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15
청풍표국 최강식객 215화
215화. 명가의 자존심(3)
무림의 거대한 풍운이 밀어닥치는 동안 임요성과 주천웅 일행은 은밀히 소주로 향하고 있었다.
때로는 말을 타고, 때로는 걷고, 그리고 때로는 배를 이용했다.
혹시라도 붙었을 추적을 따돌리고, 조상연에게 붙은 관리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다.
황후와 아이들은 피곤했을 만도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서인지 군소리 없이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 모를 객잔에서 식사하고 있을 때였다.
“주군.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소주로 향하는 동안에도 천하전장에서는 꾸준히 정보를 갱신해두었다.
그때마다 풍귀가 천하전장 지부나 지점을 방문하여 쌓인 정보를 가져왔다.
풍귀에게 받은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임요성의 미간이 꿈틀했다.
어지간해선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 임요성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난 거냐?”
같이 밥을 먹던 주천웅의 물음에 임요성이 장탄식했다.
“후우…. 하북팽가가 황제의 손에 무너졌다고 합니다. 가주와 수많은 가솔들이 죽었다는군요.”
쾅!
“이런 미친! 조 학사 그 작자가 진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구나! 아무리 무림 세가라고 하나 이 나라 백성들이거늘.”
옆에 있던 주천웅이 식탁을 내려치며 임요성보다도 더 씩씩거렸다.
“주군. 그럼 팽 소협도…?”
여산홍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원호를 비롯한 형제들은 모두 무사한 모양이야. 가주와 장로들 선에서 타협한 것 같군. 팽가의 맥이라도 유지하려는 고육지책이었겠지.”
두 사람의 대화에 주천웅이 물었다.
“팽가에 지인이 있었던 거냐?”
“예, 강호에 나와 제일 처음 사귄 친우입니다.”
“허허….”
주천웅이 안쓰러운 눈길로 임요성을 바라봤다.
불량인이었을 때의 경험으로 사람에게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런 동생이 사귄 친우에게 변고가 생기다니.
괜히 일을 이렇게 만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하아. 내가 너무 안일했어.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는데…. 괜히 후환을 남겨두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는구나.”
“아닙니다. 형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형님이나 저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황자의 난을 거치며 내 사람이다 할 만한 이들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렇다 보니 황위에 올랐을 때 자신을 위해 일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피던 여산홍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알 수 없군. 본보기로 팽가를 친 것 같은데…. 일단 소림과 무당의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그렇게 말한 임요성이 급히 서신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풍귀.”
“예, 주군.”
“넌 바로 전장에 가서 내가 적어준 내용으로 두 부를 더 필사해서 맹주님과 천무삼신의 남은 두 분께 이 서신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해라.”
“명을 받듭니다.”
풍귀가 나가고, 임요성의 눈이 북쪽으로 향했다.
힘든 일을 겪은 친구가 걱정되었다.
물론 모두의 목숨은 다 소중하다.
하지만 왜 하필 친구의 아버지란 말인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왔다.
* * *
팽가 혈사 이후 조상연은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로서도 꽤 식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혈사에서 입은 내상을 다스리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유학자인 그로서는 부하들을 키워 무림인들을 공격한 경우는 있었지만, 본인이 직접 붙은 경우는 이번 대법 이후였다.
그렇다 보니 무림인들이 그렇게 지독한지 처음 알았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무림 세력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신감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성정은 점점 포악해져서 갔고, 몸이 회복된 뒤에는 매일같이 죽어 나오는 궁녀, 환관, 대신들이 수십여 명에 달했다.
웃는다고 죽이고, 운다고 죽이고, 시끄럽다고 죽이고, 조용하다고 죽였다.
말 그대로 광인(狂人)이었다.
하지만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들은 사직을 청하지도 못했다.
어떤 노(老) 학사가 사직상소를 올렸다가 집안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했기 때문이다.
금의위 무장이 된 혈궁의 무사들은 북경성 전체에 퍼져서 대신들을 감시했다.
그들 자체가 일반 병사들하고는 비할 바가 못 되는 고수들이다.
개개인이 어지간한 금군 십수 명을 상대할 수 있다 보니 그들에게 반항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즉결 처분을 하기도 했으니, 북경성 안에 거주하는 문무백관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혈성이야… 혈성이 나타났어….”
북경성 안의 백성들은 길을 가면서도 눈치를 살펴야 했다.
조상연이 채용한 금의위는 북경성 전체를 감시했다.
특히 관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해서 구연초에게 보고를 올렸고,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금의위를 보내 즉참해버렸다.
조상연의 금의위는 택화림 시절부터 준비해온 무사들이라 무공이 출중하여 일반 관리들은 그들의 눈과 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소문.
하북 무림을 장악하고 있던 명문 세가였던 팽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장본인이 바로 황제였다는 사실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에 백성들은 나라에 혈성(血星)이 나타났다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까.
하북성에 사는 이들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조차도 팽극환의 무위를 알고 있다.
중원 무림 전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천외천의 실력자.
그런데 그를 단신으로 처단했다는 소식은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무림의 명숙들까지 당황하게 했다.
쾅!
중년의 승려가 거칠게 방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장 사형! 팽가 놈, 팽가 놈이 간밤에 죽었소!”
