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97
03201 3201화
“대략 20평으로 잡고……. 자재는요?”
“대충 개량 한옥 같은 목조 건물이면 좋겠단 생각은 했습니다.”
“마음 푸근해지는 분위기로는 좋죠. 음.”
그가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사이 석정현 회장이 태수에게 물었다.
“처음 시작을 어느 정도 규모로 보고 있나?”
“저도 아직 이론적으로만 가늠해서 감이 잘 안 옵니다.”
“만약 최 팀장의 생각대로 된다면?”
“……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사 기간이 더 중요할 거 같습니다.”
태수가 쓴 얼굴로 답했다.
그 부분은 태수가 잘 짚어 냈다.
석정현 회장도 인정하는지 고심하는 박해용 부사장을 재촉했다.
“부사장, 멀었나?”
“아닙니다. 1동을 기준으로 3주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석정현 회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수와 정용철 이사장도 같은 마음이었다.
3달이 3주로 단축된다?
기적에 가까운 일일 터였다.
그런데 박해용 부사장이 석정현 회장 앞에서 뻔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럼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가 궁금했다.
그 집중된 시선에도 박해용 부사장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평수라면 이동식 주택으로 지어도 됩니다.”
“컨테이너 하우스?”
“그건 옛날에, 하하……. 요즘은 자재들이 좋아져서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습니다.”
박해용 부사장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석정현 회장은 불쾌한 내색 없이 더 권했다.
“계속 얘기해 봐.”
“자재는 석조, 목조, 콘트리트도 가능하고 단열, 방풍 등등 모든 게 집과 똑같습니다.”
“오, 그런가?”
대형 공사만 했던 석정현 회장은 신세계인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박해용 부사장은 좀 더 핵심을 설명했다.
“똑같은 집이지만, 이동이 가능하단 이유로 이동식 주택이라고 명명하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기간을 줄일 수 있단 거지?”
“기초공사하는 동안 외부에서 집을 지으면 됩니다.”
그 소리에 석정현 회장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기초만 다져 놓으면 그 위에 집을 얹는단 뜻인 모양이야.”
“맞습니다. 건축 의뢰도 하고, 저희도 만들 수 있으니까 다섯 채가 동시에 지어진다고 봐야죠.”
“세상이 정말 많이 좋아졌어.”
석정현 회장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런데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우와, 그럴 수가 있네요.”
“최 팀장이 놀랄 때인가. 이제 어느 정도로 단지를 구성할지 의논해 봐야지.”
“크흠, 시작은 다섯 동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가운데 사랑방까지 포함해서요.”
그 소리에 석정현 회장이 흘겨봤다.
“통이 그리 작아서야…….”
“지어 놓고 무용지물이 되는 것보다 확실하게 검증하고 늘려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정 안 되면 보호자들 거처로 쓰면 돼.”
역시 석정현 회장의 배포는 남달랐다.
태수는 거기까지 생각 못한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활용도가 있다면 좀 더 늘려도 될 거 같습니다.”
태수가 답하자 석정현 회장은 박해용 부사장에게 물었다.
“음…… 부사장, 한 달 기준으로 최대 몇 동까지 되겠나?”
“현재 청주 주택단지 공사로 인원에 여유가 없습니다.”
“……그 문제가 있었지.”
석정현 회장은 미간을 강하게 좁혔다.
그때였다.
띠리릭.
전화벨이 울리자 정용철 이사장이 대신 받아 물었다.
“이사장입니다……. 잠시만요. 회장님, 혜민병원장과 도 사장이 도착했답니다.”
“음, 도 사장이 있었지.”
“안내해 주세요.”
정용철 이사장은 눈치 좋게 비서실에 대답했다.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석정현 회장이 바라보며 말했다.
“뒷얘기는 이사장이 이어 가도록 해.”
“제가요?”
“내가 있다고 언제까지 뒤에 있을 건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짧은 대화만으로도 깊은 의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다.
