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194)
제194화
194. S랭크 파리 한 번 잡아볼까?
“시작됐군.”
황룡 길드 원정대 3조 대장 디니거얼 가오는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뒤로 대기 중이던 40명의 원정대원도 따라 일어났다.
“진입한다.”
디니거얼의 명령이 떨어졌다. 원정대원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모두 움직인 건 아니었다.
“진짜 들어가야 합니까?”
“시린나이, 지금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는 건가?”
디니거얼은 발걸음을 멈추고 시린나이를 매섭게 째려봤다.
그의 목소리에 살기가 담겨 있었기에 시린나이는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녀는 할 말은 해야겠다며 입을 열었다.
“대장님도 아시잖습니까? 길드에서 우릴 버림패로 쓰는 거. 말만 원정대이지, 실상은 위구르 출신들 한데 모아 써먹을 만큼 써먹고 언제든 몬스터든 전쟁터든 던져버릴 고기 방패 아닙니까?”
“그거 모르고 여기 들어왔나?”
“알더라도 살길은 좀 열어줘야죠. S랭크 싸움에 끼라는 건 죽으란 소리 아닙니까?”
공격대원들은 시린나이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이니 따르긴 하지만, 모두가 시린나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디니거얼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확인하곤 한마디 했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들이 ‘무사히’ 잘 먹고 잘살고 있지 않나?”
그 말에 공격대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대장의 말이 못마땅했던 시린나이는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고맙네요. 우리 사정을 상기시켜줘서.”
“협박으로 듣지 마. 그게 사실이니까.”
“대장님도 같은 위구르인이면서 어찌 그리 가족들 안위를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죠? 아? 한족 혼혈이라서 그런가요?”
디니거얼은 한숨을 쉬었다.
‘이 문제가 또 여기서 발목을 잡는군.’
디니거얼은 한족과 위구르족의 혼혈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그의 정체성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위구르식으로 이름을 지었지만, 아버지 성을 따서 이름 뒤에 ‘가오’를 붙인 것이다.
그 덕분에 위구르족으로만 이루어진 원정대, 일명 ‘사수대(死囚隊)’의 대장이 될 수 있었다.
소수민족 헌터들을 다루기 위한 황룡 길드의 술책이었다.
“남들이 아무리 사형수 부대라고 놀린다지만, 너흴 죽음으로 내몰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길드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지. 굳이 도망치겠다면, 잡진 않으마. 싸우다 죽은 것으로 해주겠다.”
결국, 디니거얼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어떠한 이유를 들더라도 위구르족 출신 헌터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완벽하게 설득할 순 없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정대 이탈을 묵인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태껏 도망친 헌터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불평불만도 넋두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모두의 얼굴에 체념이 떠올랐다.
“우리…. 살아나올 수는 있고요?”
“적어도 도망칠 땐 내가 가장 마지막에 나갈 거다.”
그 한마디면 족했다.
* * *
카멘스키와 심월의 전투는 막상막하였다.
양쪽 모두 숨겨진 한 수가 있었지만, 서로 틈을 보이지 않는 이상 함부로 쓸 수 없었다.
‘늙은이. 말로만 들었었는데…. 이건 숫제 괴물이로군. 아무리 노익장이란 말이 있다지만, 이건 아예 나이를 거꾸로 먹은 거 아니야?’
전투가 길어질수록 심월은 동토의 사신이 가진 명성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남산도가 낳은 기린아라더니. 과연 그리 불릴만하군. 이대로 몇 년만 더 지나도 위험해지겠어.’
카멘스키도 거듭 감탄했다. 동시에 우려가 됐다.
자신은 늙어가면서 전체적인 기량이 떨어지겠지만, 남산도의 악귀는 점차 전성기를 향해 갈 테니까.
헌터들의 신체 나이는 랭크가 높을수록 더디게 노화된다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었다.
대전쟁 말기에 늦은 나이로 각성했을 때부터 셈하면, 그도 벌써 여든 줄을 앞두고 있었다.
“흐읍!”
“차핫!”
기합성을 울리며 또 한 차례 격돌했다.
창과 대낫이 맞부딪친 지점을 기점으로 마나의 기류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아스팔트가 벗겨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이미 유명무실한 보도블록이 조각나며 흩어졌다. 건물에 남아있던 유리창이 깨졌고, 외벽이 부서지며 앙상한 철근을 드러냈다.
