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5
005/ 접속
자고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핸드폰을 확인했다.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분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이네.”
22년의 삶. 길다면 길겠고 짧다면 짧은 삶이다. 그 삶에서 김현성이 깨달은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솔직한 것은 통장 잔고라는 것이었다. 통장에 찍힌 0의 행진. 바로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그 앞에는 마이너스가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마이너스 대신에 3이 붙어 있었다.
‘삼천만원.’
김현성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학자금 대출로 지니고 있던 빚이 일천만원. 그것도 변제되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천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온 것이다.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해도 지독하게 현실성이 없다. 김현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긴. 진짜로 발할라를 만든 히어로 사라면, 삼천만원 정도면 푼돈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발할라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상현실게임이다. 발할라의 한달 계정비가 한화로 치면 100만 정도 된다. 최근에 발할라의 유저가 일 억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있었으니, 히어로 사가 월마다 거둬들이는 계정비만 해도 천문학적인 거금이다.
“껌값이네, 껌값.”
김현성은 투덜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조건이 너무 좋았다.
화장실 거울을 노려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콘이니, 팬이니. 그런 말을 전부 제쳐 두고서, 앨리스가 제시했던 조건은 너무 좋았다. 학자금으로 묶여 있던 빚은 변제되었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생활비를 받았다. 빚을 갚고 앞으로의 학비를 내기 위한 목돈을 만들어 두기 위해 올해는 휴학계를 제출하였는데, 필요했던 목돈이 생긴다면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는 없다.
2040년이 되었음에도 대학교 등록비는 여전히 비쌌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지.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아르바이트를 안 해도 된다. 휴학은 그대로 둔다. 생활비는 넘치도록 있다. 일천만원이 넘는 가상현실 캡슐도 지원해 준다고 했으니, 통장 안에 있는 삼천만원은 계정비와 생활비로 쓰면 된다.
‘5년 만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어젯밤, 앨리스는 만족하면서 돌아갔고 김현성은 긴장과 걱정, 불안을 남은 캔 맥주와 함께 삼키고서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일단 조사 먼저.’
판타지아의 캐릭터를 삭제하고서 5년. 일부러 가상현실게임 쪽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미련을 갖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발할라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고 있지 않다.
그러니 조사가 먼저다. 당장 시작하고 싶어도 캡슐이 없으니, 기왕 시간이 잉여로 남아 돌 때 자료를 조사해 둔다. 세수를 끝내고, 양치를 하고. 김현성은 화장실을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발할라’는 모든 면에서 ‘판타지아’의 상위 호환이다. 시스템에서부터 NPC의 AI까지. 모든 면에서 그렇다.
‘패턴이 없다.’
판타지아의 몬스터에는 패턴이 존재했다. 김현성이 판타지아에서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했던 몬스터는 둠 나이트 카사블로. 지금도 놈의 패턴을 완벽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카사블로와 처음 조우하게 되었을 때. 카사블로는 세 가지 패턴 중 하나를 랜덤으로 사용한다. 돌진 후 횡 베기. 돌진 후 내려찍기. 백스텝 후 원거리 참격.
세 가지 패턴마다 동반되는 디버프가 다르다. 횡 베기는 방어력을 마이너스로 깎아내린다. 내려찍기는 지속적인 출혈데미지를 입힌다. 원거리 참격은 짧은 경직을 준다.
‘은신을 사용해서 접근한다면 처음 패턴을 씹을 수 있어.’
그 뒤에는 다음 패턴으로 넘어간다. 김현성이 파악한 카사블로의 공격 패턴은 120개. 카사블로는 그 120개의 패턴을 상황에 맞게 섞어서 사용한다. 패턴 중 몇 개는 연계기로 작용하기에, 처음 패턴만 파악한다면 이후 패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카사블로 뿐만이 아니라 판타지아의 모든 보스가 그랬다.
하지만 발할라의 몬스터는 다르다. 패턴이 정해져 있지 않다. 발할라가 NPC와 몬스터에게 구현한 AI는 진짜 사람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평이다.
‘그건 직접 해 봐야 아는 것이고.’
