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비행지옥
노라는 간만에 생존 위협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으아아아아아….”
몰아치는 바람은 극한의 냉기를 품고 있다. 지독할 정도로 옅은 공기의 밀도가 숨통을 조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기의 밀도가 낮아서 한기가 전달되는 수준 역시 평상시와는 다르다는 점 정도다.
하지만, 그건 시속 수백 킬로미터를 자랑하는 카이루스의 비행 앞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위안거리가 될 수 없었다.
죽음이 느껴진다. 일레나의 충고를 더 세심하게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다.
하늘을 나는 일은 멋있다. 다만 비행이 근사해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지표면에서 바라볼 때 한정이었다.
“주글 것 가타.”
비행 중에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 같은 건 사치였다. 잠깐은 감탄했었던 노라였지만, 지금은 지표면이고 지랄이고 그런 걸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지옥은 하늘 위에 있어.’
바로 여기가 지옥이었다. 땅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이토록 끔찍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거다.
지하에 지옥이 있을 이유가 없다. 죽은 영혼 중 죄 많은 이들은 그냥 이 하늘 위로 올려보내면 될 거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조만간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참회하게 될 거다.
이 하늘이야말로. 극악한 환경을 자랑하는 공허한 허공이야말로 신이 있다면 그가 죄 많은 자들을 위해 마련한 처형실이다.
노라는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며 몸을 떨었다.
“참아. 거의 다 왔다.”
“…너무해.”
비행을 주도하는 카이루스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제아무리 따뜻한 말을 하더라도, 이 지옥처럼 차가운 허공에서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냉랭해진다.
해줄 수 있는 말은 버티라는 조언뿐이었다.
심지어 다 왔다고 하는 카이루스의 말조차 노라에게는 거짓으로 들렸다.
그야, 벌써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힘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일레나가 노라의 첫 비행을 응원했다. 물론, 호흡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작고 짧았다.
사실, 자기가 죽게 생겼는데 남을 챙기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니까.
‘이번에는 진짜였는데.’
거의 다 왔다는 말을 한 카이루스도 이번에는 진짜로 한 말이다. 목적지가 카이루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카이루스의 지시에 따라 기차를 뒤집을 준비를 마친 녀석들의 야영지가 보인다.
이제, 서서히 고도를 낮춰야 하는 순간이다. 카이루스는 강하를 시작했다.
“드디어.”
일레나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 소리는 노라에게도 잘 전달되었다.
경험자가 안도했다는 건, 비경험자에게는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간다는 전조니까.
하지만, 착륙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왜,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물론, 그걸 참아야 하는 노라는 카이루스가 일부러 자신을 엿먹이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중이다.
“인내심을 가져. 땅에 처박히고 싶지는 않잖아.”
“괜찮아!”
땅에 처박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두 다리가 땅을 딛고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상황인지 이제 노라도 깨닫게 되었으니까.
“도착했다.”
“빨리, 빨리!”
노라는 가방 안에 용수철이라도 있는 것처럼 뿅 하고 튕겨져 나오더니 파랗게 질린 입술을 한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미안해, 언니이… 앞으로 말 잘 들을게.”
울먹거리며 일레나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해하는 노라의 모습은 카이루스가 보기에도 상당히 불쌍했다.
나중에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도 비행할 예정이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방법이 없잖아.’
여기는 기차가 전력으로 달리는 벌판이다. 있는 거라고는 철도와 텅 빈 공원뿐이다. 빠르게 베넷 시로 돌아가 일을 마저 진행하려면 다시금 비행해야 한다.
아마, 노라도 본능적으로 짐작하고 있을 거다. 자신의 끔찍한 첫 비행은 머지않아 두 번째 비행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셀링턴으로 가는 화물열차입니다.”
“적재도 끝났다고 합니다. 목재와 시멘트에 섞을 모래를 운반 중인데, 시멘트 포대 중 일부를 말씀하신 물건으로 교체했습니다.”
하늘에서 카이루스가 착륙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곧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정제가 끝난 아편입니다. 약간 색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적재했습니다.”
아편말. 특수한 곰방대를 이용해 피우기 위해 정제를 마친 물건이다. 카이루스가 전복시킬 화물기차의 출발역은 제리코의 지역구에서 출발했다.
“좋아, 고생했다.”
전복된 화물기차에서 대량의 아편말이 발견된다면, 검찰은 기차의 출발지를 확인한 다음 수사에서 손을 뗄 것이고 기자들은 환장해서 취재하기 위해 달라붙을 거다.
‘거기에 장작불을 좀 넣어 줄 수도 있고.’
카이루스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세워놓은 계획들을 정리한 다음, 대기 중인 녀석들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는 짐 싸서 돌아가.”
화물을 적재한 기차는 약 한 시간 뒤에 올 예정이다.
“그, 저기….”
힘들게 야영을 한 친구들은 카이루스에게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뭐 새끼들아. 가라고. 베넷 시가 아니라 지옥으로 가고 싶은 거냐.”
그리고 카이루스는 그들이 바라는 걸 해줄 생각이 없다.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은 변덕이 많은 법이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 중 누구에게도 카이루스는 요정이 되어 줄 생각이 없었다.
싸늘한 카이루스의 협박에 대기 중이던 녀석들은 그의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지치고 피곤한 움직임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다소의 동정심이라도 얻어보려는 생각이었겠지만.
남들 고생하는 걸 보고 불쌍해할 정도로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카이루스는 노동교화소를 나오자마자 베넷 시가 아니라 수도원에 가서 수사가 되었을 거다.
