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11)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혁련가주를 바라봤다. 그렇게 철저히 감췄는데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심가주와 악가주가 고개를 젓자, 혁련가주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천마였습니다.”
천마라는 말에 심가주와 악가주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혁련가주를 바라봤다.
“천마라고요?”
“천마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설마 혁련가의 대법으로 천마를 되살려냈다 그겁니까?”
혁련가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가주와 악가주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면······ 천무련에 천마를 보냈는데 실패한 거란 말입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천마의 상태가 온전치 못할 거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로군요.”
두 가주는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이 놀란 이유는 비단 천마를 동원했는데도 천무련이 그걸 막아냈다는 점만이 아니었다.
천마를 되살려낸 혁련가의 저력 때문이었다.
혁련가가 가끔 말도 안 되는 인물을 되살려 낸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천마가 들어갈 줄은 몰랐다.
천마는 그들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혁련가주는 침착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천마의 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건 맞습니다만, 천마는 천마입니다. 빠르게 원래 상태를 회복하면서 압도적인 힘으로 천무련을 찍어 눌렀습니다.”
심가주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 대단한 천마를 천무련에서 대체 어떻게 막았단 말입니까.”
솔직히 천마가 무명에 쳐들어온다면, 과연 그 천마를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천마는 그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다.
“천마를 막은 건 의선입니다.”
심가주와 악가주가 입을 쩍 벌렸다.
“말도 안 돼!”
의선이 대단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천마와 의선을 과연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의선이 그렇게나 대단한 존재였단 말입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한데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혁련가주의 말에 두 가주는 입을 꾹 다문 채 고민에 빠졌다.
이제 혁련가주가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손을 떼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이건 그냥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셈이다.
그러기는 싫었다.
혁련가주는 그런 두 사람을 섬뜩한 눈으로 바라봤다.
“두 분이 지금 생각하시는 것은 우리 무명의 방식이 아닙니다.”
심가주가 혁련가주와 똑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간을 한 번 볼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혁련가주가 말없이 노려보자, 심가주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심가와 악가가 힘을 모아서 의선의 힘을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만일 정말로 의선이 그렇게나 대단하다면 저희 역시 깔끔하게 손을 떼도록 하겠습니다.”
심가주의 말을 악가주가 받았다.
“그리고 천마신교에도 뭔가 해놓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걸 그냥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뭐든 할 만큼은 해봐야 나중에 미련이 안 남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혁련가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천마신교는······ 아직 써먹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어차피 씨앗은 심었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천마신교에 균열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예. 참고하겠습니다.”
그날의 회합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 * *
흑련주가 무한에 도착한 다음 날,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벽태산을 찾아갔다.
접객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흑련주는 벽태산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림맹주가 왜 벽태산에 대해 그런 말을 했는지 보자마자 이해했다.
‘이건 도대체 뭐지? 정체가 뭐야?’
감각에 잡히는 벽태산은 지극히 평범했다. 하지만 흑련주의 안목이 그 평범함 속에 깃든 무서움을 잡아냈다.
흑련주가 한 마디도 못하고 앉아 있자, 무림맹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렇게 보자고 한 것은, 십대고수 선정 때문일세.”
벽태산이 계속 얘기해 보라는 듯 무림맹주를 쳐다봤다.
“벽 공자가 묵검산장의 십대고수 둘을 죽였다는 얘기를 들었네. 그래서 벽 공자를 십대고수의 한 자리에 올리고자 하는데······.”
이제부터 좀 더 복잡한 얘기가 들어가야 한다. 한 단체에 여러 명의 십대고수를 배정하기가 쉽지 않다거나 하는 등의 얘기 말이다.
한데 벽태산은 그 순간 무림맹주의 말을 뚝 끊었다.
“애들 장난에는 관심 없다.”
무림맹주가 입을 다물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애들 장난이라니. 십대고수가 어떻게 애들 장난이란 말인가.
