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33
사실이었다. 몸을 빼내는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목이 잘렸을 것이다. 라덴은 피로 얼룩진 입가를 벅벅 문지르면서 알케나를 노려보았다. 무조건적 강제 경직이라니. 이런 스킬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설마 알케나가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알케나와 몇 번이나 싸워 보았음에도, 알케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스킬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했어.’
알케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어, 펜듈럼이 해제 된 그 순간. 찰나라고 할 수 있는 그 순간에 몸을 움직여 참격을 피해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하다. 알케나 자신이 그렇게 움직일 자신은 없었지만, 라덴은 알케나의 앞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저런 스킬의 쿨타임이 짧을 리가 없어.’
강제 속박 스킬은 더 이상 쓸 수 없다. 라덴은 알케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살짝 베인 목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상처라면 유혈 특성으로 금세 회복된다.
문체는 체력 포인트다. 상처가 아문다고 해도 체력은 줄어든 상태. 가뜩이나 체력 비례 데미지를 입히는 파라스에게 베였고, 당한 위치가 급소라 할 수 있는 목이다. 덕분에 라덴읜 체력 포인트는 전체량에서 1/4 가량 줄어 있었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 수는 없어.’
라덴의 전투 스타일의 핵심 특성은 ‘유혈’과 ‘폭혈’이다. 유혈은 전투가 지속되고 난전일수록 라덴의 체력 회복 속도를 뻥튀기 시킨다. 폭혈 특성의 광란 중첩은 타격이 거듭될수록 라덴의 전투 능력을 증가 시킨다.
이 특성의 핵심은, 라덴이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회피 위주로 하면서 체력을 회복시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기껏 쌓은 광란 중첩이 깎이게 된다.
‘아직 중첩은 2.’
타격 위주로 가야 해. 라덴은 마음을 굳혔다. 알케나가 설마 이렇게까지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허를 찔린 느낌이었지만.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없다고.
정말로?
빠르다. 대응이 늦다. 몸을 꺾고, 굽히고, 젖히고, 방어는ㅡ 안 돼. 베인다. 베였다. 거리를 줘서는 안 된다. 파고들어서, 칼을 휘두를 수 없는 거리를. 알케나는 파라스에서 세피아로 검을 바꿨다. 신검합일, 심안. 라덴이 모르는 알케나의 능력들은 이미 꽃을 피웠다. 청성이 발견하고 검왕이 인정했던 재능이다. 판타지아 시절은 피어나지 않은 봉오리였고, 트라우마로 인해 피어나지 않았던 그 봉오리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피어나고 있었다.
빠르다.
느리다.
서로의 생각이 교차한다. 라덴은 알케나의 속도에 압도되었고, 알케나는 라덴의 움직임을 간파했다. 그녀는 여전히 라곤을 쥐고 있었다. 신검합일과 심안, 라곤. 그로 인해 만들어진 ‘예지’는 라덴의 움직임을 완전히 간파했다. 그것은 라덴이 가진 포식감지 특성을 앞지른다.
라덴이 두 수 앞을 보았다면, 알케나는 세 수 앞을 보안다. 근소하지만 확실한 차이. 그것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세피아가 춤을 추었다. 저만한 길이의 태도임에도, 용케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라덴을 압박한다.
‘아.’
머리가 맑았다. 두통도 없었고, 속이 역하지도 않았다. 기분도 좋았다. 이 정도로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오랜만, 아니,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즐겁다. 알케나는 마음속으로 환희했다. 지금 그녀가 싸우고 있는 것은, 판타지아 때부터 투왕이라고 불리던 라덴이다. 알케나가 판타지아를 했을 적에. 그녀는 라덴을 동경했었다. 라덴처럼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당시의 알케나는 진심이었다.
발할라에 넘어와서 라덴을 만났을 때. 어린 시절의 우상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아마 그 감정이 방아쇠가 되었을 것이다. 알케나에게 있어서 라덴은 특별한 상대였다. 알케나 자신도 라덴에게 있어서 특별한 상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이 발전해서, 결국은 연심으로. 보답 받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미혹으로. 자괴감이, 연심이, 트라우마가, 짚이는 구석이 너무 많아서 뭐가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몇 달 동안 지옥이었다.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게임을 도피처로 삼았다. 발할라는 도피처로서는 훌륭했다.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지금 와서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잡생각은 이미 베어냈다. 미혹도 베어냈다. 환희만이 남았다. 검을 휘두르는 지금이 즐거웠다. 동경하던 라덴과 싸우고 있는 것이. 예전에도 많이 싸워보기는 했지만, 일방적으로 패배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지금의 나는.
