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51
01154 1154화
다들 머뭇거리기만 하자 박성민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수술 장소가 이 정도면 됐지. 밝겠다, 바닥 평평하겠다, 머리 위에서 폭탄 떨어질 일 없겠다, 도대체 뭐가 문젠데?”
“감염이…….”
“조현민 선생, 감염? 그럼 조 선생은 숨을 어떻게 쉬고 살아? 공기 속의 숱한 바이러스 때문에 어떻게 사냐고.”
“…….”
조현민이 입을 다물자 박성민이 빠르게 물었다.
“내가 여기서 진상 짓 하는 꼴 보고 싶어? 아니면 수술 준비 들어갈 거야?”
“그거야 당연히 수술 준비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식들. 그거야 당연히, 그러니까……. 음, 야, 야, 최태수.”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걸 발견하지 못한 박성민이 도움을 요청하자 태수가 그제야 나섰다.
“소방차와 경찰차로 시야를 가리고 임시 수술실을 확보합니다. 바닥은 모포 같은 게 있을 테니까 그걸 최대한 두껍게 깔아 주시고요.”
“아, 그러면 일단 임시로…….”
“먼지가 좀 날려도, 감염 위험이 있어도 응급수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태수가 강하게 말하자 다들 눈을 빠르게 굴렸다.
그때 공우혁이 민태경과 박인수, 조현민에게 말했다.
“다들 준비부터 해 주세요. 바이탈은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최대한 빨리 움직이라고. 이대로 방치하다가 죽일 건 아니잖아요!”
공우혁의 말에 세 의사들은 더 고민하지 않고 단단한 표정으로 결심했다.
“그럽시다. 수술하자고요. 가서 소방차하고 경찰차부터 끌고 오라고 하세요!”
“여기로 오지 말고 조금 옆으로. 일단 위치는 제가 잡고 있겠습니다!”
“공 선생, 지금 엄청 위험한 상황이니까 절대 건드리지 말고 약만 투여해요. 난 수술에 필요한 거 챙길게.”
의사들이 움직이자 간호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간호사, 조현정 간호사 보내서 혁권 씨랑 교대하라고 해요. 이쪽 상황 알려 주고. 그리고 애들 풀어서 수술 준비하라고 하고. 김 간호사는 돌아와야 해.”
“제 생전에 이렇게 야외 수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일단 빨리 다녀올게요.”
김수진 간호사는 복잡한 표정으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다들 움직이자 태수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때, 박성민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턱!
“넌 어디 가려고??”
“수술 준비해야죠.”
“지랄하고 있네. 일단 너부터 응급처치해야 할 거 같거든요. 도끼야, 벗겨.”
“아니, 왜!”
태수가 움찔거렸지만 2명의 성민들은 개의치 않고 가운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핏물 가득한 가운이 벗겨지자 그 안에는 수술복 차림이었다.
태수는 물론 화이트엔젤팀의 근무 복장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수술복 하나밖에 없었다.
언제라도 수술실에 뛰어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한 탓이다.
그런데 가운에 가려졌던 수술복도 엉망진창이었다.
찢어지고 긁힌 건 예사였고, 군데군데 유리 파편도 박혀 있었다.
태수는 한눈에 그 상처들이 뭔지 직감했지만 박성민의 잔소리를 피할 순 없었다.
“너 또 쑤시고 들어갔지?”
“…….”
“야, 이 새끼야,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 너 전에 카슈미르에서 담벼락에 깔린 애 구출하다가 너도 같이 매몰됐던 거 기억 안 나?”
“기억합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박성민의 눈꼬리가 하늘 높이 더 치솟았다.
“그때 애는 멀쩡하고, 니가 허벅지 수술 받으셨어요. 김혁권 그 인간이 치를 떨면서 이야기 하더라.”
“아직도 그 순간이 자랑스럽습니다.”
“누가 너보고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어? 환자 몸만큼 네 몸도 챙기라고.”
박성민의 핀잔에 태수가 얼른 대답했다.
“잘 챙깁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너 죽으면 내가 부려먹을 놈이 사라지니까……. 야, 이 도끼 새끼야, 너는 뭐 하고 있어! 수술 준비될 동안 이 새끼부터 응급처치해야 할 거 아니야!”
박성민이 버럭 소리치자 얼떨떨하게 얘기를 듣고 있던 도성민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저기 오고 있습니다.”
