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04
03108 3108화
최고 속도 마하 2.3.
시속으로 환산하면 대략 2,800킬로미터.
1시간에 2,800킬로미터를 날아간단 뜻이다.
사실 어느 정도 속도인지 도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빨라야 백 몇십 킬로미터에 적응되어 살다가 20배 이상의 속도로 단위가 달라졌다. 그걸 바로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같은 속도로 계속 날아가다보니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단 점이었다. 어느새 몸이 익숙하게 받아들인 탓이다.
‘이 정도는…….’
살짝 자신감도 들었다.
양쪽 날개에 하얗게 칠해진 색을 확인할 정도로 여유도 찾았다. 날개에 급하게 덧칠한 건 피아 식별용일 터였다.
그런데 그 여유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덜덜덜.
기체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치익. 편대에 전한다. 난기류 조우, 고도 상승하겠다.
-치직. 라져.
대답이 들려옴과 동시였다.
쿠오오!
전투기가 갑자기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방향과 속도가 급변함과 동시에 또다시 중력이 덮쳐 왔다.
태수가 할 수 있는 건?
숨 쉬는 일뿐이었다.
그나마 조금 적응한 터라 이륙 때 시달렸던 아득해진 느낌은 피할 수 있었다.
“푸훕! 푸훕!”
‘제길, 제길!’
마음속으로는 난기류에 대한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출격한 지 1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이다.
태수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전투기는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어떤 난관도 뚫고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구름을 피해 급선회하고, 기류 변화로 고도를 수시로 바꿔야 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멀미도 현기증도 없었다.
차라리 멀미가 속 편할 정도로 급작스러운 중력 변화에 몸이 지쳐 가고 있었다.
좀 더 날아가던 중 김신우 대위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팀장님, 견딜 만하십니까?
“죽겠습니다.”
-치직. 쉽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래도 어쩝니까. 가야죠.”
태수가 뚝심 있게 답할 순간이었다.
덜덜.
“또!”
태수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기류가 변했다.
어느새 그 느낌에 익숙해졌다.
너무 잦아서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김신우 대위의 목소리가 따갑게 들려왔다.
-치직. 편대 급강하!
-치직. 라져!
대답이 들림과 동시에 전투기가 아래로 곤두박질치듯 내려갔다.
지금 중력은 대략 6G다.
롤러코스터?
애교다.
여기서 타는 건 저승행 익스프레스였다.
“크으윽!”
태수는 몰려오는 중력과 엄청난 속도감에 치를 떨었다.
그때 정민수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처음 들려왔다.
-치직. 이 최태……. 푸훕! 푸훕!
-치직. 내려서……. 봅시다. 아으으!
김혁권까지 이를 북북 갈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알렸다.
지금 고통은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악에 받친 소리들은 태수 귀에 닿지 않았다.
태수도 지금은 제 한 몸 가누기 힘들었다.
간신히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다시는…….’
순간적인 마음이 아니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진심으로 빌었다.
끔찍한 롤러코스터를 몇 번을 탔는지 모른다.
얼마나 지났는지 이젠 감각도 없었다.
그때 김신우 대위의 목소리가 헬멧을 울렸다.
-치직. 알파 랑데부 포인트 접근 중. 편대 급유 속도 유지 바람.
-치직. 라져.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공군의 무전에 단답이 많은 이유를 태수는 절감하고 있었다.
‘떠들기는 쥐뿔.’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새삼 전투기 조종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했다.
그사이 전투기 속도가 줄어들었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대략 800킬로미터 정도였다.
공중 급유할 때 속도란 걸 앞서 김신우 대위가 설명해 줘서 알고 있었다.
기름 넣는데 시속 800킬로미터라니, 하늘에선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는 거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래쪽에서 커대한 수송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태수가 항공 쪽에 큰 관심이 없어서 수송기라고 했지, 사실 공중 급유기다.
기체에는 미해군 마크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미군 태평양함대 소속 공중 급유기였다. 전투기는 급유기 끝에 기다랗게 장대처럼 달린 ‘빔’으로 접근했다.
‘저걸로 어떻게?’
태수는 약간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참았다.
공중 급유는 상당히 민감한 작업이라 대화를 삼가하란 부탁을 받은 탓이다.
가까이 접근하자 빔 끝이 알아서 움직였다.
공중 급유기 내에 오퍼레이터가 직접 조종해 급유를 진행한다고 들었다.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신기했다.
그사이에도 빔은 콕피트 왼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잉, 지잉.
몇 번 움직이더니 곧 특수 주유구와 만났다.
계기판의 연료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김신우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첫 번째 급유는 성공입니다.
“실패도 합니까?”
-치직. 시간이 걸리지만 실패는 하지 않습니다. 성공이란 건 제한된 시간에 급유가 진행된단 의미입니다.
김신우 대위의 무전 소리가 한결 가벼웠다.
그만큼 긴장했었던 모양이다.
