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207
207화 멈춰있는 남자 (2)
잘려나간 덴버의 목이 다시 착, 하고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니 짜증이 절로 솟구친다.
“이걸로 세 번이군. 요령을 터득했나?”
황제가 죽으면 자신도 죽어버리는 불완전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카이루스에게는 충분히 불사신이라고 불릴 만한 적이었다.
“아무리 봐도 말이지.”
카이루스는 검을 휘릭 돌린 다음 덴버를 겨누었다.
“다나 왓슨이 더 강한 것 같단 말이야.”
냉정한 평가였다. 직접 싸워본 적은 없지만, 다나 왓슨과 비교하면 덴버 허드슨에게는 다소의 결함이 보인다. 불사의 타이밍을 노리는 공략법을 알아냈다고 하지만, 카이루스에게 벌써 세 번이나 죽었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래 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덴버 허드슨은 황제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최강일 것이다.
“….”
어쨌든, 카이루스는 선택을 내려야 했다. 상대하는 파훼법은 알아냈는데, 파훼법을 통해 상대를 공략해도 죽지 않는다.
시간을 멈추는 재주 같은 건 없는 카이루스였기에, 이대로 계속 싸우면 결국 그가 지쳐버린다.
“아주 거지 같은 상황이구만.”
문제는, 여기에서 후퇴하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이 너무나도 뻔하다는 점이다.
반란군이 끝장난다. 사실, 이미 지금만 해도 반쯤 끝장난 상태이긴 하다. 피해도 많았고 그 모든 피해를 단 한 명에게 입었다는 점이 반군을 공포에 빠지게 하는데 주효했다.
결론.
반군의 머리라 할 수 있는 시미드 캘로그도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민할 필요는 없지.’
카이루스는 경고했고, 결국 그 경고가 맞았다. 이런저런 요소로 인해 반란군은 카이루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는 거다.
약간 가슴이 아픈 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받아들일 일레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남의 일에 공감하지 않는 카이루스였지만.
‘반역으로 인한 멸문이라.’
당해본 경험이 있다보니 일레나에게 공감하지 않는 게 더 힘들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에서 똥고집을 부리다가 카이루스까지 난처한 상황에 빠질 생각은 없다.
“도망칠 생각이냐.”
당연한 말이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나는 괴물딱지와 여기에서 힘싸움을 이어갈 이유는 없다.
“당장은 아니고.”
카이루스는 살짝 검을 고쳐잡고는 웃었다. 실력이 뛰어난 생체 샌드백이 있다. 적당히 더 싸우면서 실력 향상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은 다음 뒤로 빠질 생각이다.
“그럼 반군을 후퇴시킬 시간도 벌 수 있을 텐데.”
“후퇴는 무슨. 갈 곳이 어디 있다고.”
반군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행정과 통신을 마비한 다음 바람같이 병력을 집중해 황궁으로 달려들었지만….
그로 인해 원래 각지에 흩어져서 계속 제국을 흔드는 역할을 할 병력이 사라져버렸다. 거기에 더해 여기서 호국경이 버티며 번 일주일의 시간까지.
반군이 제국에 만들어낸 혼란은 어느 정도 수습되었을 테지.
여기서 지면 끝이라는 거다. 현 상황에서 반군이 살아나갈 구멍은 없다.
결론을 내린 카이루스의 몸이 하늘로 떠오른다.
“도망치는 건가? 제 가족들 다 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것처럼 이번에도 혼자 도망치겠구나.”
허공으로 떠오르는 카이루스를 향해 덴버가 강렬한 도발을 날렸다.
“역시 경험이 중요해, 그렇지?”
덴버의 도발에 카이루스는 전혀 넘어가는 낌새가 없었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녀석의 도발에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것도 웃기고, 애초에 상대가 도발하는 목적도 빤히 보인다.
도발에 응해 줄 이유가 없다. 황궁을 벗어난 카이루스는 반군의 진영에 돌아갔다.
시미드 캘로그를 비롯한 반군의 수장들이 카이루스 앞에 서 있다.
