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34
웰컴 투 NBA 134화
#134. 왕과 기사단 (1)
클리블랜드 오하이오.
내가 전생, 현생을 통틀어 클리블랜드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은 놀러 올 일이 없는 지역이니까.’
별로 재미가 없는 동네거든.
클리블랜드는 한때는 북미 대륙을 잇는 철도, 수운, 철강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오대호 주변, 일명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쇠락한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한 상황이었다.
MLB 인디언스, NFL 브라운스, NBA 캐벌리어스.
4대 메이저 스포츠 중 클리블랜드를 연고지로 삼은 팀이 셋이나 되는 걸 보면 대단히 스포츠 열기가 강한 지역 같지만.
안타깝게도 클리블랜드는 어떤 종목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둔 적이 없는 비운의 도시였다.
“일명 패배자들의 도시(The city of losers)라고도 하지.”
“어휴. 그건 좀 심한 표현 아니에요?”
“내가 그랬냐? 자기들끼리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어깨를 으쓱하는 릴라드.
그런 패배자들의 도시에 첫 우승 반지를 가져다준 인물이 바로 르브론 제임스였다.
물론 그전에 한번 거하게 ‘런’을 친 원죄가 있기는 한데…….
‘선수 입장에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솔직히 나 같았어도 올해 드래프트에서 샬럿 호네츠 같은 팀에 지명되었으면 매일 밤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탈출할 날짜만 카운트하고 있었을걸?
하지만 르브론은 그런 개노답 팀…… 아니, 클리블랜드에서 7년간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까지도 FA로 떠나는 대신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팀에 자신의 유산을 남겼고.
그런 의미에서 르브론은 할 만큼 한 셈이다.
‘문제는 이별을 선택한 방식과, 그 후에 템퍼링으로 BIG-3를 결성한 행보가 너무나 3류 악당스러웠다는 점이겠지.’
프로레슬링에서 선역이 악역으로 전환하는 행위를 턴힐이라고 한다.
악역(heel)으로 전환(turn)한다는 뜻인데, 이 시기에 르브론이 보인 행보는 그 WWE도 한 수 배우고 갈 정도로 모범적인 턴힐 과정 그 자체였다.
‘사실 르브론이 평범하게 뛰어난 선수였다면 이 정도로 비난을 받진 않았겠지.’
만약 르브론이 Next GOAT가 되리란 기대를 받지 않았다면?
르브론 본인이 GOAT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면?
스몰마켓의 좌절한 에이스 A가 빅마켓으로 떠나는 일 정도야 NBA에선 흔한 일이다.
문제는 그 ‘흔한’ 선택을 내린 순간 르브론은 ‘NEXT GOAT 탄생 설화의 주인공’에서 ‘흔한 에이스 A’로 전락했다는 점이고.
BIG 3를 결성하며 호언장담한 ‘8peat’ 선언을 지키지 못한 순간.
실컷 자신의 야심을 떠들어 놓고선 주인공에게 보기 좋게 패배한 아동 애니메이션 속 악당 꼴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덕분에 댈러스의 노비츠키는 리그의 정기를 수호한 성웅(聖雄) 노순신이 되어 버렸지.’
혹자는 르브론이 본인의 이미지메이킹을 잘하는 영리한 사업가라고 평하는데.
내 생각엔 GOAT에 근접한 레벨의 선수들 중에서 이 시절의 르브론만큼 셀프 PR에 처참하게 실패한 경우도 찾기 힘들었다.
‘승부욕이라는 정신병을 앓은 마이클 조던, 나중에 추한 본색이 드러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도 최소한 선수 시절에는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모범 체육인을 연기했는데, 르브론은 너무 일찍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 버렸지.’
그렇다고 르브론이 악당인가?라고 물으면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사람이 좀 기회주의적이고 정치적이고 계산적이긴 한데.
하든 때도 말했지만, 그 정도면 NBA 슈퍼스타 기준으로는 중간 정도는 된다니까.
르브론은 커리어 내내 한 번도 트레이드를 요청하지 않았고 (대신 동료를 트레이드했다).
소속된 모든 구단에 우승 반지를 선물했으며 (대신 구단의 미래를 제물로 바치긴 했다).
20년 넘도록 리그를 대표하는 (지배까지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NBA의 영원한 전설로 남았다.
‘그렇게 입체적인 인물이기에 르브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
모두에게 사랑받던 선역에서 모두에게 경멸당하는 악역으로.
마이애미 히트에서 거둔 화려한 성공과 그림자.
다시 선역으로 돌아와 고향에서 이뤄 낸 극적인 우승.