태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이게 첫 번째 급유라면 앞으로 대여섯 번 더 반복된단 말씀입니까?”
-치직. 맞습니다.
“진짜 제가 엄청난 짓을 하긴 했나 봅니다.”
태수의 자조적인 목소리에 김신우 대위의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그 말씀은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칼은 뽑았으니 달려야죠.”
-치직. 동감입니다. 아, 급유 끝났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빔이 주유구에서 분리됐다.
이어서 다른 전투기의 급유가 이어졌다.
잠시 후.
급유를 모두 마치자 헬멧에서 영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남은 비행도 안전을 빈다.
이어서 공중 급유기가 고도를 높였다.
그렇게 길을 열어 주자 김신우 대위의 다부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귀 함대의 도움에 감사하다……. 편대 전속 비행으로 전환.
쿠오오오, 쾅!
힘을 모아 일시에 폭발시키듯 전투기의 속도가 급상승했다.
그 충격도 역시 중력이 작용했다.
그러나 반복된 중력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이 정도는 이제 견딜 만했다.
최고 속도까지 올라간 전투기 속에서도 숨 쉬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건 태수만이 아니라 정민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 하면, 지금 그가 탑승한 전투기의 무전이 들려오고 있어서였다.
-치직. 정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치직. 이제 이 정도는 사뿐사뿐합니다.
그 소리에 태수가 얼른 무전 버튼을 눌러 구박했다.
“정 팀장,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이 씨가 된다니까.”
-치직. 내가 바람 방향을 바꾸는 것도 아닌데……. 그보다 최 팀장, 계기판 보여?
“갑자기 계기판은 왜?”
-치직. 이거 내 차보다 연비 안 좋나 봐. 벌써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정민수가 지적한 걸 태수도 확인했다.
정말 그랬다.
공중 급유 횟수가 잦은 이유는 비단 거리가 멀어서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전투기는 연비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그걸 눈에 담고 있을 때였다.
김혁권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치직. 다 같이 듣는 무전인데 좀 조심해야지 않습니까?
-김 간호사님, 그쪽은 안 그래요?
-치직. 여기라고 뭐 다릅니까? 누가 전투기 선물해 준다고 해도 기름 값 부담돼서 안 받을 거 같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끼어든 김혁권이 어느새 대화에 참여했다.
그만큼 다들 전투기에 익숙해졌단 의미일 터였다.
좋은 일이지만 태수가 슬쩍 주의를 줬다.
“정 팀장, 김 간사님, 이제 대화는 가급적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치직. 그럽시다.
-치직. 오케이.
두 사람이 대답하자 태수가 이번엔 조종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전운전……. 전투기에 참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안전하고 빠른 조종 부탁드립니다.
-치직. 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안전운전하란 말씀도 꼭 염두에 두겠습니다. 하하.
너무도 색다른 표현이라 김신우 대위의 큰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지금도 앞좌석 위로 솟은 그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다른 전투기 조종사들도 웃긴지 무전기 틈틈이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럴 만했다.
전투기인데 안전운전?
이런 상황이라 웃음이 나오는 거지, 작전이나 훈련 중에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말이었다.
웃음소리만큼이나 비행은 큰 문제없이 계속됐다.
전투기들은 몇 번의 공중 급유를 받아가며 순항했다.
별다른 이벤트도 없었다.
있다면 조종사들의 영어 실력이 엄청 유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태수가 나서 중간중간 급유할 때 오가는 의사소통에 조금씩 도움을 줬다.
그렇다고 지루한 여정은 절대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류를 피하려 전투기들은 몇 번이나 곡예비행을 해야 했다.
거기다 너무 장거리였다.
집중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 조금씩 지쳐 갔다.
어떤 훈련도 받지 않고 전투기에 오른 여파도 조금씩 나타났다.
“쓰읍.”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속이 아리다 못해 쓰린 느낌이었다.
무슨 문제일까?
생각은 그랬지만 지금은 자신을 진찰하기에도 썩 마땅한 상황이 아니었다.
중력과 압력이 달라 혈압계도 소용없을 듯했다.
그때 태수가 멈칫했다.
자신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던 탓이다.
‘…….’
태수가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다른 생각은 사치였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감각이 이상하단 생각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저 마지막까지 지금과 같은 이동이 계속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 소망은 갑자기 허물어졌다.
그건 정민수가 탑승한 전투기에서 들려온 무전 내용 탓이었다.
-치직. 여기는 독수리 둘. 독수리 하나, 응답 바람.
-치직. 여기는 독수리 하나. 독수리 둘, 말하라.
-치직. 연료 잔량 확인 바란다.
-치직. 갑자기 무슨……. 엇?
김신우 대위의 목소리에 놀람이 가득했다.
태수도 얼른 뒷좌석에서 확인했다.
연료 잔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세 번째 전투기 조종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치직. 독수리 삼의 연료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 같은 상황이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