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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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진흙탕 개싸움이라는 말이 알맞았다. 여포에게 달려든 장비는 여포의 목을 조르고 손목을 조이고 배를 걷어차려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당할 여포가 아니어서, 장비가 목을 노리면 고개를 돌리고 손목을 조이려 하면 비틀어 피하고, 배를 걷어차려 하면 달려드는 단단한 정강이를 붙잡아 넘겨버리니 장비의 공격은 죄 헛것이 되고 말았다. 자루가 긴 창은 근접전에서는 도리어 장애물이 돼버리니 장비는 단도를 뽑아들고 여포를 쳤는데, 여포는 이에 맨손으로 맞섰다. 여포를 둘러싼 그의 부곡들은 제 주인을 돕고자 장비에게 달려들었는데, 여포와 장비가 서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투닥거리는 통에 위와 아래가 바뀌고 왼쪽과 오른쪽이, 앞과 뒤가 무시로 바뀌는지라 장비를 찌르려다가 다시 보니 제 주인을 찌르는 것이 되어 함부로 개입하지 못했다.
“이 개자식! 힘만 무식하게 세구나!”
여포는 이를 악문 채로 장비를 힘들게 제어했다. 장비도 여포의 힘을 감당하느라 바들바들 몸이 떨렸다. 여포를 위에서 덮친 장비는 여포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으며 대꾸했다.
“자기소개 하냐?”
진득하고 누런 가래침이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자 여포는 한없는 불쾌감에 치를 떨었다.
“더럽다!”
여포는 눈을 부릅뜨며 장비의 따귀를 내리쳤다. 장비의 뺨에 벌겋게 여포의 큰 손이 그대로 도장처럼 찍혔다. 장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여포는 장비의 곰 같은 몸뚱이를 치워버리고 곁에서 우물쭈물하는 병사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렇게 멀뚱히 있을 거면 네놈 다리 가운데 달린 물렁이랑 허리의 칼은 뭐하려고 달고 다니냐?”
병사는 입술만 우물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여포는 혀를 쯧쯧 차고는 그의 허리춤에 쓸모없이 달린 칼을 뽑아 장비에게 달려들었다. 장비는 그것을 단도의 작은 칼날로 막았다. 여포가 온힘을 실어 압박하자 장비의 작은 칼날이 견디지 못하고 여포의 칼이 아래를 향해 꽂혔다. 장비는 겨우 고개를 돌려 피했지만 뺨에 굵은 생채기가 났다. 여포가 다시 칼로 찍으려 하자 장비는 흙을 한 움큼 쥐어 여포의 눈을 향해 뿌렸다.
“침에, 흙에, 아주 생긴 대로 노는구나!”
장비는 대답하지 않고 여포의 팔뚝에 단도를 꽂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팔뚝에 상처가 생기니 그 사이로 피가 세차게 뿜어졌다. 여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내 피를 보게 하는 놈은 오랜만이군.”
장비는 숨을 헐떡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아마 마지막일 거다.”
그는 단도를 휘두르며 외쳤다.
“너는 이제 죽거든!”
쌕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장비의 단도가 빠르게 여포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여포는 상처가 없는 바른 팔을 들고 주먹을 틀어쥐었다. 여포의 주먹에는 철로 만든 장갑이 둘러져 있었다.
“죽는 건,”
여포는 장비의 단도를 피하고 틀어쥔 쇠주먹을 그대로 낙하시켰다.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너다.”
무지막지한 힘이 실린 여포의 주먹이 그대로 장비의 얼굴을 짓눌렀다. 철퇴를 내리치는 듯한 완력이 장비의 코를 뭉개버렸다. 코뼈가 부러지면서 조각나는 소리가 끔찍하게 들렸다. 여포의 주먹에 가루로 부서지는 뼛조각의 감각이 느껴졌다. 장비의 안면은 그대로 함몰되었다. 단단한 이빨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와장창 무너지고, 얇은 가죽이 찢긴 입술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대로 안면을 강타한 충격에 뇌가 짓뭉개지고, 장비는 그대로 사망했다.
여포는 얼얼한 주먹을 털면서 그때까지 멀뚱히 서있는 병사를 바라봤다. 포악한 시선에 짓눌려 병사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여포는 병사의 칼을 던져주었다.