그리고 LA 레이커스에서의 우승까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드라마틱한 인생 행보.
악역일 때도 마냥 악역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고, 선역일 때도 순수한 선역이라고 할 수는 없던 입체적인 인물이기에.
르브론의 행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들에게 그는 어떤 스포츠 스타보다도 애착이 가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안티팬은 일정 수준은 그 선수의 팬이라는 말도 있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릅까인 동시에 릅빠라고 해야 하나.
코비 키즈, 커리 키즈처럼 특정 선수를 동경하며 자라난 다음 세대의 선수들을 XX 키즈라고 한다.
하지만 르브론 키즈라고 불리는 세대가 없는 이유는, 르브론의 영향력이 한 세대를 넘어서 이 업계에 영원한 흔적으로 남았기 때문.
그런 맥락에선 나 역시도 넓은 의미로 르브론 키즈라고 할 수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곧 시합이 시작하겠습니다. 좌석에 착석하여 주시고…….]삐이이익!
요란한 버저 소리가 귀를 찌른다.
뚜둑! 뚝!
나는 목을 꺾으며 천천히 코트로 걸어 나갔다.
살아 있는 전설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 * *
◎ 선발 라인업
[Portland Trail Blazers]PG 데미안 릴라드 6-2
SG CJ 맥컬럼 6-3
SF 김시온 6-9
PF 알 파룩 아미누 6-9
C 유서프 너키치 7-0
[Cleveland Cavaliers]PG 호세 칼데론 6-3
SG JR 스미스 6-6
SF 르브론 제임스 6-9
PF 제이 크라우더 6-6
C 케빈 러브 6-9
[Welcome, NBA Fans. ESPN의 브로드캐스터, 마이크 브린입니다.] [도리스 버크입니다. 반갑습니다.] [캐벌리어스 대 블레이저스. 경기 시작합니다. 환호하는 클리블랜드 팬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는군요. 가볍게 점프볼을 따내는 유서프 너키치.]너키치가 점프볼 경합에서 승리하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자. 천천히 가 보자.”
공을 몰고 천천히 하프라인을 넘어오는 릴라드.
너키치와의 픽앤롤로 골밑까지 진입하더니, 반대쪽 코너에서 어슬렁대던 내게 긴 스킵 패스를 보내왔다.
휘이이익! 턱!
“으응?”
뭐야. 벌써 득점 찬스?
나를 마크하던 제이 크라우더는 어느덧 골밑으로 움직인 상황.
나는 얼떨결에 점퍼를 올라갔고.
철썩!
[Kim, from corner. 와이드 오픈 샷. 들어갑니다. 스코어는 3대 0.]이게 들어가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하지만 내겐 약간의 의문이 남았다.
‘이상하네. 방금 크라우더가 왜 골밑에 가 있었지?’
설마 날 새깅했을 리는 없는데.
내 코너 3점이 득점 보증 수표라는 사실은 이미 리그에도 널리 퍼진 사실.
차라리 아미누를 버렸으면 이해가 됐을 텐데.
[JR 스미스. 너키치와 미스매치를 만들고 1대1 시도. 3점 슛. 빗나갑니다.] [유서프 너키치. 골밑에서 훅 슛. 들어갑니다.]서로 계속해서 득점에 성공하는 형국.
나는 머지않아 첫 포제션에서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비가 왜 이 모양이야?’
앞선 수비가 거의 자동문 수준이다.
아니, 골밑도.
[데미안 릴라드. 안으로 진입해 킥아웃. CJ 맥컬럼의 점퍼로 연결됩니다.]마치 블레이저스의 지난 시즌을 떠오르게 만들 정도로 캐벌리어스의 수비는 헐겁기 그지없었다.
“뭐지?”
클리블랜드와의 첫 대결.
아무리 서고동저가 극심한 시절이라고는 해도, 클리블랜드는 3년 연속으로 파이널에 진출한 동부의 강호다.
당연히 나는 워리어스, 로키츠, 스퍼스 같은 타이틀 컨텐더를 상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
그런데…….
“……엥?”
생각해 보니까 쟤네 라인업이 왜 저 모양이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일단 착화 6-9의 케빈 러브가 선발 센터로 나오는 것부터가 조금…… 그렇지 않나?
나도 가끔 스몰라인업 센터를 맡기는 하지만.
그건 한정적인 상황에서나 잠깐 꺼내 드는 변칙 라인업이고, 기본적으론 3~4번을 오간다.
‘왜냐면 비효율적이니까.’
스몰라인업 센터가 체력적으로 얼마나 힘든데.
