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76
제 976화
놀랍게도 그렇게 한참 술병을 붙잡고 있으니 안에서 뭔가 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술병이 따뜻해지는 게 아닌가.
이윽고 그는 따뜻하게 데워진 술을 모두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조르륵-
그윽한 향기 사방으로 퍼진다.
“하하! 어떤가. 이 몸의 내공이!”
보통은 내공을 축기하는 법을 모르니 영약을 먹어도 의미가 없다.
조금 건강해지고 마는 정도.
허나 신공절학을 이해한 지금, 축기하는 법을 배웠고 서툴게나마 이렇게 발출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돈이 가장 중요했다. 왜냐면.
“허허허허. 백린의각의 영약을 밥 대신 퍼먹었다 들었는데……. 겨우 그 정도인가?”
“뭐랏?!”
“이것을 보시게나.”
만 학사는 심 학사에게 잔을 받아 그대로 잔을 차갑게 식히고 식히고, 식혀간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파사삭-
술의 표면이 얼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며 심 학사와 곁에 있던 장 학사 모두 놀라서 물었다.
“아닛!? 어떻게 무량연화범심공(無量蓮華梵心功)으로 음한진기를 만들었나?”
두 학사가 놀라는 게 당연했다.
대다수의 무공은 딱히 열양진기의 속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고수의 반열에 들면 삼매진화를 일으키거나, 내공으로 따뜻한 열기 정도는 만들 수 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일반적으로 체내에 축적하는 기는 양기에 가까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제갈세가의 오행의 심득이나 무당파의 태극의 심득.
이러한 것들이나 원하는 형태의 기를 단전에서 가공하여 뽑아내는 형태이지, 남궁세가의 뇌기만 하더라도 한없이 양기에 가깝지 않던가.
그런 의미로 무량연화범심공의 불가의 진기로 음한진기를 만드는 것은 속성을 반대로 만드는 것이라 보통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만 학사가 목을 쭉 뻗었다.
“후후후후. 연무 도시에 가서 특별과외를 받았다네. 그쪽에서 음양반전공을 가르쳐 주거든!”
“으으음……. 나도 당장 연무 도시에 특별 과외를 신청해야겠으이!”
“이런이런. 둘 다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것을 자랑하는 꼴이라니… 그리 말해도 결국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죽이지 않나.”
“!”
그것도 그랬다.
두 학사는 협(俠)을 이루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무의 끝을 보기 위해서 이 신공을 배운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그들이 있을 곳은 연무장이었을 터이니.
“……아, 아니, 지금 강호의 새로운 열풍을 자네는 무시하는 겐가?”
“솔직히 그냥 유행에 편승하려고 배운 거 아닌가?”
맞다.
그 순간은 즐기지만, 그 이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까먹는다.
하지만 즐길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영약을 밥처럼 먹으며 연무 도시에 거액의 과외비를 주며, 부모님 재산을 오늘도 메뚜기처럼 까먹었지만.
그것이 강호 인플루언서의 미덕.
그리고 부모님은 내 아들이 관직에 뜻이 없지만 무학에는 뜻이 있나 보다.
어쩌면 강호 협객이 되어 유명 세가와 연을 맺을 수도 있다 하며 또다시 기대하고 있다.
“후……. 어쩔 수 없군. 보게나.”
심 학사가 술병을 낚아채더니 우우우웅 소리가 술병에서 나기 시작했다.
“아까와 같은 열양기 아닌가.”
“다르네!”
그리 말하며 술을 두 명에게 따라주었다.
술은 이번에는 따끈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윽한 향이 사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연꽃향!?”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심 학사가 콧등을 스윽 문질렀다.
“후후후. 무량연화범심공(無量蓮華梵心功)의 경지가 오 성에 이르면 이렇듯 연꽃향이 난다네. 심신 안정에 그만이지. 그리고 이렇게 향을 입힌 술이 얼마나 단 줄 아는가?”
그 모습에 결국 만 학사는 침음을 삼켰다.
“으으음. 내가 졌네.”
문득 두 학사를 보며 장 학사는 생각했다.
‘저 두 학사네 부모님들은 그 많은 돈을 줘서 아들에게 신공절학을 익히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걸로 술 따르고 놀고 있는 줄은 모르시겠군.’
기대를 하니까 실망을 하는 것이다.
만 학사가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이지……. 진일광 진천희 소각주는 대단하이.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어느 미친놈이 마공 막겠다고 신공절학을 금전 하나에 풀어버리고 있겠나. 보통은 그 마공을 익힌 놈들이 더는 안 나올 때까지 토벌하는 게 수순 아닌가.”
