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579
01582 1582화
자리에 앉아 가볍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서로에 대한 고마움에 대해 한 번 더 말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길다면 긴 대화가 끝나자 소방 본부장이 물었다.
“오늘은 여기서 좀 쉬시고 올라가시는 겁니까?”
“아니요. 아시겠지만 저희 선배님이 오셔서요. 그 편에 같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좀 쉬었다가 가시지요. 여기 당진에도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서요.”
태수의 말에 소방 본부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다르십니다.”
“다르기는요.”
“아닙니다. 제가 그 뉴스 보고 구호품 전달이 지체된 데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뉴스라니요?”
태수와 정민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소방 본부장이 아차 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죠. 이제 나오셔서 그 뉴스를 못 보셨겠습니다.”
“세상과 단절되다 보니.”
“전 아주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의사가 정말 멋진 직업이란 걸 한 번 더 느꼈고요.”
“…….”
태수와 정민수는 눈만 끔뻑거렸다.
소방 본부장은 그런 두 사람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먼 길 가실 분들을 이렇게 잡아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닌 거 같고요.”
“아닙니다. 차 잘 마셨고, 만남은 더 반가웠습니다.”
“저도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연이 이렇게 끝나지 않을 것에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무슨…….”
“하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올라가시면 아시겠죠.”
소방 본부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태수와 정민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소방 본부를 나선 태수가 고깃집으로 걸어가며 정민수에게 물었다.
“뉴스는 뭔 소리고, 다시 만날 거란 건 뭔 소리야?”
“나 너랑 같이 있었어.”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무슨 얘긴지.”
“일단 가서 고기 먹고, 휴대폰부터 다시 개통하자.”
정민수의 말에 태수의 얼굴이 급속도로 구겨졌다.
“내 할부……. 새로 산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인생이 그런 거지.”
툭툭.
정민수가 위로했지만 태수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나란히 걸어 고깃집에 도착하자 박성민과 김혁권, 송현미 간호사가 손을 들어 반겼다. 이미 푸짐하게 차려 놓고 먹고 있는 모습이 살짝 얄밉기도 했다.
“여기!”
“네네, 갑니다.”
“사장님, 여기 고기 좋은 놈으로 팍팍 가져다주세요!”
박성민의 외침이 그나마 조금은 섭섭함을 가시게 했다.
곧 자리에 앉자 박성민이 물었다.
“그래서 뭔 얘기가 오갔어?”
“서로 고맙단 말이죠.”
“그 본부장 아저씨 생각보다 괜찮던데.”
“현장부터 시작해서 그 자리까지 오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선배, 뉴스 얘기는 뭡니까?”
태수가 묻자 정민수도 같이 궁금하게 바라봤다.
그때 고깃집 사장이 고기를 내려놓다가 태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혹시, 혹시 최태수 선생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악수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차차, 손이 더럽네.”
슥슥.
고깃집 사장이 얼른 배에 손을 문지르고 공손히 내밀자 태수는 벌떡 일어나 고개 숙여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최태수입니다.”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멋지십니다. 또 감사합니다.”
“제가 뭘……. 좌우간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네, 그러셔야죠. 아차차. 기다려 보세요. 내가 좋은 놈으로 서비스 드릴게. 아이고, 어제 꿈자리가 좋더니 이런 귀인이 오실 줄이야.”
고깃집 사장이 수선을 떨며 멀어져 가자 태수는 더욱 황당했다.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일행을 바라보니 반응이 두 갈래로 나눠져 있었다.
정민수와 김혁권은 의아한 표정이었고, 박성민과 송현미 간호사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뭔가 알고 있단 느낌에 태수가 얼른 박성민에게 물었다.
“선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큭큭.”
“웃지만 마시고 좀 알려 주세요.”
태수가 얼른 부탁했지만 박성민은 짐짓 점잖은 얼굴로 뜸을 들였다.
“문명의 일을 미개한 너희들이 어찌 알꼬.”
“거, 더럽게 사람 궁금하게 하네. 빨리 불어 봐.”
