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35
236화
단아한 모습으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김소희를 멍하니 쳐다보던 강진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변태도 아니고…….’
김소희가 죽은 나이가 열여섯 내지 열일곱 정도 될 것이다. 속은 오백 년 묵었다고 해도 외형은 소녀인데 그런 김소희에게 가슴이 떨리다니…….
‘정신 차리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강진에게 이혜선이 말했다.
“오빠, 나 어때요?”
이혜선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이혜선은 투피스의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살짝 몸매가 부각이 되는 스타일이었는데, 윗옷이 너무 타이트해 가슴이 조금 두드러지는 모습이었다.
“그 옷 좀 작은 거 아냐?”
“원래 이렇게 입는 거예요.”
“맞아요. 언니 너무 이뻐요.”
“이쁘기는 우리 막내가 더 이쁘지.”
“아니에요. 언니가 더 이쁘죠.”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하면 뭐 하니. 한나가 못난이들 잘 논다 하겠다.”
“에이, 무슨 그런 소릴 해요.”
“너는 이름부터 얼굴까지 배우 강한나하고 정말 많이 닮았어.”
여자들 셋이 서로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게 흔한 여자들의 대화인가?’
마음 같아서는 농담으로 ‘너희 셋 다 못생겼거든.’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그리 끝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셋이 예쁘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새 옷을 입은 여자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럼 이제 식사들 하시죠.”
강진의 말에 여자 귀신들이 소주를 챙겨들곤 식탁에 앉았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아가씨, 식사하시지요.”
“그러지.”
김소희가 문방사우가 있는 곳에 자리를 하자, 강진이 말했다.
“치워 드리겠습니다.”
“두게. 글을 쓰며 즐기고 싶군.”
붓 끝에 먹을 묻히며 김소희가 말했다.
“잔과 닭발만 옆에 두게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잔과 닭발을 식탁 빈 곳에 놓았다. 그것을 보던 김소희가 소주를 따라 한 잔 마시고는 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처녀귀신들이 가고 나서야 다른 여자 귀신들과 최훈이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선주 너무 이쁘다.”
최훈의 말에 선주가 혜원을 보았다.
“혜원아, 옷 너무 이쁘다.”
“언니 피부가 하얗고 투명해서 어울리는 걸로 골라 봤는데, 마음에 드세요?”
“그럼. 너무 이뻐.”
선주가 마음에 드는 듯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강진이 최훈을 보았다.
최훈도 옷을 갈아입었는데, 훨씬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최훈 씨도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최훈이 미소 짓는 것을 보며 강진이 귀신들을 둘러보았다. 가게에 온 다른 귀신들도 모두 옷을 한 벌씩 갈아입고 있었다.
포대 하나에 옷이 많이 들어가니 쓸만한 옷들로 좀 더 챙겨 온 것이다.
그래서 오늘 온 귀신 손님들도 옷을 한 벌씩 얻어 입었다.
“선생님은 옷 안 고르세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고개를 저었다. 대신 문방사우가 있는 식탁에서 김소희가 쓴 글을 보고 있었다.
“소희 아가씨가 글을 잘 쓰시는군요.”
“그렇죠.”
“확실히 조선시대 양반가 여식이라 그런지 글이 좋군요. 그리고…….”
허연욱이 난 그림을 보며 작게 감탄을 했다.
“이건 그림에서 향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림에서 향? 묵향 같은 거요?”
“묵향이라…….”
여전히 시선을 난 그림에 두고 있는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코가 아닌 마음으로 난향이 맡아진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입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림 잘 그렸고 글씨 좋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난향이 맡아진다는 것까지는…….
그런 강진을 본 허연욱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그림이고 글입니다. 족자로 만들어서 걸어 놔도 좋을 듯합니다.”
“족자요?”
“족자가 뭔지는 아시지요?”
“네.”
“족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도 좋고, 다른 분에게 선물을 해 줘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글을 보다가 다른 종이들을 들었다.
“이 글들은 어때요?”
“좋습니다. 내용도 좋고…….”
허연욱이 네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들었다.
“약식동원. 식당에 걸기에 좋은 글인데…… 이미 가림막에 새겨져 있군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가림막을 보았다. 가림막에 쓰여 있는 약식동원이라는 글자와 김소희가 써 놓은 글은 같은 글이었다.
