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quering Murim with future technology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흑막 (3)
“빌어먹을…….”
욕을 내뱉으며 적의 협박에 힘을 거두는 것은 중원에서 신혁을 본 사람이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마법의 주문이로구만. 크리스탈이라는 단어는 말이야.”
“루빈지오.”
“응? 이제 좀 대화를 할 생각이 드나, 사신혁 사령관?”
“테레사함의 보호를 받은 나와 달리 크리스탈은 말이야…….”
신혁은 이를 악물었다.
“영혼은 조각나고 육신은 입자 단위로 흩뿌려졌어.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 내가 다시 그녀의 아스트랄 에너지를 모아 부활시켜주기를, 인류를 재건하기 위한 테라포밍을 성공시키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잘 알고 있네. 아주 숭고한 희생이었지. 특히나 자네를 꼭 테레사함의 사령관으로 임명해달라던 말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네.”
“루빈지오…….”
주먹을 쥔 신혁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손톱에 핏방울이 스며들었다.
“하나만 묻도록 하지.”
“호오~ 이제 좀 내가 아는 사신혁 답군.”
“당신의 목적은 변함이 없겠지?”
“물론일세. 인류 재건이야말로 내 삶의 이유니까. 다만, 재건 후의 세계는 좀 다르겠지만.”
“그렇다면 내가 필요하겠군.”
“이거, 허를 찔렸군. 맞아, 나는 자네가 필요하다네. 안타깝게도 말이지.”
루빈지오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이래서 재밌어 사신혁. 무명 그 녀석은 너처럼 도전적이진 못했거든.”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지금부터 질문은 내가 한다, 당신은 내 말에 대답만 하면 돼.”
“싫다면?”
“하나하나 부수겠다. 사신문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테레사함까지 말이야.”
“테레사함을?”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었는지 루빈지오의 이마에 힘줄이 굵어졌다.
“인류 재건을 위해 꼭 필요한 건 테레사함과 내가 보유한 아스트랄 에너지겠지.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루빈지오, 나는 불사는 아니지만, 불로에 가까운 몸이라는걸.”
“크크큭, 그래 테레사함을 때려 부수고 내가 늙어 죽기를 기다리겠다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테레사함의 정비고만 날려버리면 될 뿐 아닌가. 당신이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도, 테레사함을 접수한 후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제 당신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군.”
“그래, 자네의 CEC에는 보이겠지. 지금의 내 모습이 말이야.”
루빈지오의 말대로 신혁의 CEC에 타겟팅된 루빈지오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휴머노이드라고 해야 하나? 정말 놀라워, 텔로미어 세포를 활용해서 뇌와 신경계는 유지하고 그 외의 모든 부분은 기계로 채워 넣었더군.”
“그래, 맞아. 아주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다 보니 매우 중요한 구동계에 문제가 생겨서 말이야. 테레사함 내에 있는 부품이 필요했지. 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너도 봤겠지만 내가 강호를 정벌하거나 세상을 정벌하는 것쯤은 무명 하나만 동원해도 충분했으니 말이야.”
루빈지오가 피식 웃으면서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 대 피겠나?”
담배를 입에 물며 루빈지오가 신혁에게 물었고, 신혁의 대답은 전과 같았다.
투욱.
신혁의 에너지 소드가 허공을 갈랐고, 깔끔하게 반 토막 난 담배를 보며 루빈지오가 혀를 찼다.
“쯧, 정말 몇 개 안 남아서 버릴 수도 없군. 참아주게, 긴장돼서 니코틴이 좀 필요하거든.”
그래도 반이라도 남은 게 어디냐 싶은 얼굴로 불을 붙인 루빈지오가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당신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
“후우~ 나는 귀관이 묻는 족족 성실히 답변해줬다고 생각했는데?”
루빈지오가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크리스탈의 행방.”
“역시, 내가 아무리 말을 돌리려고 해도 자네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것이로군.”
“약속했으니까. 반드시 찾아내기로.”
“뭐, 개인적으로는 자네의 바람이 이뤄지길 바란다네. 이건 진심이야.”
루빈지오가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를 손에서 증발시키며 신혁에게 말했다.
“크리스탈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물론 자네 하기에 따라서 못 볼 수도 있겠지만.”
“내게 원하는 것만 말하도록.”
“차갑군. 사신혁 사령관.”
“삶이 하루도 남지 않은 노인부터 갓 태어난 아기까지, 전 인류의 영혼을 아스트랄화 하여 희생시킨 건 너다, 루빈지오.”
“물론, 잊지 않았다네. 그리고 그 아스트랄 에너지를 오브젝트화 하여 60%는 너에게, 40%는 크리스탈에게 몰아주었던 것도…. 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
“수십억이나 되는 인간의 사념이 주입되면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 게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당신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크큭, 사신혁, 그건 아나? 사실, 나는 네가 되고 싶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신이자 인류의 구원자가 되고 싶었어. 그 과정에서 발생할 고통 따위는 얼마든지 웃으며 감내할 수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아스트랄 에너지로 변환된 영혼들은 나를 선택하지 않더군. 그들이, 인류가 선택한 것은 너와 크리스탈이었다.”
“결론만.”
“그 전에 인류 재건 프로젝트, 코드네임: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 자네에게 말해줄 게 있네.”
