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5)
유연서는 이태겸의 병실을 들르고, 민성철을 잡아둔 곳으로 가기 전에 민성철이 살았고 원세븐의 옛 숙소였던 곳을 찾았다. 백서준이 먼저 다녀갔는지 노란색 경찰 통제선이 처져 있었다.
‘오랜만이네.’
이런 좁은 집에서 일곱 명이 살았나······ 구질구질했지만, 나름의 추억도 있는 공간인데 민성철이 다 망쳐 버렸다.
유연서는 집 안으로 들어와 거실과 주방을 살폈다. 꽤 오래 살았는지 생활감이 느껴진다. 이어서 그는 침실로 향했다. 2층 침대로 가득 찼던 공간은 온통······.
“미친놈······.”
이희서와 유연서의 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연서는 작게 기침하면서 벽면을 한가득 채운 코르크판 앞에 섰다.
‘오래도 조사했군.’
유연서의 데뷔 시절 사생이 찍었던 길거리 사진부터 가장 최근에는 ‘비속 살해’의 촬영지가 보인다. ‘스네이크’의 홍보를 위해 게릴라 데이트를 했던 거리, 군중들 사이로 유연서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스태프로 위장했던 날에 쓴 모자까지.
‘딱히 일은 안 하는 거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지? 유연서는 집안 곳곳을 뒤졌다. ‘통찰’ 덕분인지 손이 가는 곳마다 숨겨둔 걸 찾게 됐다.
‘이게 대가인가?’
낡은 통장에는 민성철의 수준으로는 평생 못 만질 돈이 입금된 내용이 있었다.
‘······이제 슬슬 민성철을 캐 봐야겠어.’
딱히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아마 민성철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옛 숙소를 빠져나왔다.
이희서와 유연서로 이어진 몇십 년의 집착, 민성철이 설마 주위에 이태겸과 임승현이 지켜보고 있는 걸 몰랐을까? 스토커 짬이 몇 년인데? 아마 알 것이다.
민성철은 의도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냈고, 꼬리를 밟혀줬다. 차를 타고 도주하는 건 변덕일 수도 있지. 아무튼 쉽게 잡혀줬지만, 쉽게 입을 열지는 않을 것 같다.
‘저놈의 생각을 알아야 해.’
아니, 민성철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놈이 뭘 원하는지 알지. 유연서는 본능적으로 민성철을 작품 속 배역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기로 했다.
민성철은 이희서가 그룹 활동을 할 때부터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녔다. 경찰서에 드나든 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당시 소속사 관계자의 말로는 자신과 이희서는 연인 관계라고 철썩 믿었었지.
‘민성철은 자신을 부정하는 이희서에게 배신감을 느꼈지만, 그때까지는 악감정이 없었을 거야. 못 보면 살 수 없었으니까. 내가 노력하면 이희서도 나에게 다시 돌아올 줄 알았겠지.’
화자가 ‘자신’에서 ‘나’로 바뀐다. 점점 민성철이라는 배역에 몰입했다.
‘하지만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건 아니지.’
유연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온전히 내 사람일 줄 알았던 사람이 나를 버렸어.
게다가 유 회장의 저택은 철통보완이었고, 이희서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 일을 놓았다.
과거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어도, 이희서의 ‘지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난 너의 현재가 되고 싶었는데.
‘왜 나를 버리고 그런 놈에게 갔어? 우리 좋았잖아. 네가 날 좀 싫어해도, 받아줬잖아. 우리도 조금만 노력하면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 텐데.’
내 눈에 볼 수는 없지만, 기사를 통해서 그녀의 소식을 듣는다. 첫째를 낳았다고 한다. 그 아들이 천재란다. 그것도 어쩜 나를 닮았는지.
‘왜 나는 너를 볼 수 없어? 우리 아들은?’
주성 그룹에서 신년 인사 겸 이희서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두 아들들의 얼굴은 볼 수 없게 처리돼 있었다. 왜 저 자리에 내가 없지?
그리고 때마침 ‘머리’가 접근한다. 나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이희서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냐고 살살 꼬신다.
‘너의 현재가 될 수 없다면, 마지막이라도 되겠다.’
넓게 펼쳐진 정원과 화려하고 큰 저택을 바라본다. 고작 돈 때문에 나를 버린 거야? 분노가 점점 치밀어 오른다. 어쩌면 내 아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유연서를 쓰다듬는다. 아니지, 그녀의 아들이면 내 아들이잖아.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제정신이 아니라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집으로 가자고 설득하면, 그래서 그녀가 따라준다면······.
[당신, 당신 그때 스토커······!]왜 날 그렇게 봐? 괴물 보듯이 보지 마. 난 너를 위해서······.
하지만 이희서는 계속 자신을 거부한다. 살해한 건 계획적이지만, 우발적이기도 했다. 화가 치밀어오른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날 거부하는 것도,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진 것도.
“······허억!”
잠시 몰입이 풀린 유연서는 거칠게 심호흡하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민성철은 이희서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도 그녀와 똑 닮은. 유연서는 홀린 듯 손을 들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제 진짜 우리 집으로 가자.’
“우욱······.”
몰입에서 벗어난 유연서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정신적 충격 때문에 피를 토하는 게 아니라, 목구멍에서 신맛이 느껴진다. 지극히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나를 자기 아들로 보다가 이희서의 대용품으로 생각했다가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은데······.’
내가 만약 여자였으면 나를 이희서로 착각하고 더 집착했을지도 모른다. 계속 뒤에서 바라만 보다가 이희서에게 접촉했을 때처럼 나와 대화하고 교류하고 싶어 한다.
잘만 회유하면 원하는 대로 입을 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방법이 내키진 않지만.