“좋은 식당이 되라는 의미로 소희 아가씨께서 적으신 모양입니다.”
“그런 듯합니다.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 좋은 음식은 약과 같다는 말이니 식당에 걸기에 좋은 문구입니다.”
그리고는 허연욱이 글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운암정 김 숙수님에게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군요.”
“운암정에도 멋진 족자들이 많던데요.”
전에 갔을 때 한자로 써진 글귀들이 족자로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본 것이다.
“이 글 역시 그에 못하지 않습니다. 김 숙수님도 서예를 하시니 보시면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렇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접으려다가 허연욱을 보았다.
“이거 그냥 접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돌돌 말았다.
“문방구나 다있소에 가면 화구통이라고 이런 동그란 통이 있을 겁니다. 그 안에 보관하시고 족자 만드는 곳에 가져가면 만들어 줍니다.”
“고맙습니다.”
강진이 종이를 돌돌 말아서는 카운터 밑에 잘 두었다.
그리고는 허연욱과 자리를 하고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새 옷을 입은 여자 귀신들은 즐거웠고, 새 옷을 입은 남자 귀신들은 들떠 있었다.
오늘만큼은 그저 흥겹고 기분이 좋은 귀신들이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귀신들을 본 강진도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중고라 가격도 싸니 귀신들의 잔고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에 강진이 기분 좋게 소주를 나눠 마셨다. 소주를 마시던 강진이 힐끗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도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는 배용수는 멀끔했다.
‘이렇게 보면 용수도 잘 생겼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소주를 따라 허연욱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
끼익!
거친 쇳소리를 내는 김치 저장소 문을 연 강진이 경첩을 살폈다.
“이것 좀 기름칠 좀 해야 하나?”
경첩을 살펴보던 강진이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돼랑아! 돼랑아!”
큰 소리로 돼랑이를 부른 강진이 처마 밑에 놓여 있는 사료 포대를 살폈다.
전에 두고 온 사료 포대는 많이 비어져 있었다.
“이 녀석, 많이도 먹었네.”
작게 중얼거리며 강진이 들고 온 사료 포대를 그 옆에 쌓고는 빈 포대는 접었다.
“푸르! 푸르!”
그 사이, 뒤에서 나는 거친 콧소리를 들은 강진이 몸을 돌렸다. 뒤에는 돼랑이가 돼순이와 새끼들과 함께 있었다.
돼랑이 새끼들을 보며 강진이 소시지를 꺼내 주었다.
“잘 있었어?”
웃으며 애들에게 소시지를 주자, 애들이 환장하고 다가오더니 소시지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한 번 먹어 봤다고 그 맛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애들을 쓰다듬어준 강진이 돼랑이에게 커다란 소시지를 주었다.
돼랑이가 소시지를 받아서는 돼순이에게 내밀었다. 그에 돼순이가 입으로 가운데를 물어뜯어서는 한 쪽을 돼랑이에게 주고 한 쪽은 자신이 먹었다.
‘소시지도 나눠 먹는 부부네.’
속으로 웃은 강진이 커다란 소시지를 하나 더 꺼내 돼순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강진이 사료 포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새로 가져왔으니 먹어.”
“푸르!”
강진의 말에 돼랑이가 크게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까닥였다. 마치 고맙다는 듯 말이다.
그런 돼랑이를 보던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복 형이 안 오네.”
평소라면 자신이 오자마자 올 이가 오지 않는 것이다. 그에 잠시 만복을 기다리던 강진이 옆에 놓인 옷 포대를 등에 짊어졌다.
오늘 여기 온 것은 옷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도시는 옷을 태울 곳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시골이라고 해도 옷을 함부로 태우면 안 된다. 다 불법 소각이니 말이다.
그래서 옷을 어디서 태워야 하나 하다가 이곳으로 온 것이다.
폐가기는 하지만 아궁이가 있으니 그 안에 옷 넣고 태우면 된다.
불법인 것이 조금 걸리지만,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옷 태웠다고 경찰이 잡아 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부엌에 있는 아궁이니 불이 다른 곳으로 번질 걱정도 없고 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만복을 부를까 하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온 것을 알 것인데 오지 않았다면…….
“재밌는 영화라도 하나?”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포대를 어깨에 올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푸르! 푸르!”
