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4)
제54화
54. 잘못은 나쁜 짓을 한 쪽이 잘못입니다.
“왜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강무혁의 말이 끊기자 노송린은 의아해했다.
‘말이 안 되는데?’
강무혁은 여태껏 김명준을 우중도에서 꺼내 준 곳이 슬레이어 길드라 의심하고 있었다.
어떤 증거 때문이 아니었다. 상식적인 추론이었다.
헌터를 여럿 죽인 죄로 우중도에 갇힌 살인자가 겨우 7년 살고 모범수로 석방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가끔 불가능한 헌팅 임무에 동원돼 형량을 감형해 주는 특별법의 수혜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혹은 힘 있는 세력이 나서서 불법적으로 빼내거나.
기록상 김명준은 우중도에서 헌팅에 나섰던 적이 없었다. 당연히 후자일 거라 여겼었다.
그야 당연하지 않겠나.
석방 후, 중소기업으로 위장한 티어 길드의 비밀스러운 위성 길드에 몸담고 있으니.
슬레이어 길드가 김명준을 청소꾼으로 쓰기 위한 계획이리라.
‘―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노송린의 말대로라면, 한성기업은 슬레이어가 만들면서 김명준을 앉힌 게 아니라 김명준의 제안에 의해 만들어진 곳.
물론 슬레이어에서 아예 생각이 없었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침 필요한 때를 잘 맞춰 김명준이 끼어들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럼, 김명준은 다른 방식으로 석방됐다는 건데.’
강무혁의 오성이 번뜩였다.
유니온, 한성기업, 김명준, 슬레이어 길드.
그리고 마침내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김명준은 단순히 슬레이어의 하수인이 아니었던 거로군.”
“예?”
“최소한 겉으론 슬레이어 영향 아래 있었겠지만…. 어쩌면 또 다른 세력과도 손을 잡고 있는지도.”
“다른 세력이요?”
“이제야 협상할 대상이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요.”
뜬금없는 혼잣말에 노송린이 재차 물었지만, 강무혁은 대답을 뒤로 미뤘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아무래도 급히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심각하냐고요? 글쎄요. 어쩌면 좋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
“예. 김명준입니다. 누구요? 아! 아이언윌. 강무혁 단장님이셨죠? 연락처 드린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아시고. 그래서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아아, 그래요? 오늘 저녁 시간? 괜찮습니다. 저야 좋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가 야근이라서. 네? 이쪽으로 직접 오시겠다고?”
김명준은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좋습니다. 예. 저녁 8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김명준이 전화기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총무팀에서 내선으로 연결한 번호. 그는 강무혁에게 자신이 한성기업 소속이라고 말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태 회장 별장에서 단 한 번 만났었지. 대화도 짧았고, 내 정체에 대한 어떤 단서도 남긴 적 없다. 정 실장 입이야 무거우니 흘러나갔을 리도 없고. 그런데 타이탄을 이용해 두드렸더니 며칠 지나지도 않아 연락을 해 와?’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강무혁과의 연결점이 너무 적었다.
김명준은 스마트폰으로 연락처를 뒤졌다.
[노송린]-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합니다.
“흠, 아직 북포천에 있는 건가? 이럴 땐 길드를 이전한 게 정말 곤란하군.”
스파이를 심어 놔도 통화가 되질 않으니 소용없었다.
꺼림칙했다.
보통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기반을 두고 몸을 사릴 순 없는 일.
게다가 숨는 것 자체가 의심을 살 일이었다.
강무혁의 의도가 단순 사교 활동이든, 타이탄 일을 따져 물으려는 것이든 괜한 여지를 주는 행동은 피해야 했다.
“그렇다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김명준의 손이 바쁘게 전화기를 돌렸다.
“나야. 별일 없지? 본사로 좀 들어와.”
* * *
한성기업이 있는 서울 외곽 공장 지대는 해가 떨어졌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아이템 관련 공정을 맡은 중소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야근을 하는 직원들은 소수 근무조였기에 낮에 비하면 한참 적은 숫자였다.
한성기업에 가기 전 한적한 도로에서 강무혁은 차를 세웠다.
“예전에 쓰는 전화기야 길드에 두고 왔다지만. 너무 연락이 안 되면 의심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이번엔 괜찮을 겁니다. 북포천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통신선이 놓여 있질 않으니 말이죠. 당분간은 지금 스탠스 그대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시면 될 겁니다.”
“정말 이대로 혼자 들어가셔도 괜찮겠습니까? 김명준. 아주 위험한 자입니다.”
“듣자 하니 위험한 만큼 자기 몸 사리는 사람인 것 같던데. 아마 괜찮을 겁니다. 그래서 보험도 들어 놨잖습니까?”
