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71
“…마법사가 하나, 힐러 하나, 탱커 둘.”
[어떤 탱커?]
“장비를 말하는 거야? 흠, 한 명은 성기사 같은데. 다른 한 명은… 도끼. 아무래도 워리어 같아.”
[귀찮은 조합이네. 기왕이면 마법사의 속성도 알고 싶은데. 그건 힘들겠지?]
“한 번 체크해 봐? 이쪽에서 공격하면 대응하지 않을까?”
[아니. 지금 선에서 괜히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일단 물러나.]
“알았어.”
로사나는 귓속말에 대답하면서 걸음을 뒤로 땠다. 레인저는 원거리 딜러로서도 뛰어나지만, 이런 식의 정찰에서도 유용하다. 로사나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할까요?”
로사나의 귀환을 기다리면서, 라덴은 뒤를 돌아보았다. 라덴의 뒤편에는 스크라이더, 해로이, 라바, 새턴, 알케나가 대기하고 있었다. 스크라이더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술을 열었다.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교전하자는 뜻이죠? 흠,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라덴은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했다. 이벤트 타워에 새로 도입된 경쟁 던전. 이 던전은 복수의 파티가 동시에 진입, 경쟁하는 던전이다. 파티에 입장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최대 열 명. 상대는 열 명을 꽉 채웠지만, 라덴의 파티 쪽은 일곱 명 뿐이다. 본래 면식이 있는 플레이어들과 파티를 이루고, 빈 자리에 다른 플레이어를 영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사나가 발견한 적진 플레이어는 넷. 다른 여섯이 보이지 않아. 저들을 미끼로 던지고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것 아닐까?”
새턴이 의견을 냈다. 그것도 있음직한 일이었다. 경쟁 던전의 최종 목적은 상대 파티보다 먼저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보스 몬스터의 출현 조건은 간단하다. 상대의 파티를 전멸시키는 것. 상대의 파티를 전멸시킨 순간, 보스 몬스터가 소환된다.
“이 던전에서는 엘릭서를 사용할 수 없어. 우리쪽 힐러는 못미더운 혈법사 뿐이지만, 상대는 번듯한 힐러를 데리고 있지. 힐러의 전체 숫자도 확인되지 않았고. 싸움을 걸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지 않아?”
“에이, 못미더운 혈법사라니… 누님. 절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라바가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혈법사는 딜러와 힐러, 디버퍼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만능직이다. 좋게 말하자면 올 라운더고 나쁘게 말하자면 전부 다 어중간한 직업이다. 힐링 스킬은 힐러보다 못하고, 딜링 스킬은 딜러보다 못하고, 디버프 스킬은 전문 디버퍼보다 못하다.
“저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알케나가 새턴의 말에 동감하고 나섰다. 라덴은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경쟁 던전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붙는다. 우선, 엘릭서의 사용이 제한된다. 그리고 경쟁 던전에 들어가는 플레이어의 아바타에도 제약이 붙는다. 전체 파티원의 평균 수준에 맞게 아바타의 스펙이 조정되는 것이다.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는 썩 괜찮은 혜택이었지만,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에게는 패널티가 주어지는 꼴이다.
그것은 라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라덴의 파티와 적진 파티의 평균 레벨은 125. 본래 142였던 라덴의 레벨은 17이나 떨어졌다. 레벨 뿐만이 아니다. 아바타의 스탯도 평균으로 조정되었다.
“그렇다고 계속 대기할 수는 없잖아요. 상대 쪽에서 먼저 공격하는 것을 기다리자고요?”
해로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투덜거렸다. 엘릭서를 사용할 수 없고, 이쪽 파티에서 기댈 수 있는 체력 회복 수단은 혈법사인 라바가 펼치는 회복 스킬 뿐. 아바타의 스펙과 레벨이 조정된 탓에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가 나서서 캐리를 하는 구도도 힘들다. 게다가 상대 파티의 직업 분포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에 상대 파티를 전멸시킨 순간 보스 몬스터가 소환된다. 가혹한 조건이었다. 상대를 전멸시키면서, 이쪽의 체력을 최대한 보전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과감한 플레이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어쩌기로 한 거야?”