둘은 다시 떨어졌다. 심월이 금세 따라붙었다. 남산도의 전투법을 닮아 공격적이었다.
반면에 카멘스키는 슬금슬금 물러나며 방어하거나 카운터를 날렸다. 저랭크 헌터들이 봤다면, 그가 밀린다고 판단했을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실제론 체력을 아끼며 요소요소에서 우위를 점했다. 심월의 막강한 체력이 아니었다면, 벌써 진이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카멘스키는 반쪽이 무너져내린 10층 높이 빌딩 위로 뛰어올랐다. 벽에 손을 박고 뒤를 쳐다봤다. 심월이 쫓아왔다. 길게 늘어진 창격이 빌딩 채로 카멘스키를 베었다. 남은 반쪽도 절반으로 절단이 났다. 하지만 그는 이미 반대편 아파트 단지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카멘스키가 지그재그로 아파트 각 동을 옮겨 다니며 시야를 교란하자 심월은 짜증을 내며 창을 등 뒤로 길게 뻗어 자세를 잡았다.
“늙은이. 내가 지치길 기다리는가 본데. 소용없다는 걸 보여주지.”
심월은 창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어느 순간 창이 심월에게서 마나를 뽑아냈다. 폭포수가 떨어지듯 거친 마나를 받아들인 창이 비명성을 질렀다.
그때 심월이 창을 땅과 평행하게 반원을 그리며 휘둘렀다.
【귀령격】
심월의 독문병기, 귀곡창의 귀속 스킬이 아파트 단지를 덮쳤다.
귀곡성을 울리며 날아간 참격이 괴이한 에너지 줄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지나갔다.
참격에 건물들의 허리가 잘려나갔다. 무너져내리는 건물 잔해는 에너지 줄기가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부수었다.
카멘스키는 지상에 내려섰다. 그리곤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파묻혔다.
아무리 S랭크라도 저만한 질량을 몸으로 받으면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을 터였다.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었지만, 오히려 낭패한 표정을 짓는 건 심월이었다.
‘칫! 이 늙은이 내 스킬을 꿰고 있잖아?!’
귀령격은 귀곡창에 담긴 원혼들을 다루는 스킬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원혼들은 움직이는 것에 반응해 달려들었다.
반대로 말하면, 움직이지 않는 대상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뜻.
건물이 무너지는 곳 아래에서 피하지 않는다는 건 귀령격의 특성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다.
심월은 전투 중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조사해왔다는 거겠지. 이건 낚시가 아니라 사냥이잖아? 아예 작정하고 왔구나, 니콜라이 카멘스키!’
대전쟁과 소전쟁을 모두 겪은 노장의 노림수에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S랭크. 두려움이란 단어를 몰랐다.
이는 곧 분노로 변했다.
“감히 나 심월을 몬스터 취급해?!”
자욱한 먼지 사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카멘스키의 기척이 느껴졌다.
심월은 창과 하나가 되어 그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역시 범죄자 출신은 성미가 급하다니까. S랭크쯤 됐으면 혈기 정도는 다스려야지.’
카멘스키 역시 심월의 움직임을 느꼈다. 아니, 예측했다.
자신을 창날에 꿰기 위한 심월의 돌격을 기다렸다.
서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격을 날릴 타이밍은 정확히 재고 있었다.
승부는 찰나. 1초를 수백 번 나눈 극히 짧은 시간. 둘은 같은 타이밍을 노렸지만, 마지막 순간 웅크리고 있던 카멘스키는 1초를 한 번 더 나눴다.
“큭……!”
자욱하던 콘크리트 가루가 가라앉았을 때 모습을 드러낸 건 옆구리에 대낫의 날 끝이 박힌 심월의 모습이었다.
갑옷은 부서져 있었다. 대낫은 핏물을 먹으며 그녀를 비웃는 듯 비틀어졌다.
통증이 상당했지만, 심월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호오, 마지막 순간에 몸을 틀다니. 제법이구먼.”
카멘스키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의 백발과 백미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그 아래 형형한 눈빛만은 맹수의 눈처럼 빛났다.
이 한 수로 그의 우위가 분명해졌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은.
‘내 승리다.’
카멘스키의 대낫이 뽑혔다. 심월이 한발 늦게 반응했다. 귀곡창의 창날이 카멘스키에게를 향해 돌려졌지만, 늦은 때였다. 대낫이 먼저 심월의 몸을 가를 터였다.
