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86
01989 1989화
삼각파도와 같은 현상이다.
AED를 통해 심장을 자극한 전기가 체내에 남아 있었고, 그때 제세동기의 충격이 이어졌다.
체내에서 세기와 파형이 다른 전기가 부딪쳐 엄청난 충격을 만들어 냈다.
연속 충격을 받은 고선미의 몸이 병상에 축 늘어진 후였다.
일순간 모든 의료진이 멈췄다.
시선은?
ECG로 향해 있었다.
삐이-
심정지 소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울리는 중이었다.
그걸 본 모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것도 안 된다면?
그땐 정말 방법이 없다.
1초…… 2초…….
무겁게 시간이 흘러갔다.
5초나 지났다.
그런데 역시 반응이 없었다.
모두의 눈빛에 절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때였다.
턱!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려와다.
그 순간이었다.
일자로 길게 이어지던 ECG의 그래프가 꿈틀거렸다.
삐빅. 삑.
그래프가 움직였다.
한 번이 아니라 또 움직이고, 이어서 움직였다.
기계 소리도 불규칙하지만 길게 이어져 들려오지 않았다.
기뻤다.
그런데 그보다 얼떨떨함이 먼저였다.
뭐지?
다들 눈을 의심했다.
5초란 시간은 심장이 반응할 시간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던 심장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는 게 이상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병상으로 돌아갔다.
병상 상황을 파악한 순간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태수의 주먹이 고선미의 가슴 한가운데에 꽂혀 있던 탓이다.
“내려…… 쳤어?”
“미친…… 놈.”
“곱게 미쳤…… 네요.”
어렵게 한마디씩 하는 목소리에 놀라움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사이 태수는 주먹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새끼손가락 쪽을 가볍게 주무르며 말했다.
“뛰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후우.”
태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숨소리에는 안도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태수도 지금 한 행동은 모험이었다.
과격한 방법이란 걸 부정할 순 없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성공이다.
삐비빅. 삐비빅.
ECG의 소리가 다시 격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거듭된 충격에 심장이 일시적으로 뛰는 거였다.
이미 약해지고 병든 심장은 다시 멈춰 가고 있었다.
서영우가 재빨리 서둘렀다.
“마그네슘…… 도 없으면 어쩌자고! 일단 이뇨제 추가했어.”
심장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한 약이다.
도뇨관은 연결되어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문제는 서영우의 짜증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의료 카트에 지원품이 가득해도 정작 필요한 약이 부족했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일반 병동에서 사용하는 약과 수술실에서 사용되는 약이 달랐다.
서영우는 수술 마취 전문 의사다. 그런 그의 눈에 카트에 수북한 약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것들이었다.
그건 태수의 생각도 같았다.
“심장이 너무 약해졌습니다.”
“음.”
“바로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태수가 강하게 말한 순간 박성민이 끼어들었다.
“내가 딴죽 걸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닌데, 인공심폐기 준비만 최소 30분이야. 수술실이 있을지도 모르고.”
“…….”
“그래. 니가 그거 모르고 하는 말이겠냐. 일단 어떻게든 끼워 맞춰야지.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순 없잖아!”
박성민이 거칠게 소리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빠라밤.
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금 이 순간에 누가?
어떤 전화도 받기 싫었다.
무음으로 바꾸려 휴대폰을 꺼낸 순간 발신자를 본 태수가 멈칫했다.
정민수의 연락이었다.
태수의 시선이 휴대폰 액정을 바라본 그 짧은 순간에도 상황은 악화됐다.
삐빅, 삐빅.
ECG의 소리가 또다시 심상치 않게 변했다.
뛰던 심장이 다시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간호사님.”
태수는 휴대폰을 이선정 간호사에게 건네고 다시 재빨리 병상 위로 올라갔다.
고선미의 몸에 올라탄 순간 곧장 CPR을 다시 시작했다.
“하나, 둘…….”
그 순간 휴대폰을 받아 든 이선정 간호사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일단 받아요?”
“스피커폰으로.”
“잠시만요.”
그녀가 휴대폰을 조작한 후였다.
-태수냐? 거기 상황 어때?
정민수의 목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그에 대한 대답은 태수가 아닌 김혁권이 대신 했다.
“캡틴 지금 CPR 중입니다.”
-이런!
“짜증 낼 시간도 아까우니까 죄다 데리고 수술실로 달리쇼!”
김혁권이 크게 소리친 직후 박성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수술실 열고, 인공심폐기 준비하고……. 10분 내에 끝낼 수 있지?”
-…….
“정민수, 이 새끼가 미쳤나. 대답 안 해?”
-……네네. 알겠습니다, 선배! 1분이면 세팅 끝납니다.
정민수의 목소리에 박성민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뭐, 뭐가 1분 내에 끝나?”
-여기 2번 수술실입니다.
“어?”
-병실에서 찾는단 소리 듣고 혹시나 해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미치게 기특한 새끼!”
박성민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그건 CPR을 규칙적으로 이어 가던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정민수의 임기응변은……..
더욱 격하게 칭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태수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이 인원으로 병상을 수술실로 옮기려면?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정민수의 목소리가 또 한 번 크게 들려왔다.
-곧 도착할 겁니다.
“또 뭐가?”
박성민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묻고, 태수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은 귀를 의심했다.
도착?
그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벌컥!
거칠게 병실 문이 열리더니 박성주를 시작으로 흉부외과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저희가 도울 일이…….”
박성주가 기세 좋게 말하려다 병실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레지던트들에게 향했다.
다들 자다가 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태수와 김혁권은 아니었다.
정민수라면 이 정도 예측이 충분히 가능했다.
태수는 CPR을 이어 가면서 바로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했다.