“절 믿으시게요? 자신 없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시면 어쩌려고요?”
“전 도끼를 믿진 않습니다.”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노송린은 그 말뜻보다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에 섭섭해했다.
강무혁은 노송린을 차에서 내려 주고 한성기업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노송린은 혀를 내둘렀다.
“참 간도 크지. 나도 쫄리는 곳에 혼자 기어 들어가다니. 저 사람 진짜 헌터 아닌 거 맞아?”
* * *
한성기업은 바쁘게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근처 공장과 다르게 야근이 없었다. 대부분 직원은 퇴근한 상태. 하지만 곳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강무혁은 직감적으로 그들이 헌터라는 걸 눈치챘다.
공장 정문을 지나자 철제문이 드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백미러를 확인하자 두 사람이 양쪽에서 문을 밀고 있는 게 보였다.
‘노송린 헌터가 말했던 그 우중도 출신 친위대인가.’
낮은 철문이었지만, 퇴로가 막힌 듯한 압박이 목을 죄어 왔지만, 강무혁은 동요하지 않았다.
상대는 몬스터보다 사람을 더 잘 잡는 사냥꾼들.
그가 혐오하는 부류였다.
두려움을 보인다는 것 자체를 본인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상대였다.
가슴을 펴고 차에서 내렸다. 곳곳에서 살기 어린 기세가 피부를 찔러 왔다. 마나 중독증으로 마나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강무혁에겐 그 기세가 여실히 느껴졌다.
“김명준 전무님 사무실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가장 가까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헌터에게 물었다. 헌터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폐부를 찔린 듯 움찔했다. 헌터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떨지를 않네? 이런 느낌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서 재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벌떡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공장 옆의 부속 건물을 가리켰다.
“3층 우측 복도.”
안내도 없이 걷는 길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험악한 분위기로 기를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강무혁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고 태연하게 김명준이 있는 사무실로 갔다.
문 앞에서 노크하자 묵직한 음성이 답했다.
“들어오세요.”
김명준은 소파에 몸을 깊이 묻은 채 강무혁을 맞이했다. 손님을 세워 두고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강무혁은 개의치 않고, 멋대로 소파에 가서 반대편에 마주 앉았다.
“여긴 야근 분위기가 좋네요. 다들 편해 보입니다. 일하지 않아도 뭐라 그러는 사람도 없고.”
“제가 워낙 프리한 걸 좋아해서.”
“너무 프리하셨습니다. 기업 경영도 바쁘실 텐데, 남의 길드까지 신경 쓰시다니.”
“……무슨 뜻이신지.”
“말 그대로입니다. 유니온, 타이탄. 하실 말씀이 더 있습니까?”
“아아, 그거? 제가 잠시 잊고 있었네요. 태진성 회장님이 하도 보채셔서 내키진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납품업체가 대기업 시키는 대로 해야지.”
“요새는 헌터도 납품하나 봅니다?”
“태성 그룹 같은 대기업들은 저희 같은 업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겉으로야 점잔 떨어도 가진 게 많으니 뭔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하거든요. 때론 법 바깥에서라도 말입니다. 필요악이랄까요.”
교활한 자였다. 은근슬쩍 태진성에게 떠넘긴다. 애초에 태진성이 주세아가 길드에 있는 걸 탐탁지 않아 했으니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인정했단 말이지. 미리 준비하고 바로 대답했어. 신분도, 하는 일도 비밀로 해야 할 자가 이렇게 솔직하다? 거짓말쟁이가 솔직해질 때는 보통 다른 걸 숨겨야 할 때이지.’
눈을 내리깔았다. 대조적으로 김명준은 웃는 낯으로 대한다.
강무혁은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이만 물러 주시죠.”
“그건 타이탄에 가서 말하세요. 우리가 부탁하긴 했어도 실제 움직이는 건 그쪽이니까.”
“타이탄에선 들을 마음이 없더군요. 유니온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니온에 가셔야지.”
“유니온을 조종한 게 전무님 아닙니까.”
“조종이란 건 어감이 좀 그렇고.”
“왜요? 제가 보기엔 그쪽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 어디 한 번 파 볼까요?”
“선을 자꾸 넘나드시네.”
김명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직은 괜찮아.’
목숨을 건 도박판처럼 보이는 협상 자리였지만, 강무혁은 전혀 위태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김명준이 앞뒤 가리지 않는 살인마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무혁은 김명준이 그 어떤 누구보다도 교활하고 자기 몸보신이 우선인 자라고 판단했다. 손을 쓰더라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완벽하게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을 때 움직이리라.