그런데 캐벌리어스의 ‘주전 센터’인 케빈 러브의 신장은 맨발 6-8, 착화 6-9.
딱 나랑 비슷한 수준인데, 팔 길이는 나보다 2인치(5cm)나 짧았다.
파워포워드 기준으로도 평균 이하라는 소리.
“데임, 쟤네 백업 센터 없어요?”
“있어. 제프 그린.”
“……제프 그린도 스몰포워드잖아요?”
“……그렇지?”
“……?”
나와 릴라드는 사이좋게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말하면 파워포워드 겸 센터인 트리스탄 탐슨이 있긴 한데, 최근 경기력이 끔찍해서 못 나온다는 모양.
르브론(6-9), 크라우더(6-6), 러브(6-9), 그린(6-9), 탐슨(6-9.5)로, 6-10이 넘는 정통 빅맨이 없는 극단적인 스몰라인업.
이런 기형적인 로스터가 탄생한 원인은 카이리 어빙의 트레이드 요청으로 인해 로스터 구성이 꼬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대대적으로 전력을 보강하게 되지만.’
그건 2월의 이야기.
우리가 캐벌리어스를 만난 시점은 캐벌리어스가 이빨 대신 잇몸으로 시즌을 치르던 시기였다.
‘가드진은 호세 칼데론에 JR 스미스? 수비는 누가 하려고?’
호세 칼데론은 36세의 가비지급 포인트가드.
아이재아 토마스가 부상에서 이제 막 복귀한 탓에, 실전 감각이 떨어진 토마스 대신 선발로 나온 선수다.
JR 스미스는 원래 수비가 별로였고, 지금은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는 상황이고.
“Hey, CJ.”
“으응?”
“오늘 경기도 전국 중계였죠?”
“그래. 저기 ESPN 캐스터들이 앉아 있잖아.”
“흐음…….”
조금 실망스럽긴 하네.
동부 최강자 캐벌리어스와의 불꽃 튀는 진검승부 같은 걸 기대했는데 말이지.
‘생각해 보면 올해를 마지막으로 르브론은 레이커스로 이적하고, 캐벌리어스는 팀째로 폭파되던가.’
파이널에 진출한 것도 서고동저라는 특수한 상황과 르브론의 1인 차력쇼 덕분이었고.
올해 캐벌리어스는 서부였다면 딱 2라운드 진출이 한계인 팀이었다.
아직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기도 전이니.
지금의 캐벌리어스는 소위 말하는 ‘르브론 2기’에서 가장 약체화된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우리는 릴라드가 햄스트링 때문에 출전 시간을 조절하는 것 외에는 베스트 전력이고.’
어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이거, 기회 아닌가?
사실 블레이저스에 지명된 뒤로 나는 하든, 쿤보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1:1 수비에만 100% 집중할 상황이 많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상대 에이스 핸들러를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역할이었으니까, 수비에 모든 걸 쏟아부어도 문제가 없었지만.’
여기서는 외곽 득점 지원하랴, 릴맥 백업 수비 가랴, 너키치 호위 무사 역할까지 하는 등등.
눈앞의 상대에게만 집중할 겨를이 없었거든.
마음 편히 수비만 할 수 있도록 팀 차원에서 판을 깔아준 적이 없었단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잖아.’
캐벌리어스의 전력이 정상적이라면, 내가 아무리 르브론과 맞붙고 싶다고 해도 그럴 기회는 많지 않았을 거다.
르브론은 애초에 1대1을 그리 선호하는 선수가 아니고.
어빙 같은 뛰어난 동료가 있다면 패싱 게임 위주로 게임을 풀어 나갈 테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팀원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좋건 싫건 르브론 본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지.’
즉, 나와의 1대1 대치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는 소리.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판이 깔린 셈이다.
“하핫.”
저도 모르게 나오는 웃음.
그 모습이 거슬렸는지, 나와 대치하던 르브론이 눈을 살짝 찌푸린다.
“이봐, 루키.”
“예?”
“뭐가 그렇게 웃기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나?”
“아…… 그럼요. 재밌고 말고요.”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짝사랑하던 여자애랑 같은 조에 배정받은 느낌?
다만 평범한 청춘남녀의 연애와는 달리, 이쪽은 슈퍼헤비급 남정네들의 땀내 나는 레슬링이 될 거라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나는 실실 웃으며 르브론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내게서 슬슬 멀어지는 르브론.
“……뭐야?”
“하하하. 아뇨 뭐, 이렇게 만나서 영광이라고요.”
이봐요, 털보 아저씨.
댁이랑 나는 오늘부터 1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