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운이 좋군 (1)
모임을 마무리 지은 다음, 카이루스는 곧바로 타냐의 응급실로 향했다.
여전히 환자들로 득실거리는 상태고, 모두가 자신이 더 급한 환자니 나부터 봐달라고 외치는 아비규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냐 라이샌드는 별다른 불만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해나가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타냐는 약 2시간 정도 이어지던 혼란이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야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이내 대기 중이던 카이루스를 확인한 그녀가 인사한다.
“어디 다치신 건가요?”
“아니, 물어볼 게 있어서.”
카이루스의 말에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주는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어찌 되었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한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기에.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을까요.”
“단기기억상실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들에 대해 알고 있어?”
카이루스의 말에 타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종류는 많죠.”
“그중에서, 몸에 흔적이 남지 않는 종류의 물건은?”
손을 닦고, 메스를 소독하던 타냐가 대답했다.
“글쎄요. 보통 단기기억상실을 일으키는 경우는 약물의 과다 및 장기투여도 있지만. 여러 가지 약물을 함께 복용해서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거든요.”
카이루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타냐에게 말해주었다.
“이상한데요.”
타냐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메스를 정돈했다.
“이상하다니?”
“단기기억상실을 목적으로 생산되는 약물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부작용이죠.”
카이루스는 저 말에 수긍했다. 어차피 사람은 가만히 방치해도 서서히 기억을 까먹는다. 그리고 그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근데 굳이 그걸 목적으로 하는 약물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
“즉, 부작용이라는 거죠. 그리고 부작용은 확률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뿐이에요.”
“37명이 모조리 기억상실에 걸리는 건 이상하다는 건가.”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못해 항생제도 현재 몸 상태나 생리적 차이, 약물 민감도 같은 요소에 따라 원치 않은 효과가 발생하거나, 원하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근데 부작용이 100% 확률로 터진다니.
“무조건적으로 단기기억상실을 유발하는 약물은 세상에 없어요.”
약 같은 걸 사용한 건 아니다. 타냐 라이샌드는 그렇게 단언했다. 마약 같은 걸 해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도 각 개인마다 그로 인해 겪는 부작용에는 차이가 있다는 부연설명도 함께했다.
“그렇구만. 하지만 여기는 베넷이잖아. 개발한 약물의 안정성을 검증할 필요가 없을 텐데.”
카이루스의 말에 타냐가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옛날처럼 풀뿌리 뜯어서 달여내거나 말려서 환을 만드는 방식이라면야 카이루스 씨의 말도 맞는데. 우리는 현대인이잖아요?”
버드나무 껍질에 소염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면, 과거에는 버드나무 껍질을 달여내서 그 물을 섭취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그 성분을 찾아낸 다음 합성하거나 추출해서 사용한다.
“제대로 된 시설이 없으면 약물이 더 불안정해져요.”
“이해했어.”
순도가 낮은 약물이니 원하는 결과를 내기도 힘들 거다. 잠깐 눈치를 보던 타냐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일에 저도 손을 거들어도 괜찮을까요?”
“네가 왜?”
카이루스의 말에 타냐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싶어서요. 곤란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카이루스가 걸어다니는 복권이라면, 타냐는 걸어다니는 행운부적이다. 그녀가 의지를 무시하고 협조를 강요한다면 행운부적은 순식간에 저주부적으로 변하겠지만….
지금은 타냐가 자신의 의지로, 이 일에 끼고 싶다고 말한 상황이다.
“나야 고맙지.”
거절할 이유가 없다. 물론, 자신의 안전을 최후선으로 작용하는 행운부적이라지만, 충분히 도움이 될 거다.
“다행이네요. 이번에 보답이 되고 싶었거든요.”
“나한테?”
카이루스의 말에 타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실에 곤란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고, 가끔 화가 나신 채 찾아오시던 분들의 발걸음도 뚝 끊겼어요.”
타냐 라이샌드는 카이루스와 연이 닿아있다. 서로 얼굴을 튼 정도가 아니라 함께 일도 몇 가지 처리했었고, 가끔 카이루스가 방문해서 신세도 진다.
이런 사실이 어떠한 방식으로 타냐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 인연에는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요.”
이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은 이제 아픈 사람들 말고는 없다. 타냐 또한 이런저런 곤란한 것들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응급실을 운영하고 환자를 치료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하, 그게 돌고 돌아 그렇게 되었군. 어쨌든, 잘 부탁한다. 당분간 응급실은 쉬고, 내 사무실 쪽으로 합류해줘.”
부상당한 환자들은 카이루스의 이야기를 듣고 벼락 맞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 앞이라고 불만을 토로할까.
“꼭 필요한 환자들을 돌본 다음에 합류할게요.”
카이루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가.”
타냐의 말에 순순히 동의했지만, 환자들을 슥 훑는 카이루스의 시선에는 명백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내일까지 꺼져라.’
카이루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행운부적이 알아서 협조해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물론, 여태 동안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또한 타냐 좋은 일을 시켜주게 되겠지만.
심지어 그 과정에서 카이루스가 손해를 볼 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이미 타냐를 보호하는 행운은 이미 작용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군! 다들, 정말 고생했네!”
멜빈 이스토반은 불러들인 자들과 다양한 종류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 하지만 말이야.
방독면을 쓰고, 더러운 가운을 입고 있는 녀석이 멜빈에게 말했다.
