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074
01077 1077화
외부 온도와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신혜미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리 저쪽으로 가 봐요.”
“NGO 텐트?”
“오랜만의 외출인데 인사드려야죠. 어서요.”
신혜미가 손을 잡고 끌자 태수는 못 이기는 척 쫓아갔다.
태수와 신혜미의 텐트에서 NGO 텐트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는 대략 100미터 정도 되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로 텐트 사이사이를 오가던 의료진들이 두 사람이 다가오는 걸 봤다.
“어? 저기…….”
“옆에…….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돼. 좋아진 거지. 일단 난 제임스 박사님께 소식부터 전해 드릴게.”
누군가 돌아서서 후다닥 달려갔다.
다른 의료진들은 멀뚱히 서서 태수와 신혜미가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태수와 신혜미도 의료진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시선이 많이 집중되자 태수가 먼저 신혜미에게 말했다.
“연예인이 된 기분인데.”
“그러게요. 우리가 그렇게 멋지고 예쁜가?”
“객관적으로는 심하게 멋스런 커플이긴 하지. 그리고 이렇게 하면 더 멋져 보일 거 같은데.”
태수가 신혜미의 팔을 끌어 팔짱을 꼈다.
전이라면 부끄러워했을 신혜미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정겨운 모습으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갔다.
멍하니 바라보는 의료진들과 점점 가까워지던 중이었다.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닥터 이작손이었다.
태수는 신혜미를 그쪽으로 이끌어 닥터 이작손에게 다가갔다.
“이작손.”
“이야, 이거 신혼여행 중인 관광객인 줄 알았는데, 닥터 최하고 닥터 신이었네.”
닥터 이작손이 진짜 몰라봤다는 듯 장난을 치며 칭찬했다.
바로 태수가 반색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일 거야.”
“완벽하네요.”
태수가 넉살을 부리자 닥터 이작손도 같이 웃었다.
“하하. 그렇지. 완벽하지. 그보다 산책?”
“네.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게 좋지. 공기가 좋은 건 아니지만 갑갑한 텐트 안에만 있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그래서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다들 어디 계십니까?”
태수가 묻자 닥터 이작손이 바로 대답했다.
“조금 전에 수술 끝나고 쉬는 중이야.”
“제임스 텐트에서요?”
“그렇지. 나도 거기서 오는 길이거든. 그보다 닥터 신, 얼굴이 정말 많이 좋아졌어.”
닥터 이작손이 엄지를 강하게 내밀자 신혜미는 태수의 팔을 더욱 강하게 안으며 찡긋 미소를 지었다.
“저에게는 세상 최고의 약이 있어서요.”
“그 약, 언제 한번 빌려 달라고 해야겠는데.”
“죄송해요. 저만 효과가 있을 거예요.”
신혜미의 당돌한 말투에 닥터 이작손이 살짝 놀랐다.
“이거 못 당하겠네.”
“호호.”
두 사람의 대화가 얼추 끝나자 태수가 나섰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그래. 좋은 대화 나누고. 닥터 최.”
일부러 부른 닥터 이작손이 태수를 향해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많은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었지만 모두 좋은 뜻일 터였다.
태수도 같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고 신혜미를 이끌어 제임스의 텐트로 향했다.
걸어가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여러 의료진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그러나 누구도 신혜미의 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건강하면 빨리빨리 얼굴을 보여야지.”
“오랜만의 산책인데 재밌게 놀고 들어가.”
“뭐 필요한 건 없나? 있으면 구해 줄 테니까 말만 하라고.”
다들 호의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건네 왔다.
이렇게 앞에서는 웃고 있지만 돌아선 순간 안타까운 눈빛으로 변할 터였다.
그걸 태수와 신혜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가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앞에서 미소 짓는 것도, 뒤에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도 모두 진심이었다.
그걸 알기에 오히려 더욱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걸어간 태수와 신혜미는 나란히 제임스의 텐트에 들어섰다.
