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cop who beats you with wealth RAW novel - Chapter 132
“도련님?”
김 실장이 내 어깨를 콕콕 찌르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윤별아는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나를 쳐다봤고.
“왜 그러세요?”
“···남자친구 이름이 나준원이라고 했죠?”
새삼스럽게 뭘 묻냐는 표정. 나는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감추며 폴라로이드를 떼어 냈다. 나준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러니 흔적을 못 잡았지.
“가져가시게요?”
“그럼요. 여기 계속 둘 거예요?”
“제가 들고 가면 안 되겠죠?”
“당연한 말씀. 유일한 증거인데.”
나는 사진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소극장을 빠져나왔다. 어리둥절하게 나를 따라 나오는 두 사람. 나는 김 실장을 향해 부탁했다.
“이제 볼일 끝났으니까, 윤별아 씨 좀 집에 모셔다드려요.”
“네? 벌써요?”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대꾸하는 윤별아.
“사진 찾았으니 다 찾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나머지는 제가 사무실 들어가서 이것저것 잘 뒤져 볼 테니 걱정 마세요.”
“하지만···.”
“아니면 진짜 서울 나들이 한번 시켜 드려요?”
“그건 아니고요. 제 생각이랑 너무 달라서요. 이틀 안에 찾는다고 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그녀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다. 이제 와서 설마, 대충 도와주는 건 아닐까 하는 눈빛.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곧 저녁 시간이니, 타이밍도 좋군.
“됐고요. 그 말 취소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어떻게 한 입으로 두 말 해요?”
“하루 안에 찾아 줄게요.”
자신만만한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윤별아. 나는 보험용으로 뒷말을 서둘러 붙였다.
“어디 있는지 하루 만에 찾아 준다고요. 다만 만나는 건 남자 쪽 의사도 물어봐야 하니까 장담 못 하고.”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요. 분명 제가 찾아왔다 하면 만나 줄 거니까.”
굳건하게 믿고 있는 모습에 약간 측은함까지 생긴다. 녀석의 본성을 알고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김 실장이 주차해 뒀던 차를 끌고 오고, 그녀는 마지못해 올라타며 당부했다.
“꼭 연락 주세요. 하루 안에.”
“네네. 휴대폰 잘 확인하시고요. 김 실장님. 조심히 부탁합니다.”
그렇게 대꾸하며 차체를 두 번 두드렸다. 어서 출발하라는 뜻. 윤별아는 창밖으로 긴 머리를 흩날리며 나를 돌아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흠칫거리게 만드는 광경. 나는 휴대폰 든 손을 흔들다가, 그대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강남으로 가 주세요.”
***
강남의 뒷골목. 화려하고 번쩍이는 네온사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간판이 보인다. ‘캘리포니아’ 미국에서 고작 1년 살다 온 녀석이, 온갖 부심은 다 있었지. 덕분에 머릿속에 콕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띠잉-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우렁찬 목소리들. 허나, 곧 내가 남자인 것을 보고 입을 싹 닫는다. 데스크에 서 있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손님. 여기 여성 전용인데요.”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 손님 아닙니다.”
“그러면 뭐. 면접 보러 오셨나?”
“안타깝지만, 그것도 아니고요.”
나는 안으로 들어서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여타 다른 술집과 다를 것 없는 분위기.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인테리어가 세심하고 아기자기하다는 것이다.
“여기 잭슨이라고 있죠?”
내 말에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이 귀찮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수북이 쌓인 현금 다발을 세는 것. 그게 직원의 작업인 모양이다.
“아. 잭슨이요. 혹시 무슨 일로?”
“만나면 알게 되니까 좀 불러 줘요.”
“잭슨 요즘 출근 안 하거든요. 꽤 됐어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내 기억으로는 분명 여기가 본진인데. 강남에서 날리는 전설적 호스트. 그를 그렇게 만들어 준 데 있어, 절반이 이 술집이란 것을 잘 안다.
“그래요? 그럼 주소라도 주시죠.”
내 말에 나를 쳐다보는 직원.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리 봐도 빚쟁이는 아닌 것 같고. 걔한테 데인 여자 쪽 사람인가?”
“뭐요?”
“미안한데, 직원 정보를 함부로 알려 줄 수가 없어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세요. 알려 달라고 하면, 우리가 넙죽 알려 주겠어요?”
나는 카운터 대리석을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별아가 하던 짓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군. 알 만하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정보에 관해 민감하지.
“제가 직원이라서 두둔하는 건 아니고요. 뭐 한 번 데였으면 그냥 인생 경험했다 생각하고 넘어가세요. 여자 쪽 남친 맞죠? 설마 남편은 아니겠지?”
