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330)
330
틈.
쩌저저적.
귀를 긁어대는 소리를 내며 공간이 깨져나간다. 더한 대화는 필요하지 않다는 듯, 구원의 사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마라트를 노리고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쳤다.
까앙!!!
일격에 공간이 깨부숴져 나가며 흐릿한 공간의 파편들이 마라트를 향해 쏘아졌다. 마라트는 직감적으로 저 공간의 파편들에 닿지 않는 게 최선의 선택이란 판단을 내리고 바닥을 굴렀다.
마라트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다시 자세를 잡자 구원의 사도는 다시 한번 허공을 후려쳤다. 깨진 공간의 파편들이 몰아치고, 파편들 사이로 구원의 사도가 마라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마라트의 새카만 눈 안으로 흰색 띠가 형상을 맺으며 빛을 발했다. 새하얀 가운데 검은 테두리를 지닌 헤일로가 그의 머리 뒤로 떠오르고 그림자들이 바닥에서 제 몸을 일으켰다.
깨부숴진 공간의 파편들에 그림자가 제 몸이 찢겨나가면서도 파편들 일부를 집어삼켰다. 새카만 그림자 한 쌍이 마라트의 양손에서 단검의 형태 뭉치고 그는 그림자를 가르고 뛰쳐나가 구원의 사도를 향한 반격을 시작했다.
까앙!!!
분명 아무것도 없었을 구원의 사도의 손아귀에서 찬란히 빛나는 백색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내고 새카만 단검 두 자루와 맞부딪히며 선명한 불티를 내뱉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지젤이 권능을 일으켜 마라트를 도우려 하자, 그 신성의 파동을 느낀 마라트가 다급하게 외쳤다.
“화물을!!!”
새하얗고 검은 무기들이 찰나 속에서 수없이 맞부딪히는 와중에도 마라트는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외쳤다.
“화물을 마저 옮겨주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
“…”
그의 운송계약을 향한 진심에 지젤과 마르낙이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무슨 대화가 오가든 구원의 사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마라트를 몰아붙였다.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마라트는 계속해서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일단, 저 새하얀 백색 검을 꺼낸 뒤로는 공간을 깨뜨리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두 능력을 동시에 발현할 수 없다고 일단은 추측하는 게 옳았다.
반면, 그는 이렇게 합을 주고받으면서도 언제든지 자유롭게 권능을 발할 수 있었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새카만 단검이 새하얀 검신과 맞부딪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뱀처럼 검신을 타고 내려가 이윽고 뾰족한 송곳이 되어 구원의 사도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구원의 사도는 대충 예상했다는 듯이 유형화된 그림자를 왼손으로 잡아챘다. 그의 손에 닿은 그림자는 마치 유리 파편처럼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깨져 그대로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구원(救援)이 웃었다.
“조잡한 짓거리를 하네요. 실력에 자신이 없나?”
마라트는 무게중심을 옮겨 한 번 크게 힘을 쏟아부어 구원의 사도를 밀어내며 뒤로 몸을 튕겼다.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방금까지 손에 쥐고 있던 그림자 단검을 바닥에 내버렸다.
마치 한 번에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틀린 추측을 한 마라트를 비웃듯 구원(救援)의 손에 닿으며 생겨났던 균열이 집요하게 단검의 검신을 타고서 기어올라 단검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었기에.
‘한 번 제대로 닿으면 즉사인가?’
저 닿는 걸 깨부숴버리는 능력이 단검이 아니라 인체에 닿았을 때도 같은 효과를 낸다면 그 즉시 닿은 부위를 잘라내지 않는 이상 전신이 유리 파편처럼 쪼개져서 깨져버릴 터.
새로운 그림자가 바닥에서 튀어나와 마라트의 손끝에서 한 쌍의 단검 형태로 뭉쳐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간단한 보호구를 챙겨 입는 수밖에.’
마라트가 발을 구르자, 새카만 그림자가 이번엔 그의 몸을 타고 올라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마침내 꿈틀대는 그림자가 마라트의 얼굴까지 모조리 뒤덮고, 눈구멍만이 새하얀 빛과 함께 일렁였다.
“구원인지 나발인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교단의 물류 운송 사업을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제 적입니다. 그게 설령 신이라도 말이죠!”
그 한마디에 구원(救援)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극히 신성모독적이네. 듣기만 해도 불쾌하게 말이에요. 그게 사제가 할 말이라고 생각해? 신께서 계시기에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거예요. 당신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도 결국 신께서 자신의 피조물들을 빚어내셨기에 존재하는 거라고. 그렇기에 우리 사제들은 인류가 신과 함께 이 대륙을 거닐던 그 옛 시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거고요.”
우주를 품은 듯한 연둣빛 눈동자 속에서 안개 같은 별빛들이 반짝였다.
“아득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다시 한번 그 옛 시대의 영광을 되찾을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왔는데, 겨우 이딴 짐 옮기기 놀이나 하려고 내가 보낸 성녀를 죽였다고? 일부러 최대한 얼굴 보고 뽑아서 예쁜 애로 보내줬는데도요? 하아.”
