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65
02768 2768화
스윽.
가볍게 마른 눈을 문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쪽 눈만 가볍게 훔쳐내는 모습은 가슴을 짠하게 했다.
찡한 장면이다.
그러나 태수 입장에서는 그런 감정 변화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검사 보류에 대한 이유를 듣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태수는 내색하지 않고 대화를 좀 더 빠르게 진행했다.
“믿으셨단 말씀이네요.”
“어떻게 최 팀장님을 의심하겠어요.”
태수는 우선 장단을 맞춰 답했다.
“저희를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팀장님.”
반전 어린 그녀의 목소리에 미소 짓던 태수가 멈칫했다.
자신을 향한 눈빛이 너무도 복잡했다.
참고 인내해 온 이유를 이제야 말하는 걸까?
태수는 궁금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보채지 않고 차분하게 권했다.
“네, 말씀하세요.”
“우리 진호요, 진호가 팀장님을 참 좋아해요.”
“음, 그렇다면 굉장히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아마도요.”
“툭 터놓고 하죠.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태수가 넌지시 물었다.
하는 말과 다르게 지금도 불안한 눈빛이 계속 신경 쓰인 탓이다.
그때 명주희가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곧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바쁘신 거 아는데, 진호랑 조금만 놀아 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만 놀겠습니까, 앞으로 자주 얼굴 보고 많이 대화하려면 실컷 놀아야죠.”
“아니요. 그냥 오늘 저녁만 좀 부탁드릴게요.”
꽈악.
부탁과 동시에 명주희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강하게 쥐었다.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 그래도 검사를 보류시키셨다고 유 선생에게 들었는데, 그건 또 왜 그러신 겁니까?”
“……없어서요.”
너무 작은 앞의 말에 태수가 귀를 더 활짝 열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요.”
그녀의 답과 동시였다.
번뜩!
태수의 눈빛이 거칠게 변하며 표정까지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진호 차트 보셨다면서요. 그럼 아시잖아요.”
“뭘요? 도대체 뭘 아냐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 지금 진짜 화가 나려고 합니다. 진심으로요.”
내뱉는 태수의 목소리가 어느새 차가워졌다.
보호자가, 그것도 부모가 아픈 자식을 병원에서 빼내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게 눈앞에 펼쳐졌으니 태수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파르르.
무릎에 올려 둔 두 손까지도 가늘게 떨릴 정도였다.
태수의 눈빛이 너무 강렬한 걸까?
명주희는 마주한 시선을 슬며시 옆으로 돌렸다.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던 태수는 낮고 차갑게 다시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
“어머님, 다시 여쭙겠습니다. 제가 뭘 안다는 겁니까?”
“진호의 병이요. 그리고…… 그 병이 얼마나 끔찍한지도요.”
단호하게 말하는 목소리와 달리 눈빛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병이 끔찍하다?
물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진처럼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을 경우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암’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진 불치 혹은 난치병이라면 모를까, 골형성부전증은 알려졌다고 보기 어려운 병이다.
명주희의 표현 방법은 흘려 넘기기엔 상당히 예민한 문제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세히 들었다면 말이 된다.
스윽.
태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에 자리한 고석찬 지부장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마주 본 그가 가까이 다가와 속삭여 말했다.
“골형성부전증이 어떤 병인지는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땐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죠?”
“글쎄요. 듣는 제가 더 답답합니다.”
고석찬 지부장은 괜한 소리가 아닌지 표정부터 굳어져 있었다. 그도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바뀐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태수는 다시 앞에 있는 부부를 향해 물었다.
“왜 끔찍한 병이라고 알고 계신 겁니까?”
“팀장님, 우리 아이 일을…….”
명주희가 울컥했는지 대뜸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순간 황정수가 손을 잡았다.
“여보, 내가 말할게. 그게 나을 거 같아.”
“그…….”
“내가 할게.”
황정수는 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고개까지 저었다.
스윽.
명주희는 아예 시선을 반대로 돌려 버렸다.
“후우으…….”
가늘게 내뱉는 숨소리가 요동쳤다. 그렇게 해서라도 격한 마음을 억누르려 노력하는 모습이 차라리 애잔했다.
그녀가 조용해진 후였다.
황정수는 태수가 아닌 고석찬 지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간 저희에게 너무 좋은 말씀만 해 주셨던 거 같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지요?”
“지부장님이 다녀가시고 며칠 후 저녁에 진호가 장난치며 뛰다가 식탁에 부딪쳤습니다. 팔이 아프대서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고요.”
“아니, 그럼…….”
고석찬 지부장이 놀라 눈을 크게 뜬 순간, 태수가 슬쩍 막아섰다.
“지부장님.”
“흐음.”
그의 입을 다물게 한 태수는 황정수에게 권했다.
“계속 말씀하시죠.”
“진호 뼈가 약한 건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다고 먼저 말했고요.”
“그럼 그쪽에서 어디서 진료 받았는지 묻거나 자체적으로 검사를 했을 테죠.”
태수가 당연시 그려지는 상황을 먼저 언급하자 황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말했다.
“팀장님 말씀대로 검사를 하자고 하더군요.”
“어디서 진료를 받았는지 먼저 묻는 게 아니고요?”
태수의 눈빛이 약간 가늘어졌지만 황정수는 눈치채지 못하고 이어서 답했다.
“물었던 거 같긴 한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아무튼 그 병원에 계속 계셨단 거네요.”
“네. 짐작하신 대로 입원실로 옮기고 검사를 했고, 진호의 상태가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단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요?”
태수는 남은 얘기가 있음을 직감하고 물었다.
그 예상이 옳았는지 황정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입은 바로 열리지 않았다.
“후우.”
