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87
488화
황민성의 차를 타고 가게로 향하며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계약서 함부로 찢어도 돼요?”
“양쪽이 합의하고 찢으면 상관없지.”
“만약 그쪽에서 안 찢으면요?”
“안 찢으면 내 주식을 계약한 날짜 종가에서 십 프로 더 받고 파는 거지. 하지만 내 계약서가 없어도 안 그럴 거야. 그쪽도 내가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으니까.”
황민성은 강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안 찢었어.”
“안 찢었어요? 아까 시켰잖아요.”
“천억짜리 계약서를 직원들 손닿는 곳에 두겠어? 나만 열 수 있는 금고에 잘 보관해 놨지.”
“그럼 아까 그 전화는?”
“그냥 시늉만 한 거야. 그렇게라도 해야 그쪽도 기분 좋을 테니까.”
“아…… 형이 계약서를 찢을 정도로 이번 사업이 잘 될 거라고 확신을 준 거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이 사장님이 계약서 가져오면 찢어야지.”
“대단하네요.”
황민성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부모님 잘 설득해.”
“그래야죠.”
강진의 답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꼭 설득해.”
“광고 만들게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장이 말을 한 대로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 없지. 만들어진 스토리가 아닌 진짜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더 울리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수익 때문에요?”
L전자 광고가 잘 되어야 핸드폰이 잘 팔리고, 그래야 L전자 주식을 가진 황민성이 이득을 보게 되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형은 투자하는 사람이야. 수익을 포기할 수 없어.”
“알죠.”
황민성이 강진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실망했냐?”
“아니요. 일은 일이니까요.”
“맞지. 일은 일이니까. 하지만 꼭 수익 때문만은 아니야.”
“그럼? 다른 사람들도 위로를 받으라고요?”
“그것도 있고…… 그리고 이 사장님한테 지원받아야 할 것도 있고.”
“지원요? 여기에서 더 받을 것이 있어요?”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이 사장님이 그랬잖아. 하반기 전략 폰이 VR에 특화돼 있다고.”
“그렇죠.”
“근데 지금 네 핸드폰이 그 전략 폰은 아니잖아.”
“그야…….”
강진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다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 전략 폰은 안 나왔잖아요.”
“전략 폰은 안 나왔지. 하지만 시제품은 나왔을 거야.”
“시제품요?”
“지금 시기면 L전자 전략 폰은 양산만 되지 않았지, 완성은 됐을 거야.”
“그래요?”
“보안이 생명이라 시제품이라고 해도 밖에 함부로 풀지는 않았겠지만.”
전략폰은 핸드폰 만드는 회사의 일 년 농사다. 혹시라도 유출이 돼서 다른 회사에서 먼저 출시를 하면 농사 망치는 일이니 보안은 필수였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줄 수도 있어.”
“비슷한 거요?”
“기존의 핸드폰에 사양만 끼워 맞춰서 주면, 겉은 옛날 거지만 안은 전략폰이 되는 거지.”
“음…….”
“이 사장님이 전략폰 보내 주면 우리가 본 것보다 더 현실감 있는 애들을 부모님이 볼 수 있으니…… 잘 설득해 봐.”
“알았어요.”
황민성이 왜 설득을 하라고 하는지 이유를 안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 수익을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황민성도 아이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현실감 있는 애들을 볼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강진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일요일에 부모님들을 모시기로 결정을 했다.
***
다음 날 아침, 강진은 영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네.]“일단 전화드린 이유는요. 일요일에 캐릭터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일요일요.]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보고 마음에 안 드실 수 있으니 인사는 일요일에 해 주세요. 그리고 인사를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고 L전자 사장님이고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그리고 다른 부모님들에게도 이야기하셨나요?”
[다들…… 너무 감사해하고 있어요.]다행히 다른 아이들 부모님들도 캐릭터화를 좋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영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음…… 일단 이건 그냥 제안일 뿐이고, 부모님께서 아이들 캐릭터 보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L전자 사장님께서 이번 일을 영상화 하고 싶어 하세요.”
[영상화? 광고…… 말씀하시는 건가요?]“L전자 사장님께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가족들에게 이 기술이 위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을 영상화해서 다른 분들에게도 이 기술을 알리고 싶어 하세요.”
[광고라면…… 저희가 TV에 나오는 건가요?]아무래도 일반인이다 보니 TV에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좋은 일도 아니고…… 죽은 자식을 VR로 만나는 것이니 말이다.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지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제가 핸드폰으로 링크 하나 걸어 드릴 테니 그거 좀 봐 주시겠어요?”
[링크요?]“일단 봐 주세요.”
전화를 끊은 강진은 예전에 이강혜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광고를 검색했다.
광고를 찾은 강진이 영상 링크를 영수 어머님에게 문자로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강진은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영수와 아이들도 굳은 눈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광고 봤습니다.]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셨어요?”
