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4
0014 / 0284 ———————————————-
4. 화평자와 태산의 도둑들
소건은 긴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바둑 격언에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완전히 빗나간 허언이었다.
“낭야는 태산과 운명을 함께하도록 하겠네.”
나는 그의 앞에 당당히 손을 내밀었고, 소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손을 마주잡았다. 당사자에서 제3자로 물러난 영자는 어색한 웃음만 웃으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낭야상 소건과 그의 예하 병력 1천은 도겸에 협조하지 않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통상 공성군의 삼분의 일 수준의 병력만 갖추면 수성에 넉넉하게 성공한다는 것이 병가의 상식이다. 영자와 낭야의 군대를 합치면 도합 이천. 비록 도겸이 일만의 군세를 거느렸다고 하나, 태산을 두드리는 데 실패한 도겸이 낭야로 경로를 틀게 된다면, 장패의 본대도 낭야로 올 터였다. 도겸은 도저히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여어… 찬이 다시 봤다구, 이번에.”
소건의 앞에서 물러나오며 영자는 내 등을 툭툭 두들겼다. 나는 절로 어깨가 으쓱였다. 그의 공치사를 겸손의 말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영자는 입맛을 쩝 다셨다.
“하마터면 쓸데없이 소건의 목을 딸 뻔했어.”
“너처럼 윽박지르면 동맹을 맺으려 하다가도 관두겠어.”
영자는 머쓱하게 웃으며 관자놀이를 긁었다.
“칼 휘두르는 데는 자신 있어도 혀를 휘두르는 건 자신 없거든. 너를 데려와서 다행이야. 의외의 수확인 걸? 나는 심심해서 말동무나 하려고 데려온 건데.”
“나는 칼에는 완전 젬병이니까 서로 잘 휘두르는 걸 휘두르면 되겠어.”
영자는 나의 자살 소동을 떠올렸는지 킥킥 웃었다.
낭야가 도겸의 영향로부터 이탈하면서, 이 일대의 세력판도는 바뀌게 될 것이었다. 비록 형식상이지만 서주의 관할에 있는 낭야가 서주자사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도겸으로서는 치명적이었다. 그가 힘으로 억눌렀던 서주의 호족들이 그의 통치력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치명적인 불안요소가 되어 그의 원정을 흔들 것이다.
본거지를 비운다면 언제고 도전자가 등장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웃한 태산까지 도겸을 적대시한다면 그가 가진 북서주에 대한 장악력이 희석될 것이었다. 결국 도겸은 남서주를 단단히 자신의 기반으로 묶는 데 주력할 것이다. 산토끼가 되어 멀리 도망가는 북서주를 쫓다가 집토끼인 남서주의 민심마저 이탈한다면 서남방의 강호인 원술이 곧장 강병을 이끌고 올 터였다.
나와 영자는 낭야의 거현에 머물면서 소건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보신주의자들은 한번 결탁하기로 마음먹은 상대에게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준다. 혹여 자신의 일신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배신의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아군으로 끌어들인 소건은 주관이 뚜렷한 응소보다 훨씬 믿음직한 아군이었다. 남녘에 맞닿은 낭야의 성 밖은 고요했다. 지루할 정도로 고요한 평화를 즐기며 나와 영자는 시시한 농담 따먹기로 사소한 친분을 쌓았다.
장패가 낭야에 온 것은 나와 소건의 담판이 끝난 지 닷새 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재빠른 기병 오백 기를 이끌고 낭야에 선착했다. 소건은 노구를 영자와는 달리 아주 깍듯한 예우로 맞이했다.
“장패 장군, 평소에 흠모하던 장군을 오늘에야 뵙게 됐소. 어서 오시오, 낭야상 소건이오.”
노구가 소건을 마음으로 좋아할 리 만무했지만 일단 아군으로 포섭한 그를 노구도 스스럼없이 대했다. 노구는 손을 모아 읍하며 소건의 환대에 화답했다.
“낭야상께서 후하게 대접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도겸의 악행을 저지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소건은 멋쩍게 웃었다.
“허허, 무릇 천자의 신하로서 백성들을 생각했을 뿐이오.”
뻔뻔한 거짓말도 노구는 받아주었다.
“역시 훌륭하십니다.”
소건과 간단한 환담을 나누고 물러나는 자리에서, 노구는 낯빛을 굳히며 영자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당연히 소건의 목이 네 손에 들려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소건은 절대 우리에게 귀부할 자가 아니야. 헌데 어찌……”
영자는 자기의 공처럼 뿌듯해하면서 대답해주었다.
“다 찬이, 화평자의 공이라고. 소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멋지게 요리했지.”
노구는 뜨끔 하는 기색이었다.
“낭야구자의 공이라니.”
“거 참, 낭야구자는 무슨 낭야구자야. 화평자라고. 찬이가 소건에게 조목조목 우리에게 붙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니까 소건이 바로 따랐지. 나 같아도 넘어갈 정도였어.”
노구는 잠시 뜸을 들이다 나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했구나.”
이 자식아, 좋은 얘기는 큰 목소리로 해야지!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구의 칭찬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노구의 말에 따르면, 도겸은 태산으로 진격했다가 성문이 굳건히 닫은 채 노아와 응소가 자신을 노리는 것을 보고 곧장 낭야로 선회했다고 했다.
