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81
아무리 헤아려 봐도 천 번 정도밖에 자랑하지 않았는데 그런 반응은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다.
그녀가 구체적인 칭찬의 방향을 물어 보려는 찰나에, 진슬아의 필드가 물파리의 휩쓸기에 싹 쓸려버렸다.
“···또 필드가 밀리네.”
“그 덱. 핸드가 정말 좋은 게 아니라면 초반에는 아무 플레이 하지 않고 턴 종료를 하는 게 좋아.”
“그래?”
진슬아는 전의 상황을 다시 되짚어봤다. 확실히 자신은 「수다쟁이 꽃」의 사기성에 휩쓸려 초반에 무리하게 필드를 전개하려 하고 있었다.
다음의 듀얼에서 템포를 뒤로 당기자, 확실히 플레이가 훨씬 유연해졌다.
“···라고, 전익현이면 조언했을 거야. 물론 아카데미에 있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조언이긴 하지만.”
진슬아는 여한설의 조언을 들으며 조금씩 덱에 익숙해져 나갔다. 하나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조언들이었다.
역시. 아카데미의 학생들의 실력은 만만하지 않다.
***
[나가.]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은 소리다. 어조가 얼마나 살기등등했는지 하마터면 내가 이 집 주인이라는 것을 까먹고 제로부터 시작하는 노숙자 생활을 시작할 뻔했다.
“야. 이 집 주인은 나거든?”
[나가아아아!]스핑크스가 내 발에 앞발을 500RPM으로 휘두르며 외쳤다.
스핑크스가 화난 이유는 단순하다. 시레나를 데려온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레나는 스핑크스와는 달리 이런 상황을 예측한 듯 얌전하게 미니 어항 안에 있···
[스핑크스! 역시 멍청이! 폭력적이야!]···는게 아니라 무슨 욕을 할 지 생각하고 있는 거였구나. ‘폭력적’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내다니. 시레나치고는 꽤나 노력했다.
이쯤에서 중재가 필요하다.
“시레나는 오늘부터 이 집에서 생활하게 될 거야. 아마 2학기 전에는 방을 옮길 테니까 그때 쯤에는 둘이 따로 방을 쓸 수 있을···.”
[아악! 이 생선대가리가 날 물었어!] [시레나! 생선대가리 아니야!]3초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부모님의 원수라도 만난 것 마냥 서로 물어뜯으며 싸워대고 있다.
대체 어항은 언제 뛰쳐나간 거야?
둘이 싸움박질을 하는 동안 해태가 오랜만에 온 나를 반기며 주변을 헥헥거리며 뛰어다닌다. 그래. 날 반겨 주는 존재는 너밖에 없구나.
나는 해태를 안아올렸다.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기분좋게 손을 감싼다. 여름에 안성맞춤이다. 거기에 귀엽기까지 하다니.
이게 애완동물이지.
아무튼, 두 카드 디스펜서간의 싸움이 장기전이 될 조짐이 보였으므로 히든 카드를 빠르게 오픈해야 했다.
카드 게임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예측력이다. 공전절후의 듀얼리스트인 내가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터.
이미 배송을 시켜놓은 아이템들이 있지.
[놔! 꼬리는 물지 마아아아!] [스핑크스나 꼬리 물지 마!]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 대환장의 띠를 만들어내는 둘을 놔 둔 채, 나는 문 앞에 있는 배송품을 집 안으로 옮겼다.
“자! 집중! 둘이 그만 싸워!”
[저 생선이 먼저 놔야 나도 놓지!] [스핑크스가 먼저 놔!]“자.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놓는 거야. 하나, 둘, 셋!”
둘 다 안 놓는다. 하긴. 될 거라고 생각조차 안 했다.
“둘이 친하게 지내면 선물 줄게.”
[우리가?] [친하게?] [지낸다고?] [절대 안 해!]왜. 벌써부터 죽이 척척 맞는구만. 완전 베프 일보직전이구만.