“뭣이라?”
아침 차를 홀짝이고 있던 법장 대사의 백미가 꿈틀거렸다.
“팽가 놈이라면 어떤 팽가 놈 말이냐? 설마 하북의 그 팽가는 아니겠지? 팽가의 분가주라도 말하는 거냐?”
법장의 사제인 법현이 가슴을 두드렸다.
“허허, 참나! 내가 이렇게 놀라 자빠질 정도로 경내를 뛰어왔으면 당연히 도신 그놈 말하는 것 아니겠소!”
탁!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은 법장이 무섭게 노려봤다.
“누구에게 죽었단 말이더냐?”
“놀라지 마시오. 바로 황제요.”
“황제? 이번에 황위를 찬탈한 그 황제? 그 어린 애송이라는 오 황자?”
“맞소. 그 황제가 홀로 팽 가주 그놈을 죽이고, 금의위와 함께 팽가를 도륙했다고 하오. 지금 그 일대는 쌓인 시체를 치운다고 야단법석이라고 하오.”
법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그럼 현 황제가 현경의 고수라도 된다는 말인가?”
“고수도 보통 고수가 아니오. 소문에 의하면 현경에 이른 현시점 천하제일인이라고 한답디다. 물론 현경을 알아볼 사람은 없으니 지네들 쪽에서 낸 소문이겠지만, 팽가 놈을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흘려들을 수 없는 소문이오.”
“허허….”
수염을 쓰다듬는 법장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이가 들면 눈물만 많아진다더니….”
실제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동시대를 산 동료의 죽음은 법력이 높은 법장의 마음에도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 저잣거리에는 혈성이 등장했다고 다들 난리요.”
“혈성?”
“예. 궁중에도 하룻밤 사이에 죽어 나오는 이들이 수십이 된답디다. 궁녀든 환관이든, 관료들이든 가리지 않는다는구먼.”
“허허….”
“무공이 고강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니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거요. 그냥 수틀리면 죽여버린다는구먼.”
“과연. 파천황이 전 황제를 구하면서 소리 없이 사라진 연유가 있었어. 아마 파천황이라면 손속을 나눠보았을 터.”
“이제 어쩌시려오? 본보기로 팽가를 저렇게 멸문시켜버렸으니…. 다음은 거리상으로 우리 소림이나 황보세가일 것 같은데….”
법현이 사형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이라면 당장 황제를 배알하러 갔을 것이다.
지금은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다.
일단 소나기는 피한 다음 의논을 해도 해야 할 것이다.
그때였다.
나이 어린 사미가 인기척을 냈다.
“방장 어른.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전서?”
법현이 얼른 일어나 전서를 받아왔다.
법현에게서 전서를 받은 법장의 얼굴이 밀랍처럼 굳어졌다.
“일단 공청 진인과 의논을 해봐야겠네.”
소림과 무당은 두 사람의 경공이면 금세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였다.
법장이 읽은 전서는 임요성이 보낸 것이었고, 비슷한 시각 무당의 공청에게도 전해졌다.
* * *
“그 녀석, 늘 명가의 자존심 어쩌고 하더니 결국 자신의 말을 지켰구나.”
무당의 공청 진인 역시 비슷한 시각 팽극환의 죽음과 팽가의 봉문 소식을 들었다.
젊은 시절 많이도 다퉜던 사이다.
좌충우돌 강함을 위해서라면 배분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대결을 청하던 젊은 도객.
그렇게 객기 부리다가 이름 모를 야산에서 객사할 수도 있다고 잔소리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고, 젊은 나이에 절대 고수가 되었다.
그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법장과 자신보다 한 배분이 아래이면서도 결국 자신들과 비슷한 경지까지 올라온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
물론 지금은 파천황이라는 불세출의 천재가 등장해 고금의 모든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고 있긴 했다.
하지만 팽극환 역시 자신의 시대에는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이제 황제의 앞길을 막을 자가 없겠구나.”
걱정이었다.
당장 무당을 지키려면 황제를 배알하러 가야 할 듯했다.
팽가처럼 못 할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게 제자들을 희생시킬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들은 도를 닦는 도사들.
“장교 사숙. 어디선가 사숙 앞으로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사질이 가져온 전서는 임요성이 보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법장을 한 번 봐야겠군.”
그도 법장과 같은 생각을 했다.
* * *
깊은 밤, 임요성 일행이 탄 배가 소주하(蘇州河)에 들어섰고, 이내 선착장에 닿을 수 있었다.
황후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겠지만, 여인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여정이 빠를 수는 없었다.
임요성은 전서를 미리 보내 한산사에 부탁해둔 상태였다.
곧바로 청풍표국으로 가면 들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저기 절로 가시죠. 저기 계신 스님과 안면이 좀 있습니다.”
“오, 혹시 한산사를 말함인가? 언제 또 그런 인연을 맺어두었나?”
발걸음을 옮기며 주천웅이 물었다.
임요성이 한산사 방장과 인연이 된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구나. 네 얘기를 들어보면 법력이 꽤 높으신 분 같은데?”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공은 익히지 않은 것 같지만, 그에 뒤지지 않을 안목과 혜안은 가지고 계신 분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한산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미 일주문 앞에는 젊은 승려 한 명이 나와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