직원은 내가 치정 문제로 찾아왔다 생각한 모양이다. 만약 깜장이었으면 금전 문제로 오해했으려나.
“세상에 여자 많습니다. 여기에 오는 사람만 하루에 수십이에요. 바람났으면 그냥 그대로 잊으시고, 다른 좋은 사람 찾으세요. 원하시면 내가 오늘 여기서 술 한 병 까 드릴게. 서비스로다가.”
직원은 금전 출납기를 정리하며 조잘거렸다. 평소에도 이런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자연스럽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걸 보면.
“이성적으로 생각하세요. 걔 잡아 팬다고 떠난 마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괜히 깽값만 나가요. 그러니까···.”
나는 두말 않고 안주머니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냈다. 그러자 뚝 하고 멈춘 목소리.
“뭐야. 경찰이었어요? 또 왜요?”
어라. 이건 좀 의외인 반응인데.
“‘또 왜요’라니?”
“저번에 왔다 갔었잖아요. 잭슨이랑 통화해 보니 잘 만난 것 같던데. 왜 여기서 그래요?”
“미안한데, 신분증 자세히 볼래요? 나 강남경찰서가 아니라 수안에서 왔어요.”
내 말에, 직원이 눈을 끔뻑이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걔도 참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경찰서 두 곳에서 찾아다니네.”
“강남경찰서에서도 왔다 갔어요?”
“예예. 그쪽은 참고인 조사인가 뭐시기인가. 아무튼 자세히는 못 들었고, 그쪽처럼 잭슨 주소랑 뭐 그런 거 알아보려고 왔었어요.”
“언제요?”
“일주일 조금 넘었나?”
“통화해 보니, 잘 만났다고 하고?”
“네. 별거 아니었다고. 경찰들 잘 만났다고 하던데.”
강남경찰서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그런데 잭슨, 왜 일 안 나와요? 걔 어지간해서는 개근 찍는 애인데.”
“어라. 형사님, 잭슨 아세요?”
타고난 끼라고 해야겠지. 잭슨은 여기서 일하는 것을 즐겼다. 오죽했으면 여자랑 술 먹고 노는 게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조금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에요. 걔 미국에 있을 때 같이 농구도 몇 번 했었거든요. 피자집 근처 공원에서.”
“아하. 그러면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직원은 놀랍다는 듯 웃어댔다. 잭슨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여기 직원들과 교도소 동기들뿐이니까. 직원이 전화기를 들며 물었다.
“아까 신분증에 성함이 뭐라 적혀있었죠? 제가 잭슨한테 말해서 내려오라고 할게요.”
“그냥 미국에서 친구 왔다고만 하면 알 겁니다. 이 근처에서 사나 봐요?”
“네네. 바로 뒤에 있는 오피스텔이요. 이놈이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이상해요. 집에 콕 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덕분에 가게 매출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니까요. 아. 잭슨.”
잭슨이 전화를 받았는지, 직원이 손바닥을 보이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신나게 떠들더니, 이내 본론을 꺼냈다.
“아 참. 미국에서 같이 어울렸다던 사람인데, 수안경찰서 형사님이시네. 어어. 주소 알려 줄까? 걱정하지 마. 내가 신분증하고 다 확인했어.”
나는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살폈다. 사람 좋아하는 잭슨답지 않게, 조심성이 굉장히 많다. 신원 확인이 철저한 사람만 만나겠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직원은 전화를 끊더니, 메모장을 꺼냈다.
“이쪽으로 가 보세요. 번호도 적어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어라. 진짜 바로 뒤편이네요.”
“출퇴근하려고 이사까지 했던 놈인데, 집에만 콕 박혀 있어요. 어휴. 무슨 일인지 말도 안 하고.”
직원이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 나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고, 술집을 나왔다.
지이잉-
그리고 오피스텔 7층. 나는 직원이 적어 준 호수 앞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카메라에 반만 걸치게끔.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Hi?”
집에만 박혀 있어도 관리는 계속 한 모양이군. 수염 자국 없이 매끈한 턱에 긴 웨이브로 내린 머리. 잭슨의 손끝에는 까만 매니큐어까지 칠해져 있었다. 내가 알던 그는 좀 더 성숙미가 넘쳤는데, 지금의 그는 소년미가 훨씬 강하다.
“누구?”
“전화 받았을 텐데. 수안경찰서에서 나왔다고.”
“···미국 친구라 하지 않았어요? 나는 처음 봐.”
오. 이건 똑같군. 미국에서 고작 1년 살다 왔으면서, 말투는 재미교포 2세다.
“나 성형했거든. 일단 안에 들어가도 될까?”
