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승태에게서 진상된 선물을 바라보는 순욱은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 조조 휘하에 있을 무렵에 어려운 처지임에도 꼬박꼬박 선물을 보내주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물을 열어 본 순욱은 가득 찬 수납함 위에 놓인 서신을 가만히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서도로 봉투를 개봉한 후,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순욱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승상께 바라옵건대, 자식에게 명심해야 할 글귀를 내려 주시옵소서.]공들여 한 자, 한 자 적은 글에는 승태가 가진 부모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순욱은 승태의 새삼 가슴이 답답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위들과 같이 성 위에 오른 순욱은 승태가 이끌고 온 병사들이 군막을 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살폈다. 그 와중에 승태는 직접 주변을 돌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때, 뒤로 다가온 순심이 물었다.
“혹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성민들이 불안해할 수 있으니, 멀리 물러나라 명을 내릴까요?”
순심을 돌아본 순욱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형님, 괜찮습니다. 그저 수춘후가 올린 글을 보니, 돌아가신 선친의 모습이 어른거려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저를 스승이라 여기는 수춘후에게 큰 짐을 지운 것 같기도 하고요.”
“차후에 공을 세웠을 때, 그만큼의 대우를 해 주면 될 일입니다. 거기다 북지의 인물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인장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이는 수춘후가 올린 계책을 받아들여 행한 것이니, 오히려 승상의 넓은 아량에 감읍해야 할 것입니다.”
순욱은 순심의 말이 절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승태에게 맡긴 일들은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데다 가절월도 내리지 않았으니, 조비가 승태의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고, 원상도 빨리 군을 보내 달라며 재촉만 해 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머리 아픈 일들을 그대로 승태에게 던져 버린 것이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선주이신 선대 명공의 일로 많은 고초를 겪을 때마다 제가 수춘후를 도와주었는데, 이는 그가 더 큰 사람이 되기를 마음에서였습니다.”
순욱은 성벽을 어루만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수춘후의 울타리가 되어 언제까지나 지켜 주겠다 하였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큰 힘에는 그에 합당한 의무가 따르는 법이니, 수춘후도 이해할 것입니다. 또한 수춘후가 은혜를 모르는 소인도 아니니, 승상의 깊은 뜻을 잘 헤아릴 것입니다.”
순욱은 순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최염은 승태가 앙심을 품고 자신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 경고했지만, 이는 자신 수춘후 간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제아만큼 한조를 위하여 일하는 인물이 어디 있던가. 뭇 제후들이 황실에 등을 돌렸을 때 홀로 나서 공물까지 바치었다. 그러니 분명 한조를 다시 세우기 위한 영웅이 되어 줄 것이다.’
순욱은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포장하기 위해 또 다른 변명을 덧씌우고 있었다.
* * *
한편, 승태는 자신이 보낸 선물에 대한 답이 오지 않자, 굉장히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후를 바라보았다.
분명 선물을 보내면 순욱의 좋은 답이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하루가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무슨 어려운 것을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아들에게 남길 글 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걸 안 보내주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지금껏 내가 조정에 바친 돈이 얼마인데 말이야.’
결국, 승태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승상께서 딱히 반응이 없습니다?”
가후는 승태의 원망 섞인 질책에 살짝 웃음을 지었다.
“이런 명을 내렸는데, 어찌 좋은 반응을 바로 보여 주겠습니까.”
“딱히 특별한 답변을 바란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제 아들에게 건네줄 글귀 하나 적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후는 여전히 불만스러워하는 승태의 모습에 다시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려운 것은 아니군요.”
“예. 뭐, 그렇습니다. 사실 제 첫째 아이가 똑똑하여 명사들에게 칭찬을 받는데,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예가 얼마나 뛰어난지, 지난번에 조운 장군과 무예를 논할 땐 정말 깜짝 놀랐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승태의 팔불출 같은 자식 자랑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때마침 막사로 들어서던 노숙이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슬쩍 물러나는 모습은 가후로서는 꽤나 신선했다.
한창 승태의 팔불출 행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후가 중간에 말을 끊으며 말했다.
“정 그러하시다면 제가 승상을 대신하여 글을 써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승태는 기쁜 기색을 만면에 드러내며 가후를 바라보았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저야 좋지요. 아들도 아마 가 공께서 가르침을 주셨다 하면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정리된 것을 알았는지, 노숙이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승상께서 명령을 내렸네. 이제 출발하라고 말이야.”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까?”
승태의 물음에 노숙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승태는 순욱의 명을 받들어 바로 여양으로 움직였다.
그때까지 순욱에게서는 무사 귀환을 바라는 어떠한 축전(祝典)이나 서신도 없었다.
* * *
조비는 마구잡이로 집기들을 부수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반면, 그 앞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마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빌어먹을! 오환 놈들은 대체 무엇을 한 거야! 분명 뒤를 끊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후방에서 나타난 것은 되레 원담의 군세였잖아!”