김혁권도 거들었으나 박성민은 꿋꿋했다.
“김씨 아저씨, 이거 내가 사는 고기야. 이렇게 사람 홀대해도 되는 거야?”
“내가 사 먹을게. 그러니까 빨리 말해.”
김혁권이 재촉하자 박성민이 질질 끌면서 약을 올렸다.
“송 간호사님도 다 아는 얘긴데.”
“이럴 땐 그쪽이 더 편해. 갈굴 수 있어서.”
김혁권의 말에 박성민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하여간. 뭐 됐고, 길게 말할 거 있나. 직접 보여 주면 되는 건데.”
“뭘 보여 주십니까?”
“아주 재밌는 거.”
그 말과 동시에 박성민은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조작하더니 태수에게 내밀었다. 정민수가 옆에 바짝 붙어 왔지만 태수는 휴대폰 액정만 바라봤다.
휴대폰에선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동영상을 가만히 바라보던 태수와 정민수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여기 그 섬이잖아?”
“등대에 숙소……. 어어? 저거 너하고 나 아니야?”
“진짜네.”
둘이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박성민이 다가와 휴대폰을 다시 조작했다.
“아차차! 미안. 소리를 꺼 놨다. 이건 볼륨을 올려야 제 맛이거든.”
몇 번 조작하자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투다다다!
우렁찬 헬기 소리와 함께 태수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시는 곳이 바로 응급 환자가 있는 당진시 소재 무인도입니다. 태풍의 여파로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였다.
그럼 구조 헬기에 방송용 카메라가?
그 순간 태수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설마?’
태수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이에도 동영상은 계속 재생됐다.
좀 더 섬으로 접근하니 자신과 정민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김성국 기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기 두 사람이 바로 그 의사들입니다. 그간 여러 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린 최태수, 정민수 선생입니다.
거기까지 본 태수는 다음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그대로 재생됐다.
정민수는 신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기 나다. 나 숙소로 들어간다. 저때가 김 간호사님이 환자 안 좋다고 했을 때지?”
“…….”
“나 들어가자마자 너 뭐냐? 손을 정신없이 흔드네. 빨리 내리라고 아주 협박을 했네.”
정민수의 말이 계속되자 태수가 한마디를 했다.
“그냥 봐.”
“신기하잖아.”
“난 아찔하다.”
“왜?”
“그냥 봐.”
태수가 반복해서 말하자 정민수는 삐쭉거리며 동영상을 계속 감상했다.
그사이 태수가 힐끔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박성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는 또 다른 휴대폰으로 같은 동영상을 감상 중이었다.
그때 편집된 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냐고요? 진짜 어떠냐고 물으신 겁니까? 미쳐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죽기 딱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도대체가 말입니다, 뭐 이런 빌어먹을 날씨가 다 있습니까! 진짜 진저리가 납니다.
-그걸 언제 기다리냐고요. 이미 비장에 농양이 생겨서 부풀어 오르고 있습니다. 그거 그냥 놔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요.
-없는 게 한두 갭니까? 먹을 게 없어서 저하고 민수는 하루 종일 굶었습니다. 발전기가 멈춰서 전기도 안 들어와요!
자신의 적나라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태수는 몸이 오그라드는 걸 느꼈다.
“뭐야, 이 악마적인 편집은.”
“태수야, 너 완전 막나가는 의사 같아. 멋지다.”
“너 그러다 죽는다. 입 다물고 봐라.”
“자식이. 괜히 나한테 성질이야.”
그러면서도 정민수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동영상을 시청했다.
이때 정민수는 숙소에서 수혈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보지 못한 상황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는 동영상을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귀로 들리는 것까지 막진 못했다.
그때 태수의 목소리가 한 번 더 크게 식당을 울렸다.
-배고파 뒤지겠습니다!
그 소리에 정민수가 빵 터졌다.
“푸하하! 그렇지. 이때 진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는데.”
“야야, 꺼라. 정신 사납다.”