“분위기 한번 기가 막히네.”
패잔병. 승리를 직감하며 질주하던 반군은 도착하고 나서야 패배를 확신하게 되었다.
“혹시….”
눈치를 보던 와중, 시미드 캘로그가 먼저 말문을 텄다.
“기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 벌어질 것 같은 일은 일어났지.”
카이루스는 호국경을 죽이지 못했다. 아니, 누가 와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되살아난다니. 그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미드 캘로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카이루스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전력을 집중해 황도로 진격한 것 자체에 하자가 있었던 셈이다.
“나는, 나는 못 믿겠다.”
반군의 수장 중 하나가 카이루스를 보며 말했다.
“필시, 호국경과 네 녀석이 뭔가 내통을….”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삿대질을 하던 자의 몸이 바람에 짓눌러 바닥에 처박혔다.
“아가리 함부로 놀리지 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황제의 죽음을 가장 순수하게 바라는 건 카이루스다.
“내 부모와 형제자매, 모든 친척과 가문의 어르신들이 말도 안 되는 개같은 누명을 쓰고 뒈졌어.”
짓누르는 바람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힌 자를 향해 카이루스가 다가갔다.
“내통? 장난하냐?”
지금 당장이라도 그딴 개소리를 한 이놈의 목을 따버리고 싶었지만, 카이루스는 참았다. 카이루스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하게 될 일이다.
“다른 새끼들은 다 꺼져. 영감, 당신은 남아.”
카이루스의 말에 눈치를 보던 자들이 슬금슬금 멀어진다. 주변에 듣는 귀가 없어지고 나자, 카이루스는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 말했다.
“영감은 내가 어떻게든 빼내서 살려낼 수 있어.”
카이루스의 말에 시미드 캘로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딸아이 때문인가?”
“내 팔자랑 겹쳐보여서. 물론 나는 일레나와 달리 누명일 뿐이었지만.”
반역으로 인한 멸문과 홀로 남은 생존자. 카이루스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굳이 자신의 지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기 남아야 하네.”
카이루스는 흠, 하는 소리를 냈다.
“가라앉는 배의 선장은 떠나지 않는다. 뭐 그런 건가? 의미 없는 짓이야 영감탱이. 살아있으면, 결국 다음이 있는 법이거든.”
카이루스는 그렇게 버텨서 지금 이 자리에 농조연운을 들고 서 있게 되었으니까.
“반군 토벌에서 중요한 건, 역적의 머리를 치는 거지. 내가 여기에 남아있는 한, 제국군은 나를 우선적으로 노릴 거야.”
미끼가 되겠다는 거다.
“그래봤자 몇 명 살아남지도 못할 텐데.”
“기회를 줄 수는 있지 않겠나. 제국의 땅은 넓어.”
시미드 캘로그는 여기 남아 미끼가 되고, 반군 모두를 해산시킬 작정이다. 제국의 땅은 시미드의 말대로 넓다.
뿔뿔이 흩어지면 일부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있으면 다음이 있다고 했나. 나는 죄가 많아.”
반란을 일으켰지만 성공시키지 못한 수장. 이미 그것만으로도 이 자리까지 함께해온 사람들에게 큰 죄를 지은 셈이다.
“나의 다음을 희생해 더 많은 사람들의 다음을 지켜주고 싶군.”
카이루스가 가만히 시미드 캘로그를 바라봤다. 늙은 영감의 손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초연해지는 것과 다르다.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카이루스는 시미드 캘로그의 그러한 각오를 말릴 수 없었다.
“일레나에게 전해주게.”
시미드 캘로그는 카이루스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모양이다.
“유서 같은 거나 미리 쓰고 다니니까 뒈질 일이 생기지.”
카이루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편지를 챙겼다.
“오히려 반군이 댁을 포박한 다음 황제에게 바칠 수도 있어.”
시미드 캘로그를 바치고, 사형만은 면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고?
뒈지기 직전의 상황에는 그럴 사람과 그러지 않을 사람이라는 구분은 의미 없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 또한 좋겠지.”