한숨을 내뱉은 구원(救援)은 이내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아직도 지젤이 옮기고 있는 남은 화물들을 쳐다보았다.
“이딴 하찮은 일에 사도의 권능을 낭비해대고 있다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살려둘 이유가 없네요. 모조리 뒤져라.”
구원의 백색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마라트는 직감적으로 저 불길한 궤적이 완성되게 두어선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그가 자리를 박차고 구원의 사도에게로 달려들려던 그때.
푸른 선 하나가 구원(救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구원(救援)의 사도는 다급하게 그려내던 궤적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푸른 검, 절망(絶望)을 막아냈다.
푸른 검과 백색 검이 서로 맞부딪혀 정지한 가운데, 마르낙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걸 막네.”
구원(救援)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르낙을 쳐다보았다.
“찌꺼기가 쓸 곳이 있어서 살려두려고 했더니. 감히 날 방해해?”
“역시 내가 누군지 아는데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게 맞았네. 왠지 너무 가만히 내버려 두더라니.”
“오늘은 네 목숨을 취하러 온 게 아니니 이만 꺼져주세요.”
“어쩌지, 나는 오늘 널 죽이고 네 머리통에든 사리를 빼가야겠는데.”
까앙!!!
불티가 튀어 오르고 마르낙은 뒤로 몸을 날리면서 부패의 문을 한계까지 활성화했다. 암녹빛 문신들이 음울한 빛을 토해내며 마르낙의 신체 위를 질주하며 뒤덮었다. 마르낙은 마라트를 향해 외쳤다.
“뭐해! 구경만 하지 말고 너도 공격하라고!”
마라트를 뒤덮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어색하게 웃는 입모양을 만들어냈다.
“하하. 그래야지요.”
사실, 마라트는 지젤이 열심히 옮기고 있는 화물의 잔량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딱 봐도 강해 보이는 구원(救援)의 사도가 진심으로 전력을 다하면 이 공간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그는 괜히 마르낙과 한 번에 달려들어서 구원(救援)의 사도에게 위기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뭐가 됐든 마라트에게 있어선 화물이 우선이었으니. 보험 같은 것도 안 들어둔 바람에 더욱.
마르낙은 마라트의 미적지근한 대답에도 애초에 기대 따윈 안 했다는 듯, 바로 다시 구원의 사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까앙!
푸른 궤적과 새하얀 궤적이 맞부딪히고, 구원(救援)의 사도가 아까 마라트에게 그러했듯 절망의 푸른 검날을 깨뜨려버리기 위해 왼손을 휘둘러 검면을 후려쳤다.
푸른 검날에 구원(救援)의 주먹이 닿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이 자식 대체 검을 뭘로…”
마르낙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 세 치 혀가 너무 길어. 쓸데없이.”
절망을 비틀어 그대로 구원(救援)의 왼손을 통째로 반 토막 낸다. 감히 맨손으로 검을 부수려 했던 구원(救援)이 그 대가를 치렀다.
붉은 피가 치솟고, 구원(救援)의 왼 주먹부터 팔꿈치까지 반으로 갈라져 너덜댔다. 구원의 사도가 몸을 뒤로 빼며 회복할 시간을 벌려 했지만, 마르낙은 지체없이 구원의 사도를 쫓아 공격을 이어나갔다.
지독한 살의만이 가득 담긴 검격. 온전히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뻗어 나간 푸른 절망이 백색 검을 쳐내고 그대로 구원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갰다.
세로로 쪼갠 데는 만족하지 않겠다는 듯, 마르낙은 재차 검을 휘둘러 구원(救援)의 우주를 담은 듯한 연둣빛 눈을 단칼에 반으로 토막 냈다.
십자 모양으로 잘린 머리 조각들이 바닥에 투둑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마르낙은 빠르게 눈으로 토막 낸 머리를 살폈지만, 사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역시 쉽게 죽지는…”
쩌저저적.
허공이 금가는 소리와 함께 깨져나가더니 새로운 구원(救援)의 사도가 인상을 찌푸린 채 걸어 나왔다. 그는 마르낙을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나’를 죽여?”
한 명을 죽이니 어디선가 똑같이 생긴 녀석이 또 튀어나온다. 마르낙은 그 무척이나 익숙한 광경을 보며 죽여도 죽여도 지긋지긋하게 다시 나타나던 펄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방금 죽은 녀석은 헤일로를 드러내거나 한 적이 없었다. 권능 자체는 강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예상보다 훨씬 약해빠졌기도 했고.
마르낙은 절망을 가볍게 한 바퀴 돌리고서 새로 나타난 구원(救援)의 사도를 쳐다보았다.
“너희 몇 명이야? 딱 말해. 몇 번 죽이면 다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싶으니까.”
구원(救援)의 사도는 우주를 품은 듯한 연둣빛 눈으로 마르낙을 쳐다보며 말했다.
“겨우 가장 자그마한 부스러기를 먹은 ‘나’를 해치웠다고 해서 네놈이 진정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마르낙은 자신의 추측을 내뱉었다.
“역시. 너, 네 ‘사리’를 쪼개서 여러 명한테 먹인 거구나?”