나는 가볍게 웃으며 의심을 일축했다. 한 손에 든 경찰 신분증. 잭슨은 마지못해 현관문을 완전히 열어 주었다.
“뭐 안 줘도 되죠?”
“어어. 물이나 차 같은 건 전혀 필요 없어. 목말라 죽겠지만 이대로 죽지 뭐.”
내 말에 잭슨은 입을 이죽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깔끔하게 물 한 잔이 내 앞에 놓이고, 잭슨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미안한데, 뭐가 먼저예요?”
앞뒤 다 자른 말이지만, 나는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경찰 일이 본론인지, 미국 생활이 본론인지 묻는 질문.
“경찰. 미국에서 봤다는 건, 술집에서 너 찾다가 갑자기 떠오른 거야.”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혹시 매브 사촌 형?”
“내가 방금 말했잖아. 경찰 일이 먼저라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나는 안주머니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냈다. 그걸 유심히 들여다보는 잭슨.
“너. 나준원이란 이름으로 여자 사귄 적 있지?”
허나 그는 도저히 기억 안 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이런 사진을 찍었던가.”
“주로 대학로 근처에서 만났고, 그쪽 대학생이라 속였던데. 마지막에는 동생 병원비 명목으로 돈 받고, 잠수.”
녀석은 그제야 기억난다는 듯 손뼉을 쳐 댄다.
“맞다. 와. 대박. 완전 잊고 있었네.”
그리고 다시 한번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쳐다봤다. 새록새록 ‘추억’이 떠오르는 표정이다.
“어쩐지. 내가 이런 사진을 찍었을 리가 없다 싶었어. 그런데 왜요?”
“왜요? 짜식아. 그게 할 말이냐? 동생은 무슨. 누나만 넷 있는 녀석이.”
“그때는 있었나 보죠. 제 마음속에. 아무튼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이 여자가 저를 고소했나요? 그래서 잡으러 오신 거고?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나 돈 달라고 한 적 없어요. 힘들다고 하니까 여자가 먼저 냉큼 준 거지.”
어허. 이런 모습을 윤별아가 봤다면 어떻게 됐을까. 뒤집어졌을까, 아니면 그래도 반갑다며 웃었을까. 나는 혀를 차면서 말을 이었다.
“고소 아니고, 여자가 너를 보고 싶어 해.”
“엥? 나를? 왜?”
“왜긴 왜야. 첫사랑이니까.”
내 말에 충격 먹은 듯 숨을 멈추는 잭슨. 이내 크게 폭소하며 바닥을 구른다. 나는 정색하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 미치겠네. 그때도 순진하다 싶었는데, 진짜 대박이다. 아직까지 자기가 공사 당한 걸 모른다는 말이에요?”
잭슨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어 젖혔다. 원래 내가 알던 녀석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한창 전성기 시기에는 싹수가 노랗다 못해 문드러졌었구나. 나는 담배를 물려다가 멈칫거렸다.
“근데 너 하는 거 보니까 안 되겠다. 그냥 못 찾았다 하고 묻어 둬야겠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첫사랑, 크큭. 첫사랑 만나겠다는데! 다시 만나서 사랑을 불태워 보지 뭐.”
다시 한몫 제대로 잡을 생각에 신이 난 녀석. 나는 담뱃대를 또각 부러트리며 낮게 읊조렸다.
“아니. 나 이대로 나가서 옥하동으로 갈 거야.”
옥하동. 익숙한 지명이 튀어나오자 잭슨의 웃음이 뚝 하고 멈췄다. 녀석의 본가가 있는 곳. 호랑이 같은 어머니와 세심한 아버지. 그리고 어쩔 땐 악마보다 더 사악한 네 명의 누나가 사는 집이지.
“가서 너 이 짓거리 하는 거 다 말해야겠다.”
“미쳤어요? 나 죽으라고?”
잭슨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되물었다. 녀석은 간통죄와 사기죄로 5년 형을 받았을 때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친한 형 따라 미국 가서 일한다며 홀연히 사라졌지.
“죽을 짓을 했으면 죽어야지, 인마.”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하세요. 형사님. 안 그래도 진짜 요즘 죽겠는데.”
잭슨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너 강남경찰서에서도 조사받았다고 했었지? 그쪽도 이런 일이야?”
녀석은 강남경찰서 이야기가 나오자, 스트레스가 올라온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른다.
“어후. 그런 거라면 차라리 좋겠네요. 괜히 이상하게 엮여 가지고.”
“뭔데?”
그리고 나를 보더니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뱉어냈다.
“만나던 여자가 있는데··· 죽어 버렸거든요.”
끝
ⓒ 배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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