강진이 포대를 짊어지고 걷자 돼랑이가 그의 앞에 등을 보였다.
그 모습에 강진이 돼랑이를 보다가 말했다.
“저번에 실례했는데 괜찮겠어?”
“푸르! 푸르!”
괜찮다는 듯 소리를 내는 돼랑이를 보던 강진이 그의 등에 슬며시 올라탔다.
그리고는 포대를 돼랑이 목 쪽에 올리고는 몸을 숙이며 머리털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강진이 털을 쥐자 돼랑이가 살짝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마치 더 강하게 잡으라는 듯 말이다.
그에 강진이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자 돼랑이가 가볍게 땅을 박찼다.
파앗!
“흐윽!”
갑자기 뛰어가는 돼랑이의 행동에 순간 움찔했던 강진이지만 곧 안도의 숨을 토했다.
돼랑이가 저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미친 듯이 질주하지 않고 적당한 속도로 내달린 덕분이었다.
편하지는 않지만 버티지 못할 움직임은 아니라 강진이 다리에 힘을 주며 돼랑이의 등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돼순이와 새끼들이 줄줄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내달린 뒤에야 강진은 돼랑이의 등에서 내릴 수 있었다.
등에서 내린 강진은 멀쩡한 집에서 TV의 은은한 불빛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만복 형.”
강진의 부름에 문에서 만복이 스윽 머리를 내밀었다.
“왔어?”
“TV 재밌는 거 해요?”
“부산여행.”
“그거 오래됐는데 안 보셨어요?”
“봐도 재밌어. 들어와. 너도 보자.”
“아뇨. 저는 할 것이 있어서요. 아! 그리고 달래 누나하고 나와 보실래요?”
“지금?”
“나와 보세요. 선물 가져왔어요.”
강진의 말에 만복의 머리가 스윽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달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뭔데?”
만복의 물음에 강진이 포대에서 옷을 꺼냈다.
“형 옷하고 달래 누나 옷요.”
“우리 옷?”
강진이 웃으며 옷을 들어 보였다.
“누나, 마음에 드세요?”
“이쁘다.”
달래의 말에 강진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옷 고를 때 달래와 만복도 생각이 나서 아동복 두 벌을 골라 온 것이다.
그런데 둘 다 옷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럼 옷 갈아입죠.”
“태워 줄 거야?”
“그럼요.”
그러고는 강진이 옷과 포대를 놓고는 방에 들어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른들이 영화를 한창 재밌게 보고 있어서 말을 걸기도 그렇고…… 달래와 만복의 옷만 가지고 와서 죄송한 마음도 있고 말이다.
밖으로 나온 강진이 포대를 챙겨서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김장할 때 만들어 놓은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낙엽들을 바닥에 깔은 강진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화르륵!
불이 솟구치자 강진이 달래와 만복을 보았다.
“이제 태우면 되는 거죠?”
“응.”
만복의 말에 강진이 남자 아동복을 아궁이에 넣었다.
화르륵! 화르륵!
아동복이 타들어가는 것과 함께 순간 만복의 옷이 바뀌었다.
화아악!
만복의 옷이 아동복으로 바뀌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리시네요.”
“그러게. 고맙다.”
웃으며 만복이 밖으로 나가자 달래가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그녀의 옷도 아궁이에 넣었다.
화아악!
달래의 옷도 변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포대를 풀어 옷을 꺼냈다.
그리고 김소희의 한복을 손에 쥔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이건 좀 아깝네.’
김소희가 그린 그림은 한복과 무척 어울렸다. 하얀 소복에 대나무 그림이 들어가니 마치 디자이너가 만든 옷처럼 변한 것이다.
“날씨 좋고 화창한 날, 할 것 없는 날…… 찾아오세요. 좋은 곳으로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한복을 쓰다듬은 강진이 옷을 아궁이에 집어넣었다.
화르륵!
옷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마 김소희의 옷도 지금쯤 변하고 있을 것이다.
***
흰둥이가 있던 정자에 앉아 있던 김소희의 옷이 변했다.
화아악!
자신의 옷이 변하는 것을 보던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의 마음, 불편해지려 하는군.”
강진은 몰랐지만, 집과 주인이 연결이 된 것처럼 모든 사물은 주인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강진이 한 중얼거림이 김소희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린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강진이 한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가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