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245
01248 1248화
석정현 이사장의 든든한 오른팔로, 성호종합병원 대소사에 관여하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정용철 전무이사를 바라보는 의과장들의 시선에는 경계심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 오픈 전부터 힘을 합쳐 준비했고, 오픈 후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용철 전무이사는 의사의 편에서 편의를 많이 봐주려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의사가 아니면서도 중책을 맡고 있는 그에게 어떤 불만도 표하지 않는 건 그런 이유가 컸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용철 전무이사가 상석에 다가서며 말했다.
“매일 보는 사이에 번거롭게 인사는 무슨. 자, 다들 앉으시죠.”
정용철 전무이사가 권하자 의과장들은 군소리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자리에 앉은 정용철 전무이사는 먼저 태수와 박성민을 바라봤다.
“화이트엔젤팀은 워크숍 잘 다녀오셨다고요?”
“네. 어제 보고드린 대로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박 고문님은 개인적으로 좋은 소식도 들려오던데요.”
정용철 전무이사의 말에 박성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 그거야 저에게 매우 뜻 깊고 좋은 일이지만, 그걸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낯이 간지럽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그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시죠.”
“뭘 또 따로 얘기를……. 그냥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되는 건데요. 제가 뭐, 대단한 일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조금…….”
박성민은 의과장들의 시선에 긴장했는지 말에 두서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용철 전무이사가 알아줘서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의과장들은 다들 궁금한 표정이었지만 별 내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정용철 전무이사는 의과장들에게도 두루두루 인사를 건넸다.
한차례 밝은 분위기가 지나간 후였다.
정용철 전무이사가 다소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
“일단 좋은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요.”
“네.”
태수와 박성민을 포함한 의과장들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평소 이렇게까지 소집하는 경우가 드문 탓이다.
의아한 그들의 시선을 느낀 정용철 전무이사가 말했다.
“앞서 공지해 드린 내용입니다만, 오늘 병원장님이 병원에 오실 겁니다.”
“언제 오실 예정이시랍니까?”
박남일 외과장이 묻자 다들 궁금했는지 정용철 전무이사의 답을 기다렸다.
정용철 전무이사도 시간 끌지 않고 대답했다.
“곧 오실 때가 됐네요.”
“네?”
“이사장님과 조식을 함께 드신 후에 병원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조식 장소까지는 당연히 제가 안내해 드렸고요.”
그 얘기에 다들 궁금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서 어떤 분이셨습니까?”
“제가 백 마디 해 드리는 것보다 직접 만나시는 게 아무래도 빠르겠죠.”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의과장들은 정말 궁금한지 질문이 계속되었다.
신임 병원장, 아니 외국에서 오랫동안 볼일을 마치고 이제야 돌아온 병원장이 도대체 누군지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정용철 전무이사는 빙긋 미소만 지었다.
“섭섭하네요. 전 오늘 오후부터 당장 그룹 일에 더 치중해야 할 거 같습니다.”
“비서실장도 겸하고 계시잖습니까?”
“그래도 여러분 얼굴을 자주 못 보는 게 참 슬픈데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벌써부터 병원장님만 궁금해하시는 거 같습니다.”
정용철 전무이사가 못내 섭섭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다들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석정현 이사장이 건재한 이상 정용철 전무이사 또한 그 위치가 확고한 탓이다.
하지만 정용철 전무이사는 의과장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였다.
“그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내려가야죠.”
참다 못한 비뇨기과장이 빠르게 말하자 모두가 동조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의견이 맞아떨어지자 의과장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용철 전무이사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자그마한 미소를 짓고는 같이 행동했다.
물론 의과장들의 틈바구니에는 태수와 박성민도 함께였다.
모두가 병원 현관으로 나왔다
지나는 의료진들은 의과장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 인사를 하거나, 아니면 저 멀리서부터 뒤로 돌아갔다.
병원내에서 의과장들과 마주하기도 쉽지 않았고, 또 이렇게 몰려 있는 모습은 처음 본 탓이다.
주변의 시선은 관계없이 의과장들은 병원 정문을 보며 기다렸다.
정용철 전무이사는 의과장들 뒤에 서서 빙글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궁금해진 태수가 다가가 물었다.
“병원장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전무이사님 얼굴에 기대감이 떠오르는지 궁금하네요.”
“내 대답은 한결같아. 직접 보면 알겠지.”
“힌트도 없습니까?”
“남자라는 정도. 하하.”
정용철 전무이사는 평소 즐기지 않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병원장이 어떤 사람이기에 그가 저러는지 태수는 더 궁금해질 뿐이었다.
그때였다.
“저기 오시는 거 같은데.”
누군가의 목소리에 태수가 시선을 돌려 봤다.
석정현 이사장이 타고 다니는 고급 세단이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차는 과장들이 몰려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끼익.
차가 멈추고 뒷문이 열리자 석정현 이사장이 천천히 내려 과장들을 바라봤다.
“이 늙은이 출근했다고 반겨 주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병원장님과 식사를 하시고 같이 오신다고…….”
“아아, 중간에 볼일이 생겼다고 오후에나 들어온다고 하더군.”
“…….”
의과장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맥이 쭉 빠진 표정들이었다.
석정현 이사장은 그런 의과장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왜, 나 혼자 와서 실망스럽나?”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요.”
“일단 오전 일과부터 시작해. 아마 병원장도 이런 번잡스러움이 싫어서 조용히 오려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네.”
석정현 이사장의 말에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이 의과장들이 좌우로 비켜섰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가던 석정현 이사장은 태수와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
“잘 다녀왔나?”