‘바뀌었어…!’
칼부림이 계속된다. 라덴은 강기를 굳건하게 세우면서 알케나의 검을 막아냈다. 결국 소모전이 될 뿐이다. 강기의 낭비는 맨 몸에 강기를 두른 라덴 쪽이 심하다. 이대로 시간을 끌었다가는 이쪽이 먼저 말라 버린다.
과감하게 파고들어 공격하면? 시도해 보았다. 그리 재미를 볼 수는 없었다. 알케나의 반응속도가 너무 빠르다. 공격이 간파되고 있다. 강신을 펼친 에클러어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장비의 특수 스킬을 펼친다면 모를까, 지금의 상태로는…
지금의 상태로는, 뭐? 라덴은 빠득 이를 갈았다. 순간이나마 라덴은, ‘질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이 라덴을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판단 미스? 어디서부터? 알케나의 전력을 너무 얕게 보았나?
너무 오만했던 것 아냐?
‘나는.’
꽈앙! 라덴의 발이 바닥을 내리 찍는다. 이제는 스킬 목록에서 사라진, 호왕진산의 묘리를 섞었다. 비무대가 흔들리면서 알케나의 자세가 살짝 무너진다. 이것도 간파했겠지. 실제로 그랬다. 알케나의 자세가 열린다. 마치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너는 몇 수 앞을 본 거냐? 라덴은 진심으로 그렇게 묻고 싶었다. 대체 어디까지의 앞을 보고, 어디까지 나를 예측하는 거지?
변수, 변칙. 섞을 수가 없었다. 알케나의 심안은 라덴의 변수마저 간파한다. 이미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고 반격 당했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폭혈의 광란 수치가 오른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전투가 지속될수록 세피아에 베어진 라덴의 스탯을 하락한다.
‘더.’
라덴의 주먹과 세피아의 칼날이 부딪힌다. 서로의 강기가 산화한다. 밀려난 쪽은 없다. 라덴은 허리를 비틀었다. 반대쪽 주먹을 뻗는다. 라곤의 칼날이 빙글 돌아 라덴의 주먹을 받아낸다.
‘더.’
더, 더, 더. 라덴은 빠득 이를 갈았다. 아바타의, 아니, 아니다. 아바타와 이어진 정신이 불타버리는 것 같았다. 이게 모터라면… 더 회전을 빠르게. 라덴은 그를 의식했다. 더 빠른 움직임을, 더 날카롭게. 보다 더 강하게. 상황이 라덴을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라덴 본인이 그를 갈망하고 있었다.
충돌이 거듭되었다. 알케나는 여전히 환희했다.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다는 것에 알케나는 자기 자신을 뿌듯하게 여겼다.
‘더 할 수 있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서로가 똑같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고동이 빠르게, 크게 들렸다. 다시 한 번 충돌. 라덴의 손끝에서 피가 뿜어졌고, 세피아의 칼날에 가느다란 금이 새겨졌다.
몇 수의 앞.
아주 근소한 차이다. 차이가 벌어진다. 알케나는 라덴보다 아주, 아주 근소한… 그런 앞을 보고 있다.
라덴은 전체를 보았다.
파각! 라덴의 손끝에서 호령환의 손톱이 뽑힌다. 라덴은 기다렸다는 듯이 알케나를 향해 파고들었다. 서로의 강기는 거의 고갈되었다. 강기와 강기가 산화하지 않고, 주먹이 갈라지고 칼날에 금이 갔다.
이제야 겨우 동등해졌다. 라덴은 이를 악물었다. 리스크는 여전히 이쪽이 많다. 손톱을 뽑아냈다고는 해도, 거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상관없다. 검을 쥔 상대와는 몇 번이고 싸워보았다. 칼날의 날카로움은 두렵지 않다. 세피아와 호령환의 손톱이 부딪힌다. 카아앙! 날카로운 쇳소리. 강기의 부딪힘과는 다른 소리. 라덴은 허리를 비틀었다. 활짝 펼친 손바닥이 알케나의 배로 향한다. 알케나 역시 그 공격에 대응했다. 뻗은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때린다. 알케나는 스텝을 밟으며 라덴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누운 칼날이 라덴의 옆구리를 노린다.
‘더.’