잠깐 시미드 캘로그를 바라보던 카이루스가 말했다.
“내가 죽여 줄까.”
결국, 반군을 제압했다고 말하기 위해서 황제가 필요로 하는 건 시미드 캘로그의 수급이다.
생사여부를 막론하고, 제국군은 시미드 캘로그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살아서 미끼가 될 필요는 없잖아.”
생포당한 시미드 캘로그가 반역자의 수괴로서 받게 될 수모와 고문은 저 늙은 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는 반란군이 생기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이겠다. 라는 생각으로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학대.
“아, 그렇군. 틀린 말이 아니야.”
시미드 캘로그가 희미하게 웃은 다음 말했다.
“아프지는 않으려나 모르겠군.”
카이루스는 대답 대신, 자신의 안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앰플을 하나 꺼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독한 술에 타먹어.”
그냥 진통제가 아니라,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에게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다. 가는 길에 고통은 없을 거다.
카이루스의 말에 시미드 캘로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나이 처먹고도 고통과 죽음은 두렵구만.”
“당연한 거야. 반란군 수괴 영감. 아들에게 할 말은 없나?”
카이루스의 말에 시미드 캘로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제리. 그 아이도 살펴줄 생각인가?”
“아니. 하지만 기회가 될 때 유언 정도는 전해 줄 수 있지.”
일레나는 카이루스가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었다. 나머지는 아니다. 심지어, 카이루스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서서 일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전할 말도 없지.”
어차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시미드 캘로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잔에 독주를 가득 채운 다음, 카이루스로부터 건네받은 앰플을 섞었다.
“딸아이가 혹시 미쳐 날뛰면 자네가 말려줄 거라 믿겠네.”
“개빡치겠지만, 두서없이 날뛸 사람은 아니야.”
카이루스의 말에 시미드 캘로그가 허허허 웃으며 술잔을 쭉 들이켰다.
“내 딸인데,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아는 것 같군 그래.”
카이루스는 취기와 약효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대답했다.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니니까.”
“그래, 그렇겠지.”
취기와 약효는 금방 올라왔다. 전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진통제니 즉효성일 수밖에 없다. 시미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졸립군. 좀 자겠네.”
눈을 감은 시미드를 바라보며, 카이루스는 농조연운을 뽑았다. 검을 뽑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신경 썼다.
언제 죽는지도 모르는 채. 약에 취한 시미드 캘로그는 죽는다.
섬뜩한 검광이 번뜩이고, 시미드 캘로그의 목이 바닥을 구른다.
“잘 자, 영감. 고생 많았다.”
카이루스는 농조연운의 피를 털어내고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시미드 캘로그는 죽였다.”
반군의 지휘부를 찾아간 카이루스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 그게 무슨….”
멍한 눈으로 지휘부 전체가 카이루스를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카이루스는 엄지로 자신의 목을 그으며 대답했다.
“끝났다고 이 병신들아. 반란은 실패다. 시미드 캘로그의 시체는 여기에 둬서 제국군을 끌어들이는 미끼로 삼고, 다들 각자도생해라.”
실패한 반역의 끝에서 시미드 캘로그가 원했던 일이다. 카이루스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한 다음 텐트 밖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냐.”
“각자 알아서 도망치라고 했잖아.”
당연히, 카이루스도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다.
하늘로 날아오른 카이루스는 베넷을 향해 비행했다.
“두 번째 실패는 없다.”
황제가 가지고 있던 카드는 죽지 않는 경비견이었다. 단 한 명으로 인해 몇 년이나 계획했던 일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하지만, 이제 황제가 믿고 있는 구석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다음에는 성공한다.
“비합리적인 한 명으로 대군을 막았어.”
이 상황을 타개하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카이루스 또한 비합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
‘다 그렇다고 쳐. 하지만 덴버 허드슨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그냥 오래 살고 싶어서? 사람은 모두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의 노예로서 장수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덴버는 기꺼이 황제의 노예가 되며 죽지 않는 몸을 손에 넣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유라는 것이 이 상황을 타파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비행을 이어가며, 카이루스는 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