그제야 흑련주가 나섰다.
“하면, 싫다는 뜻인가?”
흑련주는 벽태산이 하대를 하는데도 그저 자연스럽게 그걸 받아들였다.
나중에 그걸 알아차렸지만, 그저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흑련주는 벽태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가 알아서 정하겠네. 나중에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게나.”
벽태산이 흑련주를 가만히 쳐다봤다.
흑련주는 벽태산의 시선을 받자마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쫙 돋아났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줄줄 흘렀다.
벽태산이 뭔가를 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한데 그것만으로도 흑련주를 그 상태에 빠트렸다.
이는 흑련주의 감각이 남다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벽태산이 흑련주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난 서운함을 말로 풀지 않는다.”
흑련주와 무림맹주가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동시에 협박당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귓가에 더 어이없는 말이 들려왔다.
“평생 서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좋은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군.”
끝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 것 같소.”
흑련주의 말에 무림맹주가 그를 바라봤다.
지금 두 사람은 벽태산과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거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무림맹주가 자신을 바라보자, 흑련주가 말을 이었다.
“벽 공자에게 너무 끌려 다녔소.”
“끌려 다녔다기보다는······ 그냥 기세에 눌려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했을 뿐 아니오?”
흑련주는 무림맹주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때로는 진실이 주먹보다 아픈 법이다.
“어쨌든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소.”
무림맹주의 말에 흑련주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목적을 어떻게 달성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소?”
“십대고수 선정을 위해 벽 공자와 대화를 나눠보기로 하지 않았소. 그러니 목적을 다 달성했다고 봐야지. 현천장 인물들을 중심으로 적당히 꾸려주면 될 것 같은데, 련주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흑련주는 또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전부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냥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주기 싫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싫다고 말하려는 순간 벽태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협박을 들을 줄은 몰랐소.”
흑련주의 말에 무림맹주가 빙긋 웃었다.
“신선하지 않소?”
흑련주가 인상을 와락 썼다.
무림맹주는 그걸 보면서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소? 무림맹주와 흑련주를 협박하는 사람이라니. 재미있지 않소?”
“이게 재미있소?”
흑련주는 무림맹주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렇게 순응해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명색이 무림맹주 아닌가.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이 일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적어도 흑련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림맹주가 그런 흑련주를 보며 물었다.
“무엇이 그리도 분하시오?”
흑련주가 무림맹주를 노려봤다. 맞다. 분했다. 그 감정을 꼬챙이로 찌르듯이 말해버리니 할 말이 없었다. 또한 화가 났다.
“고작 스무 살 언저리밖에 안 되는 어린 청년에게 위압감을 느낀 것이 분하시오?”
흑련주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무림맹주가 약간 달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련주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놀라셨소? 놀랄 거 없소. 지난 며칠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이 바로 그랬으니까. 난 이제 그걸 손에서 놓은 것뿐이오.”
흑련주는 더더욱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무림맹주는 자신보다 훨씬 승부욕이 강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참고로 내가 이렇게 어느 정도 달관하게 된 건, 고작 어젯밤부터요.”
생각해보니 어제 무림맹주가 흑련주의 거처로 찾아왔을 때는 저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때는 눈빛이 훨씬 살아있었다.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 된 건 아니리라.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것이 어제 터진 것이리라.
흑련주는 무림맹주를 보며, 저것이 자신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흠칫 몸을 떨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살펴본 적 있소?”
무림맹주의 뜬금없는 질문에 흑련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여기 올 때, 사정이 있어서 수행원을 아무도 데려오지 못했소.”
그렇게 말하며 무림맹주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치가 떨렸다.
벽태산과 의선을 쫓아가는 것이 버거워 몇 번이나 토할 뻔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오갔다.
오기가 있어서 앓는 소리 한 번 안 하도 이를 악물고 달리긴 했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결코 못할 것 같았다.