몇 번이고 했던 생각이다. 더 빠르게. 양자택일로 스탯의 수치가 바뀐다. 치명상이 경상으로 그친다. 스탯은 하락한다. 결국은 마이너스, 상처가 늘어날수록 이쪽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강신 스킬을 쓸까? 아니, 내일의 일성이 있다. 일성을 염두에 둔다면 강신 스킬은 아껴야 해. 그렇다면… 강신을 아끼고 여기서 패배를 감수해야 하나? 강신 스킬로 내일의 일성을 잡을 자신은? 강신의 쿨타임은 일주일. 일성을 잡는다고 해도, 그 다음은?
‘패배를 생각하지 마.’
패배는 없다.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케나를 상대로 승리해야 하고, 일성에게 승리해야 한다.
‘맙소사.’
전투를 보고 있던 박민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말도 안 된다고. 박민우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동조율이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 알케나는 이미 자신의 동조율 최고 기록을 넘어 70%의 동조율에 도달해 있었다.
그것은 라덴도 마찬가지였다. 라덴이 기록했던 최고 동조율은 72%. 발할라의 모든 플레이어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그런 동조율이… 한계를 넘어 오르고 있었다. 현재 라덴의 동조율은 75%. 그 수치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75.123%, 75.125, 75.138%. 동조율이 오르는 것에 가속도가 붙는다.
‘이게 대체 뭐야?’
다섯의 랭커와 싸울 때에도 라덴의 동조율은 이렇게까지 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분명히 레벨이나 장비의 스펙, 가진 재능, 동조율을 본다면 알케나가 라덴보다 약할 텐데. 이 비무회에서 라덴이나 알케나의 최대 동조율이 오르는 것을 기대하기는 했지만, 설마 저 둘의 싸움에서 둘이 함께 동조율이 오르게 될 줄이야.
‘알케나가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박민우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비무대를 올려 보았다.
세피아의 칼날이 부러졌다.
‘…아.’
고유 특성으로 불러들인 검이지만 내구도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알케나가 부르는 다섯 개의 검은 그녀의 레벨에 비례한다. 상당히 혹사를 시켰으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부러진 세피아가 알케나의 손에서 사라진다.
‘스탯이 돌아왔어.’
손이 저릿 거린다. 라덴의 양 손은 피투성이었다. 호령환의 손톱을 꺼냈다고는 해도, 알케나의 참격을 맨 손으로 받아낸 대가였다. 그래도 잃은 스탯은 돌아왔다. 피를 많이 흘리기는 했지만 유혈 특성을 통해서 상처는 회복한다.
라곤을 쥐고 있으면서 알케나는 예지력을 얻었다. 그로 인해 라덴의 공격을 간파하고 반격하거나 회피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라곤은 그런 능력을 부여하는 대신에 치명적인 단점을 갖는다. 라곤은 상대를 공격할 수가 없다.
상대의 공격은 방어할 수 있어도, 라곤으로는 상대를 베거나 타격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 말은 즉, 한 손이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피아마저 부러진 이상, 알케나가 불러들이는 다섯 개의 검 중에서 공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파라스 뿐이다.
‘펜듈럼은 쓸 수 없어.’
체력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라덴은 강적이었다. 알케나가 신검합일과 심안으로 라덴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대응했지만, 라덴의 공격은 끈질기게 따라 붙어 알케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세피아가 부러진 덕에 세피아의 스탯 상승도 사라졌다. 라덴을 베어내면서 깎아내린 스탯도 다시 회복되어 버렸다.
알케나는 라곤을 포기했다. 더 이상 라곤을 쥐고 있어 봐야 크게 앞서나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알케나가 라덴을 압도한 것은, 세피아의 스탯 상승과 라덴의 스탯 하락 때문이었다. 그것이 신검합일, 심안과 겹쳐져 라덴을 몰아붙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아니다. 알케나의 왼 손에서 라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검이 쥐어졌다. 하라펠. 알케나는 입술을 깨물고서 자세를 낮추었다. 그녀는 양 손에 하라펠을 쥐고서 라덴을 노려보았다. 이 검 역시 직접 공격으로는 상대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
‘검이 바뀌었어. 뭐야 저건?’
저런 검은 처음 본다. 뭐지? 무슨 능력인 거야? 알케나를 덮치면서, 라덴은 하라펠을 경계했다.
휘두른 주먹과 하라펠이 닿았다.
“커윽!”
숨을 삼키는 소리. 라덴의 몸이 뒤로 나뒹굴었다. 라덴은 답답한 신음을 내뱉으면서 가슴을 움켜 쥐었다.
‘카운터.’
하라펠이 가진 능력이다. 이 검은 상대를 공격할 수 없다. 대신에, 상대의 공격을 검으로 받아냈을 때.
그 데미지를 반사한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