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430
01433 1433화
그 후 액상 지혈제를 건네며 김혁권에게 부탁했다.
“드레인.”
“여기.”
“니들홀더.”
“가능하겠어요?”
김혁권이 묻자 태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재촉했다.
“어서.”
“……일단 여기.”
“혁권 씨, 혹시 발열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태수가 드레인과 살을 같이 꿰매며 물었다.
손은 손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그리고 입도 따로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상당히 복잡하지만 환자의 상태와 현 상황이 주는 압박감에 어떻게든 해내고 있었다.
그때 김혁권이 말했다.
“핫팩을 2개 가지고 왔는데.”
“안 젖었어요?”
“비닐봉지 안에 넣어 놔서 젖진 않았어요. 그거라도?”
“빨리.”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하얀 봉지를 꺼내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는 송민규 쪽을 쳐다봤다.
“송 선생, 어때?”
“거의 다 들어갔습니다.”
“다 들어가면 바이탈부터 확인하고, 발을 뺄 수 있는지도 봐줘.”
“네.”
송민규는 단답 후엔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할 시간도 부족한지 수혈팩에서 피를 뽑아 환자에게 주입하는 걸 빠르게 반복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태수가 진지하게 쳐다봤다. 여기서 보건의를 하며 여러 일들을 많이 겪은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시선을 다시 돌린 태수는 드레인 끝을 바라봤다.
물과 같은 액체와 함께 피가 섞여 나왔다. 중간중간 불투명하고 끈적끈적한 액체도 흘러나왔다.
물, 피, 그리고 염증이었다.
이렇게 차가운 몸으로 버티고 있었으니 폐렴이 발생해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태수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아지자 가슴이 꽉 막혀 왔다.
그때였다.
“어, 캡틴!”
김혁권이 몸을 낮추며 빠르게 소리쳤다.
시선은 태수의 등 뒤.
즉, 바다라면?
태수의 등골이 오싹하게 식었다.
파도다.
태수는 얼른 몸을 낮추며 강주혁을 그대로 덮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태수의 등으로 엄청난 바닷물이 폭탄처럼 덮쳐 왔다.
푸악!
또 한 차례 파도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바위 사이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러고 난 뒤에는 온몸이 흠뻑 젖은 태수와 강주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수는 강주혁부터 확인했다.
“흐으으, 흐으. 쿨럭쿨럭.”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몸에 한기가 들어 간간이 기침을 했다.
그래도 태수가 흉부와 얼굴 쪽을 몸으로 감쌌기에 다행히 파도의 영향을 좀 덜 받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안도할 때는 아니었다.
“두 사람 괜찮아요?”
“그럭저럭.”
“전 괜찮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태수는 이어서 김혁권에게 물었다.
“핫팩은?”
“따뜻해지….고 있어요. 이런 염….병. 그런데 내 손…이 떨려.”
더운 나라에서 평생 살아온 김혁권에게 추운 날씨는 쥐약이었다.
한국에서 몇 년을 보냈는데도 몸은 아직 추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이은 파도 세례로 체온까지 낮아지니 더더욱 힘들어했다.
그래도 손을 털며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태수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혁권.
최소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는 아니다.
그거로 됐다.
“핫팩부터.”
“여기.”
김혁권이 하얀 봉지에 싸인 핫팩을 건넸다.
뜨겁진 않지만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태수는 옷의 지퍼를 내려 강주혁의 중격동, 그러니까 심장 위쪽에 핫팩을 위치시키고 다시 지퍼를 올렸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손으로 계속 핫팩을 눌러 자극했다.
체온이 내려가면 중격동 부근도 싸늘하게 식는다.
그 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기침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때 중격동을 따뜻하게 해 주면 기침이 줄어든다.
그리고 중격동이 따뜻해지면 자연적으로 폐와 심장에도 열이 전달된다.
그 신체 반응을 최대한 활용했다.
하지만 체온이 오르길 기다리며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그때였다.
“선배, 수혈팩 하나 주입 끝났습니다.”
“혁권 씨.”
태수가 부르자 김혁권은 어느새 자동 혈압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잠깐…… 잠깐만…… 됐어요. 혈압 조금 올라왔고, 맥박은 내려갔어.”