“박 선생, 좀 도와줄 수 있나?”
“도우러 온 겁니다. 뭐든지 시켜 주십시오!”
“일단 병상 고정 장치부터 풀자고.”
부탁하는 태수의 목소리는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그건 상당한 무게감으로 작용했다.
태수가 서둘렀다면 모두 허둥지둥했을 게 분명했다.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으니 그 누구도 정신없이 행동하지 않았다.
박성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희 4명, 각각 달라붙어서 고정 장치부터 풀어.”
“네.”
우르르!
레지던트들이 비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 사이 태수는 박성주를 쳐다봤다.
“박 선생, 병상 좀 밀어 봤나?”
“여기서 엘리베이터까지 병상 밀고 달린 게 100번은 족히 넘을 겁니다.”
“그럼 뭐 하고 있어? 그 운전 솜씨 좀 보여 줘야지.”
“바로 갑니다.”
박성주는 긴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사이에도 태수는 CPR을 멈추지 않았다.
약해진 심장에 힘을 더해 주는 정도였기에 그렇게 강도가 세진 않았다.
하지만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거란 생각은 없었다.
심장 박동이 약해지고 있는 게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그에 맞춰 압박도 강해져야 했다.
주변에서 레지던트들이 바지런히 움직이자 태수가 의료진들에게 말했다.
“이 간호사님 빼고 모두 수술실로 내려가세요.”
“이 간호사님은?”
“엠부백 짜야죠.”
태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선정 간호사가 여자라서 가벼웠다. 거기다가 솜씨 또한 확실하단 걸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질 상황이 아니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박성민이 급한 성격대로 제일 먼저 움직였다.
“그럼 나 먼저 가서 준비할게!”
타다닥!
그가 멀어져 가자 서영우가 뒤를 따랐다.
“나도 갈게.”
“도착과 동시에 바로 마취 들어가 주십시오!”
“물론!”
대답하는 서영우의 목소리가 이미 멀게 들려왔다.
그 뒤를 이어 김혁권이 움직였다.
“나도 갑니다.”
“민수보고 집도 준비하라고 하시고, 최 간호사한테 잠깐 어시스던트 간호사 해 달라고 하십시오.”
“닥터 박이 아니라?”
“선배보다 민수가 경험이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수는 명확하게 포지션을 지정했다.
김혁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 밖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는 인공호흡기를 엠부백으로 바꿨다. 그 과정에서 박성주가 인튜베이션(기도삽관)을 진행했다.
쑤욱. 쑤욱.
엠부백을 몇 번 누른 후 이선정 간호사가 말했다.
“교체했어요.”
“지금부터 15회 압박 시작합니다. 하나, 둘…….”
태수는 일부러 숫자를 세며 압박을 이어 갔다.
30회 압박은 심정지나 심부전에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환자의 심장이 약해진 상태이기에 그보다는 좀 더 유들이 있는 처치가 필요했다.
태수가 압박하는 짧은 시간 동안 주변이 달라졌다.
이선정 간호사도 병상에 올라탔다.
환자의 머리 쪽에 무릎을 최대한 벌려 꿇고 엠부백을 짤 수 있게 대기했다.
그사이 고정 장치가 풀린 병상은 태수의 누르는 힘에 앞뒤로 약간씩 움직였다.
그걸 느끼는 순간 박성주가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열다섯! 후! 박 선생, 잘 부탁해.”
“네. 출발합니다. 밀어!”
박성주가 소리치자 레지던트들이 일제히 힘을 줬다.
그리고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환자와 함께 올라탄 병상이 병실 밖으로 향했다.
복도로 나온 태수는 또 한 번 놀랐다.
병실에 들어오지 않은 레지던트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들의 역할은 병상이 수월하게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할 수 있게 길을 터 주는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잠시만요, 응급 환자입니다!”
“길 좀 터 주세요!”
그들의 고함 소리에 힐끔 돌아본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양옆으로 비켜 줬다.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환자들은 주변에서 도와주기도 했다.
병상에 태수가 올라탄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빛이 애처롭게 변했다.
“아이고, 저걸 어째.”
“그래도 최 선생이 데리고 가네. 무사할 거야.”
안타까운 목소리가 지나가는 곳곳에서 들려왔다.
레지던트들의 통제와 사람들의 양해로 병상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
그 거리가 상당했다.
병원이 넓어 이동 거리도 길었다.
힘을 분산해도 숨이 차오르는 건 한순간이었다.
“헉헉!”
레지던트들은 단내 나는 숨을 내뱉으면서도 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때였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카메라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동하는 병상의 모습을 촬영했다.
CPR에 집중한 태수는 그거까진 볼 수 없었다.
신기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 이미 한 대가 문을 열고 대기 중이었다.
안에는 가장 어린 레지던트가 올라타 있었다.
드르륵.
병상이 엘리베이터에 안착한 순간이었다.
박성주를 비롯한 레지던트들이 일제히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헉헉.”
다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뭐…….”
태수가 물으려는 사이 이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점점 좁아지던 틈이 완전히 닫히던 순간이었다.
“최태수 선배님 파이팅! 응급의료대 파이팅!”
박성주를 비롯한 레지던트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반응할 틈도 없이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속에는?
병상에 올라탄 세 사람밖에 없었다.
수술실이 있는 장소까지는 4개 층을 내려가야 했다.
그때 CPR을 하던 태수와 엠부백을 짜던 이선정 간호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뭐죠?”
“뭘까요?”
서로 물었지만 아는 게 없어 질문만 반복됐다.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느낌이 듦과 동시였다.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좌우로 열렸다.
거기 서 있는 건?
표진수, 장문석을 포함한 외과 레지던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