“씹새끼들 시간 질질 끌고 있는 거 봐라.”
카이루스가 휙 하고 검을 움직이자 돌풍이 일어나 녀석들 몇 명을 넘어뜨렸다.
“진짜 다 뒈지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어차피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공동묘지나 하나 만들어줄까?”
그제서야, 미적거리던 녀석들의 동작에 박차가 가해진다. 사실, 말을 빨리 달리게 하려면 당근보다는 채찍이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경마장에 기수들이 채찍 대신 당근을 휘두르겠지.
녀석들이 짐을 정리하고 나서 물러나자, 이 드넓은 벌판이 있는 거라고는 철도, 그리고 카이루스를 포함한 세 명의 인간뿐이 되었다.
“돌아갈 때는 기차 타고 가는 거지?”
“….”
“왜 대답이 없어 오빠. 기차 탈 거지?”
노라는 이미 자신도 짐작하고 있는 사실을 억지로 카이루스에게 물어본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대답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면서.
그리고 카이루스는 노라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외면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위로가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기차 올 거야. 각자 위치에서, 집중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행하면, 얼마나 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지 알면서도 굳이 노라와 일레나를 동행한 이유가 있다.
‘빠르게, 한 번에 끝내야 하는 일이니까.’
화물기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는 장님이 아니다. 선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면 일단 정차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거다.
기관사가 정신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건 노라가 해야 하는 일이다.
카이루스는 기관사가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빠르게 선로를 망가뜨려야 한다.
화물을 잔뜩 적재한 기차는 굉장히 무겁다. 선로가 망가지는 정도로는 뒤집어지지 않을 거다. 기관실은 전복할 수 있겠지만, 화물칸까지 같이 넘어갈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마약을 적재한 칸은 기관실과 가까워.’
탈선하는 즉시 일레나가 제풍을 이용해 문제의 화물칸까지 넘어뜨릴 거다.
옆으로 넘어가는 힘이 남아있는 도중에 강풍까지 덮치면 힘은 충분하겠지. 그사이, 카이루스는 사고에서도 살아남은 기관실 인부나 기관사를 처리해야 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죽이는 게 너무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화물기차를 넘어뜨릴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카이루스는 지금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미친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기 싫다면 카이루스는 자신의 복수 또한 포기해야 한다. 황제 목을 따러 가는 길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카페트가 깔려 있을 게 확실하니까.
요점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고, 그 숫자는 여기 있는 세 명으로 충분하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어. 노라는 제자리로 가.”
비행의 충격에서 벗어난 노라가 척 하고 손인사를 한 다음 철도를 따라 저 멀리로 향한다.
이름 긴 식칼의 순간이동을 활용하면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 브레이크를 망가뜨리는 일 정도는 사뿐히 해낼 수 있을 거다.
“무기 쓰면 안 된다.”
사고로 위장해야 한다. 브레이크에 칼자국 같은 게 있으면 곤란하다. 아이란 공화국 경찰들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칼로 썰어낸 자국과 그렇지 않은 자국 정도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을 거다.
“나 같은 소녀가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데, 걱정 같은 건 없어?”
소녀 모습을 한 인간병기가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차가 걱정이지.”
노라가 완전히 멀어졌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도 정해진 장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기다린다.
카이루스는 귀를 철도에 가져갔다.
‘들린다.’
철도를 타고 전달되는 진동이 희미한 동시에 명확하게 카이루스의 고막을 건드린다. 기차가 오고 있다. 화물기차가 아니라면 노라가 신호를 보낼 거다.
그리고, 우리의 불쌍한 기관사는 카이루스가 안배해놓은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그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으하아아암.”
쩌억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는 사이, 노라는 순간이동을 통해 기관실에 안착했다. 조금의 소음도 없었고, 흔적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하품을 하는 기관사의 눈에, 철도의 상태가 보였다.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히 휘어져 있다.
멍한 표정이던 기관사는 순식간에 긴장하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줄을 힘껏 당기며 외쳤다.
“정차한다! 긴급상황이다, 정차한다!”
“정차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기관사의 목소리를 들은 인부 중 한 명이 크게 복창했다. 그 인부의 말을 들은 다른 인부들도 정차한다! 라는 외침을 복창했다.
기관사는 브레이크와 연결된 커다란 스틱을 잡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휘어져 있는 브레이크 스틱이었다. 잡아당긴다 해도, 제대로 작동 하지 않을 정도로 브레이크 스틱은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어?! 응? 씨발 이게 왜!”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건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닐까.
노라의 작품이었다. 기관사가 정차한다! 라고 외치는 순간 브레이크 스틱을 망가뜨린 거다.
이 일을 저지른 당사자는 563번 식칼의 순간이동을 이용해 이미 기차에서 내린 뒤였다.
“이, 씨발… 개같은!”
진땀을 흘리며 양손으로 브레이크 스틱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당겨보지만, 이미 아작난 브레이크 스틱이 움직일 리 없다.
철마는 계속 달린다. 뒤틀려 있는 선로를 향해 전력질주한다.
기괴한 소리와 함께 기관실이 선로를 이탈해 튕겨져나간다.
양손으로 힘껏 브레이크를 붙잡고 있던 기관사는 기관실 벽에 처박혔다. 운이 좋다면, 부상은 팔이나 다리의 골절 정도로 끝날 거다.
우드득!
기관사의 운은 좋지 않았다. 골절은 맞았는데, 당한 부위가 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