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05
03109 3109화
태수는 하늘을 이렇게 날아 보고야 알게 된 게 있다.
자동차도 아니고 잠깐 착륙해서 기름 넣고 가자고 태연하게 말할 수 없단 거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해 태수가 묻기 전 김신우 대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치직. 전 인원에게 알린다. 아무래도 급기동이 많아 다음 포인트까지 속도 대비 거리 계산이 잘못된 거 같다.
태수는 바로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물었다.
“플랜 B가 있습니까?”
-치직. 우선 제가 공용 채널로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치직. 최대한 빨리 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독수리 둘, 잠시 편대 통제 부탁한다.
-치직. 라져.
휘이잉.
무전이 끝남과 동시에 2대의 전투기가 자리를 교대했다.
2선으로 내려온 김신우 대위의 어깨가 계속 움직이는 게 보였다.
무선 주파수를 조작하며 이쪽 상황을 알리는 모양이었다.
최악의 경우 비상착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었다.
최악의 상황만 염두에 두기엔 여기까지 온 거리와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 태수가 할 수 있는 건 인내하는 거였다.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시간이 갈수록 연료 잔량은 줄어들어 갔다.
김신우 대위의 손놀림은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어 날은 계속 밝단 점이었다.
그게 온전한 위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였다.
그때 김신우 대위의 무전이 들려왔다.
-치직. 전 인원에게 알립니다. 인근 기지에 착륙 허가는 받았는데, 공중 급유기 지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났지만 조종사들은 조용했다.
김신우 대위도 존대한 걸 보면 의료진들에게 알리기 위함일 터였다.
그래서 태수가 무전 버튼을 누르고 응했다.
“거기에 착륙하면 이륙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치직. 2시간 정도 걸립니다.
“네?”
-치직. 엔진이 충분히 식은 후에 재가동해야 합니다. 아니면 폭발할 위험이 너무 큽니다.
김신우 대위의 목소리가 어둡게 느껴졌다.
자책하는 모양이다.
태수는 탓하려 물은 게 아닌 터라 바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그쪽에서 전투기 지원은…… 힘들겠죠?”
-치직. 의향은 물어봤습니다만, 역시 어렵단 입장입니다.
“그래요. 당연히 그렇겠죠.”
태수는 그 부분에 불만은 없었다.
전투기 1대를 운용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더니, 그 말이 이젠 이해가 됐다.
그렇다고 2시간 동안 발이 묶일 순 없었다.
태수는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혹시 다음 포인트에서 이쪽으로 올 순 없답니까?”
-치직. 공중 급유기 속도로는 시간 내에 도착하기 어렵습니다.
“후우! 이거 참…….
-치직. 현재 지역이 미군 함대 활동 반경과 나토 함대 활동 반경의 중간입니다.
김신우 대위의 대답에 태수가 쓴 미소를 지었다.
“걸려도 애매한 곳에 걸렸네요.”
-치직. 제 불찰입니다. 급유 포인트 선정할 때 너무 마음이 앞섰습니다.
“제가 급하게 부탁한 게 화근이네요. 제가 더 죄송합니다.”
-치직. 사과는 나중으로 미루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저도 그건 찬성입니다만, 방법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질문하는 태수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지상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떠올렸을 터였다.
그런데 하늘 사정은 까막눈이었다.
지금 보이는 건 하늘과 구름이 전부였다.
어디를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태수도 처음이라 어떤 타개책도 제시할 수가 없었다.
태수는 처음으로 지금까지 날아온 시간을 확인했다.
대략 5시간 정도였다.
세계지도를 떠올려 보면 중동 지역을 피해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중일 터였다.
이러나저러나 중동이랑 궁합이 별로 맞지 않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주변을 더 탓할 여유는 없었다.
태수는 본격적으로 머리를 굴려 봤다.
2시간 정도 남았다면 7부 능선은 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남은 3부 능선만 정복하면 된다.
하지만…….
“흠.”
입 안 가득 씁쓸함이 몰려왔다.
전투기로 2시간이면 비행기는 이동 시간이 배로 필요할 터였다.
결국 한참 뒤처졌을 군 수송기와 도착 시간이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몰랐다.
이 난리를 치고 실패하면?
아찔한 기분이 든 태수의 시선이 다시 계기판으로 향했다.
역시 연료는 지금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패턴으로 보면 이쯤 공중 급유기가 등장했었다.
기대는 이제 지워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결론을 내린 태수가 김신우 대위에게 무전을 했다.
“김 대위님.”
-치직. 말씀하십시오.
“연락했단 기지 인근에 공항이 있답니까?”
-치직. 그리스까지 민항기로 이동하실 생각이십니까?
휙!
김신우 대위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고글까지 올린 그의 눈빛에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안색은 까끌까끌한 피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피곤함이 가득했다.
장거리 중에서도 초장거리 비행이다.
한시도 집중력을 흐릴 수 없는 편대장이라 중압감이 더했을 터였다.
그런 그에게 지금 상황에 대한 잘잘못을 말할 순 없었다.
탈칵.
처음으로 산소 호흡기를 벗은 태수는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한 자신을 내보였다.