그 순간 박성민이 먼저 보였다. 그는 가느다란 눈빛으로 입이 삐쭉 내민 채 얼굴을 보자마자 한 소리 했다.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 나타나셨나 했더니 니들이었어? 에잉.”
“오랜만에 보는 건데 좀 반겨 주십시오.”
“반가워. 엄청 반가우니까 어떻게, 껴안기라도 해야 하나?”
박성민의 말투가 삐딱했다.
태수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이,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박이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많이 섭섭해했어. 가끔 얼굴이라도 좀 비치지 그랬나.”
그 소리에 태수와 신혜미는 동시에 제임스를 바라봤다.
이젠 환자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평소와 같이 정정하고 기운 넘치는 얼굴의 제임스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숙여 인사부터 했다.
“강녕하셨습니까?”
“안녕하셨어요?”
인사를 받은 제임스가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두 사람도 잘 지낸 거 같은데. 나도 잘 지냈어.”
“수술을 집도하셨다던데, 후유증 같은 건 전혀 없으신 거죠?”
“보는 것처럼 이젠 몇 시간을 수술해도 힘들지 않아.”
제임스가 대답하자 옆에 있던 김혁권이 덧붙여 말했다.
“가끔 무리는 하고 계시지만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보다 같이 수술하셨다고요.”
“난 닥터 박 보조.”
그 소리에 눈이 크게 떠진 태수가 박성민을 바라봤다.
“제임스와 같이 수술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지금까지 의사 생활 중에서 아주 최고 중에 최고의 시간들을 보내는 중이라고.”
“혹시…….”
태수가 조심스레 말꼬리를 흐리자 박성민이 먼저 선수를 쳤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말하는 거냐? 자식이. 넌 감기를 열흘 넘게 앓고 있을래?”
“진짜 다 나으신 겁니까?”
“음하하하! 이 위대하고 뛰어난 너의 선배님께서는…….”
박성민이 호기롭게 얘기하는 사이, 김혁권이 끼어들었다.
“아직 치료 중이죠.”
“거참, 또 끼어드신다.”
“말은 바로 하라고, 이것도 치료의 일종이잖아요.”
“……젠장. 선배 위신을 땅에 떨어뜨려 즈려밟아 주시네.”
김혁권의 말이 틀리지 않는지 박성민이 삐쭉거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변한 태수에게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야. 스스로 뿌리를 찾게 되면 정신적인 문제는 많이 호전되기 마련이지.”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 수술을 통해 긴장과 압박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말씀입니까?”
“닥터 최는 이해가 빠르군.”
“아시겠지만 제가 타머에서 선배에게 그렇게 했거든요. 솔직히 그때는 선배가 같이 수술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긴 했지만요.”
태수가 대답하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건 잘했다고 생각해. 의사는, 특히 외과 계열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니까.”
“동감입니다.”
“그래. 그리고 막스밀리언이 그러더군. 치료와 수술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PTSD는 사라질 거라고 말이야.”
“그거 진짜 좋은 소식이네요.”
“그렇지. 그럼 이쪽 상황은 알렸으니까, 그쪽 상황은 어떠한가? 닥터 신의 얼굴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말이야.”
제임스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제야 가만히 있던 신혜미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옆에 있는 남자가 듬직한가 보군.”
“네. 최고예요.”
신혜미는 부끄러운지 살짝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자기 생각을 당돌하게 얘기했다. 그래도 쑥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지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짧은 틈에 태수와 제임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했다.
‘경과는?’
‘지금까지는 좋습니다.’
‘고생했어.’
‘고생한 적 없습니다.’
눈빛으로 짧은 대화들이 오갔다.
원하는 모든 정보를 눈빛을 통해 느꼈는지 제임스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모두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일단 앉지. 두 사람이 온다고 아주 캠프가 떠들썩해진 것 같던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주목받는 게…….”
“부담스럽나?”
“당연한 거 같습니다.”