루빈지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노아, 재미있는 인물이지. 신의 선택을 받아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배에 싣고 홍수를 피해 세상을 재건한 자.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나는 그 노아가 되고 싶었네. 그런데 신이 선택한 노아는 자네더군. 사신혁 사령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그래, 노아도 원하진 않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더군. 누구보다 인류의 존속을 원했던 것도 나이며 완벽한 세상을 꿈꾸던 것도 나였어. 그런 내가 노아가 될 수 없다면…….”
루빈지오의 눈동자가 소름 끼치는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노아를 죽여 방주를 찬탈하고 신인류의 신이 될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비밀 프로젝트: 우르의 사라를 계획하게 됐다네.”
“우르의 사라?”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신의 계시에 따라 풍요로운 도시, 우르를 떠난 사라를 말이야. 뭐 깊게 알 건 없네, 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니까.”
“그래서?”
“희생양이 필요했지. 내가 신이 되기 위한 희생양. 그런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테레사함의 보호를 받는 자네를 도모하는 건 답이 나오질 않았어. 그래서…….”
“네놈……. 그렇다면 네가 희생시켰다는 게…….”
신혁이 분노를 몸을 떨었다.
“진정하도록. 자네가 흥분해서 나를 공격한다면 정말 크리스탈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루빈지오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신혁에게 목을 들이밀었다. 마치 벨 수 있으면 베라는 듯이 말이다.
“……약속하지.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그것 또한 나쁘지 않지. 그럼 계속해도 될까?”
“……말해.”
“자네는 노아의 역할. 즉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여 아스트랄 에너지를 모아 인류를 부활시킬 자였지만 크리스탈은 달라. 그녀는 제 아스트랄을 이동하는 차원에 뿌려, 해당 차원의 아스트랄 에너지를 흡수하는 역할이었지.”
“그래서?”
“자네가 모르는 또 하나의 작은 함선이 하나 있었네. 아담이라고, 부피가 굉장히 작아서 정말 필요한 장비만을 겨우 탑재할 수 있었던 나만의 작은 함선이었지.”
루빈지오가 주머니 속에서 다시 담배를 꺼내며 불을 붙였다.
“자네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스트랄 증폭기 속으로 들어간 크리스탈이겠지?”
“맞아.”
“크리스탈의 아스트랄이 증폭될 때, 그녀의 아스트랄의 일부를 훔쳤다네. 그리고 약간의 조작을 했지.”
루빈지오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500년 전으로. 자네가 도착하기 500년 전의 이 세계로 내가 올 수 있도록.”
“뭐?!”
“그렇게 놀랄 것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뭐, 예상대로 내가 아담의 보호 속에 자네보다 500년 먼저 이곳에 올 수 있었단 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네, ……문제가 발생하지만 않았더라면 말이야.”
“문제?”
“원래의 계획은 차원 이동에 성공한 직후 크리스탈의 아스트랄 에너지를 온전히 확보하는 것이었네만. 크리스탈의 영혼과 육체가 차원 이동의 리바운드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입자 단위로 분해돼서 흩어졌지 뭔가.”
“이 자식…….”
“당황스러웠지. 나는 크리스탈의 아스트랄 에너지를 온전히 손에 넣고 싶었으니까!”
루빈지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신혁에게 말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아스트랄 에너지를 집혼석에 가둬 십대기보로 창조하긴 했지만, 크리스탈의 아스트랄 에너지의 절반은 그대로 내 손을 피해 사라지고 만 거야. 그런데, 사라진 절반의 아스트랄 파동을 추적할 수가 없었고, 임시로 집혼석에나마 담아놓은 아스트랄 에너지를 다시 추출할 방법은 없었으니…….”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거군. 테레사함과 S4 위성을 이용하면 아스트랄 에너지를 추출하고 저장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빙고. 바로 그거야 사신혁. 역시 자네는 이해가 빨라서 좋군.”
손가락을 튕기며 루빈지오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자네가 언제 올지는 알고 있었지. 한데,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500년이란 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스스로를 개조하여 휴머노이드가 된 것인가, 루빈지오!”
“휴머노이드는 잘못된 표현일세. 그냥 기계의 도움을 받았다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아.”
“결국 나를 제압하고 테레사함을 확보하기 위해선 나의 에너지패턴을 막아낼 수단이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지금의 사신문 그리고 령주들이겠군.”
“맞아. 바로 그거야. 사실 자네와 크리스탈의 세포 표본은 내게 있었지 않나. 그걸 기반으로 유전공학과 세포 재생기를 이용하여 자네의 클론을 만들려고 했어.”
“그게 바로 현의령주 무명…….”
“맞아. 한데 신체 능력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자네의 정신력과 사이오닉 구사 능력만은 재현할 수가 없더군. 그 때문에 지금까지 정확히 117개의 무명을 폐기했네.”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한 소리를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내뱉는 루빈지오의 말에 신혁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무명이 가장 자네에게 근접한 클론임은 틀림없다네. 한 번에 20개의 클론을 만들어 서로 경쟁시켜 최후에 살아남은 놈이니, 그 생존본능만은 자네와 필적하다 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적무강이나 요백진은 실패작에 가깝지만……. 어쩌겠나. 그나마 에너지 패턴 레드와 블루를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다시 한번 묻겠다. 내게 원하는 게 뭔가?”
타는듯한 분노를 억누른 신혁의 말에 루빈지오가 신혁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자네 몸을 내게 줬으면 하는데…….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