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563)
결국 유기치사상으로 성만세는 처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증거도 확실했고, 녹음 내역은 그냥 대놓고 그가 성호준을 죽이라고 한 상황이었으니까.
그 녹음 파일은 성호준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녹음된 것이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성만세는 그 파일의 존재조차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유죄가 나왔으니 무태식 변호사님은 이걸 가지고 재판을 하시면 됩니다.”
유기치사상이 성립하게 되면 분명 오진철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애매해진다.
법원은 성만세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오진철에게 처벌을 내린 것인데, 정작 그 성만세가 성호준을 죽이려고 한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책임 소재가 애매해지기도 하지요.”
오진철의 긴급행위로 인해 성호준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호준을 죽도록 방치하고,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외면한 것은 성만세다.
“그런 상황인 만큼 그 책임 여부가 애매해지지요.”
더군다나 성만세는 이미 처벌을 받은 상황.
당연히 이런 경우에 법률적으로는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가 관건이다.
“직접적으로는 오진철의 행위로 인해 벌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상황이 벌어지도록 유도한 건 성만세니까요.”
무태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의 여부가 핵심이군요.”
“네. 오진철 씨는 고의성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성만세는 좀 다르지요.”
그리고 성만세가 유기치사로 처벌받으면 법적으로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죄는 하나인데 공범이 아닌 두 사람이 책임지게 되는 거지요.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노형진이 노리는 게 바로 그거였다.
“그러면 법원 입장에서는 양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요.”
고의는 없지만 사람을 살리려다가 실패한 사람.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 사람.
“그러면 2심은 충분히 뒤집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법원에서는 오진철에게 떨어지는 처벌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물을 사람이 달리 존재한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줄어든다.
2심에서 충분히 무죄가 나올 수 있다.
이미 누군가 죽이려고 한 행동이 있고, 그걸 실패한 거니까.
“아마 성만세는 미치고 팔짝 뛰겠지만요, 후후후.”
* * *
무태식은 어렵지 않게 2심에서 사건을 뒤집었다.
당장 성만세가 성호준을 방치한 것이 사실이니까.
당연하게도 민사소송도 의미가 없어졌다.
민사를 한다는 것은 오진철에게 성만세가 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만세 스스로가 성호준을 먼저 죽이려고 했던 것이 드러나고 그걸 위해 고의적으로 방치한 것이 드러나면서, 그 책임 소재가 명확해졌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전철은 노형진과 무태식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노형진 덕분에 가까스로 지옥에서 기어 나온 기분이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노형진은 오진철을 다독거리며 말했다.
“아마도 다음번에 또 같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남을 돕지 않으시겠지요.”
노형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자 오진철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도…….”
“그게 정상이지요.”
그렇게 당하고도 또 남을 돕는다고 나선다면 그건 호구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가 우선이다.
자기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사람들마저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도움을 주는 걸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욕할 게 아니라니까요.”
중국은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강간이 벌어져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걸 돕다가 도리어 공범 취급되거나 상해를 입어도 어떠한 보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
물론 중국 공안처럼 신고한 사람을 범인이라고 일단 두들겨 패는 일은 없지만, 남을 도와주고도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그만 가 보세요. 어머님이 기다리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진철은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런 그를 보면서 무태식은 왠지 처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노형진 역시 자신도 모르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죽다 살았지만 지옥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어쩌면 이 세계가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어쩌면 말이지요.”
여러모로 씁쓸하기만 한 사건이었다.
혐오 vs 혐오
새론은 사회적으로 제법 큰 규모다.
직원들 숫자도 많고 수익도 높다.
그렇다 보니 여러 곳과 손잡고 있고, 당장은 아니라 해도 손을 잡자고 청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곳과 손잡을 수는 없다.
단순히 법률적 지원도 힘든데 하물며 금전적 지원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힘든 법이다.
그러나 세상은 물에 빠진 걸 구해 주면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들이 천지다.
“지원요?”
