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08
좀 쉴만하면 일거리가 생기는구만.
몸을 일으킨 나는 갑옷을 대충 챙겨 입고 감녕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 사형은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찾으신다지?”
“예. 승상은 어디 계십니까?”
“자네만 찾으시는 것 같네. 이제 슬슬 때가 된 모양이야.”
가 사형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날 응시하다가 내 어깨를 잡았다.
“잘 하게.”
“예이.”
어쨌든 지금 이것을 노린 것이니까.
가 사형이나 나나 현재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그의 가벼운 응원을 들으며 나는 황궁의 심처로 향했다.
아직까지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심처로 향한 나는 심처를 지키는 인원들을 보았다.
흑귀대와 백귀대.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장합이 서 있었다.
이들 모두 황제의 명령따위는 귓등으로 넘길 수 있는 간담을 가지 이들이다.
“별 일 없지?”
“예. 다만… 꽤나 불안해하더군요.”
“그러냐.”
평소라면 옆에 있어야 할 궁녀나 귀인 뿐만 아니라 하인마저도 없는 상황이니 불안해하겠지.
옆에 있는 것이라고는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백귀대원들만 있으니까 불안하기도 할 것이고.
난 웃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운현궁도 꽤나 고급스러웠지만 이곳은 운현궁 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었다.
형형색색의 조형물과 복도 양 옆의 죽림을 지나 안쪽에 있는 가장 화려한 방으로 간 나는 문 앞에서 외쳤다.
“폐하!! 진유하이옵니다!”
“들어오게나…”
맥아리가 없군.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황제는 내 뒤에 있는 이들을 보았다.
감녕과 장합.
둘을 번갈아 본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나를 황제 취급조차 하지 않는구만.”
“폐하나 저나 지금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니까… 혹시 압니까. 백귀대 중에서도 역심을 품은 이가 있을지.”
그럴리 없겠지만.
황제는 떨리는 눈으로 날 응시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자리를 좀 마련해 줄 수 있겠나?”
“자리라면…”
“단 둘이 이야기하고 싶네.”
황제의 말 감녕은 콧방귀를 뀌었고 장합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명령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황제는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나가.”
“하지만 도련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문제될 것 있겠냐.”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문제가 생기면 바로 들어오겠다고 말한 둘이 밖으로 나가자 황제는 힘없이 창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 있는 푸르른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던 그는 천천히 말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저는 그저 법과 질서를 위해 움직일 뿐입니다. 이렇게라니요. 마치 제가 동탁이나 이각이라도 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게 맞습니까?”
“…그건 아니네.”
내 눈치를 살피며 황제는 조심스레 말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저 저는 충심을 다해…”
“그런 입에 발린 소리는 집어 치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황제는 나에게 다가왔다.
분노, 그리고 공포, 마지막으로 체념.
복잡한 감정이 잔뜩 실려 있는 얼굴로 황제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졌네. 내가 졌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뭐든 할테니… 선양을 원하는 건가? 그렇다면 해…”
“무슨 그런 말씀을. 저희는 그런 역심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한 황실과 한의 유구한 발전과 안녕을 위해 이리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인간이 미쳤나.
지금 우리가 황위 찬탈할 힘이 없어서 안하고 있는 줄 알았나보지?
선양을 받아 조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문제가 된다.
선양이라는 제도가 요순시대에는 훌륭함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이제 와서는 황위를 찬탈하는 명분에 불과한 것이다.
이거 잘못하면 기껏 안정화된 세력이 박살이 난다.
그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는 황제를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폐하. 저희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법과 질서,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지요.”
“그 법과 질서! 그 명분!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냔 말이네! 할 말이 있으면 해!!”
황제의 격렬한 외침에 난 웃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이미 주변에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는 이는 없었다.
“글쎄요… 사면권이라도 가진 사람이 저에게 명령을 하지 않는 이상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만.”
“사면권이라면…”
“그게 무엇인지는 폐하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황제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선양이라는 황위찬탈을 하지 않으면서도 법의 위에 존재함과 동시에 사면권, 그리고 재량대로 죄인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질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바로 구석.
황제의 신하가 황제와 거의 동격의 권한을 시행할 수 있게 하는 권한을 내려주는 것이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봐야 분란만 생기는 황위따위에는 조조도, 나도, 그리고 가 사형이나 종요도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구석에 불과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황권과 명분을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며 황제가 더 이상 나댈 수 없게 만드는 안전장치.
구석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는 황제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지자 난 그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만약 승상께 그런 권한이 주어진다면… 뭐랄까. 한명의 목숨 정도는 살려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한명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황제도 잘 알거다.
목숨만 살아남게 될거다.
황태자로서의 계승 권한이 사라지고 그저 일개 황족 하나가 되어 황궁에서 쫓겨나 살아가게 되는 것.