“너, 칼을 써보기는 했냐?”
병사는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아, 안 써봤습니다……”
여포는 피 웃었다.
“적장 장비를 죽였다. 네가 그 목을 베어라.”
“네, 네엣?”
“목을 베라고 했다. 너는 나로 하여금 두 번 말하게 했다.”
병사는 본능적으로 살기를 느끼고 서둘러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병사는 끔찍한 몰골로 절명한 장비에게 다가갔다. 칼을 들고서 그는 오줌을 지렸다. 목을 어떻게 잘라야하지? 칼로 계속 찔러야 하나? 아니면 쓱싹쓱싹 톱질을 해야 하나? 대체 사람의 목은 어떻게 자르는 거지? 그는 바들바들 떨면서 장비의 살가죽에 칼날을 서투르게 문댔다. 여포는 피가 뚝뚝 흐르는 철제 장갑을 벗으면서 병사를 등졌다. 썩썩 살이 잘리는 소리가 여포의 귀에 들렸다.
“그렇게 귀신이 되는 거다, 이 난세에서. 사람 목숨 따위 잠깐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귀신이 되는 거다.”
여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을 마구 압박했던 장비의 온몸이 느껴졌다. 그 또렷한 감각에 몸이 욱신거렸다. 여포는 갑주를 벗고 나신을 드러냈다. 팔뚝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흘렀다. 장비의 주먹이 마구 두들겼던 상반신을 검푸른 피멍이 표범의 얼룩처럼 뒤덮고 있었다. 산뜻한 바람이 여포의 몸을 쓸고 지나갔다. 그 한바탕의 바람이 여포의 피멍을 지압하여 그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귀신이 되는 거다……”
여포의 병력은 관우의 패잔병을 모조리 소탕했다. 죽은 자가 태반이었고, 투항한 자가 태반이었으며 달아난 자는 지극히 소수였다. 제 터전을 빼앗겼던 백성들은 죽은 병사들을 발로 차고 침을 뱉었다. 겁간 당한 처녀는 독기를 품고 저를 덮쳤던 녀석의 아랫도리를 내려 불알을 도려내버렸다. 그것을 솥에 삶아 소금을 찍어 먹었다는 후문이었다.
관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의제의 희생을 헛되이 무화(無化)시킬 수는 없었다. 관우는 쏟아지려는 눈물도 억지로 참았다. 본디 대추처럼 붉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를 따르는 일천의 병력도 참담한 심정으로 북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진등의 영지를 통과하는데 그를 편히 달아나도록 두지 않는 무리가 등장했다.
“관운장은 바쁜 걸음 잠시만 멎으시오.”
나였다.
한사코 나를 병실에 가두려는 량이의 만류를 뿌리치고 말에 올랐다. 이미 병세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유비의 야심찬 계책이 모두 다 자승자박의 흉한 꼴로 귀결되었다. 더 이상 가짜 시체 노릇을 계속할 까닭이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느끼며 관우의 예상 도주로로 진군했다. 오랜만에 이뤄진 합비공의 출정에 어마어마한 병력이 동원되었다. 여남에 주둔하던 진등의 병력까지 합쳐서 도합, 팔만. 대부분 정예하지 않은 자들이고 지극히 연소하거나 늙은 자들도 섞였지만 팔만의 병력은 대병의 위용을 자랑했다. 족히 일만 개는 되는 깃발을 나부끼며 나는 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관우는 낭패감을 느끼며 속히 진로를 변경하려 했지만 팔만이나 되는 병력이 좍 깔려있는 터, 진퇴양난이었다.
“제갈찬……”
관우는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되어 나를 노려보았다.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대가 우둔하여 이런 꼴이 된 것이니까.”
“……”
“나는 그대를 살리지 않을 것이오. 목을 벨 것이오.”
나는 고삐를 꽉 쥐었다.
“유현덕과는 같은 하늘 밑에 설 수 없는 원수가 되었으니까. 유현덕의 훌륭한 부역자인 그대를 살릴 수가 없소.”
관우는 나를 노려본 채로 받아쳤다.
“나도 너를 살릴 생각이 없다.”
