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89
289. 유명세 (1)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보통 이유가 아예 없지는 않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하다못해 잠이 조금 부족해도 예민해지곤 한다.
휴도에 온 이후로 그런 일은 사라졌지만.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분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그런 것도 있다.
먹을 걸 못 먹었거나, 못 먹을 것을 먹었거나.
“음?”
지금도 그랬다.
“확실해?”
안드리엘이 준 가루는 눈 안쪽에서부터 상쾌한 폭죽이 터진 듯했다.
“맛있…다기보다는 기분이 엄청 좋은데?”
잠깐.
반짝이는 가루고, 먹으니 기분이 엄청 좋다?
뭔가 조금 위험한 것 같은데.
하얀색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인가?
“그렇다. 외상에 쓰는 것이다.”
안드리엘의 말에 지율이가 얼굴을 확 밝혔다. 찰나지만 진짜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도 알아 외상! 돈 나중에 내는 거!”
그러자 안드리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외상이 아니라, 다쳤을 때를 얘기하는 것이란다.”
“다쳤을 때?”
지율이는 이해가 안 되는지 눈썹을 살짝 찡그렸는데, 옆에서 고성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한자를 모르는 지율이에게 외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성우는 족집게처럼 콕콕 집어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끈질기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율이는 한자에 대해서는 그냥 중국의 문자 정도로 인식했고, 같은 단어라도 여러 뜻을 가진 동의어에 대한 개념을 복습하는 시간이 됐다.
“그렇구나.”
지율이는 큰 깨달음을 얻은 양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외상은 다 안 좋은 거네!”
맞는 말이었다.
빚을 지는 거나 다치는 거나 좋을 수가 없지.
나는 피식피식 웃고 있었는데, 고성우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맞네! 지율이는 역시 천재네!”
지율이는 검지를 좌우로 젓고, 고개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나는 조금 똑똑하기는 한데 천재는 아니야 삼촌.”
나와 고성우는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아무튼… 얘기가 잠깐 샜는데.”
나는 안드리엘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래서, 외상에 쓰는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건넨 가루는 다쳤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상처회복에 효과가 좋다. 꾸준히 사용한다면 오래된 흉터에도 효능이 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쪽 세상에서는 인간들과의 마찰이 있기도 했지.”
길게 듣지 않아도 상상이 되는 이야기였다.
오래된 흉터조차 지울 정도라면 누가 탐내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나는 그걸 먹어버렸네?
속에 작은 상처라도 있으면 나았으려나?
하지만 지율이가 준 검은색 알껍데기를 먹은 후로 지나칠 정도로 건강해져서 별 의미는 없겠네.
그냥 맛을 느낀 것에 만족하자.
“지금은 괜찮은 거야?”
나의 물음에 안드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적어도 예전처럼 덤벼드는 인간들은 없어졌으니까. 제한적인 교류만 하고 있지만 말이다.”
요정의 가루가 속에서 느껴졌다.
입안에서, 눈 안쪽에서부터 상쾌한 폭죽이 터지는 듯한 감각이 위장에서 느껴졌다.
“아무튼 먹어도 크게 탈은 없는 거지?”
나의 물음에 안드리엘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네 손에 들어간 선물이니 뭘 어떻게 하든 자유지만 말이다.”
“고마워. 살면서 처음 먹어본 거라서.”
나는 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칠 일이 없기도 하니까.”
안드리엘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가.”
나는 몸을 틀었다.
“그럼 들어가자. 손님이 왔는데 대접해야지.”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폐를 끼치다니. 그리고 손님이 왔는데 대접하는 건 당연한 거야. 선물까지 받았으면 더더욱.”
지율이가 안드리엘의 손을 확 낚아채듯 잡았다.
“언니! 얼른 가자!”
어느새 거리감이 많이 좁혀졌는지 지율이가 편하게 말을 건넸다.
안드리엘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자.”
그렇게 우리는 모두 네모집으로 향했다.
* * *
“꽃을 이런 식으로 꺾어서 장식한 것인가?”
안드리엘이 큼직한 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허니포켓들을 보고 물었다.
“저게 장식한 것으로 보이느냐?”
싹이의 되물음에 안드리엘은 왠지 모르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보면 굽실거리는 것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레오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엘프인데 이 꽃에 대해서 모르는 것인가?”
안드리엘은 조금 발끈하며 대답했다.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겠나?”
“처음…? 그쪽에는 이게 없는 건가?”
“그렇다.”
갑자기 지율이가 손을 뻗어서 허니포켓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내밀었다.
“먹어봐!”
안드리엘은 일단 허니포켓을 건네받으면서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먹으…라고?”
“응!”
안드리엘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먹을 수 있는 꽃들이 있기는 하지만…….”
안드리엘은 허니포켓과 지율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달콤한 향이 나기는 하는구나.”
나는 웃음을 누르면서 아이들에게 허니포켓을 나눠줬다.
“이건…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인가?”
안드리엘이 물었는데, 곰곰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고옴!”
아무래도 우리들 중 허니포켓을 가장 좋아하는 것은 허니베어인 곰곰이다.
“고오옴!”
곰곰이는 시범을 보이듯 허니포켓의 꽃봉오리를 한 입에 넣었다.
텁!
곰곰이의 녹아내리는 듯한 미소가 허니포켓의 달콤함을 드러냈다.
“고오오오오오옴…….”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곰곰이는 줄기에 입을 대고 빨대를 사용하듯 쭉 빨아들였다. 달콤한 꿀이 쭉 넘어갔고, 줄기의 빛깔이 반투명으로 변했다.
“고오오오오옴……!”