정상적인 강호인의 사고는 그쪽이다.
그렇게 싸우고, 싸우고, 싸워서 살아남은 협객들이 드디어 마공을 눌렀노라고 말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 수순 아닌가.
그것이 우리가 아는 강호의 협(俠)이다.
……염가전쟁 맞불 할인이 아니라.
“게다가 더 경악스러운 것이 뭔지 아나?”
“무엇이지?”
“무량연화범심공(無量蓮華梵心功)은 내공심법이라는 게지. 외공이나 권법, 보법 같은 건 안 풀었다는 거라네.”
“그게 왜 경악스러운가?”
금전 하나에 그것까지 푸는 건 너무 손해 아닌가?
이미 심공 푼 것도 제정신이 아닌데.
“쯧쯧. 결국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연무 도시에 오라는 거 아니겠나!”
“아하!”
“일광이 돈을 갈퀴로 모으려고 작정했음이야!”
그러다 문득 듣고 있던 장 학사가 물었다.
“무량연화범심공을 익히고 자기가 알아서 무공을 배우면 되지 않나?”
“무량연화범심공에 어울리는 무공은 소림사에나 가야 있을 걸세. 괜히 개량하기보다는 백린의각에서 준비한 맞춤 무공을 배워 익히는 게 낫지 않겠나?”
“하긴! 그건 그래!”
“이미 연무 도시의 특별 과외반이 매진이라더군.”
“오오오오!”
그런데 문득 장 학사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자네는 거기까지는 안 하는가?”
“움직이는 게 귀찮다네.”
“…아, 그렇지. 그건 그렇네.”
“괜히 수련하다가 다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그러네. 아픈 건 나도 싫으니.”
그랬다.
그들은 인플루언서.
무(武)에 뜻은 없지만 일단 이 느낌을 그냥 받으면 되는 거다.
돈 주고 기분만 내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래. 우리는 그냥 딱 가장 달달한 것만 찍어 먹고 가세나.”
세 명은 어떻게 해야 사는 게 가장 행복한지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 재산을 적당히 잘 뜯어 먹고.
이렇게 기분만 내면서 사는 날백수 인생.
관직에 진출해서 출세하는 것은 형제들에게 맡기고 세 사람은 오늘도 강호의 호사가, 즉 인플루언서로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광의 승리에 건배하세!”
“그래. 이상하게 이겼지만 아무튼 이긴 건 이긴 것 아닌가!”
“이겼으면 된 거지.”
강호사에서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할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일광이 칼에 피 한 번 안 묻히고 마공을 몰아냈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수로 해냈으니 그 또한 지략(智略)이라.”
친우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수다를 떠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강호 최고의 미친 지략가, 일광에게 건배!”
쨍!
세 학사의 잔이 부딪친다.
* * *
진천희의 승리 후, 제갈린의 집무실.
제갈린은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고 있는 금전들을 장부로 한참 뒤적였다.
누구라도 눈이 돌아갈 만큼 대단한 금액이나, 제갈린의 표정은 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물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
“…….”
주어도, 목적어도 결여되어 있는 질문.
허나 진천희는 스승님이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었다.
잠깐 생각에 잠기던 진천희가 언어를 정리해 말했다.
“……진주언가를 다녀온 후에 줄곧 생각해왔던 일입니다.”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대체 모두가 강시가 되어야 할 만큼의 일이 무엇인 걸까.
말세에 무엇이 오는 것일까.
‘그녀’는 무엇 하나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진주언가를 걱정하는 마음.
누구보다 후손을 걱정하고, 그들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물론 그게 생물학적인 살아있음이 아니더라도, 고통스러울지라도, 그래도 그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이후, 해저도시에서 어떤 존재를 만났다.
그 존재는 말세가 도래하였으니 이 세상을 바다로 채우겠다 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비유로 생각하겠으나.
그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었다.
“진주언가의 ‘그녀’가 비록 미쳐있다고 해도 그 선택은 틀린 게 아닐 수도 있겠지요. 세상이 물로 차더라도 강시는 살아남으니까요.”
“그들은 처음부터 죽은 존재이니 호흡도 필요 없지.”
생명을 박탈하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생을 부여하는 행위였다.
허나, 그런 결말을 진주언가의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그녀의 선물이, 모두에게 저주였다.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를 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는 게 아니라고.
생(生)이 아니라고.
진천희가 말을 했다.
“지금은 금전 하나지만 나중에는 더 싸게 퍼져나갈 겁니다.”
“그래. 돈을 받고 잠시나마 열람할 수 있게 해주는 책방도 슬슬 생긴다고 하니 말이다.”