몬스터와 NPC의 AI. 그 외에 발할라가 다른 가상현실게임과 차별화 되는 것으로 내세운 것이, 발할라의 게임을 관통하는 시스템이자 발할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계승’ 시스템이다.
발할라(Valhalla).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이상향이다. 북유럽의 주신인 오딘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전사들이 머무는 궁전이며, 그곳에서 전사들은 종말의 전쟁에 대해 대비한다고 한다.
발할라에 계정을 만드는 순간, 발할라의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뇌파를 스캔하여 즉석에서 하나의 영웅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영웅에 대한 기록이 발할라의 역사에 추가되면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뇌파로 만들어진 영웅의 이름을 계승받을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에게 적합한 스킬이 캐릭터에게 추가된다는 말이다.
‘캐릭터마다 전부 스킬이 다른 거야.’
말이야 쉽지. 일억이 넘는 플레이어마다 각자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말 아닌가. 그 말도 안 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발할라가 가진 시스템 관리 인공지능 ‘오딘’이다. 하나의 인공지능이 NPC와 몬스터의 AI, 일억이 넘는 유저를 감당하는 무수히 많은 서버 등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계승 외에 다른 성장 루트도 있기는 해.’
그렇다고 해서 발할라에 계승 시스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사와 마법사, 도적 등. 판타지아에서 존재했던 베이직 클래스도 존재한다. 그것은 발할라를 개발한 히어로 사가 판타지아를 개발한 매직 사를 인수한 영향이었다.
원한다면, 계승을 선택하지 않고 베이직 클래스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럴 경우에는 베이직 클래스에 성장 이점이 붙는다. 스킬의 성장 속도가 조금 빠르다는 식이다. 초반에는 거의 티가 안 나지만, 레벨이 높아질수록 스킬 레벨은 올리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은 계승을 선택하지.’
스킬을 계승받는다고 해서 베이직 클래스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스킬을 계승받고, 그 뒤에 베이직 클래스로 전직하는 방법을 고른다.
김현성 역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뇌파가 어떤 영웅을 만들어낼 지도 궁금했지만, 자신만의 스킬을 계승받을 수 있다는 것은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베이직 클래스는 무투가 쪽으로.’
그것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판타지아에서 투왕이라 불렸던 라덴은 무투가였다. 다른 베이직 클래스도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김현성이 가장 자신이 있는 것은 역시 무투가 쪽이었다.
초반 진행 루트를 살펴보았다. 발할라의 세계는 광활하고, 초보자가 시작할 수 있는 도시는 열 개였다. 각 지역의 특징을 확인하고서 김현성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스타트 지역은 서량으로.’
플레이어가 성장하기 쉬운 조건은 간단하다.
주변에 빠르게 파밍할 수 있는, 저렙 몬스터가 다수 출현하는 사냥 존이 있는가.
초보자를 위한 퀘스트가 다수 존재하는가.
퀘스트의 연계가 잘 되는가.
초보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열 개 지역은 대부분 저런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만, 서량은 그 중에서도 마이너한 곳이었다.
서량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플레이어가 아닌 NPC들이다. 일반 게임이라면 NPC가 강세를 보인다고 해서 크게 문제는 없지만, 발할라 내에서는 다르다.
발할라에서 NPC는 플레이어가 아니면서도 진짜 인간과 크게 차이가 없다. 즉, 발할라에서 플레이어는 같은 플레이어 뿐만이 아니라 NPC와도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냥터에서 사냥하고 있는데 몬스터를 스틸 당하고, 몬스터를 스틸한 놈이 알고 보니 플레이어가 아닌 NPC라는 경우도 심심찮게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서량은 초반에 플레이어가 성장하기 힘들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냥의 경우고.’
사냥 이외에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김현성은 머릿속에 넣은 정보를 정리하면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5년 만에 가상현실게임에 복귀하는 것에 조금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15살, 처음 가상현실게임에 접속했을 때를 떠올렸다.
김현성의 입가에 히죽 미소가 걸렸다.
*
정오가 조금 지났을 때, 캡슐이 도착했다.
