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00
이렇게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는 잡념들이 곧 아쉬움이 되고, 조금만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으로 남는다.
“아, 오늘이 마지막이네. 믿기지 않아.”
“드디어 끝이다! 끝나고 바로 여행 가야지!”
“좋겠다… 나는 쉴 틈 없이 바로 다른 작품 투입되는데.”
“고생하쇼!”
메인 세트장에서는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고, 여기저기서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우진은 그것들을 귀에 담으면서 여느 때처럼 세트장을 거닐고 있었다.
현장의 기운이 오늘로써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터였다.
미국에 와서 몸집이 더 커진 듯한 준안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의 뒤를 따르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잠시 후.
“우진아, 촬영 준비 끝났대.”
“네, 형. 바로 가죠.”
“오케이.”
우진과 준안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세트장 안으로 들어서자 각각의 위치에 세팅된 A·B·C캠 앵글이 전부 세트장 중앙으로 향해 있는 광경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촬영 지점을 둘러싼 스태프들 사이로.
“우진, 빨리 와!”
“우진이 아니지. 매튜지! 이제 우리 생존자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개인 플레이어가 아니라고요. 하하!”
“마지막 날이 돼서야, 우진하고 처음 연기 합을 맞춰보겠네요. 감독님, 얼른 촬영 들어가요~!”
우진을 발견한 그의 동료 주연 배우들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우진이 ‘피식-’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퀀스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과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서 좋았다는 행복함, 그리고 얼른 속편이 크랭크업이 되어 빨리 재회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두루 섞인 발걸음이었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씬 121A 다시 1.”
– 탁.
슬레이트 오케이.
“카메라 롤.”
“사운드 오케이.”
카메라, 음향 오케이.
“레디, 액션!”
* * *
[#121A, 쇼핑몰 내부, 일몰 전 오후]도시 내부와 외곽 사이 경계선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생존자들은 지난 3년 동안 삶의 터전을 재건해왔다.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천천히 활동 반경을 넓혀왔고, 그 결과로 쇼핑몰 주변 800m 이내까지 수비 장벽이 세워졌다.
처음에는 보잘것없었던 수비 장벽도 이젠 튼튼한 구조물로 대체했을 만큼, 상황도 여유로워졌고.
특정한 누군가가 잘했다기보다, 생존하려는 본능 하나로 똘똘 뭉쳐 서로 협심한 모두의 공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구나 다 크고 작은 희생을 감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러나,
“아니, 지금 사람 놀려요? 겨우 이걸로 어떻게 일주일을 버티라는 겁니까?!”
“주말 동안 거둬들인 물자가 지난주보다 약 30프로 적은 수준이에요. 그 와중에서도 식료품과 식수를 최대한 끌어모아서 배급해드리는 겁니다. 이해해주세요.”
“30프로나 적다고?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균열은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전기나 수도 등의 설비들이 없는 곳에서 무려 1,00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공생해왔다.
생존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지향하는 건 변함이 없었으나, 그것이 언제 괴생명체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아래에서일 때와 단순히 배고픔과 목마름 때문일 때는 결이 달랐다.
“아, X발! 뒤에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빨리 받고 좀 나옵시다!”
“야, 너만 배고프고 너만 목말라? 불만 있으면 그냥 처먹지 말고 꺼지든가!”
“…….”
바이러스 사태가 처음 터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쇼핑몰에 생존해있는 사람들은 엄연하게 말해서 다들 같은 처지였다.
하나, 인류의 역사는 곧 계급의 역사라고도 하지 않는가.
같은 처지끼리 모였다고 한들, 그 안에서도 계급과 서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불가피한 일이었다.
많은 인원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끌어줄 리더가 필요했으니까.
단 한 명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이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트리거(trigger)가 될 수도 있기에, 집단 규칙과 규율을 만들 필요도 있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
그 대표로 나선 것이 바로 전직 군인이자 3년 전까지만 해도 무기상이었던 ‘머레이’였고.
그를 도와 체계를 잡아나간 이들이 경찰관 출신의 ‘애나’와 소방관 출신의 ‘케이’였다.
3개 그룹으로 나뉜 생존자들은 각각의 직업과 성향, 연령 등에 따라 조를 이루어 행동했고.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최초 1,000명 중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현재는 6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집단은 잘 유지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원수는 많았고, 표출되지 않은 불만들이 쌓여갔다.