그래서 지금은 아니다. 아직 선을 완전히 넘진 않았으니까.
노송린은 이 계획에 반대했었다. 미친놈이 왜 미친놈이라 불리는지 아느냐고.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란다.
강무혁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김명준은 더는 예전처럼 혼자 움직이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슬레이어 길드, 유니온자산운용, 태성 그룹이 얼기설기 엉켜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
심지어 그 모두가 같은 편조차 아니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김명준을 매개로 붙어 있는 세력들. 이럴 땐 균형과 비밀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고로 내게 바로 손을 쓰진 못한다는 거지.’
계산이 서자 서슴없이 말했다.
“슬레이어 길드에선 유니온을 알고 있습니까? 그쪽이 일본 자금을 쓴다던데. 최근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본 금융 자본의 대다수가 야쿠자와 관련됐다죠? 야쿠자는 일본 헌터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죠. 슬레이어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
침묵. 긍정의 또 다른 표시.
대전쟁 시대의 희생 이후 몰락한 한국 헌터계의 버팀목인 슬레이어 길드는 꾸준히 국내에 진출하려 하는 일본 헌터계를 견제해 왔다.
그 점을 꼬집는 순간 김명준은 외통수에 걸린 셈이었다.
아무리 슬레이어 길드의 하수인이 아닌 협력자라곤 하지만, 가진 힘의 격차는 역력했다.
한국 땅에서 슬레이어 길드와 척을 지곤 버틸 수 없었다.
이쯤 되자 김명준도 손을 들 수밖에.
“그래서 원하는 건?”
“이유는 묻지 않겠습니다. 아이언윌 길드에서 손을 떼시죠. 앞으로도. 직접 하든, 다른 곳을 이용하든 모두 말입니다.”
“이젠 대놓고 선을 넘는군.”
“상당히 관대한 부탁인 것 같은데요?”
“협박이 아니고?”
“그렇게 들으셨다면야, 뭐.”
“들어주는 건 별문제가 없는데 말이야.”
“…….”
“앞으로도 그걸 고삐로 잡고 있을 거잖아. 내가 보기엔 우리가 계속 부딪힐 것 같거든. 그때마다 슬레이어 길드를 걸고넘어지면 곤란하다고.”
목소리에서 살의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엔 그쪽이 선을 넘으시겠다?”
“너무 억울해하진 마. 그쪽도 알고 있었잖아. 여기가 호랑이굴인지. 그렇게 무방비로 온 쪽이 잘못한 거야.”
김명준은 테이블에 놓인 담배를 집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곤 소파에서 일어나 등을 돌렸다. 연기를 뿜으며 창가로 걸어가더니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이거 치워!”
끼이익, 문이 열렸다.
강무혁은 앉은 채로 김명준의 등을 올려다봤다.
“헌터도 아닌데, 몸을 좀 사렸어야지. 당신은 자기 머릴 너무 믿었―”
비릿하게 웃으며 담뱃재를 털려고 했던 김명준의 손이 멈칫했다.
어두운 하늘을 비추는 창에 낯선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창은 거울처럼 사무실 풍경을 보여 줬다.
창을 통해 김명준을 노려보고 있는 눈빛에 정신이 팔린 김명준의 입에서 다 탄 담뱃재가 후두둑 떨어졌다.
김명준은 반도 못 태운 담배를 뱉어 내며 뒤로 돌아섰다.
“제가 설마 혼자 왔겠습니까? 그리고 잘못은 나쁜 짓을 한 쪽이 잘못한 겁니다.”
김명준은 강무혁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통쾌한 승리도, 희열도 없는 냉정한 눈빛.
아주 살짝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렇게 감정도 없이 자신을 대하다니.
그제야 깨달았다. 조금 전 협상은 강무혁에겐 그저 일에 불과하다는 걸.
강무혁은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아무런 낌새도 못 느꼈는데.”
그렇게 말해 놓고 보니 우스웠다. 너무 당연한 인과였다. S랭크에 가까운 헌터가 마음먹고 잠입하면 누가 알아챌까.
그를 무시한 대화가 강무혁과 사이에서 오갔다.
“제가 말했죠, 강 단장님? 말이 통하면 깽판도 필요 없다고요. 안타깝게도 이번 판은 말이 좀 안 통했네요.”
“그 부분까지 예상하고 부른 겁니다.”
“길마를 부려 먹는 단장이라…. 뭐, 저도 그동안 쌓인 게 좀 있어서. 스트레스도 풀 겸 이번만큼은 용서해 드리죠.”
“죽이면 안 됩니다.”
검은색 아머 코트를 펄럭이며 다가오는 재앙.
김명준이 뿌득 이를 갈고는 외쳤다.
“주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