V-캡슐. 히어로 사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이 캡슐은, 철저하게 발할라에 맞춰진 캡슐이다. 크기는 몸 하나가 딱 들어가는 싱글 침대 정도다. 김현성은 방 안에 설치된 V-캡슐을 보고서 혀를 찼다.
‘밥은 컴퓨터 앞에서 먹어야겠네.’
가뜩이나 작은 원룸이라서, 침대 옆에 캡슐을 넣으니 공간 여유가 너무 부족했다. 받은 삼천만원으로 차라리 조금 더 넓은 방을 구해볼까. 아니, 그건 쓸데없는 사치다. 곧바로 생각을 고쳐 먹은 김현성은 캡슐에 누웠다.
V-캡슐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구동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이미 캡슐 시스템에 발할라가 추가되었으니, 누워서 헬멧을 착용하면 끝이다. 천천히 캡슐의 뚜껑이 닫혔다.
‘처음 들어갔을 때도 느꼈지만.’
관짝이 닫히는 것을 보는 기분이다. 헬멧의 고글에 빛이 깜박거렸다. 캡슐의 바닥에 밀착시킨 몸에 찌릿하는 감각이 흘렀다. 감각센서가 캡슐과 동기화 되는 과정이었다.
[V-기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설치된 게임 목록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발할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발할라에 접속하시겠습니까?]예. 입으로 대답할 필요는 없다. 대답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잠깐의 침묵 후에 캡슐의 시스템 음성이 다시 머릿속에 울렸다.
[계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생성하시겠습니까?]예.
[서비스 이용 약관을..]스킵. 서비스 한 달 결제. 이후 캡슐 구동 시에 발할라 자동시작.
다시, 음성이 잠깐 동안 침묵했다.
의식이 멀어졌다.
-발할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현성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5년 만에 접속한 가상현실의 세계다. 우선,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내려 보았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몸뚱이가 보였다.
-발할라 내에서 사용할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라덴.”
김현성은 망설일 것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발할라에서는 중복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확인했습니다. 라덴님. 발할라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겠습니까?
“스킵.”
-아바타의 외적인 변경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발할라의 계승 시스템을 이용하시겠습니까?
“예.”
이미 조사했던 바이니 캐릭터 생성부터 시스템의 진행은 빠르다. 김현성, 아니, 라덴의 눈앞에 환한 빛의 구체가 나타났다. 넓게 퍼진 빛이 라덴의 몸을 감쌌다. 찌릿거리는 감각이 머릿속부터해서 몸 안을 훑었다.
-확인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이 작업은 몇 분 정도 소요될 수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라덴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았다. 게임 내의 스탯이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아바타는 라덴이 발할라 안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아바타다.
우선 감각을 확인한다. 통증 센서는 게임 내에서 조절할 수 있고, 그 외의 동조율도 게임 내에서 조절이 가능하다.
‘조금 더디나.’
손을 쥐었다 펴면서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게임 아바타가 생성된다면, 가장 먼저 아바타의 동조율을 먼저 손 봐야 할 것 같았다.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음성이 말을 걸었다. 라덴의 몸을 휘감고 있던 빛이 사라졌다.
-라덴님은 제 12차원 판테리아. 로디악의 일곱 마왕 중 하나. 짐승의 마왕의 이름을 계승받으실 수 있습니다.
-계승받으시겠습니까?
“마왕?”
라덴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영웅이 아니라 마왕?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영웅의 이름을 계승받는다고 뭉뚱그려 말하기는 하지만, 발할라에서 계승받는 이름은 뚜렷하게 말하자면 발할라의 세계관에 존재하는 초월자의 이름이다.
“..뭐.. 상관없지. 계승은 무조건 받을 생각이었으니까.”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계승되었습니다.
-시작 도시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을 받으시겠습니까?
“시작 도시는 서량으로.”
-확인했습니다.
라덴의 발이 붕 떠올랐다. 천천히 날아 오른 그의 몸을 환한 빛이 감쌌다.
-서량으로 전이됩니다.
-그러면, 즐거운 모험 되십시오.
라덴의 몸이 백색의 공간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