식수야 늘 쌓이는 눈으로 어떻게 감당한다고 해도, 식량은 괴생명체 천지인 바깥세상으로 나가 물자를 조달해야만 했다.
괴생명체와 직접 맞닥뜨리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물자를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런데,
“X새끼들… 너희들이 뒤에서 다 삥땅 치는 거 모를 줄 아냐! 너희들만 배불리 먹으면 돼? 나처럼 힘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어도 된다는 거냐고!”
“어이, 아저씨! 불만이면 나가 살라고! 지가 나가서 물자 구해올 것도 아니면서 말 더럽게 많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받는 주제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말이야. 우린 목숨 걸고 직접 나가서 음식을 구해온다고!”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도래하자, 지금처럼 반발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배급이 너무 적다면서 반발하기 시작했고, 전체 구성원들을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물자조달 인원들과 큰 마찰이 일어났다.
식수, 식량, 전투물자까지 동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탓이었다.
‘머레이’, ‘애나’, ‘케이’가 겨우 사태를 수습했지만, 안으로 곪아가는 상처를 봉합하기엔 무리였다.
결국, 그토록 방지하기 위해 애를 써왔던 돌발 행동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122, 쇼핑몰 내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는 늦은 밤.]그날 밤.
배급에 불만이 있었던 몇몇 인원들이 밤늦은 시각에 몰래 물자를 저장하는 지하상가로 내려갔다가 이를 지키고 있는 방범조와 마주쳐 큰 싸움으로 번진 것이었다.
폭력이 난무했고, 총성까지 울렸다.
안 그래도 부족한 총알인데, 괴생명체의 심장이 아닌 같은 인간의 심장을 뚫는 참사였다.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빚어진 충돌의 결말은,
“어, 어어? 미쳤어?!”
“뭐 하는 거야! 문에서 당장 손때! 때라고, 이 새끼야!”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야! 너희들만 배부르게 처먹고 꼴, 죽어도 못 보지. 이럴 바엔 다 같이 죽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아!”
“열, 열지 말라고! 미친 새끼야!”
“안, 안 돼!”
“…Fxxking God Bless You, 이 망할 새끼들아! 다 죽어버려!”
– 덜컹.
비극이었다.
쇼핑몰에서 지하상가로 통하는 문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열리고 말았다.
괴생명체들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만 신경을 썼었지, 안에서 먼저 대놓고 열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던 그림이었다.
‘절 죽여주세요!’라고 외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 키이이익!
– 그워어어어!
앞서 들린 총성 소리에 지하상가로 잔뜩 몰려들었던 괴생명체들이 문이 열리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쳐들어왔다.
재차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 촤아악!
“끄, 끄억….”
– 쾅!
“끄아아악!”
숫자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방범대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고, 괴생명체들이 거침없이 쇼핑몰 상층부까지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큰일 났어요. 지하상가 문이 뚫려서 괴생명체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미친! 사람들 다 깨워, 빨리!”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지하상가가 뚫렸다는 소식이 ‘머레이’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나, ‘강 건너 불구경’일 수밖에 없었다.
괴생명체들의 숫자가 워낙 많은 것에 비해 총알은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문명의 발달로, 최강 포식자의 위치를 굳건히 해온 존재가 인간이었다.
문명이 후퇴한 지금, 그들은 힘없이 먹이사슬 최하층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 전달은커녕,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양초와 횃불에 의지하는 좁은 시야는, 어두컴컴한 사방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손톱을 보지 못했다.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지르는 비명은 오히려 괴생명체들의 흥분을 돋우는 흥겨운 음악이 되었으니,
“살, 살려….”
– 푹!
쇼핑몰에는 점점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시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장 상층인 8층으로 모여들었다.
“X발…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일단 나가죠. 오히려 밖이 더 안전하겠어!”
“다들 1층 정문으로 나가!”
“머레이, 미쳤어요? 밑에 괴물들이 쫙 깔렸는데, 거기로 가자고?”
“어차피 여기가 최고층이고, 더 올라갈 데도 없어. 옥상으로 가봤자 얼어 죽을 뿐이고, 뚫리는 건 시간 문제야! 그냥 우리가 뚫고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맞는 말인데, 죽으러 가자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네요.”
“케이, 넌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냐? 진짜 또라이네.”
“약기운이 샘솟나 보지. 소방관 잘리고 나서 한동안 약에 취해있었다고 하지 않았냐?”