로사나가 돌아왔지만, 아직까지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새턴과 알케나는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대기하자는 쪽이었고, 해로이와 스크라이더, 라바는 먼저 공격하자는 쪽이었다. 어쩌다 보니 파티의 리더를 맡게 된 라덴은 중립의 입장을 취하였다.
“잠자코 기다린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죠.”
리더를 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리더가 되었을 뿐이다. 레벨이 가장 높고, 가장 강하고, 가장 유명해서. 생각해 보면 이유도 억지다.
“먼저 공격합시다.”
라덴은 결국 그쪽으로 결정을 지었다. 막상 결정을 내리니, 새턴과 알케나는 별다른 반론을 펼치지는 않았다. 기다린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둘 역시 그에 대해서는 공감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불독이야. 랭킹 2위인 카란이라고.”
새턴은 그렇게 말하면서 라덴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저쪽도 레벨 125로 조정되었겠지만. 너, 카란과 싸워본 적은 없잖아. 이길 수 있겠어?”
“해봐야 알지.”
이길 수 있다, 라고 확언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건방져 보일 테니까. 하지만 라덴은 히죽 웃었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내가 꿀릴 것은 없잖아?”
*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인저를 데리고 올 것을 그랬어.”
카란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투덜거렸다. 레인저를 데리고 왔다면 적 파티의 구성원을 아는 것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늦다. 이제 와서 파티의 편성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보가 부족한 것은 카란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은 상대에 그 라덴이 있다는 것. 그것이라도 알 수 있었던 것은,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상대 파티장의 이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설마 아이디만 같은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실망할 것이다.
“근데, 보스. 그 라덴이랑 보스랑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길드원 중 하나가 물었다. 카란은 그 질문에 킁하고 콧김을 불었다.
“그건 모르지. 싸워 본 적이 없으니까.”
“보스가 질 것 같은데. 보스도 봤잖아요? 라덴이 레이크랑 싸워서도 이기고. 그, 유적지에서 싸울 때에도 에클레어랑 샤오만, 자카이드, 잭헤드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존나 잘 싸우더만. 보스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이 씨발, 내가 어떻게 알아!”
카란이 욕설과 함께 고함을 질렀다. 괜히 욕을 먹은 길드원이 찔끔하겨 목을 움츠렸다.
[보스! 공격, 공격 받았습니다!] “뭐라고!”다급한 귓속말에 카란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쪽에서 상대를 파악할 수 없으니 먼저 찌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이도 놈들이 먼저 공격해 주었다. 카란은 앉아서 쉬고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뭐해 새끼들아! 가자!”
길드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이 경쟁 던전에서 카란이 데리고 온 파티원은 자신을 포함해서 열 명. 모두가 불독 길드 소속이다. 본래 불독 길드는 힐러와 탱커, 마법사 없이 근접 딜러들로만 이루어진 길드였다.
하지만 몇ㄹ 달 전부터 불독은 힐러와 마법사, 레인저 등의 원거리 딜러와 탱커를 영입했다. 근접 딜러들로만 구성한 길드로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볼트와 불칸 연합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근접 딜러밖에 없어서 꽤나 고생을 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불독의 주력은 역시 근접 딜러다. 이번 파티의 구성은 힐러 하나에 마법사 하나, 탱커 둘, 근접 딜러 여섯이다. 밸런스만 두고 보자면 그리 좋은 파티는 아니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다.
혈법사인 라바는 후방으로 뺀다. 라바의 디버프 능력도 쓸만 하기는 하지만, 라바는 파티에서 유일한 힐러 포지션을 맡고 있다. 전방은 말할 것도 없고, 괜히 어중간한 위치에 뒀다가 공격받아 죽기라도 한다면 후에 후에 있을 보스 레이드에 애로사항이 생긴다.
그런 라바의 곁에 스크라이더를 붙인다. 스크라이더는 파티에서 탱커 포지션을 맡는다. 하지만 스크라이더는 전문 탱커가 아닌 암흑기사다. 적에게 디버프를 걸고 딜을 하면서 버티는 직업이란 말이다. 자가 흡혈 스킬이 있으니 유지력은 꽤 좋은 편이지만, 탱킹 능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 탱커라도 보스 레이드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까 스크라이더도 후방으로 빼서 라바를 보호하게 만든다. 원거리 딜러인 로사나와 새턴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전방은 라덴과 해로이, 알케나가 맡는다. 근접 딜러 셋에 원거리 딜러 둘, 탱커 하나, 힐러 하나. 밸런스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탱커 먼저 녹이죠.”