조금 전에 합류한 도강철 사장은 모든 얘기를 듣고 살짝 흥분된 모습이었다.
“멋집니다. 정말 훌륭한 계획입니다.”
“최 팀장 아이디어입니다.”
“태수, 아니 최 팀장 머리 좋은 건 다 알죠.”
도강철 사장이 띄워 주자 태수가 멋쩍어 했다.
“아닙니다. 무슨요.”
“빼기는. 크흠, 아무튼 본론부터 다시 정리합시다.”
도강철이 들뜬 얼굴로 주변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정용철 이사장을 신중한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이사장님 말씀은, 저희가 주택 공사를 잠깐 쉬고 이쪽으로 투입하란 말씀이신 거죠?”
“맞습니다.”
“언제부터 시작하면 됩니까?”
도강철 사장의 화끈한 질문에 정용철 이사장이 빙긋 미소 지었다.
“빠르면 좋죠.”
“방음벽 자재만 공수하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그때 태수가 뭔가 생각하다 얼른 물었다.
“저기, 목재는 핀란드 나무가 어떨까요?”
“핀란드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물량 확보가 될까?”
“제가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지만 연결, 연결하면 될 겁니다.”
“그럼 그쪽 나무가 좋긴 하지. 피스톤 팡팡 나온다며.”
도강철 사장이 시원하게 답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피스톤은 분명히 ‘피톤치드’일 터였다.
물론 그걸 굳이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알아들었으면 됐지, 굳이 무안하게 만들 생각이 없던 탓이다.
그래도 약간 어색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박종석 병원장이 석정현 회장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회장님.”
“말씀하십시오.”
“1동은 혜민병원에서 지을 수 있겠습니까?”
“음…… 이사장과 말씀하실 부분 같습니다.”
석정현 회장은 기분 좋은 얼굴로 정용철 이사장에게 미뤘다.
박종석 병원장도 대충 이유를 들은 터라 정용철 이사장을 바라봤다.
“이사장님,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거 거부하면 제가 나쁜 사람 될 거 같네요.”
“허락 감사합니다. 후우, 이제 좀 은혜 갚는 거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하하!”
박종석 병원장은 시원하게 웃었다.
그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 그에게 정용철 이사장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한별이 이송을 미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까지…….”
“그건 최 팀장하고 우리 막내 때문에 미룬 거고요. 이 녀석들 칭찬 많이 받으란 거고, 이건 별개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이제 와 얘기지만 희망병원이 없었다면 한별이도, 수정이도 없었을 겁니다.”
“…….”
다들 가만히 듣고 있자 박종석 병원장이 이어서 말했다.
“저희는 삶이란 기쁨을 얻었습니다만, 다 저희 같진 않잖습니까.”
“그렇죠.”
“그게 내심 마음에 걸렸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희망마을’에 한 손 보탠다고 하니까 마음이 좋아지네요.”
“희망마을이요?”
정용철 이사장이 묻자 박종석 병원장이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희망병원 뒤에 있는 마을이니까 희망마을이죠.”
“그거 좋네요. 희망마을. 최 팀장은 어때?”
그가 넘긴 바통을 받은 태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희망타운이니, 희망빌리지니 이런 영어보다 우리 한글로 하자고. 원래 좀 촌스러운 느낌이 정감 가는 거야.”
“맞습니다. 희망마을, 희망마을…….”
태수는 차분히 곱씹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말할수록 입에 착착 붙었다.
이후 소소한 대화가 오갔다.
두어 시간 후.
태수는 진료실로 돌아왔다.
지저분한 모습이 나갈 때와 똑같았다.
모두 파쇄기로 들어갈 내용이기에 태수는 종이를 밟으며 소파로 향했다.
풀썩.
소파에 길게 누운 태수의 입가에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희망마을…….”
잔잔한 목소리로 한 번 더 불러 봤다.
그리고 상상해 봤다.
환자들이 각자 행복한 얼굴로 자신의 마지막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상상이지만 그게 꼭 현실이 되길 바랐다.