“갑자기 왜 그러시오?”
흑련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림맹주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진 것 같아서였다.
무림맹주가 그런 흑련주를 가만히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흑련주도 같은 경험을 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아마 그랬다면 자신의 지금 심정을 천분지 일이나마 알 수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 본의 아니게 현천장의 도움을 좀 받고 있소.”
무림맹주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일꾼이 세 명 정도 붙어서 도와주는데······ 일꾼 같지가 않았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일꾼들 수준이 웬만한 큰 문파의 무사대를 이끌어도 넉넉하게 남을 정도였단 말이오.”
“속였겠지요.”
무사를 일꾼으로 위장해서 무림맹주에게 보낸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흑련주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무림맹주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아니었소. 그 일꾼들이 좀 특별히 강하긴 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디 가면 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했소.”
흑련주는 어느새 걸음까지 멈춘 채 무림맹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그 얘기 했소? 십대고수를 꺾은 사람 중에 벽 공자의 시비가 한 명 끼어있다는 것?”
흑련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하지만 이어진 무림맹주의 말에는 더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비가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아시오? 고작 이 년도 되지 않았다고 하오.”
“그 말을 어찌 믿소?”
“믿어도 되오. 내가 따로 알아봤으니까.”
흑련주는 자신도 그 부분은 반드시 알아보겠다고 다짐했다.
무림맹주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모든 일의 뒤에는 벽 공자가 있었소. 그러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시오. 상식 안에서 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흑련주는 무림맹주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점점 더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어났다.
대체 벽태산의 정체가 뭘까? 그저 천재라는 말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건 벽 공자에 대한 게 아니오.”
흑련주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무림맹주를 바라봤다.
무림맹주는 심각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명이오.”
“무명? 확실히 대단한 자들인 건 맞소. 하지만 아직까지 잘 막아내고 있지 않소? 이대로 잘 버티다보면 결국 큰 피해 없이 끝낼 수 있을 거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소.”
흑련주가 눈을 번득였다.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번 천무련에서 있었던 무명의 습격을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 무명에서 천무련에 보낸 자는······ 천마였소.”
흑련주가 황당한 표정으로 무림맹주를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이나 농담을 하실 것 같지는 않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오.”
무림맹주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풀어서 얘기했다.
설명을 모두 들은 흑련주의 표정은 정말로 심각해졌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소.”
“뭐가 말입니까?”
“무명이라는 놈들, 그런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이는지 모르겠소.”
“그 부분에 대해서 벽 공자를 모시는 몇몇 사람들과 논의를 한 적이 있소.”
“벽 공자를 모시는 사람들?”
“아주 능력이 출중한 자들이오. 마음 같아서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하고 싶을 지경이오.”
무림맹주는 ‘벽 공자가 무서워서 말도 못 꺼냈지만.’이라는 말을 삼키고 흑련주를 바라봤다.
흑련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뭐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것이 계속 튀어나오니 한숨만 나왔다.
현천장에서 일하는 일꾼들도 고수인데, 거기에 머리가 지극히 좋은 수하들까지 있다는 말 아닌가.
거기에 정보력은 또 어떠한가.
하오문이 현천장 소속이라는 건 이제 정보 쪽에 조금만 발을 담근 자들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데 흑련주가 보기에 현천장이 가진 정보조직은 하오문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조직이 분명히 있었다.
이쯤 되면 천하제일장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상념을 털어낸 흑련주가 물었다.
“아무튼 그들이 뭐라고 했소?”
“무명은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감추고 있소.”
흑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려진 것이 제법 많지 않소?”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했으니 그런 느낌을 받는 것뿐이오. 실제로 정리를 해보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소. 우리가 아는 건 이미 죽은 정보들뿐이오.”
흑련주는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어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무림맹주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무명의 본거지를 찾아야 하오.”
“이렇게 철저히 자신을 감추는 자들인데, 과연 쉽게 찾을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