노구는 노아로부터 전언을 받고 산채에서 낭야로 출격했다. 암노가 이끄는 보병도 곧 당도한다고 했다. 성벽은 높고 해자는 깊다. 영자의 군세와 소건의 군세, 더하여 노구의 기병과 암노의 보병까지 온전히 합류하면 도겸은 이길 수가 없다. 나는 사태를 낙관했다.
도겸과 궐선은 사흘 후에 낭야에 당도했다. 일만의 병력은 역시 위풍당당했다. 그러나 두려워할 바가 아니었다. 노구는 소건과 나란히 낭야성의 장대에 서서 도겸의 서주군을 굽어보았다. 도겸의 진영에서 말 탄 자 여럿이 성벽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선두에 선 자는 흰 수염에 붉은 술을 탄 투구를 썼다. 내 옆에 선 영자는 그가 도겸이라고 일러주었다. 그의 얼굴은 제법 또렷이 보였는데, 쭉 째진 눈매가 날카로웠고 깡마른몸매여서 유난히 광대가 두드러졌다. 그의 주위를 방패를 든 기병 다섯이 호위했다.
“이보게, 선고(장패의 자)! 어찌하여 너는 나의 순행을 막는 것이냐? 태산은 나의 영지와 인접했으나 혼란스러워 내가 친히 다스리고자 했다. 더불어 낭야는 내 영지의 북녘, 네가 나를 저지할 명분이 있느냐?”
그는 노구의 옆에서 다소 위축된 소건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놈, 소건아! 낭야의 상이 되어 너의 직속상관인 나의 행차를 막다니, 무엄하기 짝이 없다!”
장패는 떳떳하게 나서 도겸을 힐난했다.
“도서주는 어찌하여 도적의 수괴인 궐선과 결탁하여 스스로의 위명을 더럽히시오? 도서주가 서주군만으로 순행하겠다 했으면 내 어찌 성문을 걸어 잠그겠소. 나는 하비의 도적 떼를 이곳에 들일 수 없소이다!”
“네가 정녕 명을 재촉하는구나! 너를 기도위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본관이다. 너를 떠받드는 오천의 병력도 나의 품에서 나오지 않았느냐? 은혜를 모르는 자는 천벌을 받기 마련이거늘!”
“도서주야말로 천자의 자식인 백성을 약탈하려 했으니 천자의 은혜를 모르는 자가 아니오. 썩 물러가시오! 태산과 낭야에는 결코 발을 들일 수 없소!”
도겸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이놈……”
노구가 더 듣지 않고 장대에서 내려오니, 도겸은 홀로 성벽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다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진영으로 돌아갔다. 소건도 침을 삼키며 곁눈질로 도겸의 진영을 살피다가 종종걸음으로 노구의 뒤를 따랐다. 나도 급히 노구의 뒤를 따랐다.
“대장, 대장!”
나의 급한 부름에 노구가 돌아봤다.
“뭐냐.”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병력을 대기시키는 게 좋을 거 같아.”
노구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태산에서 급히 기동하느라 병사들이 지쳐있다. 어째서 공연하게 힘을 뺀단 말이냐.”
원래 같았으면 불 같이 화를 내면서 일축했을 텐데, 소건과의 담판이 있으니 내 조언을 아주 물리치지는 않았다.
“곧 출격할 일이 있을 거야.”
“그게 무슨……”
한동안 이어진 대치가 깨진 것은 도겸이 낭야에 진을 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도겸의 군진에서 소요가 발생했다. 소수의 사소한 다툼에서 끝나던 것이, 이틀이 더 지나니 제법 큰 규모의 패싸움으로 번졌다.
그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도겸을 따라 낭야로 온 궐선은 일종의 용병이다. 용병의 이름이 아깝지. 그의 성분은 도적이니까. 그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재물, 재물에만 관심이 있다. 그것만을 믿고 도겸을 따라 낭야까지 온 것이다.
그의 휘하 수천 병력을 먹이고 재우면서 온 것이다. 그런데 닷새가 다 되도록 소득 없이 성 앞에서 쌀만 축내고 있으니 궐선을 비롯해 그의 아랫것들이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도겸은 무작정 낭야 침공을 명령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자신의 임지를 직접 공략하는 것은 북서주에 대한 영향력을 잃었다는 걸 천하에 공언하는 꼴이었다.
더불어 단순히 물자만 노획할 심산으로 온 그는 병력의 손실을 꺼리고 있었다. 도겸은 체면치레나 하고 다시 하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극명한 간극에 충돌은 필연이었다. 엿새째 되는 날, 도겸의 진영에서 흙먼지가 거세게 일었다. 이따금 비명이 메아리로 공명하여 내 귀에 들렸다. 노구는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쌈 싸먹자, 냠냠.”
영자는 킬킬거리며 내 말꼬리를 잡았다.
“냠냠!”
——————————
13화 작품설정에 현재 진행되는 이야기에 관련한 세력도를 수록했으니 참고해주십시오.
—
13화 코멘트 답변
역사동자님// 매편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
크리안느님// 가장 힘이 되는 코멘트입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