정보는 계속해서 퍼져나갈 터.
나중에는 더 가난한 이들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하루 식삿값으로도 볼 수 있게 될 터였다.
“물론 이것 하나만으로는 말세를 이겨내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냥 ‘단서’니까요.”
“단서……?”
“네. 최후의 순간에 인간으로서 발악할 수 있는 작은 조각을 하나 내려놓은 것뿐입니다.”
“그게 이 신공절학이냐.”
거대 세가의 신공절학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신공절학으로 치면 말석에 자리하는 수준.
허나, 어떤 순간에도 안정적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를 맑게 하여 광증을 억누른다.
미치지 않게 한다.
그것은 꽤 중요했다.
훗날 말세가 도래하여 인간이 ‘그녀’ 같은 존재와 조우하게 되어도 광기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저 이성을 붙잡아줄 닻.
그것을 원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만약 재능이 있는 아이가 이 서적을 본다면 그때는 제가 모르는 가능성을 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냥 ‘씨앗’일 뿐입니다.”
무엇이 맺힐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 어떤 씨앗도 발아하지 않고, 그냥 강호 무학의 수준을 약간씩 올리고 끝내는 수준일 수도 있다.
“너는, 인간이 죽을 날. 인간이 적어도 인간답게 죽을 수 있기를 바라는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지 않는 거지만요.”
그게 이 미친 계획의 전모였다.
“단순히 일월신교의 음모를 막으려는 게 아니고?”
“그것도 있지요. 그쪽이 개판을 만들겠다는데 제가 내버려 둘 이유는 없잖습니까.”
시체 속에 깔려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 장소는 그야말로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 그런 장소를 조우하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조차도 잊게 될 터였다.
말세가 다가오고 원래라면 움직일 수 없는 존재들이 더욱 움직일 것이라고, 응룡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그 초입이 고작 이 정도일 뿐이라면.
인간은…… 어찌해야 할까.
그때 스승님의 거대한 손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 작은 머리로 고민이 많았구나.”
“…….”
“고생했구나. 심상이 마모될 만큼…….”
울컥.
왜인지 명치에서 뜨거운 것이 치민다.
눈가가 붉어진다.
자신은 닿지 못할 이상향을 스승님은 품고 계셨고, 이 제자는 그 스승님의 심상을 향해 매일 노력하나 닿을 수가 없었다.
스승은 한 사람을 지키고자 했고, 제자가 품으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넓었기에.
마모된 심상에 꽃이 피었다.
비를 닮은 수국.
그것은 진천희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하나가 아닌 수없이 많은 작은 꽃들이 하나를 이루며.
정식 명칭은 Hydrangea macrophylla.
그 학명대로 잘려도, 잘려도 수없이 많은 꽃이 하나의 거대한 꽃을 이루는 그 모습은 틀림없이 히드라(hydra)와 닮았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도 모두가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비를 빨아들이고 흐린 날을 견디며 수국은 그곳에 있다.
독을 품고, 환하게 갤 그날을 기다리며.
작고 수많은 꽃이 하나하나 고난을 건너 피어오르고.
그것이 이 강호를 살아가는 진천희의 모습이라면.
그런 수국들 속에서 문득, 단 하나.
잡초 하나가 피었다.
해를 닮은 유채꽃 한 송이.
햇빛을 닮고, 기름을 만들고 약재가 되어 사람을 살리고, 살리는 꽃.
노란색은 긍정을 뜻한다.
닿고 싶은,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뜻하기도 했다.
아직은 고작해야 한 송이.
그것은 진천희가 품을 수 있는 긍정의 색이기도 했다.
‘그래. 그런 긍정 속에서 인간은 살아가지.’
닿지 못한다면 뭐 어떠랴.
이 무학이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못한다 해도 뭐 어떠랴.
간절히 바라던 그곳에 닿은 스승님을 보며 새카만 먹물을 삼킨다 하더라도.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오늘 뿌린 씨앗 하나 덕이겠지.’
천마께서 마(魔)를 뿌리듯, 진천희 역시 의(義)를 뿌렸다.
그 끝에 무엇이 발아하여 다가올 말세를 덮을지 알 수 없다.
오늘 진천희는 종말을, 죽음을 긍정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며.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저항할 수 있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면 자신 안에도.
이 긴 여정에도 끝이 올 터이니 더 발악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것은 진천희 안에 발아한 마(魔) 덕분이었다.
허나, ‘인간이 죽는 날.’
말세가 도달하여 어쩌면 인류가 멸망하는 날.
새까만 광야에도 노란 유채 한 송이가 피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