그는 창을 받쳐 잡고 무서운 속도로 나에게 돌진했다.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말발굽이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맹수처럼 달려오는 관우를 바라보고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쫄았느냐고? 에이, 합비공 짬밥이 몇 년인데. 이런 일로 쫄지 않는다. 관우는 맹수 같았지만, 나에게도 맹수는 있었다. 그것도 여러 마리.
내 옆에 선 량이가 꼴에 엄숙한 말투로 외쳤다.
“합비공을 지켜라!”
그 외침에 서부교위 좌자, 화평교위 감녕, 중부교위 영자, 동부교위 허저, 대장군부 장사 주환, 그리고 객장 황충이 일제히 내 앞으로 나서 나를 지켰다. 관우는 이를 악물고 동시에 좌자, 감녕, 영자, 허저, 주환, 황충, 육인의 맹장을 맞아 싸웠다. 관우는 용맹하게 분전했으나 그저 그런 여섯도 아니고 그 면면이 관우 못지않은 용장들이었으니 끝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허저와 황충이 관우의 창을 제어하고 영자와 주환이 그를 도왔으며, 감녕이 관우의 말 다리를 후려 낙마시키고 좌자가 달려들어 그를 결박하니 결착은 순식간이었다.
관우는 내 앞에 무릎 꿇려졌다. 나는 관우를 내려다보고 관우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길 말 있소?”
“너의 목을 베어 형님께 바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식상하군.”
나는 그를 등지면서 칼을 든 이에게 명했다.
“목을 베어라.”
“존명!”
관우의 단말마가 들려야 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는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등을 돌렸다.
“뭘 하는 것이냐.”
관우의 참형을 집행하는 남자가 칼을 든 채로 바들바들 떨며 서있었다. 그는 잔뜩 얼굴을 구기며 칼로 관우의 목을 치려는데, 그의 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읍소하듯 말했다.
“하, 합비공, 몸이 움직이질……”
가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합비공의 안전에서 이 무슨 망발이냐!”
“몸이 우, 움직이질 않습니다요……”
“이런, 발칙한 놈을 보았나!”
보다 못한 감녕이 칼을 뽑아 관우에게 달려들었다. 칼을 뽑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 역시 무언가에 꽁꽁 묶인 듯 관우의 목을 치지는 못했다. 감녕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번졌다.
“어, 어째서……”
그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 흙먼지가 거칠게 날렸다. 모든 사람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소매로 눈을 가렸다. 몸이 가벼운 치들은 두 다리로 서있지도 못할 만큼 거센 돌풍이었다. 돌풍은 한참 불었다. 나도 몸을 휘청거렸다. 초겨울의 칼바람에 날리는 흙과 자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거칠었다.
돌풍이 멎었을 때에는, 풀린 포승줄만 관우가 무릎 꿇린 자리에 남아있었다. 말을 훔쳐 탄 관우가 이미 저 멀리로 달음박질을 놓고 있었다. 화살이 닿지 않을 거리였다. 좀체 놀라는 법이 없는 가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최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입을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당혹한 이때에 오로지 좌자만 침착했다. 그는 내 소매를 잡아끌며 귀엣말을 했다.
“합비공, 합비공이 이곳으로 올 때 계약했던 이가 관운장이라고 하였수?”
나는 그 말에 깨닫는 바가 있어 경탄했다.
“아… 그런 것인가. 그렇소. 동묘에서.”
좌자는 한숨을 푹 쉬고 툴툴거렸다.
“상제께서 쓸데없이 끼어들었구먼.”
나는 침을 삼켰다.
“역사는 뒤틀려도 계약자는 온전해야 하오. 천하의 걸물로 남아 후세의 칭송을 받고 저 동쪽 먼 땅 한양에 동묘가 세워져야 하는 것은 변치 않아야 하우. 그래야 합비공이 생을 마치고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갈 때 돌아갈 곳이 생기니까. 여기서 관우가 절명해버리면 그저 그런 장수로 남을 것이고 후세는 그를 칭송하지 않을 터.”
이제는 새까만 점 정도로 보이는 관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의 숙적이 천하의 걸물로 남아 후세의 칭송을 받으리라. 그러면 나는 뭐지. 천하 걸물의 대적자인 나는 뭐지. 후세에 악인으로 남는 것인가?
“이거야 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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