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431
01434 1434화
각자 허리에 줄을 맨 모습이었다.
부서지는 파도가 얼굴에 흩뿌려지고, 강풍이 그들의 발길을 막았다.
자세를 낮추더라도 발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보건의인 조강묵도 있었다. 가장 젊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 또한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악착같이 다가왔다.
그사이 앞서 다가오는 마을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기다려!”
“힘 빼지 말고 잠깐 기다리라고!”
그들도 보다 못했는지 이런 날씨의 갯바위를 성큼성큼 걸어왔다. 얼마나 위험한지 다들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에 태수는 추웠던 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저들과 함께라면 바위를 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바닷사람들이라 그런지 갯바위를 넘어오는 속도가 신속했다.
어느새 다가온 그들 중 이장이 태수를 슬쩍 뒤로 밀며 말했다.
다가오는 사이 이미 온몸이 젖었지만, 그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너무도 뜨거웠다.
“이런 건 우리가 할 테니까 강 씨 좀 계속 봐줘요.”
“여긴 위험합니다.”
“그러는 선생님들은 안 위험하시고?”
“…….”
“그러니까 같이 하자고요. 빨리 구해서 나가야지. 뭐 해? 다들 자세부터 잡아!”
이장이 외치는 사이 마을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허리에 묶은 밧줄의 중간은 근처의 다른 갯바위에 걸어 최소한의 안전도 확보했다.
그러는 사이 태수는 다시 강주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강주혁 씨, 강주혁 씨, 제 말 들리세요?”
“까으으으.”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얼굴엔 고통만이 가득했다.
점점 참기 힘든 고통에 이를 물려 했다.
태수는 지체하지 않고 가슴에 멘 가방 지퍼를 열었다. 그 속에서 압박붕대를 꺼낸 태수는 얼른 그의 입에 물렸다.
이미 이를 꽉 다물고 있는 상황이라 그 간단한 일조차도 쉽지 않았다.
“벌려요……. 끄응. 벌리라고요.”
태수는 강주혁의 아래턱을 양쪽에서 강하게 압박하며 부탁했다.
강한 압박에 턱에서 고통을 느낀 강주혁이 살짝 입을 벌리자 태수가 압박붕대를 쑤셔 넣듯이 집어넣었다.
이제야 좀 안심이 됐다.
“후. 됐다.”
“이 작은 거 하나도 쉽지 않네요.”
“그보다 바이탈은요?”
“맥박하고 혈압은 최악은 아니에요. 다리하고 날씨, 체온이 최악이지.”
김혁권의 대답에 태수가 빠르게 눈을 굴렸다.
“체온은요?”
“중증 저체온증 정도.”
“……최후의 방법도 고려해야 할 거 같습니다.”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절단?”
“저도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5분 내에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미친! 이 양반들아, 빨리 바위부터 밀어!”
김혁권은 소리 지르는 걸로 부족했는지 얼른 박차듯이 뛰어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위를 밀었다.
태수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다.
어머니를 보필해야 하고, 남은 그의 삶이 있는데 한쪽 다리를 잃게 할 순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때 태수의 귀에 마을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나, 둘……. 끙!”
“밀어. 더, 더 밀어!”
“인…… 간아, 말할 시간에…… 힘이나 더 써!”
다들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고, 인상도 잔뜩 썼다. 그런데도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버티고 있었다.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현상 유지만 할 뿐, 밀어내진 못했다.
그때였다.
강주혁의 목울대가 갑자기 크게 부풀며 기침이 시작됐다.
“끄으으, 커억. 쿨럭쿨럭.”
입을 벌리자 물린 압박붕대가 떨어져 나갔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기침과 함께 혈액이 튀어나오고 있단 점이었다.
폐와 간에 이상이 생기면 객혈이 발생하는 게 이상하진 않았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객혈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앞서 연결한 드레인을 살펴봤다. 출혈의 양이 전보다 늘어났다.