유연서는 민성철과 대면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었다. 흰 셔츠와 흰 면바지. 마치 이희서의 마지막을 연상시키듯 말이다.
그는 문을 열기 전에 위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기침을 애써 삼켰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안 좋은 느낌을 받았지만, 봐야지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왔어?”
유연서가 들어가자마자, 민성철은 고개를 슬며시 들고 씨익 웃었다. 마치 선물 포장을 뜯는 것처럼 설레 보였다.
유연서는 제 감정을 숨기고 민성철이 바라는 것을 연기하기로 했다. ‘감나무 아래’에서 이희서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붙잡고 온종일 연습했던 표정이었다.
그 법이 사람을 지켜주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아무튼, 하지 말라면 더 해 봐야지. 나는 내 몸을 지킬 수단이 있다. 미래의 신체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나, 나를 알아?”
“그때 뵀잖아요. 나한테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역시 너라면 기억할 줄 알았어. 이희서와 똑같은 미소를 보고 잠시 굳어 있던 민성철의 눈에 생기가 감돈다. 대뜸 손을 잡는 민성철이 역겨웠다. 손을 타고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래. 기억하고 있었구나.”
“제가 어떻게 잊겠어요.”
절대 못 잊지. 너 때문에 내가 거의 평생을 시달렸는데.
하지만 민성철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역시 핏줄은 달라. 나를 알아보는구나. 멍청한 제 어미와는 다르게.
“왜 일부러 꼬리를 잡혀 줬어요?”
역시 내 핏줄이라 내 의도를 정확히 눈치채 주는구나. 역시 제 엄마와는 달라. 대견하다. 민성철은 피식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재밌잖아. 너랑 나는 유대를 쌓을 시기가 없었으니까······.”
나와 정상적인 부자 관계를 꿈꾸나 보지? 유연서는 아들로 태어나서 다행이라 생각하곤 일단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희서와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던 이선자의 말로는, 이희서는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던 습관이 있다고 했다.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놀아드렸을 텐데요. 괜히 내 매니저만 다쳤······.”
“그 새끼는 너한테 도움이 안 돼!”
민성철은 갑자기 버럭 소리쳤다. 감정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군. 하지만 민성철이 이성을 잃을수록 좋다.
“미, 미안. 놀랐지?”
유연서가 놀라서 몸을 흠칫 떠는 척을 하면서 실망한 표정을 드러내자, 민성철은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쩔쩔맸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무섭게.”
“정말 미안해. 내가 가끔 이렇게 욱할 때가 있어서.”
“그렇게 욱하다가 우리 엄마도 죽였어요?”
허우적대던 민성철의 행동이 멈춘다. 황홀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이런, 너무 빨랐나? 아냐, 예감이 좋다. 기회로 삼아서 더 구슬려 보자.
“그래, 그랬지······ 너는 날 잡으러 온 거지?”
“아뇨, 그런 거 아니라······ 그냥, 왜 그러셨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래?”
“20년이 지났어요. 이젠 잘 기억도 안 나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도 민성철의 어깨 위에 올려진 희디흰 두 다리가 보이지만, 애써 무시했다.
“왜 그랬는지 알면 이해할 수 있잖아요.”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그렇게 회유하니 민성철의 표정이 굳었다가 미소를 지었다가를 반복했다. 제정신이 아니다. 진짜로. 유연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내가 죽였다.”
“······왜요?”
구석에 설치된 카메라가 이 상황을 모두 녹화하고 있었지만, 증언을 땄다는 성취감은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본인의 입으로 인정하니 점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날 버리고 갔잖아. 그깟 돈 때문에!”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모습에 더 듣고 싶지 않지만, 들어야 한다. 머리가 계속 신호를 보낸다. 베타가 보내는 건가?
민성철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이희서에게 애정을 드러내다가 배신감 때문에 몸서리치면서 분노하기를 반복했다. 유연서는 그걸 대충 대꾸하며 받아줬다.
“박경석 그 새끼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박경석이요?”
“그래, 네 고모부.”
뜬금없이 작은 고모부의 이름이 흘러나왔을 때, 유연서는 번개가 쾅! 하고 내리치는 착각을 받았다.
‘설마······.’
“네 엄마한테 음심을 품고 있었지. 능력도 안 되면서 희서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더러운 새끼······.”
심장이 크게 뛴다. 유연서는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저로서는 믿기 힘든데요. 그러니까, 작은 고모부가 제 엄마를 죽이라고 사주했다는 소리인가요?”
“맞아. 나한테 직접 찾아왔어.”
충격받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 민성철이 괜히 얘기했다며 제 입을 때렸다.
“······저한테 거짓말하려는 게 아니라요?”
“못 믿을 수 있지. 너는 그 새끼를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을 테니까.”
그리고서는 소매에 감춰 둔 메모리 카드를 슬쩍 내밀었다. 그리고는 살살 흔들었다. 마지막까지 유연서를 떠보려는 심산이다.
“줄까?”
“마음대로 하세요. 난 그걸 원한 게 아니니까.”
난 널 이해하려고, 대화하려고 잡은 거지 이런 걸 원한 게 아니라고 어필했다. 그래야 순순히 넘겨줄 것이다. 민성철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유연서는 쐐기를 박았다.
“자주 찾아뵐게요.”
“그래?”
“이제 뒤에서 몰래 지켜보는 건 지치잖아. 나랑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안 즐거워?”
집착의 대상이 사라지니 허무함을 느끼고 계속해서 과거를 되새겼을 것이다. 그러다가 찾은 대용품이다. 이번에는 쉽게 없앨 수 없겠지. 유연서는 자신과 대화하면서도 갈증을 느끼는 민성철의 태도를 기민하게 살폈었다.
“······그래.”
잠시 망설이던 민성철은 유연서의 바로 앞에 메모리 카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