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2
「우리 아빠는 최고의 소방관이니까!」
「하하하! 아이고, 내 새끼. 누굴 닮아서 이리 똑똑하실까~」
아버지가 어린 우진의 양 볼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 위이잉.
빛과 함께 그림이 사라졌고,
“으아악!”
또다시 깨어난 우진이었다.
그의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떨리는 전신.
어떠한 감정에서 비롯된 신체 현상이었다.
그 감정은,
“…….”
인간으로서 극한의 공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것.
바로,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65화
지식과 관련된 속담 중에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도 있고.
무언가를 알게 되었을 때, 둘 중 어느 속담으로 표현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우진의 경우는 후자에 가까웠다.
두 번의 뼈아픈 실패.
그로 이어진 너무나도 참혹한 결말.
이제 우진은, 실패의 대가가 단순히 ‘리셋’뿐만이 아니었음을 알아버렸다.
또 다른 대가는 바로, 버스 폭발 직후에 전신을 타고 흐르는 생생한 고통이었다.
그것도,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고통 중에서 제일이라는 불에 의한 통증 말이다.
이걸 알고 나니까,
‘들어가기 싫어….’
또다시 같은 장면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사명감, 책임감보다 두려움이 더 크게 솟아나고 있었다.
– 야, 이건우! 대답해!
야속한 소방대장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다시 되풀이되는 상황.
하지만,
– 털썩.
우진은 힘없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져버렸다.
굶주린 사자 무리 앞에 떨어져 벌벌 떨고 있는 불쌍한 토끼 마냥.
거대한 공포심과 마주한 우진은 한없이 작아졌다.
‘어차피 또 실패하겠지.’
‘어차피 또 죽을 테고.
‘어차피 또 고통스러울 거야.’
부정적인 생각들만 점점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첫 시도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실패할 수 있다 치지만.
이미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은 상태에서 시작했던 두 번째 시도마저 실패할 줄은 몰랐다.
시간을 최대한 줄여봤음에도, 성공의 문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어느새 우진의 무의식을 두려움으로 잠식해버렸다.
그가 터널 안으로의 진입을 거부하게끔.
‘…….’
갑자기 메시지 창이 나타나서,
【미션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어봐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만약 저렇게 물어본다면, 당장이라도 ‘예’ 버튼을 누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 이건우!
소방대장의 간절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계속 울렸지만,
‘무서워.’
‘도망치고 싶어.’
솔직한 심정이 담긴 마음의 소리가 무전 속 목소리보다 더 크게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골든 타임만 놓치고 있는 꼴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두 발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걸 어떡하라고!
“야, 이건우! 정신 차려, 임마!”
그때였다.
별안간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
주인공은 원종수였다.
그가 어느새 우진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종수?”
“너 넘어간 지가 언젠데 왜 아직도 이러고 있어!”
원종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우진의 몸을 잡고 흔들면서 소리쳤다.
그를 따라온 문희연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으로, 두 사람과 애꿎은 터널 입구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고.
“괜찮은 거 맞아?”
“어, 어….”
“다행이다. 빨리 정신 차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들어가야 돼.”
“어, 어딜?”
“너, 아이들 안 구할 거야?!”
원종수는 전방을 가리켰다.
우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따라 터널 입구에 꽂혔다.
다시 본 그곳은, 마치 성난 범의 아가리와도 같았다.
배고픔에 굶주린 맹수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모양새.
온몸이 벌벌 떨렸다.
끔찍했던 지난 두 번의 결말이 다시 떠올랐으니까.
“…….”
“희연아, 가자!”
“네, 넵!”
여전히 온몸이 굳은 채로 말없이 터널 입구만 보고 있는 우진을 뒤로하고, 원종수는 문희연에게 외치며 몸을 틀었다.
그 찰나.
– 탁.
“안 돼!”
“……?!”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원종수의 팔을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원종수와 문희연, 두 사람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이런 이건우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테니까.
“뭐 하는 거야, 지금?”
“들어가면 안 돼….”
“이거 놔. 너 미쳤어?”