저건 단순한 분신 같은 게 아니었다. 전부 진짜 ‘본인’이었지. 아마도 구원(救援)의 사도인 녀석의 사리를 쪼개서 먹이면 먹인 상대의 자아를 침식할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사리를 통한 자기복제. 아마 먹은 사리의 조각이 클수록 힘이 더욱 강하리란 것도 녀석의 말로 미뤄보아 알 수 있었고.
대륙 전역에서 뭔가를 꾸미기엔 아무래도 혼자인 것보다 여럿인 편이 나아서 저렇게 행동한 건가.
마르낙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가던 와중, 구원(救援)의 사도가 인상을 키득 웃었다.
“네 추측이 뭔지는 뻔히 보이는데, 그거 비슷하지만 영 틀렸어.”
“그럼 뭔데?”
“그걸 내가 말해줄 이유는 없지요? 그냥 뒤…”
화물 창고 천장에서부터 떨어진 거대한 그림자의 덩어리가 그대로 구원(救援)의 사도를 집어삼켰다. 구원의 사도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바닥에 닿은 그림자는 그저 조용히 다른 그림자들 속으로 흩어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구원의 사도.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걸어온 지젤이 싱긋 웃었다.
“하도 말만 많길래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어.”
마르낙은 두 눈을 끔벅이다 되물었다.
“어디로?”
“엄청 깊은 심해로 보냈지. 아마 전송되자마자 그대로 찌그러졌을걸.”
어디론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어디론가 이동시킬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 이동시킨 장소가 지극히 위험한 장소일 경우 그건 일종의 공격이나 다름없었고. 마르낙은 지젤의 권능에 대한 평가를 마음속으로 조금 많이 올렸다.
기세 좋게 능력을 끌어올려 놓고 아무것도 안 한 마라트는 마르낙과 지젤의 눈치를 슬쩍 보곤 입을 열었다.
“저기 그… 혹시 화물은…”
지젤은 질린다는 눈빛으로 마라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다 옮겼어. 됐어?”
“그럼 됐습니다.”
“분명 또 한 놈 처리했으니, 더 강한 놈이 이리로 올지도 모르는데 넌 참 속도 편하다. 이 상황에 화물 타령…”
쩌저저적.
익숙한 소음에 지젤은 하던 말도 끊고서 긴장한 채 깨져나가는 공간을 쳐다보았다.
이번엔 어디 바깥과 연결되기라도 한 듯, 공간의 틈에서 따뜻하게 달궈진 모래의 냄새가 풍겨왔다. 밝은 사막이 보이는 틈 너머로 연둣빛 머리를 한 구원의 사도가 그를 쳐다보았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머리 뒤에 선명한 연녹빛 헤일로를 띄우고서.
구원(救援)이 으르렁대며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나’를 둘이나 죽여요? 풀려난 마왕(魔王) 새끼를 내가 직접 묶어둘 필요만 없었어도, 당장에 한달음에 달려가 모조리 쳐 죽여 버렸을 텐데. 너희 셋 다 얼굴 기억해뒀어요.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직접 찾아가서 모조리 다 쳐 죽여버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
퍼억.
공간 너머에서까지 느껴지는 가히 자연재해에 가까운 마력의 격류 속에서 구원(救援)의 머리통이 한순간에 갈려나가며 공간의 틈 사이로 구원의 사도의 머리였던 핏물과 살점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억지로 깨져나갔던 공간이 빠르게 제 모습을 되찾아가던 와중, 좁아지는 틈 너머로 금빛과 자줏빛이 뒤섞인 눈 하나가 나타났다.
그 눈은 그저 조용히 마르낙과 지젤, 마라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완전히 회복된 공간의 틈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고요한 등장과 퇴장이었지만, 마지막 눈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비뚤어진 마법사들의 시대의 유일한 왕(王)이자 지상을 거닐던 신조차 살해했기에 연옥에 유폐되었다 풀려난 고대로부터 존재해온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 마왕(魔王).
지젤은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곱씹으며 말했다.
“저런 커다란 사막이 있을 만한 곳이면 당장 떠오르는 건 서부 사막 왕국밖에 없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아마 구원의 사도의 전력 대부분은 마왕을 막아내고 있는데 쓰고 있는 듯 보였다.
뭐가 됐든 마르낙으로서는 무척이나 기꺼운 일이었다. 적의 고통은 곧 자신의 기쁨이었으니까.
이번 격돌은 더욱이 구원의 사도가 마왕에게 발이 묶여있는 동안, 구원의 사도가 다른 곳에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충분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는 점을 확인한 거나 다름없었다.
마르낙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젤에게 말했다.
“한동안 대륙 서부 쪽은 쳐다도 보지 말죠.”
지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괜히 마왕인지 뭔지랑 얽힐 필요는 없다고 봐.”
“저기…”
마라트는 지젤과 마르낙을 쳐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둘의 눈치를 보다 말했다.
“…지젤이 마지막에 급하게 옮겼던 화물들의 상태부터 좀 확인하고 와도 될까요? 이게 또 급하게 옮기다 혹시나 화물에 손상이 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고 보험도 안 들어둔 녀석들이라 조금 걱정이 되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