“뭐가……. 아, 센스 좋으신 함은선 간호사가 이것저것 들고 오시네.”
“제가 부탁한 건데요.”
도성민이 작게 말했지만 박성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임시 수술 소식에 놀라며 수술실을 만들기 위해 차를 움직이던 중이었다.
그사이 박성민과 도성민은 양쪽에서 태수의 상처를 응급처치했다.
상처에 소독약이 닿자 태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쓰읍.”
“그 입 다물라.”
“…….”
“자식이. 진작 그러고 있을 것이지. 그보다 이건 꿰매야겠는데.”
박성민의 목소리가 심각해지자 태수가 말했다.
“압박붕대로 감아 주세요.”
“젠장. 내가 지금 수술만 아니었어도 당장 널 응급수술실에 눕히는데, 일단 참는다. 압박붕대 어디 있어?”
박성민이 으르렁거리자 도성민이 얼른 압박붕대를 내밀었다.
바로 받아 든 박성민은 최대한 타이트하면서도 꼼꼼하게 붕대를 감았다.
투덜거리는 모습만큼 태수의 상처가 영 기분 좋지 않은 표정이었다.
태수도 그런 박성민을 봤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자신부터 챙겨 주는 두 사람이 고마울 뿐이었다.
태수가 잠깐이나마 응급처치를 받는 건 당연히 수술 때문이었다.
등에 쇠막대기가 꽂힌 환자는 공우혁이 전담하고 있는 중이고, 다른 환자들도 각각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박성민과 도성민도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놨기에 여기서 이럴 수 있었지, 아니면 얼굴 볼 여유도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고 마냥 여유를 부릴 순 없기에 응급처치는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응급처치를 이어 가던 박성민이 문득 궁금해졌는지 태수에게 물었다.
“수술은 누구누구?”
“그 전에, 다른 환자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총 열한 명 중 한 명 현장 즉사, 나머지 열 명 중에서 수술 환자 빼면 아홉 명. 그중에서 다섯 명은 중경상, 네 명은 중상.”
박성민이 빠르게 상황을 말하자 태수가 멈칫했다.
“현장 즉사라니요? 누가요?”
“대형트럭 운전기사. 안전벨트도 안 하고 있어서, 사고와 동시에 유리를 뚫고 나와서 그대로 저 위로 올라갔어.”
“음.”
“내가 진짜 나쁜 놈인진 모르겠는데, 만약 살아 있었으면 난 그 새끼는 다른 병원으로 보냈을 거다.”
“…….”
태수가 침묵하며 바라보자 박성민은 다른 부위에 소독을 하며 이어서 말했다.
“그 한 사람의 부주의로 열 명이 씻을 수 없는 공포의 기억을 갖게 됐고, 몇 명은 지금 정신도 못 차리고 있어. 그 벌은 받아야지.”
“…….”
“그래, 그 사람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겠지. 그들도 억장이 무너지겠지.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저 사람들 가족보다는 훨씬 나아.”
“죽어도 되는 사람이 있을까요?”
태수의 나지막한 물음에 박성민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딴 건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이 끔찍한 사고를 낸 가해자를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최악은 아니야.”
“그 얘기는 그만하죠. 의사로서 입에 담을 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럼 의사를 떠나서는?”
“…….”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박성민도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수의 응급처치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환자의 피를 씻어내 감염을 예방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거나 붕대로 감는 게 전부였기에 오래 걸릴 건 없었다.
그때 태수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겁니까?”
“나도 따졌는데 거의 정리가 되고 있다더라.”
“한 20분은 지난 거 같은데.”
“어떤 개새끼들이 공간만 만들면 끼어드나 봐. 사람 죽어 간다고 소리소리 질러도 꿈쩍도 안 하는 인간들이 있대.”
박성민의 말에 태수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씨발놈의 새끼들.”
“내가 그 교통경찰한테 무전으로 그랬어. 그 새끼들 차 번호 적어 놓으라고. 혹시 아프더라도 우리 병원에서는 안 받을 테니까 절대 오지 말라고 꼭 얘기해 달라고 말이야.”
“그건 완전 잘하셨습니다.”
“내가 그런 꼴은 못 보잖냐. 오케이. 이제 됐다!”
짝!
박성민이 등을 후려치자 태수가 움찔했다.