라덴은 알케나와 해로이를 보면서 말했다. 서량 비무회 이후로 알케나와 게임 속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귓속말을 간간히 주고 받기는 했지만, 라덴은 내심 알케나를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알케나와의 비무가 끝났을 때, 그녀가 귓속말로 했던 말이 라덴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하지만 알케나는 그리 어색한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예전보다 더 라덴에게 살갑게 대했다. 알케나는 방긋 웃으면서 라덴을 보았다.
“제가 먼저 갈까요?”
“어… 아, 아뇨. 제가 먼저 갈게요.”
저렇게 웃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니까, 오히려 이쪽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덴은 꼴깍 침을 삼키고서 해로이를 보았다.
“너는 몇 템포 늦게 들어와. 우리가 시선 끌 테니까, 힐러 쪽에 접근해서 목 따버려. 할 수 있지?”
“해봐야지.”
해로이는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해로이의 베이직 클래스는 어쌔신이다. 어쌔신은 근접 딜러로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근접 딜러들처럼 정면으로 치고들어가는 역할은 아니다. 근접 딜러가 시선을 끄는 동안 은밀히 움직여서, 힐러와 마법사처럼 체력이 약한 상대를 우선적으로 정리하는 역할이다.
“갑니다.”
라덴의 움직임 자체가 신호가 된다. 라덴은 무릎을 낮추었다. 광풍 라젠트의 특수 스킬인 풍신의 가호와 광풍곡이 동시에 펼쳐졌다. 버프된 민첩 스탯에 양자택일 특성을 사용, 힘 스탯을 민첩으로 바꾼다.
라덴의 발이 땅을 박찼다. 콰아아아아! 날카로운 바람을 전신에 두른 라덴이 모여있는 불독의 길드원들을 덮쳤다.
“적!”
탱커들이 먼저 반응했다. 성기사로 보이는 탱커가 방패를 들어 세웠다. 쿠오오옹! 몸 전체를 가리는 방패에서 환한 금색 빛이 터져 나오더니, 그의 발아래에서 십자가가 그려졌다. 홀리 실드. 성기사가 사용하는 방어 스킬이다.
라덴은 오른 주먹을 치켜 들었다. 용왕격에 전사경을 섞는다. 콰르르르! 새하얀 강기가 라덴의 오른 팔을 휘감아 회전했다. 라덴은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서, 성기사가 세운 홀리 실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ㅡ꽈아앙! 커다란 소리가 났다. 성기사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홀리 실드가 일격에 박살났다. 레벨과 스탯이 조정되지만 않았어도 방패 채로 박살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해도 실드를 부순 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라덴은 허리를 비틀면서 다른 왼쪽 주먹을 휘둘렀다. 백호 류를 바탕으로 백호 무술관에서 배웠던 권법을 접목시킨다. 호왕진산, 파쇄권, 철산포, 대호격타.
“커읍!”
묵직한 일격이 성기사의 옆구리에 박혔다. 성기사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라덴이 성기사의 방어를 무너트렸을 때, 알케나가 움직였다. 그녀는 양 손으로 파라스를 쥐고서 워리어에게 달려들었다. 워리어는 눈을 부릅뜨고 양 손으로 도끼를 잡았다.
워리어는 탱커다. 하지만 방패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워리어는 어마어마한 체력과 방어력을 두고서,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며 어그로를 끄는 직업이다. 거대한 도끼가 알케나의 허리를 양단하기 위해 날아왔다.
하지만 알케나는 빨랐다. 그녀는 도끼의 궤적 아래로 파고 들고서 파라스를 휘둘렀다. 카가각! 워리어가 입고 있던 갑옷이 파라스에 스치면서 듣기 싫은 쇳소리를 냈다.
“라덴!”
성기사가 이를 갈면서 외쳤다. 라덴은 그 외침에 피식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맞아.”
부르기에 대답해 줬을 뿐이었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