“체온은요?”
“아직 낮아.”
김혁권의 말에 태수가 머리를 굴렸다.
어찌 되었건 여기서 계속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파도 때문에 엄청난 위험을 계속 안고 있는 중이었다.
태수가 송민규에게 물었다.
“다리는 어떻게 낀 거야?”
“두 바위 틈에 맞물렸습니다.”
“바위를 밀 수 있나?”
태수가 묻자 송민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였다.
“끄응! 좀…… 움직여라!”
송민규가 악을 쓰며 밀었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체력만 빨리 소모될 뿐이었다.
태수가 얼른 송민규를 멈추게 했다.
“그만.”
“헉헉.”
“젠장. 어쩐다.”
그때 송민규가 태수에게 물었다.
“차로 당기면 안 될까요?”
“여기까지 들어올 차가 있어?”
“아니요. 밧줄을 걸어서 당기는 겁니다.”
그 소리에 태수가 박수를 쳤다.
짝!
“그렇지! 그거 좋은 생각이네.”
태수가 반색하며 대답하자 송민규가 슬쩍 콧등을 쓸었다.
“흠흠.”
“자식이. 지금 그럴 틈이 어디 있어? 저기 가서 소리쳐 알리고 준비부터 해.”
“알겠습니다!”
송민규가 힘차게 대답하고 바로 갯바위를 뛰어넘으며 도로 쪽으로 다가갔다.
“이장님. 트럭이 필요합니다.”
송민규가 크게 소리쳐 상황을 알리자 마을 사람들이 알아들었는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수와 김혁권은 환자를 신경 썼다.
“목 깁스 가져온 거 있죠?”
“있습니다. 여기!”
김혁권이 바로 찾아 건네자 태수는 그걸 강주혁의 목에 둘렀다.
“후우, 훅훅.”
숨소리가 조금 커졌지만 호흡은 가빠졌다.
폐가 공기를 좀 더 많이 들이마시게 되면서 오히려 산소를 더욱 많이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 외에도 태수는 팔에도 부목을 댔다.
흉부는 골절이 많이 일어났지만 드레인을 설치해 둔 상태라 조일 수가 없었다.
응급처치를 이어 가며 태수는 틈이 나는 대로 바다를 힐끔거렸다.
성난 파도가 문제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지금까지는 단지 커다란 파도가 한 번씩 일행들을 덮쳤을 뿐이다. 하지만 삼각파도의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사람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질 정도로 강한 압력이 덮친다. 심할 때는 철도 구부릴 수 있을 정도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바다에 쓸려 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태수도 초곡리에서 갯바위 낚시를 하다 바닷물에 갇혀서 마을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태수는 바짝 긴장했다.
그사이 송민규가 끝에 올가미를 맨 밧줄을 들고 왔다.
“준비됐답니다!”
밧줄 끝을 보니 1톤 트럭이 준비되어 있고, 무게를 늘리기 위해 사람들도 올라타 있었다.
이 정도면 될지도 모른다.
태수가 그 생각을 하며 송민규에게 말했다.
“밧줄 걸고 당겨.”
“네!”
송민규는 얼른 맞물린 2개의 바위 중 한 곳에 올가미를 걸었다. 그리고 도로 쪽을 향해 크게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그와 동시였다.
엔진음이 크게 들리더니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그극!
뭔가가 긁히는 소리.
이건 바위가 움직여야 나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태수와 김혁권, 송민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윽, 으으윽!”
강주혁의 얼굴이 격하게 일그러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왜?
태수가 바위를 본 순간 기겁하며 소리쳤다.
“멈춰!”
“왜?”
“바위가 틀어져서 더 압박하고 있다고!”
태수가 급하게 고함치자 송민규가 얼른 소리치며 손을 연거푸 흔들었다.
“안 돼요! 하지 마요!”
고함 소리를 들은 건지, 아니면 사인을 본 건지 밧줄은 곧 느슨하게 풀렸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까으으으.”
잘못 비틀어진 바위 때문에 강주혁의 고통이 더 가중됐다.
저쪽으로 당겨서 문제가 된다면 반대쪽으로 당겨야 한다.
사람의 힘으로?