“내 말 좀 들어!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우진은 잡은 팔을 거칠게 끌며 소리쳤다.
우진의 말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진은 그들이 터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이 왜 이러냐고 따진다면, 그냥 들어가면 안 된다고 억지를 부릴 수밖에.
이미 두 번의 경험으로 인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우진은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고….
‘답답하고, 무섭다.’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든 탓인지 말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마구 튀어나왔다.
“어차피… 어차피 못 구한다고. 살고 싶으면 포기하….”
“……!”
그래서일까.
다음으로 이어진 우진의 말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말이었다.
– 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이 쓰러졌다.
“선, 선배님!”
놀란 희연이 쓰러진 우진에게 다가갔다.
넘어진 우진이 고개를 들자,
“너 이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해?”
원종수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말했다.
방화 헬멧을 쓰고 있었음에도, 오른쪽 얼굴이 꽤나 얼얼했다.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X발, 네가 그러고도 소방관이냐?”
“…….”
우진은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가 무슨 심정으로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아니까.
“저 안에 아직 사람들이 있어. 사람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소방관이고.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알아, 이 새끼야?”
원종수는 말을 곱씹듯 내뱉었다.
그의 말은 비수가 되어 우진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팩트로 뼈를 때린다는 표현이 아마 작금의 상황에서 제일 어울릴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시원한 한 방, 그리고 연이은 팩트 폭행까지 맞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왔나.
그제야 홧김에 내뱉은 망언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한 번 흘린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게 뭔지 절실히 깨달았다.
우진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창피했다.
누구나 거대한 공포 앞에서 작아질 수도, 무너질 수도 있다지만.
지금 맡은 역할과 책임엔 어울리지 않는 핑계였다.
“네가 뭔데 어차피 못 구한다고 하는진 모르겠는데, 하난 알겠다. 아직 생존자가 저 안에 있다는 거. 그래서!”
원종수는 다시 터널 쪽으로 몸을 틀며 말을 이었다.
“난 들어간다. 너랑 싸울 시간 없으니까 빠지고 싶으면 너 혼자 빠져.”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문희연!”
“네, 선배님!”
“넌 건우 상태 살피고 나서 따라와. 저놈 지금 제정신 아닌 거 같으니까.”
“알, 알겠습니다!”
“안 되겠다 싶으면 혼자서라도 와라. 시간 너무 끌진 말고.”
– 타다닥.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원종수는 터널을 향해 뛰었다.
우진과 문희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자,
“선배님….”
문희연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우진을 부축했다.
극한의 공포심과 두려움, 그리고 긴장감.
원종수의 일침으로 이 엄청난 감정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직후라 그런가.
아직 몸에 힘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멀쩡했다.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일어선 우진이 말을 이었다.
“후배님한테 참 부끄럽네. 못 볼 꼴 보여서 미안하다.”
“그럴 수 있습니다. 소방관도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고.”
이제 좀 몸에 힘이 들어가네.
우진은 헬멧을 고쳐 쓰며 말했다.
“우리도 빨리 따라가자.”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우진은 씩씩하게 답한 문희연과 함께 터널을 향해 달렸고, 이내 입구에 다다라 들어서려던 순간.
– 펑!
절대 듣고 싶지 않은 굉음과 함께,
“헉!”
엄청난 바람이 순식간에 터널 입구로 뿜어져 나왔다.
아, X발….
터널 안쪽은 금세 불길에 휩싸였다.
1차 불길 지점을 통과할 때는,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어서 몸을 들이밀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달랐다.
조금의 틈 따윈 없는, 들어갈 시도조차 낼 수 없을 큰 화마(火魔)였다.
“아아….”
우진의 몸이 다시금 떨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아까의 공포나 두려움 때문에 겪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떨림이었다.
– 투두둑.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고, 숨이 넘어갈 정도의 울음이 들이닥쳤다.
‘내가 생존자들을 죽였어. 내가… 동료를 죽였어….’
감정의 원천은 죄책감이었다.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그리고,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엄청난 죄책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