[대지의 수호자 「스핑크스」가 격노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족시킬 공물을 바쳐야 합니다!] [물의 수호자 「시레나」가 격노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족시킬 공물을 바쳐야 합니다!]나는 가져온 박스에서 큰 포인트를 주고 산 캣타워를 꺼냈다.
“자. 이 물건은 말이야. 라이온 타워라고 하는 건데···.”
[「스핑크스」가 당신의 공물에 만족합니다.]뭐지. 캣타워는 아직 조립 시작도 안 했는데 스핑크스가 공물에 만족했다는 창이 떠오른다.
[크으윽. 제기라알. 이런 비겁한 술수에 또다시 당하다니.]스핑크스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스 안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박스 그 자체를 공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트 가서 아무 박스나 주워 오는 건데.
아무튼, 스핑크스 쪽은 해결됐고. 남은 건 시레나 쪽이다. 나는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시레나를 어항 안에 집어넣었다.
[시레나! 화났어! 전익현! 공기만큼 싫어!]홱 하고 고개를 돌리는 시레나의 어항에 나는 기다란 호스를 꽂아넣었다. 기계에 전원을 넣자 보글보글 기포가 호스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거품! 바다에도 많아! 시레나! 이깟 걸로 기분 안 좋아져!]“과연 그럴까?”
[···쪼끔. 기분 좋아.]그렇겠지. 기포 발생기는 물의 산소 용존도를 극도로 높혀 주는 과학력의 산물. 산소 용존도가 높아지면 물고기들의 컨디션은 빠르게 좋아진다.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공기 맛 좀 봐라!
처음에는 싫은 척 이리저리 불평하는 척 헤엄쳐대던 시레나가 마침내 만족한 듯 기포 호스 근처에 안착했다.
[「시레나」가 당신의 공물에 만족합니다.]그제서야 기나긴 싸움이 끝났다. 어떻게 가면 갈수록 신경써야 할 게 많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바닥에 널부러진 물과 비늘, 고양이 털을 청소했다. 집 여기저기에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 발자국을 청소하고, 헤어볼을 버리고, 완전히 비워진 급수통과 급양통도 채우고 나자. 그제서야 게임할 시간이 만들어졌다.
이게 소울 커맨더스 세계관인지 주 타이쿤(Zoo tycoon) 세계관인지 모르겠다.
지친다. 하루종일 소울 커맨더스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내 유일한 도피처인 모바일 소울 커맨더스 세계에 접속했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듀얼이나 계속 해야지.
끝
여한설은 진슬아의 플레이를 노려봤다. 게임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다. 진슬아의 덱은 마나 커브가 적은 코스트에 쏠려 있었다.
카드당 평균적인 마나 소모량이 작은 덱은 중반 이후로 게임이 넘어가면 경우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냉정한 계산보다는 직관적인 판단이 필요해 지는데, 진슬아는 이 직관이 날카롭다.
첫 플레이가 멍청했던 것은 방향성을 잘 못잡아서일 뿐.
‘잘 추천해 줬네.’
전익현이 아무 생각 없이 덱을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긴 했지만, 처음의 처참하던 실력이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보니 그녀의 듀얼혼에 잘 맞는 덱인 모양이다.
“처음보다는 덜 처참하네.”
“···칭찬 맞지?”
여한설은 대답하는 대신 물파리의 수를 헤아렸다. 물파리의 수가 꽤 많이 줄었다. 이 정도 수라면 자리를 떠도 크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터.
여한설이 그렇게 판단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에,
“잠깐.”
진슬아가 여한설의 어깨를 붙잡으며 속삭였다.
“···무슨 일이지?”
“누군가가 있어.”
“그래서.”
여한설은 자신을 붙잡은 진슬아의 손을 떼어내보려 했지만, 악력이 장난이 아니다. 유압기에 잡히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가 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여긴 공식적인 사냥장소중 한 곳이기도 하고.”
“아니. 그게 아니라, 살기가 느껴졌어.”
“살기?”
“그래. 저 바위 인근쯤에서.”
진슬아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돌은 대략 2km정도는 떨어져 있는 바위였다.