마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듯이 깊은 한숨을 먼저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태수의 눈빛은 반대로 깊어졌다.
침묵은 다행히도 길지 않았다.
곧 마음을 추슬렀는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인 황정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 병원에선 더 이상의 치료는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지들이 입원시켜 놓고 나가라고 했다고요?”
“저희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했는데, 꼴이 이래서 그랬는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군요.”
황정수는 쓰게 미소 지었다.
옷이고 머리고 모두 깔끔하지만 삶이 여유로워 보이진 않았다.
태수가 미간을 와락 좁혔다.
“뭐라고요? 그걸 그냥 놔두셨……. 흐음.”
억지로 짜증을 누르자 황정수가 허망한 눈빛으로 말했다.
“세상이 그렇더군요. 사람이 울고 있으면 달래는 게 아니라 뺨을 한 대 올려붙이더라고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글쎄요. 아무튼 그 병원에서 추천서를 써 줄 테니 날이 밝는 대로 다른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래도 그 정도는 해 줬단 얼굴로 태수를 바라봤다.
그러나 태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정말 생각해 주고 걱정해 줬다면 그 자리에서 이송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병.
희귀난치병인 데다 중증이니 자신들이 손을 쓰기 겁이 났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건 병원비였다.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보여서 퇴원을 권한 거였다.
그게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순 없었다.
퇴원 후 보호자들이 한 번 더 상의할 시간을 갖게 하기에 좋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아쉬움이 앞섰다.
그 병원도 환자를 내보내는 게 마음이 좋지만은 않을 터였다.
의사도, 간호사도 사람이다. 이익만 생각하며 혹은 이력에 안 좋단 이유만으로 환자를 내보내진 않는다.
그렇게 위험한 환자를 어쩔 수 없이 내보내고 속 시원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모든 의료진들은 그런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한다.
사람이라면 겉으론 몰라도 속으론 그랬다.
태수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선 대화부터 이어 갔다.
“퇴원 후 다음 날 추천 받은 병원으로 가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맞습니다.”
“혹시 그쪽에서도 검사를 하자고 했습니까?”
“몇 가지가 빠졌다면서 추가적으로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도 똑같이 고개를 젓더군요.”
“혹시 또 다른 병원을 추천해 줬습니까?”
그 질문을 건네는 태수의 눈빛이 다시 가늘어졌다.
한 번 추천하는 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지만, 또다시 다른 병원을 추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태수의 억측인지 황정수는 고개를 저었다.
“추천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냥 나가시라고 했단 겁니까?”
“그건 아니고요. 여기요. 혹시 몰라 가져왔는데…….”
부스럭.
품을 뒤적인 황정수는 구겨지다 못해 손때로 누렇게 변색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태수가 슬쩍 펼쳐봤다.
그 속엔 10여 개의 병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대형 병원 혹은 대학 병원들이었고, 연성대학병원, 충효대학병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이름 높은 병원들이 대다수였다.
위에서부터 빨간 줄이 쳐져 있었다.
그 빨간 줄의 의미는 누구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터였다.
쭉 내려다보던 태수가 멈칫했다.
10여 개의 병원들 중 마지막에 위치한 4개 병원은 어떤 표시도 없었다.
그 병원들의 이름이 눈에 꽉 차게 들어왔다.
-정희의료원…… 성호종합병원.
확인 후 태수는 황정수를 바라봤다.
그는 어느새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찾아가다 보니까…… 또 성호종합병원이 집에서 멀기도 하고…….”
“왜 저희 병원에 먼저 오지 않으셨는지 따질 생각 없습니다.”
“…….”
“아무튼 여기 모든 병원들을 모두 방문하셨다고요?”
“그랬습니다. 모두, 모두……. 미안하단 말밖에 듣진 못했지만요.”
황정수는 거기까지 말한 후 잠시 입을 닫았다.
시선은 다시 테이블로 향해 있었고, 두 손은 바지를 찢을 듯 잡아 비틀고 있었다.
답답할 것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태수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계속 새롭게 검사를 하셨습니까?”
“네.”
“계속 검사를 했다고요?”
태수가 반복해 묻는 순간이었다.
번뜩!
테이블을 향하고 있던 황정수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마음 속 천불이 그대로 눈빛으로 쏘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강렬한지 태수도 저 눈빛만큼은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때를 회상하는 황정수의 표정은 너무도 살벌했다.
그리고 내뱉는 목소리도 씹어뱉듯 시작됐다.
“똑같은 검사들만 반복했습니다. 골밀도 검사, 피부 생검으로 1형 콜라겐 이상 여부, 혈액검사로 유전적 돌연변이 추적, 초음파, 양수천자, 융모막 융모 표본 채취 등등!”
“……”
태수는 그저 침묵했다.
물론 병원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정확한 치료를 위해 치밀한 검사는 필수였다.
그러나.
한 가지가 태수 가슴을 건드렸다.
한편 황정수의 점점 격해지던 목소리가 결국 턱 막혔다.
“쓰읍, 흐으으.”
격분한 마음을 억누르는 숨소리까지.
이미 두 눈덩이는 뻘겋게 부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한 눈물을 억지로 되삼키고 있단 걸 충분히 짐작하고 남을 모습이었다.
한편, 태수는 상당히 놀랐다.
방금 황정수가 언급한 건 모두 골형성부전증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는 검사들이었다.
의사들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보편화된 병이 아니었다.
그걸 외울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같은 말을 반복해 들었단 걸까?
태수는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정수의 격정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태수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 물었다.
“그때마다 검사를 새로 하셨습니까?”
“흐우우……. 네.”
“뭐라고요? 이전 병원에서 EMR 자료를 CD로 구워 주지 않던가요?”
태수가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