그건 턱도 없는 소리였다.
강주혁은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입술까지 깨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폐에서도 염증과 피가 더 많이 흘러나왔다.
온몸으로 없는 힘을 쥐어짜며 고통을 이겨 내려다 보니 무리가 가고 있었다.
태수의 표정이 아찔하게 변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헬기?
하지만 의료 헬기로는 턱도 없었다.
바위를 당길 힘이 있더라도 기장의 실력이 따라 주질 못했다.
이런 강풍에 호버링을 할 수 없다는데 초저공비행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놈의 생선이 뭐라고!”
퍽!
태수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갯바위를 내리쳤다.
이젠 어떤 응급처치도 의미가 없었다.
갯바위 사이에서 다리부터 빼내야 했다.
그 방법이 아예 보이지 않자 태수도 서서히 절망이란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조한 그 순간에도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현재까지 소요된 시간은 5분 정도였다. 그 짧은 시간에 파도와 맞서며 가장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태수와 김혁권, 송민규의 얼굴엔 초조함이 가득했다.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대가를 환자가 받고 있어서였다.
“끄윽, 으으으.”
틀어진 갯바위에 끼인 다리가 압박을 받는지 강주혁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었다.
고통을 느낀다는 건 감각이 살아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그걸 아주 확실하게 확인하고 있었지만, 환자의 고통을 즐겁게 바라볼 사람은 최소한 여기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틀어진 갯바위가 조금씩 더 기울어지고 있단 점이었다.
그그극. 그극.
바위가 틀어지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처음엔 반가웠던 그 소리가 지금은 끔찍했다.
“그으으.”
강주혁의 신음 소리도 더욱 깊어졌다.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방법이 없나?
그 생각이 들자 구급대가 떠올랐다.
태수는 재빨리 하늘을 둘러봤지만 공허할 정도로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왜 안 와.”
“하여간 사람 죽어 간다는데 허가, 허락, 승인…… 지랄이야.”
“어떻게 해야 하나?”
“뭘 어떻게 합니까? 우리 힘으로는 턱도 없는데.”
김혁권은 냉정한 얼굴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계속 강주혁을 향해 있었다.
등 뒤에서 거센 강풍이 불고, 또 갯바위에 부서진 바닷물이 몸을 적시고 있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바라봤다.
김혁권은 자신과 강주혁이 오버랩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가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김혁권의 어머니는 인도에서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여자 혼자 몸으로 도시로 나와 김혁권에게 영어를 가르쳤을 만큼 헌신적이라 들었다.
김혁권 또한 어머니가 몸져누웠을 때 어떤 일이든 해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그 시절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자책감에 돈에 집착하게 됐단 이야기도 들었다.
항상 그가 돈, 돈, 돈 해도 태수가 별말하지 않는 건 그런 이유였다.
그때 자신의 모습과 강주혁이 다르지 않단 걸 김혁권은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생각을 계속 이어 가지 못했다.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극.
또 한 번 바위에서 소리가 나자 태수가 외쳤다.
“일단 밀어!”
“바위를 밀라고?”
“빨리!”
태수가 소리치자 송민규가 바로 바위에 붙어 반대쪽으로 밀었다.
두 사람이 용을 쓰는 사이 김혁권도 다가와 같이 밀었다.
“이게…… 이게 밀리냐고. 으아악!”
“끄응!”
“아자자잣!”
세 사람이 소리까지 질러 가며 힘껏 밀었다.
얼굴이 벌게지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두 팔과 양다리에 가해지는 압박은 금방이라도 찌부러질 것처럼 거대했다.
상관없었다.
버텨야 했다.
“더, 더!”
“으아악!”
김혁권은 아예 등으로 받치고 온 힘을 다해 밀었다. 그런데도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태수도 알지만 지금은 이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노력에 비해 결과는 역시 예상대로였다. 비틀어지는 바위를 버티지도 못했다.
“아, 안 돼…….”
그극.
“끄으윽.”
바위는 계속 틀어져 다리를 압박했고, 강주혁은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황에서도 그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태수의 표정이 더욱 굳어져 갈 무렵이었다.
저 멀리서 마을 사람들 중 몇 명이 갯바위로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