완전히 이해했는지 안드리엘이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다. 그렇게 먹으면 되는 거로구나.”
“고옴! 고오오옴!”
곰곰이는 또다시 허니포켓을 집어 들더니 자기를 따라 하라는 듯이 천천히 구분동작을 했다.
“고옴? 고옴? 고오옴. 고오옴? 고옴.”
나는 피식 웃으며 곰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 많이 먹으려고 시범 보이는 척하는 거지?”
“고오오옴! 곰곰!”
곰곰이는 역정을 내면서도 허니포켓을 먹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언니! 먹어봐!”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가 허니포켓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 준비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까, 그전에 간식이야. 보통 달콤한 건 디저트로 먹지만, 허니포켓은 입맛을 해치지 않으니까.”
나의 말에 안드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나도…….”
천천히 허니포켓을 집어 든 안드리엘이 꽃잎 끝으로 입을 가져갔다. 살짝 입으로 가져가더니 꽃잎 한 장을 뜯어서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안드리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무엇이냐?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이런 것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게 대체…?”
싹이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알아가는구나.”
“새로운… 세상이요?”
“그래.”
안드리엘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저 꽃을 한 송이 먹어본 것뿐인데요?”
“네 세상에 없던 것이니,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아…….”
안드리엘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전부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맛있지?”
안드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구나.”
그때 허니포켓 줄기를 질겅질겅 씹던 레오가 역정을 냈다.
“식사는 아직이냐?”
나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좀 기다려라. 그렇게 오래 살았다면서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레오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참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이가 없어서 참나. 조금만 더 기다려.”
그때 무룩이가 앞발로 테이블을 탁탁 쳤다.
“얼른 달라냥!”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 * *
“자, 다 됐다.”
식사 준비를 끝냈다.
안드리엘이 엘프인 점을 고려해서 채식으로만 채웠다.
너무 선입견에 박힌 생각이 아닌가 싶었는데, 안드리엘의 표정을 보니 옳은 선택이었다.
채식만 하는 것을 싫어하는 무룩이에게는 따로 생선 한 마리를 쪄서 줬다.
오늘의 메인메뉴는 버섯구이와 치즈를 얹은 샐러드 그리고 파스타 두 종류였다.
토마토 소스에 양송이버섯의 향긋함을 더한 새콤한 파스타와 오일에 마늘향을 듬뿍 낸 파스타.
의외로 안드리엘은 갈릭 오일 파스타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마늘인가? 향신료인데 이걸 이렇게나 많이…….”
안드리엘이 내게로 시선을 옮기고 물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그게 우리 스타일이야. 한국식.”
한국에서 마늘은 채소란다.
냄새를 맡은 안드리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향은 나쁘지 않구나.”
지율이가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돌 말고는 말했다.
“먹어봐! 맛있어!”
안드리엘은 지율이를 따라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만 다음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또 눈이 동그래졌다.
“마늘맛이 강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너무 맛있구나!”
안드리엘의 대접은 성공했다.
무룩이도 생선 한 마리를 전부 차지해서 그런지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성공적으로 식사를 대접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이거시 줜부윈 궈쉬냐(이것이 전부인 것이냐)?”
파스타를 입안에 가득 넣은 레오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곡이가 웝지 아는가(고기가 없지 않은가)?”
인상을 찌푸린 레오는 우걱우걱 먹으면서 말을 이었다.
“위거쉬 마뤼 댄다고 쉥곽하는가(이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율이는 버섯구이 하나를 포크로 푹 찍어서 레오 앞에 내밀었다.
“이거 조금 고기 같아! 먹어봐!”
레오는 미심쩍은 얼굴로 쳐다보다가 물었다.
“진짜인가?”
“안 먹어봤어?”
“아직이다.”
“진짜야! 맛있어!”
그제야 레오는 버섯구이 냄새를 조금 맡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지율이 포크에 있던 것을 낼름 먹었다.
“음! 괜찮군!”
언제는 싫다더니 뻔뻔하기는.
그럭저럭 다들 만족하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쳐갈 즈음 지율이가 곁으로 다가왔다.
“빠아! 줄 거 있어!”
“줄 거? 아빠한테?”
“응!”
지율이는 등 뒤로 무언가를 숨긴 채 배시시 웃고 있었다.
“뭔데?”
내가 웃으며 묻자 지율이가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눈 감아봐!”
“알았어.”
내가 눈을 감자 지율이가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 내밀어야지.”
“아, 맞다.”
나는 눈을 감은 채 피식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자!”
지율이가 무언가를 손에 얹었다.
사각지고 가벼웠다.
“눈 떠도 돼!”
지율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새하얀 나뭇잎을 접어서 만든 봉투에 담긴 카드였다.
“봉투는 싹이가 도와줬어!”
지율이가 웃으며 말했고, 싹이도 내 쪽을 보며 씩 웃었다.
“이게 뭐야?”
알면서도 물었고, 지율이는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대답했다.
“카드! 생일카드야!”
제법 자주 있는 일이지만, 아직도 놀란다.
아직도 최초, 처음이 있다니.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생일카드였다.
지율이에게 처음 받는 생일카드이기도 했고.
“와…….”
나는 생일카드를 들여다보다가 지율이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읽어봐도 돼?”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럼!”
천천히 봉투를 열려고 한 순간이었다.
싹이, 레오, 곰곰이, 삐삐, 핫도그 모두 동일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조차도 금세 무언가를 느끼고는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투명장막 쪽으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싹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혹시 이번에도 안드리엘처럼…?’
나의 텔레파시를 읽은 싹이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휴도에 접근 중인 것은 제법 강한 마력을 가진 존재들 다수였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9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