눈빛이 흔들릴 시간조차 없었다.
태수는 냉정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얼굴에 가득한 물기를 훔쳐 내며 송민규에게 물었다.
“송 선생, 수혈팩 몇 개 더 있지?”
“2팩입니다.”
“일단 밀어 넣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객혈은…….”
“넌 그거에만 집중해.”
태수가 낮고 강하게 말하자 송민규가 멈칫하더니 손을 움직였다.
그사이 태수는 김혁권을 불렀다.
“혁권 씨, 이쪽으로.”
“끄으응…… 기다…….”
“이쪽이 더 중요합니다.”
태수의 단호한 말에 김혁권이 얼른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후욱후욱. 그래서 뭐 어쩌자고?”
“송 선생한테 지혈제, 리도카인을 전달해 주세요. 그리고 저한테는 바늘이 긴 빈 주사기 하나 주시고요.”
태수의 말에 양손으로 가슴에 멘 가방 속을 뒤적이던 김혁권이 멈칫했다.
“빈 주사기는 또 왜요?”
“간에 피가 쌓였을 겁니다.”
“계속 몸에 구멍 내도 돼?”
“아니요. 안 됩니다. 강풍에 파도까지 계속 몰아치는 이 상황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요.”
태수의 목소리엔 착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안 되는 거 아는데도 해야 한다.
그게 환자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더 유지시키고, 혈액을 순환시킬 방법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태수의 눈빛에 담긴 그 무거운 마음을 읽었는지 김혁권이 빈 주사기를 건네며 물었다.
“119에 전화해 볼까?”
“그러세요. 그리고 조 선생님.”
태수가 부르자 보건의인 조강묵이 바위를 밀다 얼른 다가왔다. 어느새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바닷물을 훔쳐 내지도 않고 태수에게 바로 물었다.
“네. 뭐 시키실 일이라도……?”
“전공이?”
“신경외과입니다.”
“진짜 잘됐네. 다리 쪽을 한 번 더 확인해 줘요.”
“알겠습니다.”
조강묵은 지체 없이 바위에 낀 다리 쪽으로 몸을 낮췄다.
앳된 얼굴을 보니 전문의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건의를 자원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전문의였기에 태수는 믿고 맡겼다.
지금은 조금의 의학 지식만 있어도 상대가 누구든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였다.
각자에게 할 일을 정해 준 태수도 손을 움직였다.
간은 흉부와 복부에 걸쳐 우측으로 치우쳐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가장 커다란 장기 중 하나였기에 재고 따지고 할 것도 없었다.
태수는 긴 주삿바늘을 오른쪽 드레인 아래쪽에 깊게 찔러 갔다.
바늘이 점점 파고들었지만 강주혁은 다리에서 번지는 고통에 이쪽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차라리 그게 잘된 일이다.
바늘이 거의 다 들어갈 즈음이었다.
찌이익.
주사기 뒷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붉고 진득진득한 느낌의 피였다.
말 그대로 죽은피다.
태수가 빼내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거였다.
피가 흘러나오는데도 태수는 주삿바늘을 완전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늘 끝에 연결된 플라스틱만 보였다.
태수는 거기서 안심하지 않았다.
몸이 크게 흔들릴 때 바늘이 움직일 수 있기에, 가슴에 멘 가방에서 니들홀더와 봉합사를 꺼내 단단히 봉합시켰다.
빠른 태수의 처치가 끝날 무렵이었다. 그사이 통화를 마친 김혁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했다는데요.”
“그런데 왜 안 온답니까?”
“나도 모르지. 꽤 됐다고 곧 도착할 거란 얘기만 들었습니다.”
“미치겠네.”
태수의 입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사람의 체력은 유한하기에 언제까지 저들이 버틸 수 있을 거라 확신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자리를 뜰 순 없었다.
태수와 김혁권, 송민규와 조강묵까지 더해진 의료진들은 응급처치를 계속 이어 갔다.