“그렇습니다. 새론쯤 되면 사회적 지원을 많이 하셔야지요.”
“이미 저희는 많은 사회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만.”
김성식은 혈압이 끓어오르는 것을 참으며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위해서도 지원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아주 맡겨 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남자.
그 남자를 보면서 김성식은 어이가 없었다.
“가능한 것과 그 정당성이 인정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요.”
“저희 크레파스가 정당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저희가 지원하는 쪽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새론은 법률 회사로서, 최대 지원 대상은 범죄의 피해자들 또는 법률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서민들과 빈민들이다.
사실 돕자고 나서면 도울 사람은 천지다.
게다가 사람만 돕는 게 아니다.
동물도 보호해야 하고 자연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를 구할 수는 없으니 결국 일단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게 새론에는 범죄 피해자들인 것이다.
“뭐든지 처음이라는 게 있는 법이지요.”
“뭐든 처음이 있기야 하지만 말입니다, 사실 크레파스는 그다지 저희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크레파스. 진짜 문구 크레파스가 아니다.
전국적인 성 소수자 모임이다.
한국에서는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진보 측 정당과 손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크레파스는 전국적으로 지원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 지원금도 받고 있고요.”
정당에서 밀어주는데 그곳에서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더군다나 전국적 규모의 성 소수자 모임이라는 특성상, 아무래도 국가에서 인권에 관한 부분으로 지원금을 상당히 지급하고 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크레파스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저희가 선정하는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성식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령 얼마 전에 뺑소니 사건으로 아버지가 죽은 소녀는 할머니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교복을 맞추지 못해서 아는 분이 준 오래되고 낡은 교복을 물려받았고, 가방도 중학교 때 쓰던 걸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새론은 그 아이와 할머니를 위해, 그 뺑소니 살인자의 영혼까지 쥐어짜서 돈을 받아 내 그나마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그 뺑소니범은 돈을 주지 않으려고 온갖 지랄을 했지만.
“그런, 당장 생활이 불투명한 대상을 지원하는 것이 저희 새론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우리 같은 성 소수자들은 어디다 도움을 청하란 말인가요?”
“물론 저희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긴 죄송합니다만,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 저희가 지원해 드릴 수 있는 건 법률적 자문뿐입니다.”
성 소수자들이 문제는 아니다.
백인백색의 현대이고 그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성 소수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
하지면 새론이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그들을 모욕하거나 수치심을 주거나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하는 경우라면, 당연히 새론이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성 소수자라고 해서 저 위의 소녀처럼 당장 돈이 없어서 굶어 죽거나 범죄의 피해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어서 자살 위험이 치솟으리라는 법은 없다.
“현실적으로 성 소수자는 성적으로 소수일 뿐,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당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건장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이 성 소수자라서 사회생활을 못 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다.
“물론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하는 경우 등에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들의 요구처럼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
“소송비용을 저희가 지불하는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김성식은 차분하게 말했다.
실제로 지원이 금전으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도 아주 한시적으로 다급한 상황에만 지원되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론은 법률 회사이지 사회단체가 아니다. 모든 걸 다 희생하면서 누군가를 도와줄 이유는 없다.
“그래서 크레파스는 성 소수자 단체라서 지원 못 한다 이건가요?”
“성 소수자 단체라서 지원 못 한다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성 소수자이기 때문에 법률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걸 말씀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김성식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와 마주 앉아 있던 남자는 분개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모욕이군요! 다른 사람은 지원해도 성 소수자는 지원 못 하겠다니!”
“아니, 지원 못 하겠다는 게 아니라 크레파스에서 요구하는 금전적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김성식의 설명에도 남자는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이런 모욕을……!”
“모욕이 아니라…….”
“후회할 겁니다!”
‘쾅!’ 하고 문을 거칠게 열며 바깥으로 나가 버리는 남자.
김성식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으…… 진짜 내가 왜 대표를 한다고 했을까?”
김성식의 사무실에서는 긴 탄식만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