그때.
“흡!”
카멘스키의 몸이 일순 덜컥였다. 아주 잠시, 인간이라면 느끼지도 못할 만큼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언가가 찰나 자신을 옭아맸다.
그는 그 힘을 순식간에 풀어내며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헌터? 이런…. 심월에게 집중하느라 이런 술수를 놓치다니.’
이 빈틈이 심월에겐 기회가 됐다.
창과 대낫이 서로 스쳐 지나갔고, 카멘스키의 우측 복부가 핏물로 도배됐다. 가죽 갑옷이 길게 찢어져 너덜거렸다. 그 틈으로 삐져나온 살점들이 누더기처럼 보였다. 허공에 피를 뿜어내던 카멘스키는 급히 마나를 돌려 복부의 창상을 강제로 눌러 붙였다.
“전세 역전이로군, 사신 영감.”
“그것참 축하할 일이로군. 그런데 일대일 아니었나?”
“비겁하다는 거야?”
“그냥 확인한 거야. 이 바닥에선 당한 놈이 멍청한 거잖는가.”
“하긴 영감이 노망들 나이이긴 하지.”
“다른 건 다 준비해놓고 이걸 예측하지 못한 내 불찰 정도로 정리하마.”
“칫! 나도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야!”
심월은 자신을 도운 헌터들을 돌아봤다. 아머 코트 대신 입은 황룡 길드 전용 피풍의. 황색의 망토는 원정대만이 입을 수 있는 제복이었다.
‘괜한 짓을 했군. 관홍. 내 이 수모는 잊지 않으마.’
원정대가 아무리 고랭크 헌터들의 집단이라 해도 S랭크에게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곤 마법으로 아주 잠시 멈칫거리게 하거나 목숨을 던져 시간을 버는 정도였다.
죽음을 담보로 심월을 도왔으나 되레 그녀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 상황.
이것만으로도 헌터들이, 특히 S랭크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들인지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심월은 카멘스키를 잡은 후 황룡의 원정대마저 쓸어버릴 독심을 품었다.
자신의 치부를 아는 사람은 모조리 없애버리리라.
이곳을 빠져나가는 건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 혼자여야 했다.
“아주 딱 좋게 요리되어 있군.”
갑자기 쇠를 긁는 듯 듣기 싫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월과 카멘스키가 음성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허. 이고르 두드닉…….”
카멘스키가 상대를 알아봤다. 심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놈이…. 폭군?”
“폭군님이라고 불러라.”
이고르가 씨익,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심월은 자신의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신이 아무리 다쳤어도 S랭크다. 내 몸도 성치 않고. 이대로 S랭크 둘과 싸웠다간 그냥 개죽음이야.’
심월은 도망칠 궁리를 했다. 황룡 길드의 원정대를 희생양 삼아 도망치려 했다.
그녀가 움직이기 직전 이고르가 먼저 행동했다.
어떠한 징조도 없이 순식간에 거인으로 변했다. 거대한 손이 심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월은 창으로 손바닥의 정중앙을 찔렀다. 창대가 부러질 듯 휘었다. 하지만 질량의 힘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녀는 창과 함께 땅속에 처박혔다.
“S랭크 파리 한 번 잡아볼까?”
* * *
“저예요, 강 단장님.”
-예. 길드장님. 지린시엔 도착하셨습니까?
“폭군은 벌써 끼어들었어요.”
-상황은요?
“사신과 악귀, 둘 다 부상을 입은 상태예요. 단장님 예상대로 황룡 길드의 원정대도 보이고요.”
-아마 하얼빈에서도 병력이 내려올 겁니다.
“아하? 그래서 저보고 북쪽에서 대기하라고 한 거군요?”
-하얼빈 지원을 처리하십시오. 정체는 발각되지 않게.
“모두 죽이라는 건가요?”
-도망치는 사람들까지 처리할 필요는 없겠죠. 그냥 얼굴만 가려도 됩니다.
“얼굴 가린다고 가려질 미모가 아닌데. 제가.”
-…….
“농담이에요, 농담.”
-농담이 어째 혼을 담은 것 같이 들렸습니다.
“그냥 넘어가시죠. 아무튼, 하얼빈 지원을 차단하란 거죠?”
-예. 그리고 또 한 가지.
“뭔데요?”
-카멘스키에 관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