그건 잠시였다.
휘이잉!
바람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 직접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태수는 다시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무전기로 대화를 이어 갔다.
“그렇게라도 이동은 해야 합니다.”
-치직. 그래도…….
“여기까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치직. 치직.
말은 들려오지 않고 무전기를 뗐다 붙이는 소리만 반복해 들려왔다.
김신우 대위의 착잡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무전기에 침묵이 감돌았다.
다들 현 상황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때 정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조종사분들, 너무 낙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 공중 급유기가……. 떴어, 떴다고!
돌변한 정민수의 목소리에 태수는 바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때 오른쪽 아래에서 공중 급유기가 상승하는 모습이 보였다.
측면에 새겨진 국적 마크는?
놀랍게도 러시아였다.
웬만한 일에도 무관심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에?
거리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이었다.
그때 김신우 대위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중동 쪽에 러시아 전초기지가 있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지원해 줄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제 허벅지 꼬집는데 안 아픕니다.”
-G슈트 자체 압력 때문일 겁니다.
“그러네요. 그럼 이게 꿈이 아니란 거죠?”
-꿈은 아닌데 의도를 확신하긴 아직 이른 거 같습니다.
역시 군인은 군인이었다.
공중 급유기만 등장했는데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때 이쪽 주파수를 맞췄는지 억센 영어 발음이 들려왔다.
-치직. 훈련 중 구조 신호를 듣고 왔다. 우리도 소식 들었다. 급유 지원을 위해 왔다.
딱딱하고 뚝뚝 끊어지는 영어다.
그런데 찾아온 뜻은 확실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 상황에 고민은 무슨.
모두가 생각이 같았는지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수도 조용했다.
곧 김신우 대위의 밝은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급유를 부탁한다. 그리고 귀국의 인도적 지원에 감사를 전한다.
-치직. 러시아인들의 피도 따뜻하다. 그럼 급유를 진행하겠다.
-치직. 오케이……. 편대, 급유 대형으로!
김신우 대위가 힘차게 외쳤다.
그 소리에 맞춰 다들 일사불란하게 속도를 줄이며 급유 준비에 들어갔다.
태수는 딱히 할 건 없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보던 태수의 입가에 쓴 미소가 지어졌다.
‘러시아까지 나설 정도라니.’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태수는 역시 쓴 미소를 짓는 게 전부였다.
머리 아픈 일들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된다.
태수 머릿속엔 카테리아나 밖에 없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도착할 때까지 제발 아무런 문제가 없길 소망했다.
2시간 후.
그리스의 항공기지에 어둠이 찾아왔다.
어둑어둑해지는 기지엔 모든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그리고.
휘이잉!
3대의 전투기들이 차례로 활주로에 내려섰다.
그 전투기들 측면엔 커다랗게 ‘대한민국’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전투기가 격납고에 가까워지자 불빛보다 밝은 플래시들이 쉴 새 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역시 기자들이었다.
중계 카메라 옆에서 각국의 언어로 실시간 중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금 한국에서 출발한 전투기들이 모두 활주로에 내렸습니다.”
“장장 1만 3천 킬로미터의 비행. 그들이 카테리아나를 찾아 날아온 거리입니다.”
“어둠처럼 꺼져 가던 소생의 희망이 다시 타오르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지금 닥터 최가 전투기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그 기자의 말대로 태수는 사다리를 타고 전투기에서 내리는 중이었다.
터덕.
몇 시간 만에 땅을 밟아서 그런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건 잠깐이었다.
다들 내려섰는지 모두 이쪽으로 다가왔다.
김혁권이 슬쩍 둘러보며 먼저 말했다.
“참 다들 얼굴 볼만합니다.”
“우리 얼굴은 나중에 보고, 먼저 봐야 할 사람부터 찾아가야죠.”
정민수가 마음 급하게 의욕을 보였다.
지금은 힘들고 무거운 몸 상태를 말할 때가 아니었다.
태수도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전에 한 가지는 마무리 짓고 가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태수가 김신우 대위를 바라봤다.
나란히 서 있던 터라 몸만 돌려도 가까이서 마주 선 모습이 됐다.
“…….”
“…….”
뜨거운 눈빛이 오갔다.
그리고.
꽈악!
서로 힘차게 끌어안았다.
전투기로 초장거리 이동을 한 사이다.
비무장에 직선코스로 날아온 게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짧고 굵게 오간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전우란 표현이 절대 어색하지 않았다.
김혁권도, 정민수도 각자 고생해 준 조종사와 뜨거운 인사를 나눴다.
포옹을 마친 후 김신우 대위가 감격 가득한 얼굴로 묵직하게 말했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제가 임무를 수행해야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최소한 뭐라도 하고 쓰러지면 욕은 덜 먹을 거 같습니다.”
“훗, 그건 그렇겠네요.”
김신우 대위는 수더분하게 답했다.
하지만 태수의 강인한 눈빛에서 농담이란 걸 직감하고 있었다.
태수 또한 웃자고 하는 말이었다.
이런 기쁨을 나누는 건 여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