“하지만 뭐? 문제가 있다면 당장 말해봐. 이 박물관장께서 싹 해결해줄 테니!”
멜빈이 팍 하고 고개를 방독면 남자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 …필요한 약물이 다 떨어졌다.
“그럼 더 구하면 될 거 아닌가.”
문제는, 원하는 목표치를 달성한 약물은 베넷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 주사옥에서는 마취제를 팔지 않아.
온갖 약물을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 곳이 베넷의 주사옥이지만, 단순한 마취제를 맞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같은 마취제라 해도, 뭔가 다른 효과를 가지고 있는 마취제만이 유통될 뿐이다. 순수하게 사람을 기절시키는 마취제를 누가 돈 주고 맞고 싶어 할까.
인신매매로 돈을 버는 단체들이나 취급하는 물건인데, 이런 건 유통망을 조직들이 꽉 잡고 있어서 불법적인 경로로 구하려고 했다가는 역추적당하는 수가 있다.
“흐히. 최근에, 모임 있었던 거… 알지? 너도, 거… 기. 거기 갔, 다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돼지머리를 쓴 남자가 멜빈에게 말했다.
“…그렇지. 거기에 갔었지.”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수상한 움직임을 추격하는 상황이다. 불법경로를 통해 뭔가를 구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카이루스 그 개새끼가. 요즘 좀 좋게 보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딴 식으로 사람을 방해하다니.
“감히, 미래의 운영위원이자 박물관장인 나에게.”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간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즉, 수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불법적인 경로로 유통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 의사가 필요해.
제대로 된 경로를 통해서 구할 수밖에 없는데, 마취제 같은 걸 취급하기 위해서는 의사자격증이 필요하다.
“의사, 의사. 의사라. 의사란 말이지.”
멜빈이 의자에 앉아 몸을 까딱거리다가 웃었다. 그가 알고 있는 의사가 한 명 있다.
“내가 한 명 알고 있지.”
개인적으로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자였다. 이 도시의 배우지 못한 무식한 새끼들과는 다르게 교양과 예의라는 개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그러면 좋아. 여자면 더, 좋… 을 텐데.”
히힉거리는 소리를 내는 돼지머리를 잠깐 바라보던 멜빈이 대답했다.
“여자가 맞다.”
그 말에 돼지머리가 히히히힉 하는 소리를 내며 즐거워한다. 그 낡은 돼지머리 안에 들어있는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들이 오가는 건지 볼 수는 없어도 충분히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멜빈은 타냐를 걱정하기보다는, 납치 이후 타냐가 당하게 될 일을 상상하는 편이 훨씬 더 즐거웠다.
“준비하자고.”
타냐 라이샌드의 납치는 어렵지 않을 거다. 멜빈과는 이미 면식이 있고, 타냐 라이샌드는 꽤나 협조적인 여자였으니까. 안부차 들른 척하며 필요한 일을 하면 문제없이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납치 준비를 마친 다음 타냐의 응급실에 들렀지만.
“응? 이게….”
멜빈이 볼 수 있었던 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당분간 응급실이 휴무에 들어갔다는 쪽지뿐이었다.
“이런 썅.”
가장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의사가 휙 하니 사라져버리자, 멜빈은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쉽게 필요한 약을 구하는 건 힘들어졌다. 멜빈은 한동안 응급실 앞에 서서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다가, 걸음을 돌렸다.
‘어디로 간 거지.’
위치를 알아낸다면 추격해서 확보할 수 있다. 자격증 있는 다른 의사를 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타냐 라이샌드를 찾아내서 확보하는 게 더 쉽다.
멜빈은 그러한 판단을 내렸다. 물론, 그 판단이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냉정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우선한 선택이었다.
“준비를 해야겠군.”
건축사로서 활동하며 쌓아온 인맥이 있다. 활용하면 타냐 라이샌드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몇 곳에 연락을 돌려본 멜빈은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카이루스 이 새끼.”
멜빈의 앞길에서 연달아 방해를 한다. 마치, 자신의 성공을 막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그게 맞아.”
멜빈은 자기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은 더 크게 될 수 있고, 카이루스는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앞길을 막는 거다. 핑핑 돌아가는 머릿속에서 분노와 짜증이 뒤섞어 솟구친다.
쾅!
“어디, 한번 해보자고. 나도 네 앞길을 막아주마.”
카이루스는 황제를 죽이고 싶어 한다. 도시 사람들이라면 생존자 카이루스가 이번에 발로른 제국의 반군에 가담해서 신나게 날뛰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감출래야 감출 수가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카이루스가 황제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멜빈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황제 편에 붙으면 될 일이다.
‘가치 있는 기술도 발견했고….’
소포르를 이용한 최면에 황제가 관심을 보인다면, 지원을 받을 수도 있을 거다. 필요한 약물이나 도구를 제공받는 건 일도 아니겠지.
아무렴 의사 자격증 따위보다야 제국 황제의 후원이 몇천 배는 더 유익할 테니까.
곧바로 멜빈은 편지지를 꺼내들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냥 보내면 걸리겠지.’
여기저기, 여러 번 돌리고 돌려서 황제에게 전달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현재까지 실험을 이어가며 이루어낸 성과도 그럴듯하게 정리해야 한다.
다행히, 고고학 전문가로서 살아온 삶이 이러한 서류작업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