마을 사람들은 얼굴이 뻘겋다 못해 꺼멓게 변해 가는 지금도 바위를 밀고 있었다.
촤악, 촤악.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잔파도들이 체온을 계속 빼앗아 갔고, 간혹 큰 파도들도 덮쳐 와 몸을 더욱 차갑게 식혔다.
태수는 갯바위에 올라선 지 1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체온이 떨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건강한 사람도 그런데 환자는 오죽할까.
그나마 비닐에 싸인 핫팩을 가슴에 대고 있어서 체온이 급속도록 저하되진 않았다.
하지만 치아노제(청색증)가 입술뿐만 아니라 얼굴로 번져 갔다. 손끝도 마찬가지로 피부가 파랗게 변색되고 있었다.
혈액순환이 좋지 않단 의미였다.
태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진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건가?
그 생각을 하며 환자의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조 선생님, 어떻습니까?”
“허벅지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거 같습니다. 신음소리가 줄어들었어요.”
“역시.”
“이대로 조금 더 진행되면 신경이 괴사됩니다. 그때는…….”
조강묵은 말꼬리를 흐리더니 결국 침묵했다.
태수도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더 말하지 못했다.
원치 않았지만 절단까지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늙고 병든 노모를 홀로 모시는 그가 다리까지 잃는다면…….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단 사실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태수가 거부한다 해도 그 시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참다못한 태수는 휴대폰을 들어 같이 온 헬기 기장에게 전화했다.
“저 최태수입니다.”
“네, 선생님.”
“정말 호버링 안 됩니까?”
“어후…… 죄송합니다. 이 날씨에는 안 됩니다.”
헬기 기장의 목소리도 축 가라앉았다.
태수는 갑갑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더 지체되면 이분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그 소리에 바위를 밀던 마을 사람들이 크게 동요했다.
“저, 저, 저, 절단이라니. 자른다는 거야?”
“안 돼. 그러면 안 된다고.”
“뭐 해, 이 사람들아! 더 밀어!”
“끄으응!”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힘든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더욱 강하게 바위를 밀었다.
그래도 버티는 게 전부였다.
태수는 그들의 외침을 들으며 헬기 기장을 재촉했다.
“들으셨죠? 여기 상황이 이렇단 말입니다.”
“진짜 무립니다. 초저고도로 비행할 날씨가 아니란 말입니다. 제 실력으로는 호버링도 못할뿐더러 헬기가 바다에 전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습니까? 기장님도 화이트엔젤 팀원이잖아요. 우리를 태워다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항상 함께 뛰어다니셨잖습니까!”
태수는 애원했다.
그렇게라도 방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건 헬기 기장도 알고 있는지 쉽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제발 승낙해라.
제발!
태수가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기장님!”
“진짜 전 못합니다. 제 실력으론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의 목소리에서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태수는 턱 막히는 숨을 억지로 내뱉으며 말했다.
“알겠…… 습니다. 나중에 다시 통화하시죠.”
“119 구급대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쪽 기장들은 훈련받는 기준부터가 다르니까요.”
“도착을 해야 말이죠. 일단 끊습니다.”
태수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 태수의 얼굴은 굳어지다 못해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꽈악.
태수는 휴대폰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하지만 헬기 기장을 원망하는 건 아니었다.
태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걸 억지로 하며 시간을 끌지 않아 준 걸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다.
그때 김혁권이 다가와 물었다.
“안 된…… 답니까?”
“네.”
“젠장.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김혁권도 헬기 기장을 원망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 게 문제였다.
태수의 생각이 이어졌다.
진짜 방법이 없다면…….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방법만큼은 생각하기 싫었다.
그래도 이젠 어쩔 수 없었다.
꽉!
태수는 눈까지 질끈 감고 말했다.
“준비하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혁권 씨도 상황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태수는 짜증을 토하듯이 말을 뱉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