하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게 된다.
황제는 나를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걸… 노린 것인가?”
“뭔가 말씀이 이상하시군요. 제가 그것을 노리고 이 상황을 주도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오해십니다.”
“사면권이라면 나에게도 있을텐데. 황제에게 주어진 사면권을 이용한다면. 풍아를 사면시킬 수 있지 않나?”
구석을 내리는 것은 황제다.
황제와 거의 동격의 위치에 올려주는 것인만큼 당연히 황제도 사면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내가 댁의 명령을 들을 생각이 없는데.
내가 싱긋 웃자 황제는 고개를 숙였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뭐랄까. 사면권을 쓰신다고 하시더라도 그것을 맡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시중부이고, 또 상서부와 장군부의 협력을 받은 후 승상부의 처리과정까지 거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만.”
“그렇겠지…”
황제가 사면권을 써봤자 내 선에서 그것을 무시해버리면 된다.
적당히 진행중입니다. 라는 말만 하고 황태자를 계속해서 고문하든, 가둬두든 하면 되는
거다.
역적을 감금하고 그들을 대하는 과정은 매우 가혹하다.
주어지는 것은 반쯤 쉰 음식들, 그나마도 하루에 한끼 정도만 지급될 뿐이고 자는 곳조차도 차가운 돌바닥에 불과하다.
주어지는 것은 없고 최악의 경우 노역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다.
황제가 사면권을 내린다?
그 즉시 유풍에 대한 죄를 사면할 수 없는 이상 그의 목숨은 결국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황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나는 승상에게 구석을 내릴 수 밖에 없겠군… 내 아들을 살리려면… 결국.”
“아.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태자마마의 목숨을 가지고 폐하를 협박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황제를 향해 난 천천히 말했다.
“이제 조만간 조공의 여식이 황후에 오를 것입니다. 그리 되면 승상은 폐하의 장인어른이 되지요. 거기에 왕위에 올라야 하는데… 그것을 축하하며 폐하께서 구석을 내리시는 것이라면 모를까.”
“…하하… 명분까지 가져가겠다는 것인가?”
“합당한 상황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폐하의 말씀대로 하시면 저희가 태자마마의 목숨과 구석을 교환하는 것 같잖습니까. 하하. 저희 그런 사람 아닙니다.”
황제는 힘없이 날 바라보았다.
그에게 웃어보인 나는 천천히 말했다.
“폐하.”
“….”
“가끔씩 생각합니다.”
“무엇…을?”
“동승의 반란을… 폐하께서 막으셨더라면… 과연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왔을까요?”
“….”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황제와 나의 사이가 틀어진 시발점은 바로 동승의 반란이다.
그때 나는 청이와 결혼식을 치루고 있었다.
행복해야 할 결혼식때 암살당할 뻔 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황제를 싫어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황제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으니까.
이렇게까지 황제와 사이가 틀어지고,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다.
황제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그 시비를 나는 그대로 돌려 주었을 뿐이다.
내 말에 황제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끼며 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저 폐하께서 승상께 구원을 받으시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용히 계셨더라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겠지요.”
“…너는.”
“수신제가요. 치국 평천하니. 몸을 수양하고 가정을 잘 다스렸을 때 나라를 유지할 수 있고 평화로운 천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황제의 몸이 떨린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던 나는 양 팔을 가볍게 벌렸다.
“수신에 실패하여 동탁이나 이각따위에게 농락당하고, 제가를 이루지 못하여 동귀비나 복황후가 날뛰게 하고, 치국을 완성하지 못하여 유장의 꾀임에 넘어가고 그리하여 이런 파국을 만든 것은.”
“…큭.”
“다름 아닌 폐하입니다. 그 모든 원인과 잘못은 폐하께 있다는 것이지요.”
“크윽…큭…”
수치와 굴욕으로 부들부들 떨며 황제는 고개를 숙였다.
아, 이거 참.
속이 좀 풀리네.
그가 자리에 선 채 떠는 것을 보며 난 몸을 돌렸다.
“그럼 폐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수신에 성공하시고, 제가를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내가… 내가 실패하여 네가 이렇게까지 왔다고?”
“예.”
“모두 내 잘못이라… 이것이냐?”
“그렇습니다.”
황제는 주먹을 꽉 쥐며 힘없이 말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간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그의 비난 섞인 말을 들은 나는 몸을 돌려 그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럴리 있겠습니까? 저는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 황실의 영원한 충신입니다. 그런 험한 말씀은 말아주십시요.”
황제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한 황실을 능멸하며 황제를 이렇게 굴욕과 절망에 빠트렸을 거라고?
홀로 남은 황제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것을 들으며 난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죽림을 지나며 난 피식 웃었다.
간신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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