다.”
펄리는 수도를 가리킨 새하얀 손가락을 꼬물대며 카디쇼의 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저기에 숨어든 악신의 숭배자들이 뭔갈 만들고 있거든? 우리는 그걸 망치려고 하고 있는 거야! 거야!”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디쇼가 나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마르낙, 네가 할 일이란 게, 타인을 위한 선의가 한가득 담긴 일일 거란 것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너는 무척이나 선한 이니까.”
단단한 신뢰 때문에 양심이 조금 따끔거렸다. 카디쇼는 자신의 가슴을 쿵 치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악신의 숭배자들이 꾸미는 일을 망치는 거라면 이 카디쇼가 빠질 수 없지. 온기 없는 빛께서도 내가 너희를 돕는 걸 분명 기꺼워하실 거다.”
만약 온기 없는 빛이 이번 일의 진상을 안다면 하나도 안 기꺼워할 게 분명했다. 진심으로 하나도.
“악신의 숭배자들을 물 먹일 생각에 벌써 가슴이 뛰는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나? 내 이름은 카디쇼다. 온기 없는 빛을 모시고 있지.”
“나는! 나는! 펄리야! ‘처음’ 만나서 반가워!”
“그래, 나도 반갑다. 옷을 갈아입었어도 조금 추울 텐데, 잠시만 기다려라. 따뜻한 차를 타 오겠다.”
“고마워! 고마워! 타 주면 감사히 마실게!”
“그래.”
카디쇼는 펄리에게 무척이나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곤, 차를 타기 위해 다시 한번 갑판 밑으로 내려갔다.
펄리는 배시시 웃으며 또 한 번 손바닥을 팔랑이며 그녀를 배웅했고. 그녀는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가볍게 입을 열었다.
“참 쉬운 여자네!”
“굳이 곧이곧대로 다 말해 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할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 생각해!”
슬쩍 내게로 다가온 펄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입가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진 탓에 리베라티오의 경계가 아주 삼엄해졌어. 내 계획에 사소한 차질이 생길 정도로.”
“당신이 사고 친 건 아니길 바라겠습니다.”
“당연히 내가 아니지. 내가 이번 계획을 얼마나 간절히 오랫동안 준비해 왔는데.”
그녀는 마치 가면을 벗기라도 한 듯 무척이나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특유의 말투조차 전혀 쓰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 펄리가 가까운 나무 상자 위에 걸터앉았다.
“아무 일 없이 모든 게 내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우리는 우리 손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너랑 나 둘 다 원하는 걸 챙겼을 거야. 그런데 아쉽게도 일이 조금 꼬였어.”
“혹시 제가 수도에 늦게 도착해서 그런 겁니까?”
“네 탓도 아니야. 어차피 네가 수도에 더 빨리 도착했어도 우리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어야만 했어. 저쪽도 아직 신의 그릇을 완성한 상태는 아니거든.”
그녀는 하얀 손가락으로 덜 마른 머리카락을 붙잡아 빙글빙글 돌렸다.
“원래 널 마중 나올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조금 일이 짜증 나게 흘러가서 헤엄 좀 쳐서 온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긴, 그냥 용인족 천둥벌거숭이 둘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리베라티오의 은신처들을 들쑤시고 다닌 탓에 리베라티오의 경계가 한층 심해진 거지. 어찌 된 게 둘 다 제 아비를 닮아서 약에 쓸래도 쓸모가 없어.”
펄리는 ‘기껏 괜찮은 협력자를 구했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짧게 중얼거리곤 혀를 찼다.
“덕분에 리베라티오는 내가 기껏 미리 이런저런 준비를 해 둔 장소에서 미완성인 신의 그릇을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어. 그것도 내가 모르는 장소로.”
정확하게 누군지는 몰라도, 용인족이라면 마룡왕의 자식이겠지. 펄리는 내게 자신의 목적이 마룡왕의 목을 따는 것이라고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멋대로 날뛰는 용인족들도 제거하자는 겁니까?”
“아니. 이미 사고는 다 쳐 놨는데, 지금 와서 죽여 봤자 뭐 해. 게다가 걔네를 죽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시끌벅적해질 텐데, 누구 좋으라고. 일단, 지금은 그 녀석들이 미완성인 신의 그릇을 숨겨 둔 장소를 알아내는 게 우선이야.”
“계획은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있지!”
순식간에 돌변한 태도. 마치 가면을 바꿔 끼듯 달라진 모습에 나는 카디쇼가 왔음을 깨달았다.
“받아라. 바로 마시진 말고. 뜨거워서 혀가 데일지도 모른다.”
“고마워! 고마워! 슬슬 들어가서 이제 인사해도 괜찮을 거 같아! 들어가자! 들어가자!”
펄리는 카디쇼의 등을 꾹꾹 밀었다.
“그래, 굳이 하나하나 부를 필요는 없을 거다. 다들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걸 올라오면서 봤다. 젖은 옷을 건네라. 빨아서 돌려주지.”
“응! 응!”
카디쇼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펄리와 어깨를 나란히 해 선실로 향했다.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뭔데? 뭔데?”
“지금 그 몸도 인형인 겁니까?”
“궁금해? 궁금해?”
“예.”
매번 보면서 놀라는 거지만, 펄리의 인형은 너무나도 진짜 몸 같아서 도저히 저 몸이 인형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너한테만 살짝 알려 줄게! 줄게! 귀 대봐!”
내가 고개를 낮추자 딱딱하고 촉촉한 감촉이 귓불을 살짝 짓누르고 갔다. 멋대로 내 귓불을 앙 하고 깨문 펄리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히죽 웃었다.
“가짜라도, 진짜이길 바라면 진짜가 되는 거야! 그런고로 나는 언제나 진짜! 진짜야!”
그 말을 끝으로 펄리는 카드놀이가 한창인 이들 사이로 폴짝 뛰어들어가 버렸다.
“안녕! 안녕! 나는 펄리라고 해! 그거 알아? 그 카드 내가 준 거다! 히히! 히히!”
‘살해…?!’
“앗?! 펄리다!!! 카드 잘 쓰고 있어! 엄청 고마워!”
“쟈멜도 안녕! 안녕!”
모두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펄리의 거침없는 소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인사를 나누던 와중, 단 한 사람의 얼굴만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젤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대충 인사를 나누곤, 내게 다가와서 내 옷깃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나는 순순히 그녀가 이끄는 대로 방에서 나왔다. 지젤은 어느 정도 방과 거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협력자란 게 저 여자였어?!”
“혹시 아는 사이입니까?”
같은 리베라티오 소속이니 얼굴을 몇 번 본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
“저 여자는 날 모르겠지만, 나는 쟤를 알아! 스쳐보듯이 봤지만, 똑똑히 기억한다고!”
“펄리가 리베라티오 소속이란 건 저도 알…”
“그런 문제가 아니야!”
지젤은 침을 꼴깍 삼키곤 떨리는 눈으로 펄리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의 언니가 바로 리베라티오를 이끄는 여섯 선지자 중 하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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