“이봐, 애나. 개소리 집어치우고, 무기나 들어. 언젠가는 저 빌어먹을 것들과 사생결단 한 번 제대로 치르겠다는 생각, 다들 하고 살지 않았나?”
“미친놈.”
8층은 등산용 의류 장비들이 즐비한 플로어였는데, 이전 층까지는 에스컬레이터가 두 대씩인 것에 반해 8층은 한 개였다.
한 손에는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다른 한 손에는 횃불 또는 불빛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물건이라면 뭐가 됐든 집어 든 채로.
60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생존자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가까이 다가섰다.
– 꾸어어어!
“온다!”
샷건을 들고 선두에 선 ‘머레이’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살아남은 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아마겟돈(Armageddon)이 펼쳐지기 직전이었다.
296화
쥐도 궁지에 몰리면 사력을 다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인간들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각오를 속으로 씹어 삼키며, 앞을 향해 내달렸다.
그렇게, 8층에서 1층까지 단번에 내려가려는 인간들과 고립돼버린 먹잇감들을 보며 군침을 삼키는 포식자들의 무리가 7층과 8층을 잇는 유일한 통로인 에스컬레이터에서 충돌했다.
‘머레이’가 총구를 괴생명체들을 향해 겨누고 있는 샷건을 포함하더라도, 총기는 고작 몇 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 탕! 타앙!
여유롭게 총알 수나 세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화약 냄새가 강하게 부는 바람을 타고 금세 8층 전역에 퍼질 만큼, 난사에 가까운 사격이 이어졌다.
“죽어어어어-!”
“이봐, 머레이! 총알 아껴 써야 하는 거 아냐? 한 층 내려가기도 전에 다 쓰겠어!”
“어차피 여기서 죄다 뒈지게 생겼는데, 아끼다가 똥 될 일 있어?! 그냥 갈겨!”
“그래, 애초부터 살 놈이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처음부터 뒈질 놈이었으면, 총알을 넘치게 가지고 있어도 죽을 운명일 거고!”
“누구 횃불 가지고 있으면 그냥 아래로 던져!”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만약 적당하게 암울했다면, 그래서 어느 정도의 희망을 떠올릴만한 여지가 있었다고 한다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숨으려는 이탈자가 분명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할 여지조차 없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모두의 머릿속에는,
‘이미 죽은 목숨!’
이라는 메시지만 남아 있었다.
생존을 위협받는 절망 앞에서, 사람들은 다시 똘똘 뭉쳤다.
어떻게든 살겠다는 처절한 생존본능이 ‘활활-’ 뜨겁게 타올랐다.
“아무나, 불 줘봐!”
총알이 떨어진 ‘머레이’가 횃불을 달라고 소리쳤다.
그가 양손에 든 횃불을 휘두르며 침착하게 퇴로를 확보해나갔는데, 불에 약한 괴생명체들이 섣불리 다가오지 못한 덕분이었다.
좁은 지형지물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인간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이런, X발… 더럽게도 많네.”
“총소리 듣고 죄다 여기로 모인 거겠지.”
“바깥으로 나가면,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거야. 그렇겠지, 애나?”
“왜? 즐겁냐?”
“즐겁진 않은데, 흥분은 된다.”
“역시, 넌 미친 새끼야.”
아직 총알이 남은 ‘애나’와 ‘케이’는 ‘머레이’의 양옆에 붙어 괴생명체들을 겨냥했다.
덤벼드는 놈은 무조건 저승길 동무로 삼겠다는 마인드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새끼들, 역시 불을 제일 무서워한다니까? 총보다 더 세.”
“인간이 가장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게 불에 입은 상처라잖아. 이 새끼들도 원래는 인간이었으니, 무서울 만도 하지.”
“휴, 이럴 거면은 편의점에서 라이터나 싹 쓸어올 걸 그랬어.”
“웃기고 있네, 담배만 신나게 챙기는 놈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고, 정신이나 똑바로 차려. 이 새끼들, 불이 무서워서라기보다 뭔가를 기다리는 느낌이야.”
“아서라. 잘 보고 있으니까, 너나 잘하세요.”
선두그룹이 천천히 공간을 확보했지만, 겨우 한 층 길이밖에 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로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번에 내려오기에는 공간이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괴생명체들은 에스컬레이터 입구를 중심으로 사방에 쭉 깔린 채로 내려오는 이들과 대치하는 형국.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의 학살’이 잠시나마 멈춘 상황.
생존자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 쿵, 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