따끔한 등짝의 충격에 따지고 싶은 생각이야 굴뚝같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방차와 경찰차들이 모여 임시 수술실을 갖추고 있었다. 수술 준비도 곧 이어질 터였기에 태수는 박성민에게 말했다.
“선배는 구급차들 도착하면 바로 병원으로 보내 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수술실에 들어갈 순 없어. 여기 남아서 다른 환자들도 봐야 되잖아.”
“지원팀은 괜히 만든 게 아니잖습니까. 도 선생, 내 휴대폰으로 과장님들에게 전화해. 몇 번 울리고 안 받으면 그냥 끊어.”
태수의 눈빛이 진하게 변하자 도성민이 바로 움직였다.
태수는 곧장 임시 수술실로 향했다.
커다란 소방차와 그 옆을 가로막은 경찰차 사이를 통과하자 꽤 커다란 공간이 펼쳐졌다.
그 사이에 넓게 모포들이 깔려 있었다.
이건 119 구급차에 비치된 비상용 모포였다. 태수는 여러 번 119 구급차를 타 봤기에 이런 게 있단 걸 알고 있었다.
모포 위에 환자가 보이고, 주변에서 의료진들이 수술 준비에 한창이었다.
수술 가운이나 마스크, 헤어캡은 없었다. 수술복 차림에 팔꿈치까지 소독약을 부었는지 다들 양쪽 팔이 축축했다.
거친 모습이었지만 수술 장갑은 착용하고 있었다.
태수가 다가가자 김혁권이 소독약을 들고 다가왔다. 슬쩍 위아래로 훑어본 김혁권이 태수에게 말했다.
“이쪽도 환자네.”
“응급은 아닙니다.”
“그럼 손 뻗어요. ……그렇지, 그렇게. 부으면서 얘기할게요. 수술 준비는 끝났고, 환자 혈액형도 파악해서 수혈팩도 교체했어요.”
김혁권이 말하는 사이, 태수는 쏟아지는 소독약에 양팔을 벅벅 씻으며 대답했다.
“계속하세요.”
“현재 바이탈은…….”
김혁권이 최신 정보를 알려 주자 태수는 머릿속에 입력시키며 마음을 차분하게 다잡았다.
그렇게 소독을 마친 태수는 수술 장갑을 착용하고 환자에게 향했다.
머리맡에서 수술 준비를 마친 서영우가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버라이어티하다.”
“저희 일이 그렇죠, 뭐. 그보다 부족한 약은 없습니까?”
“병원을 나간다고 하는데도 마취약을 챙기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데, 근데 아주 잘한 짓이더라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태수의 말에 서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인공호흡기 연결했고, 전신마취도 했어. 시간이 얼추 지났으니까 이제 수술 시작해도 될 거야.”
“알겠습니다.”
대답한 태수는 시선을 돌려 민태경과 박인수를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까?”
“우리 생각은 저 쇠막대기부터 뽑고 출혈만 잡는 게 좋겠다는 겁니다.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황이라 신경외과 쪽은 나중에 확인해도 될 거 같거든요.”
“정형외과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른쪽 팔과 양쪽 쇄골, 척추도 부러졌지만, 병원 수술실에서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의사들이 각각 얘기하자 태수가 말했다.
“그럼 응급처치만 하고 병원으로 옮기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두 분은 다른 환자들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황경석 선생 좀 불러 주세요. 지금쯤이면 그쪽도 구출이 끝났을 테니까요.”
끄덕.
민태경과 박인수가 멀어지자 태수는 공우혁을 바라봤다.
“지혈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중입니까?”
“지금까지는 출혈보다 수혈이 더 많아서 다행인데, 수술 시작되면 또 난리 나겠지.”
“그러게요.”
태수가 대답하자 공우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럴 때마다 피 때문에 진짜 전쟁이네.”
“저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얘기하는 사이 저 멀리서 황경석이 뛰어왔다.
“헉헉. 도착했습니다.”
“그 환자는?”
“고문님께 인계했습니다.”
“준비해. 되는대로 바로 시작한다.”
“네! 헉헉.”
황경석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송현미 간호사에게 다가가 수술 준비를 이어 가야 했다.
그사이 환자를 내려다보는 태수의 시선이 신중하게 변했다.
“20분.”
태수가 생각하는 리미트 시간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크게 차이가 나진 않을 터였다. 그사이에 응급처치를 마치고 구급차에 올라야 했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쉰 태수는 스스로를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