그러던 태수의 미소가 점점 사라져 갔다.
왜 이 일에 이렇게 열정을 불태웠는지 스스로 찾아낸 탓이다.
턱.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천장에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려 봤다.
사비, 송민규, 카프레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곁을 떠나갔다.
그 모든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예고된 죽음은 누구도 없었다.
그 갑작스러운 이별이 계속 가슴에 남아 있었다.
하루만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단 몇 시간이라도 차분히 대화를 나눴더라면, 그럼 조금은 이 무거움이 덜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가 많았다.
희망마을을 주택으로 꾸미자고 제안한 일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충분히 이별의 시간을 갖길 희망했다.
떠나는 사람이 홀가분하게.
남은 사람이 미소 지을 수 있게.
그게 태수가 바라는 희망마을의 모습이었다.
며칠후.
태수와 SAS 팀원들이 진료실에 모였다.
전체 인원이 모인다고 생각하면 이 작은 진료실로는 턱도 없을 일이다. 하지만 수술에 들어간 팀원들이 많아 가능했다.
실제로 모인 이들은 몇 되지 않았다.
정민수, 이기준, 안성훈, 김명철, 그리고 송현미 간호과장과 이선정 간호팀장만 둘러앉아 있었다.
준비된 차부터 가볍게 한 모금씩 마셨다.
그때 태수의 귀에 자그마한 기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잉, 기잉.
그 소리에 찻잔을 내려놓은 태수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 쪽에 세워진 크고 높다란 방음벽이 보였다.
그걸 본 태수가 깜짝 놀랐다.
“아침에 조금 시끄럽더니, 그새 지어지는 거야?”
“우리나라 건설 속도는 세계 1위라잖아. 내일 되면 더 조용해질 거라고 하더라.”
“이보다 더?”
“응. 2중 방음벽을 쌓을 거래. 거기다 방진벽까지 만들어서 병원 쪽으로는 소음도 먼지도 안 날리겠단 각오까지 하셨대.”
정민수가 전해들은 얘기를 풀어놨다.
그러자 안성훈이 슬쩍 다른 소문을 보탰다.
“부지 매입은 이미 며칠 전에 진행된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문제가 있었네……. 그건 어떻게 된 건데?”
태수가 관심을 갖는 순간 안성훈이 빠르게 답했다.
“청일기업 이 회장 소유였던 모양입니다. 부지는 매매했지만, 중장비 임대 등 몇 가지를 전폭 지원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회장님 엄청 짠돌이라고 하는 거 같던데,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런데 많이 변했답니다. 직원들 복지도 상당히 신경 쓰고요. 전반적으로 청일기업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역시 사람은 베풀고 살아야 돼. 언젠가는 더 크게 돌아온다고.”
태수는 진중하게 소감을 말했다.
그때 시선을 마주한 이기준이 차갑게 물었다.
“난 왜?”
“지금 내가 한 말에 뭐 느끼는 거 없어?”
“잔소리.”
이기준의 삭막한 대답에 태수가 슬쩍 흘겨봤다.
“됐다. 됐고…… 차 마시자고 모인 건 아니니까 슬슬 시작합시다.”
태수가 슬쩍 분위기를 잡았다.
그 순간 모두 내려놓은 수첩과 펜부터 들었다.
착.
회의할 준비가 갖춰졌다.
그때 태수가 인상을 푹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세계의사협회가 그렇게 한가한 집단이야?”
“갑자기 왜 그래?”
“생각해 보니까 열 받잖아.”
“뭐가?”
“이게 뭔 생난리야.”
태수의 삐딱한 반응과 동시였다.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가 조용히 속삭였다.
“하여간 저 성격을 어쩌면 좋아.”
“왜 조용하나 싶었다니까.”
“선정아, 조용히 하자. 팀장님이 우리 째려본다.”
“흠흠.”
간호팀장들은 회의 중이라 슬쩍 태수의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