[광고가…… 무척 따뜻하고 위로가 됐어요. 그리고……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척 공감이 될 거예요.]“그러셨어요?”
[광고 보니까…… 저도 우리 영수 동영상으로 많이 찍어 놓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어디에 놀러 가거나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가족을 찍은 경우는 드물다.
영수의 어머니도 아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광고를 보니 너무 아쉬운 것이다.
“그러시군요.”
[이런 광고를 만든 회사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감사합니다.”
[가은 엄마, 예림 엄마와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저는 할게요.]“아버님하고 상의를 하시고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니요. 할게요……. 저희 같은 아빠 엄마들에게 이 기술이 많이 알려져서 위로가 됐으면 해요. 그래서 저희가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감사합니다.”
[그럼…… 언제 가면 되나요?]“일요일 10시쯤 저희 가게에서 어떠세요.”
[사람들하고 이야기한 후에 연락드릴게요.]“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이강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진 씨.]반갑게 받는 이강혜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부모님들이 광고 촬영에 응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감사하네요.]“그런데 영수 어머니는 허락하셨고, 가은이와 예림이 가족분들껜 아직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영수 어머니가 두 어머니에게 말해서 허락을 받아준다고 하시긴 했는데 아직 확정은 아닙니다.”
“이번 주 일요일이 날씨가 좋다고 해서 그날 하려고요.”
[주말에 날씨 좋으면 공원에 사람들이 많을 텐데…….]“그래서 더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이 없는 것보다 사람이 많으면 더 현실감 있을 것 같고요.”
[하긴 일리가 있네요. 게다가 산책 나오는 사람들이라 놀이공원처럼 북적거리지도 않을 테고. 알겠어요. 그럼 일요일에 준비하도록 할게요.]“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장님.”
[말씀하세요.]“그…… 전략 폰이 VR에 특화되셨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그럼 혹시…… 일요일에…….”
강진이 황민성과 나눈 이야기를 하자, 이강혜가 잠시 말이 없다가 피식 웃었다.
[강진 씨 핸드폰에 이미 깔려 있어요.]“깔려 있어요?”
[제가 USB로 핸드폰에 프로그램 깔아 놨어요.]“아! 그래요?”
[전략 폰에 비해 스펙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단은 이번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깔아 놨어요. 그래서 다른 핸드폰에 비해 VR이 더 실감 나게 구현이 되죠.]“아…….”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보았다. 이강혜가 미리 다 생각을 해서 프로그램을 깔아 놓은 것이다.
“전략 폰이어서요?”
[전략 폰이긴 한데 외형은 일반 핸드폰의 모습일 거예요. 강진 씨가 말을 한 대로 전략 폰은 극비니까요.]“감사합니다.”
[그러니 강진 씨도 핸드폰 잃어버리지 말아요.]“제 핸드폰요?”
[저희 전략 폰 출시되고 나면 상관없지만, 그전에는 거기에 깔린 프로그램도 극비거든요.]“이런 중요한 것을 제 핸드폰에 까셔도 되는 건가요?”
[강진 씨가 다른 곳에 팔 사람은 아니잖아요.]“그건 그렇죠.”
[그리고 프로그램 깔면서 바이러스도 같이 심었거든요.]“바이러스요?”
강진이 놀란 눈으로 핸드폰을 보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프로그램 복사하거나 내려 받기 하려고 하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프로그램이에요.]“아…… 그럼 제 핸드폰에 뭐 문제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죠.”
[해커예요?]“해커? 저야 아니죠.”
[그럼 괜찮아요. 일반인은 그 프로그램 어디에 있는지도 못 찾으니까요. 그 프로그램 건들지만 않으면 아무런 이상 없어요.]“알겠습니다.”
“네.”
그걸로 전화를 끊은 강진이 영수와 애들을 보았다.
“일요일이다.”
강진의 말에 아이들이 작게 한숨을 토했다. 긴장이 되는 것이다. 진짜 자신들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부모님과 만나는 것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아이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이 생각을 해 봤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가슴이 철렁하네요.”
영수의 말에 강진이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영수가 웃었다.
“형이 생각을 하면 꼭 뭔가 생기더라고요.”
그에 피식 웃은 강진이 카운터에서 종이 세 장과 펜을 들고 왔다.
그리고 배용수가 주방에서 비닐장갑을 들고 나왔다.
“자.”
배용수가 장갑을 주자 아이들이 뭐냐는 듯 강진을 보았다.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못 했던 말…… 너희를 대신해 VR 캐릭터가 전해 줄 거야.”
“아…….”
아이들이 탁자에 놓인 종이를 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VR 캐릭터는 너희를 닮은 가짜지만…… 그 마음만은 진짜를 보냈으면 해.”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강진이 자리를 비켜주자, 아이들이 서로를 보다가 비닐장갑을 끼고는 멀찍이 떨어져 앉은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