“죽여줬습니다.”
“그래. 푹 쉬고 온 얼굴이야.”
“더 파이팅 하겠습니다.”
태수가 낮고 강하게 말하자 석정현 이사장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어 옆에 있는 박성민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후, 정용철 전무이사의 안내를 받아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석정현 이사장이 모습을 감춘 순간이었다.
옆에 서 있던 박성민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난 저분이랑 눈만 마주치면 진공상태가 되는 거 같다니까. 숨이 안 쉬어져.”
“그만큼 카리스마가 엄청나신 분이니까요.”
“그런데 왜 날 보고 웃으셨지? 내가 좀 잘생기고, 남들이 보기에도 대견한 일들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볼 정도는 아닌데.”
박성민의 말투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왔다.
주말 사이 간을 졸였던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서 입이 모터를 단 듯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태수가 말했다.
“아마 좋은 소식을 들으셔서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니, 내가 여자 만나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어떻게 다들 관심을 가져 주시냐고.”
“보건복지부 차관 딸이라서 그렇겠죠.”
“그건 또 그러네. 그래도 예림이는 절대 병원과 관련된 일에 끼워 넣지 않을 거야. 그건 내가 절대로 용납 못한다고.”
박성민이 굳은 결심을 보이자 태수가 말했다.
“그럴 분들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걸 빼면 나에게 그렇게 웃어 주실 이유가 없잖아.”
“잘생겨서 그랬나 봅니다.”
태수가 수더분하게 대답한 순간 박성민의 어깨가 쫙 펴졌다.
“그렇지. 내가 내 입으로 말해도 당당할 정도로 생기긴 했잖아. 음하하!”
박성민이 크게 웃는 사이였다. 의과장들도 그사이 몇 마디 나눴는지 슬슬 흩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올라갑니다.”
“같이 갑시다.”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병원장 얼굴을 보지 못해서 김이 새는 표정들이었다.
태수와 박성민은 일단 들어가는 의과장들에게 인사부터 했다.
“수고하십시오.”
“고생하세요.”
그렇게 인사하던 중이었다.
삐용삐용!
구급차 소리에 태수와 박성민의 부드럽던 눈빛이 바로 차갑게 변했다.
늘 듣는 소리였지만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변하는 눈빛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신속대응센터에는 수많은 의료진들이 있다.
하지만 태수와 박성민의 눈빛이 바로 마주쳤다.
끄덕.
고갯짓과 동시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신속대응센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한 환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과장들은 그렇게 멀어지는 태수와 박성민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와 박성민은 동시에 신속대응센터에 들어섰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 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두 의사의 등장을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건 그만큼 위중한 환자가 없단 뜻이기도 했다.
그때 김혁권과 김수진 간호사가 동시에 다가왔다.
“회의는 어쩌고 현관으로 들어옵니까?”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꼬여서요. 그보다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보다시피. 그렇게 숨넘어갈 환자는 없어요.”
“다행입니다. 선배, 이제 찢어지시죠.”
태수의 말에 박성민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럼 이따가 보자고.”
“수고하십시오.”
“너도. 김씨 아저씨는 수고하지 말고 옴팡지게 고생하시고. 갑니다.”
박성민은 덕담과 악담을 이어서 말한 후 바로 멀어져 갔다.
순간 타이밍을 놓친 김혁권이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도 돌아보도록 하죠.”
“그럽시다.”
김혁권이 분함을 누르고 간호사실 쪽으로 향했다.
의료 카트를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태수는 그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가까이 있는 환자부터 응급 진료를 시작했다.
의료 카트를 가져온 김혁권과 함께 진료를 이어 가던 중이었다.
신속대응센터 소속 간호사가 빠르게 다가와 태수를 찾았다.
“팀장님, 저기 환자 좀 봐주세요.”
“가시죠.”
태수가 바로 몸을 움직이자 간호사가 바짝 옆에 붙어 걸으며 말했다.
“70대 정도 되는 노인이신데,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오셨어요. 보호자는 없었고, 아직 제대로 접수도 안 된 거 같아요.”
“무슨 상황이 그렇게 애매모호합니까? 어디가 편찮으시다고 하시는데요?”
태수가 묻자 간호사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게 좀 애매해요. 배가 아프다고만 하시지, 어떻게 아프다는 말씀이 없으세요.”
“음.”
태수가 고민하는 사이 뒤에 바짝 따라오던 김혁권이 물었다.
“혹시 꾀병 아니야?”
“그럴 리가요.”
“전에 대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며. 멀쩡한데 CT 한번 찍어 보겠다고 괜히 아픈 척했던 환자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좋죠. 저희가 건강 상태를 확인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힐끔 쳐다보고는 자그마한 미소만 지었다.
대화하는 사이 태수는 환자에게 도착했다.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는 노인의 왜소한 체격에 연민이 느껴졌다.
태수는 일부러 소리 내며 다가가 노인에게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최태수입니다. 편찮으신 곳이 있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몸만 살짝 움찔거렸다.
태수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실례지만 조금 살펴봐야 하니까 몸을 좀 펴 주시겠습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흐음.”
노인은 못 이기는 척 슬쩍 반듯하게 누웠다.
그런데 한쪽 팔을 들어 얼굴에 올려 이목구비를 교묘하게 가렸다.
말도 한마디 없고, 계속 뭔가 피하려 하는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혹시 돈이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얼굴이 알려지면 곤란한 사람인가?
하지만 태수에게 중요한 건 그가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 그걸 확인하는 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