이윽고 상념을 마친 사마의가 여전히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조비에게 말했다.
“아마도 원가의 입김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조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더욱 분노를 터트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가 때문에 조조가 죽었으며, 그로 인해 자신 역시 친정을 나서야 했다.
만약 하후연이 없었으면, 자신 또한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었다.
“원상, 이 개자식! 내가 분명 이런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주삭, 오질!”
조비가 소리치듯 부르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이 황급히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술! 술을 가져와라!”
주삭과 오질은 앉아 있는 사마의를 흘낏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사마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한 두 사람은 빠르게 밖으로 튀어 나가 조비가 원하는 주안상을 차려 왔다.
조비는 상석에서 내려와 술병을 들더니 그대로 입에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을 조심스레 지켜보던 오질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패공, 패전으로 인하여 장졸들의 마음이 허허로우니, 연회를 열어 즐기면 어떻겠습니까?”
연회라는 말에 조비는 순간 눈을 번쩍였다. 역시 조비의 인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조비는 오질의 손을 잡으며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연회를 열어 장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조정에서 올 지원군을 기다리자고!”
조비가 기뻐하며 맞장구를 치자, 오질은 웃음 지으며 고개 숙여 말했다.
“패공께서는 정말 영웅과 같이 호탕하옵니다. 적이 앞에 있음에도 연회를 치를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 모습이 더없이 한심하게 느껴져 사마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조비는 인상을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
“왜 그러는가? 자네는 연회를 여는 것이 싫은가?”
사마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패공께서 하시는 일을 막으려 들 이들이 많을 테니, 그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비는 순간 조가와 하후가의 어른들을 떠올렸다. 자신을 보좌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럴 때는 참으로 갑갑하게 느껴지는 이들이었다.
“흥, 그 늙은이들은 참으로 도움이 안 되는군. 병사들을 다룰 줄만 알지, 풍류를 전혀 모른다니까.”
그러자 오질이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사마 별가도 영 풍류를 모르지 않습니까?”
오질은 마침 잘됐다는 듯 사마의를 비꼬았다. 명석한 두뇌와 달리 사마의는 시를 잘 짓지 못했는데, 그걸 풍류를 모른다며 매도한 것이다.
조비 또한 자신의 똥구멍을 살살 긁어 주는 것 같은 오질의 아부에 크게 만족한 듯 웃어 보였다. 그 모습만 보면, 패전 따윈 모두 잊어버린 듯했다.
“맞네, 맞아! 별가의 시를 짓는 능력은 진짜 형편없지. 아마 내가 그랬다면, 창피해서 당장 목을 맸을 것이네. 그러하지 않은가?”
조비의 말에 조삭도 웃음을 흘렸다. 사마의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능력이 떨어지니 옆에서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지요. 시문(詩文)이야 계속 듣다 보면 조금이라도 늘지 않겠습니까? 그럼 시문이 제일 떨어지는 제가 풍류를 모르는 분들을 설득하러 가야겠습니다.”
사마의의 말에 조비는 만면에 화색이 돌며 재차 물었다.
“정녕 그래 주겠는가? 내 저번에 화를 낸 것도 미안한데 자네가 이리 나서 주니, 참으로 고맙군.”
“아니옵니다. 제가 옆에서 패공의 높은 시문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 하여도 큰 은혜이옵니다.”
사마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비는 냉큼 다가가 품에 있는 패를 꺼내 주었다.
“풍류를 즐긴다 말을 전하면 숙부들이 자네를 죽이려 들 수도 있네. 그러면 이 패를 내보이게. 패공의 대리임을 주장하면, 노인네들도 크게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야.”
사마의의 어깨를 잡은 조비의 손에서 강한 힘이 전해졌다. 아마도 이는 연회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반영된 것 같았다.
“알겠사옵니다. 그분들께서 화를 내지 않도록 제가 말을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래그래. 내 자네만 믿겠네!”
사마의가 뒷걸음질로 막사를 빠져나오자, 그 안에서 서로 노래를 부르며 술을 들이켜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표정을 굳힌 사마의는 매섭게 눈빛을 빛내며 막사를 돌아보았다.
‘고작 시문 하나 가지고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놈들을 보고 있으려니, 참으로 참기가 힘들구나.’
하지만 어느새 사마의의 얼굴은 다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걸음을 옮긴 사마의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조진이 머무는 군막이었다. 조진은 사마의가 자신을 찾아오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조비와 늘 붙어 다니는 세 사람이 조비를 망친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별가께서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소?”
“패공께서 연회를 열고자 하십니다.”
“뭐라? 이런 미친! 지금 뭐라고 했는가! 연회라고?!”
조진이 분노를 토해 냈지만, 사마의는 부드럽게 웃음 띤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바로 들으셨습니다. 그러하니 공께서 다른 어른분들을 설득해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