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230)
+범인은 없는 사건 (1)
노형진은 오랜 시간 변호사 생활을 했다.
회귀 전에는 미국에서도 활동했고 회귀 후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건들을 보아 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황당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안 죽였다니까요.”
눈물범벅이 되어서 울고 있는 남자.
그는 살인의 죄목으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증인이 있습니다. 증거도 있고요.”
“저는 모릅니다. 진짜예요. 억울해요.”
“지금 억울하다고 해서 끝낼 사건이 아닙니다.”
노형진은 박구한을 보면서 말했다.
“이건 사건을 뒤집을 수가 없어요.”
“진짜로 제가 안 죽였다니까요.”
“이봐요, 박구한 씨! 차라리 술을 마셨다거나 정신이상이 있다고 하세요. 저는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한테 자꾸 안 죽였다고만 하시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진짜로 안 죽였어요.”
‘돌겠네, 진짜.’ 자신은 억울하다고 외치는 박구한.
그러나 이번만큼은 노형진도 그를 편들어 줄 수가 없었다.
노형진이 의뢰인을 안 믿는다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박구한이 피해자인 송하은을 죽이는 장면을 본 사람이 스무 명이 넘는 데다 한 대의 CCTV와 두 대의 차량 블랙박스에 그 상황이 각도별로 찍혀 있었으니까.
박구한은 송하은이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차에서 내려서 다가가 무려 열 번이 넘게 칼로 찔러서 현장에서 사망하게 했다.
그 장면을 학원생들이 보면서 비명을 질렀고, 상당수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상황이 그런데 사람을 안 죽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저는 안 죽였어……. 아니…… 기억이 안 나요.”
자신이 아무리 안 죽였다고 주장해 봐야 너무나 명백한 증거가 있다.
증거만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현장에서 잡혀서 개 처맞듯이 맞다가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는 경찰서가 아니라 병원으로 가야 할 정도였다.
명백한 현행범.
“그런 상황인데 기억이 안 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하지만…… 진짜 기억이 안 나요.”
울먹거리면서 말하는 박구한.
“그날은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그 기억이 없어요.”
“하아, 차라리 정신이상을 말하랬더니 바로 기억상실입니까?”
“미안합니다. 그런데 진짜 기억이 안 나요.”
“그게 말이라고…… 끄응…….”
경찰에서는 박구한이 송하은의 남편인 이광인에 대한 원한으로 송하은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광인은 박구한의 상관이었고, 박구한을 회사에서도 잘 챙겨 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약간 어설픈 박구한을 잘 챙겨 주고 일도 가르쳐 주면서 보듬어 안은 게 바로 이광인이었다.
그런 둘 사이가 왜 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구한은 송하은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으로 복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박구한은 회사에서도 은혜도 모르는 천하의 개쌍놈이 되어 버렸다.
오죽하면 회사에서도 단 한 장의 탄원서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사건이 벌어지면 탄원서를 써 주는 것이 보통인데 말이다.
“끄응…….”
이번 사건은 새론의 순번제로 인해 배당된 사건이기에 노형진이 맡긴 했지만 사실 방어할 만한 거리가 없었다.
현행범을 어떻게 방어한단 말인가?
‘반성한다고 하면 그걸로 어떻게 방어해 본다지만.’
하지만 박구한은 반성은커녕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로 계속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구한 씨, 내가 변호사로서 진지하게 말씀드립니다만 이런 식으로 계속 버티시면 현실적으로 괘씸죄에 걸립니다.”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고 해도 용서가 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현장에서 절규하던 이광인을 보고 사람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이런 식으로 면피할 생각을 하다니.
“제가 미친 걸까요? 그 순간 제가 미친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도대체 박구한 씨는 이광인 씨랑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기에 송하은 씨를 죽인 겁니까?”
“없어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싸운 적도 없고 한 소리 들은 적도 없다.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박구한을 실드 쳐 주면서 보호한 게 이광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마움은 있었을지언정 불만이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진짜 저는 모릅니다, 흑흑흑.”
그러면서 박구한은 눈물을 흘렸다.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사건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변호사라는 존재는 욕을 먹으면서라도 변론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그냥 변론을 포기하고 물러나야 한다.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죽였는지나 알아야지.’
그리고 그 원한의 이유가 정당하다면 아주 약간이나마 선처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주 약간이나마 말이다.
“박구한 씨, 진정하세요.”
그러면서 그의 손을 잡은 노형진은 박구한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살인의 이유를 알아야 방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어?’
그러나 노형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없어?’
기억이 있어야 하는 시점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이었다.
물론 현장의 기억은 있다.
차에서 나오는 순간, 그리고 대상에게 접근하는 순간, 칼을 찌르는 순간까지 모든 기억은 명확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그것뿐.
다른 기억, 그 순간의 감정, 생각 같은 건 오로지 어둠 속에 가려진 듯 하나도 없었다.
‘뭐지? 이럴 수가 있나?’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시점에 사람이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확하게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라도 최소한의 감정과 생각은 가지고 있다.
설사 살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이코패스라도 최소한의 생각은 있다.
‘다음에는 어디를 찔러야겠다.’라는 시행의 계획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오늘 저녁은 뭘 먹지?’ 같은 황당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생각도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게 무슨…….’
노형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박구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노 변호사, 표정이 왜 그래? 걸리는 게 있어?”
송정한은 오랜만에 노형진과 저녁을 먹으며 물었다.
“요즘 회사에 일이 많지도 않잖아? 그런데 표정이 거의 혼이 나갔는데?”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소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특수 사건 전문인 노형진에게 일반 사건이 배당 되겠는가?
물론 일반 사건이 넘쳐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네? 아, 그냥…… 좀 꺼림칙한 사건이 있어서요.”
“자네한테 뭐 꺼림칙한 사건이랄 게 있나?”
“박구한 씨 사건 말입니다. 좀 이상해서요.”
“그게 뭔데?”
워낙 많은 사건이 있기에 모든 사건이 방송에 나갈 수는 없다.
당연히 박구한 사건도 그냥 묻혀 버리는 흔한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