애초에, 살기란 걸 진짜로 느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만에 하나 그런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2km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발산하는 살기를 느낄 수 있을 리도 없고.
2km면 맨눈으로 보기에 까드막한 거리다. 무술의 달인이라도 살기를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거리인 것이다.
우득. 우드득.
[견갑골 부근의 외골격의 손상이 심합니다 : 손상률 75%]···일단 악력 하나는 고질라나 뭐 그런 것에 필적하는 듯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놓고 이야기해.”
“아. 미안. 안 아파?”
“다행히. 수리비는 좀 들겠지만.”
“다행이다. 김태양 오빠가 제대로 만들긴 했나보네. 지난 번엔 잘못 잡았다가 김태양 오빠가 응급실에 실려갔었거든.”
“···힘 조절이란 걸 할 줄 모르나?”
“우리 가족들한테 하는 정도로 하는데?”
지상최강의 생물체들이 모여 있는 가족인가. 여한설은 금이 간 외골격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그보다. 모습을 숨길 생각은 없는 모양이네.”
바위에서 정말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데미 정교수의 복장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사람.
“아는 교수들이야?”
“아니.”
여한설은 헬멧에 장착된 통신장비를 켜며 전투자세를 잡았다.
“시리. 저 두 명에 대해서 알아봐.”
[아가씨. 저에게는 이지후라는 이름이 있습니다.]“시리. 저 두 명에 대해서 알아봐.”
[···알겠습니다.]볼이 멘 소리로 이지후가 대답했다.
“···어떻게 하지?”
“정말로 살기가 느껴진 거야?”
“지금도 저렇게 뭉글거리는···불쾌한 살의가 느껴지는데. 솔직히 인간인지도 잘 모르겠어. 인간은 저런 형태의 살기를 내뿜을 수가 없거든. 너도 보이지?”
“살기 따위가 눈에 보일 리가 없잖아.”
아무튼간 한 번 적중했으니 두 번도 적중하지 마라는 법은 없다. 여한설은 빠르게 덱을 점검했다.
[신변검색을 완료했는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뭐가?”
[···아카데미에 존재하지 않는 교수입니다.]“그럼 사칭인가 보지.”
[사칭도 아닙니다. 저 두 명이 입고 있는 교수복에 있는 넘버링은 진품으로 확인됩니다. 그런데···]“그런데?”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가 않습니다.]여한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령같은 존재란 말이야?”
[네. 단순히 아카데미에서의 활동만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인 활동 자체가 없습니다. 단순히 찾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것 같은 존재가 바로 저 ‘교수들’이라는 말이다. 무엇이 됐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상 이야기가 통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선 대화로 해결을···.”
쉬익.
여한설이 말을 이어나가려는 도중에, 진슬아가 앞으로 빛살처럼 뛰쳐나갔다. 사냥감을 노리는 표범과도 같은 표횰한 움직임!
교수들이 몸을 허우적거렸지만, 진슬아의 파고듦이 한 박자 빨랐다.
각각의 손으로 쓴 붕권崩拳이 양쪽의 교수들의 명치에 작렬했다.
퍼어어엉! 교수의 몸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내서는 안 될 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교수들의 몸은 무너지지 않았다. 인형이 차에 우그러진 다음에도 움직이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움직일 뿐.
탑에서 온 ‘존재’다. 여한설의 등에 소름이 내달렸다.
“역시. 인간이 아니네. 듀얼로밖에 해결할 수 없겠어.”
“···그보다 진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런 거지?”
“안 죽을 정도로만 위력을 조절했으니 괜찮아.”
저걸 맞고도 안 죽는 인간이면 그것도 이미 인간이 아니다.
“아무튼. 저 둘이 탑에서 왔다는 건 확실하군.”
“몬스터인가?”
“카드를 들고 있는 것을 봐서는 그렇진 않아 보이네.”
“도플갱어 아니야?”
도플갱어? 아니다. 애초에 도플갱어는 존재하는 사람을 모방하는 것. 실존하지도 않았던 인간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이 됐건, 이질적이라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