“거의 다 봤어. 기다려 봐.”
정민수가 아예 돌아앉으며 태수의 접근을 차단했다.
태수는 이젠 듣기도 싫었다.
그때 김성국 기자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헬기도 접근하지 못하는 강풍 속에서, 모든 게 부족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환자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의사들이 있어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목소리에 태수가 딴죽을 걸었다.
“마무리만 좋게 하면 뭐하냐고.”
“맞는 말이긴 하지. 기사 댓글 장난 아닌데?”
“겁나 욕하겠지. 말도 안 되는 인터뷰가 시작부터 끝까지 거친 말이었으니.”
태수는 예상하는 것도 아찔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정민수의 말은 달랐다.
“저 두 사람 멋지다. 의사가 저래야지. 최태수가 원래 유명했는데 저 정돈지 몰랐다. 기타 등등.”
“뭐?”
“물론 부정적인 댓글도 있지. 방송이 장난이냐. 의사라면 당연히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몇 개 없어.”
“…….”
태수가 가만히 있자 박성민이 차분하게 말했다.
“반응이 아주 좋아. 다들 너희들이 고생한 거 십분 이해하고 공감하더라.”
“좋다고 해야 합니까?”
“안 좋을 건 없잖아. 덕분에 여러 문제도 쉽게 쉽게 풀려 가고 있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수의 질문이 이어질 때였다. 고깃집 사장이 다가와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많이 시장하시죠? 이거 우리 집에서 최고 맛있는 부위로 가져온 거니까 실컷 드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세상에. 어쩜 그리 고생을……. 참 대단하신 분들이야.”
고깃집 사장이 멀어져 가자 박성민이 배를 잡고 웃었다.
“큭큭! 많이 시장하시죠? 하하하.”
“졸지에 밥도 못 먹고 다니는 놈이 돼 버렸네요.”
“좋게 생각해. 이 얼마나 풍요로운 식사가 되었느냔 말이야. 누군가의 절절한 배고픈 외침 때문에.”
박성민의 농담에 태수가 정색했다.
“선배.”
“하하하.”
박성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수를 놀리기에 바빴다.
방금 무슨 중요한 말이 오간 것 같은데.
그 생각을 할 때 정민수가 얼른 태수에게 말했다.
“이거 비싼 거야.”
“굽자. 배고파 보이는 이미지라도 탈피하게.”
“그래야지.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고맙다. 덕분에 이렇게 얻어먹고.”
“……너까지 왜 그러냐?”
“하하하.”
정민수는 호쾌하게 웃으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김혁권이 놀려 올 때였다. 태수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반대편을 바라본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실소를 참기 바빠졌다. 송현미 간호사가 동영상을 핑계로 또 한 번 김혁권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이때 기절하셔서 이 상황을 전혀 모르신다고요?”
“그게 그러니까…….”
“할 말 있어요? 더 해 봐요.”
“미안하다고. 그래도 그 덕에 환자 살았다니까.”
김혁권이 항변했지만 송현미 간호사의 날카로운 눈빛에 얼른 몸을 움츠렸다.
송현미 간호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단 걸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태수는 웃을 기분이 아니었지만, 저 두 사람 덕에 미소를 지었다.
은은하게 미소 짓던 태수는 번뜩 떠오른 생각에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부모님과 누나, 매형, 애들도 방송을 봤을 터였다. 속사포처럼 쏟아질 잔소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귀가 아파 오는 것 같았다.
그때 정민수가 말했다.
“고기 다 구웠어. 안 먹어?”
“그래. 일단 먹자. 잔소리도 식후가 좋지.”
태수는 걱정은 지우고 우선 젓가락부터 다시 들었다.
배부른 식사가 끝난 후였다. 고깃집을 나선 박성민의 차는 서울이 아닌 당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끼익.
차를 멈춘 박성민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태수는 남고, 다들 조심히 서울로 올라가시고.”
그 소리에 태수가 손에 들고 있던 새로운 휴대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얼굴은 식구들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