태수가 반전 있는 대답을 건네자 제임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좌우간 닥터 최의 밝은 성격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자자, 왜 다들 서 있나? 앉아서 그동안의 얘기들을 나눠 보자고.”
제임스가 먼저 자리에 앉자 뒤를 이어 네 사람이 빙 둘러앉았다.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는 이미 음료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NGO 캠프가 떠들썩했다는 얘기가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태수와 신혜미, 제임스와 김혁권, 그리고 박성민은 만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소소한 대화를 이어 갔다.
그러나 즐거운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한바탕 대화를 나눈 후였다. 다들 음료수로 마른입을 축이는 사이, 제임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좀 더 쉬었다가 다시 수술에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그럼 일어나셔야죠. 금쪽같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도 좋은 데이트가 되길 빌지. 그리고 닥터 신, 몸조리 잘하고,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지.”
제임스의 덕담에 신혜미도 얼른 대답했다.
“항상 감사해요. 그리고 더 힘낼게요.”
“그래. 그거면 돼.”
제임스가 푸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데 더 방해를 하는 건 실례였다. 그걸 알고 있기에 태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신혜미에게 말했다.
“자, 우리는 일어나자고.”
“야, 인마, 이제 우린 보이지도 않냐? 우리한테는 인사도 안 하는 거냐고.”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요. 언제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너…… 입에 침 발랐지?”
“네.”
태수가 바로 대답하자 박성민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아오! 저건 어디서 말대답하는 강의를 받고 다니나.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져. 그냥 대답이 청산유수야.”
“내 말이요. 닥터 최, 더 얼굴 보기 싫으니까 얼른 나가요. 우리도 좀 쉽시다.”
김혁권도 가세하자 태수는 더욱 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푹 쉬십시오.”
“웃지 말고 가요. 정들어.”
“하긴 더 들 정이 없어서 문제죠.”
“하여간 말대답은. 가끔 보면 닥터 박보다 더하다니까.”
김혁권의 말에 박성민이 바로 따지고 들었다.
“나? 난 또 왜? 왜 또 가만히 있는 나를 끌어들여서 자극하시는데?”
“거기 계셨어요? 난 몰랐지.”
“모, 몰랐다고? 허, 참. 지금까지 옆에서 같이 대화해 놓고 몰랐다고 시치미 떼면 내가 아, 그렇구나, 할 줄 알았어요?”
“네.”
“오호라? 그렇게 나오시겠다. 태수야, 그리고 닥터…… 아니지, 신혜미야, 둘 다 얼른 나가라. 지금부터 여긴 피와 살이 튀는 범죄 현장이 될 테니까.”
박성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으르렁거리자 태수가 얼른 신혜미에게 눈짓했다.
그러나 신혜미는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태수는 그런 표정을 개의치 않고 신혜미를 밖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제임스가 말했다.
“갔어.”
그와 동시였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던 박성민이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태수가 있으니까 확실히 싸우는 재미가 나긴 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도 오랜만에 욱하니 좋았어요.”
김혁권이 뭔가 개운한 얼굴로 맞장구치자 박성민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런데 다음에 만날 때도 이렇게 장난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음…… 그러게요.”
“제임스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성민이 묻자 제임스는 깊은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말을 하긴 아직 이른 것 같네만.”
“진짜 닥터 신의 병이 호전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닐 거야. 닥터 최의 정성에 그 시간이 조금 늦춰진 것뿐이지.”
“그래도 저 정도로 좋아졌으면 뭔가 시도해 볼 만한 거 아닙니까? 딱 봐도 온몸에 피가 콸콸 돌아서 산책까지 할 정도인데요. 검사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박성민의 절실한 눈빛을 본 제임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아.”
“…….”
“아마 닥터 신도 같은 생각일 거야. 자신의 내부 사정을 모른 채 지내는 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걸 말이야. 닥터 최도 알고 있을 테고.”
“결국 끝은 찾아온다는 말씀이십니까?”
“…….”
제임스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입이 있지만 대답하기 싫은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