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253
Chapter 021화.
동시에 김혁권의 시선이 태수에게로 향했다.
‘뭔 일입니까?’
‘저도 모릅니다.’
눈빛이 빠르게 오갔다.
정말 태수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민수의 분위기가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김혁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쉽게 승낙했다.
“사준다는데 못 마실 건 없지.”
“가시……. 그런데 여기도 카페 같은 게 있습니까?”
“PKO에 PX 없을까. 갑시다.”
척, 척.
김혁권이 앞서 걸어가자 정민수가 그 뒤를 따랐다.
태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턱을 쓸었다.
“궁금한데.”
따라갈 분위기가 아니라서 간신히 참았다.
그것도 잠시였다.
태수는 얼른 몸을 돌렸다.
제임스 박사가 번뜩 떠오른 탓이다.
NGO캠프에 복귀했으면 당연히 가서 인사를 해야 옳았다.
돌아선 태수는 바로 복도를 따라 걸었다.
건물을 나선 태수는 곧장 의료캠프로 향했다.
의료캠프의 낮은 밤과 너무도 달랐다.
부산한 외침과 정신없는 움직임들이 바로 눈과 귀를 자극했다.
“거기, 빨리.”
“이쪽으로.”
드르륵.
그게 일상이다.
여기 환자들은 최소 중증 외상 환자였다.
각지로 파견 나간 의료팀이 역량 부족으로 보내온 환자들이니 그 증상도 범상치 않았다.
그 만큼 NGO캠프 의료진들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어떠한 집도의도 최소 종합병원 정예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그조차도 실력이 낮은 편에 속했다.
세계 우수의 병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권위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NGO 소속 의사들은 세계인지도 높은 의료행사나 세미나에 초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참석률은 민망할 정도로 저조했다.
그 만큼 이곳 의사들은 세상일에 무관심했다.
다들 돈과 명예가 아닌 사람을 택했다.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정신적인 풍요로움으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태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난 발끝도 못 따라가.”
솔직한 자기 마음을 읊조렸다.
태수가 깊게 감탄할 때였다.
뒤에서 느닷없이 한국어가 들려왔다.
“왜 그러고 있어?”
“어? 브레드.”
돌아본 태수 얼굴에 미소가 환하게 피어났다.
NGO의료캠프에서 처음 팀을 이뤘던 브레드 김이 밝은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는지 뽀얗던 살결이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다. 살도 조금 빠진 듯 턱선이 날렵해져 있었다.
바로 다가선 두 사람은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두 손을 맞잡았다.
꽉.
“무사했어.”
“브레드도요.”
짧게 오간 목소리에 남들과 다른 친근함이 가득 느껴졌다.
브레드 김은 재미교포 2세다.
국적만 미국이었지 부모님은 양친 모두 한국인이었다.
당연히 브레드 김에게도 한국인의 피가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태수에게 처음부터 호감과 호의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장소에서 친형처럼 챙겨주고 말벗을 해주는 브레드 김이 참으로 좋았다.
악수를 마친 브레드 김이 이어서 물었다.
“언제 왔어?”
“어젯밤에요.”
“고생 많았나 봐. 얼굴이 개판이야.”
그의 짓궂은 표현에 질세라 태수도 바로 응수했다.
“브레드는 선크림 떨어졌습니까? 얼굴이 구릿빛이 아니라 흙빛입니다.”
“이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느낌인데?”
“먼저 시작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진짜 어떻게 된 겁니까?”
태수는 장난을 그만하고 걱정을 보였다.
브레드 김은 쓴 얼굴로 답했다.
“갑자기 민간인 부상자 수십 명이 실려 왔었어.”
“갑자기요?”
“요즘 아주 난리야. 어느 지역에서 온 사람들인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밀려오는 날도 있었고.”
“저런.”
“하루하루 아주 살얼음판이야.”
“전쟁이 심해지고 있는 겁니까?”
태수가 묻자 브레드 김은 쓴 얼굴로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눈 감았다가 뜨면 밤이거든.”
“음. 하루 종일 졸고 계시면 곤란한데요.”
태수가 심각한 얼굴로 농담을 건넸다.
그 소리에 브레드 김이 어이가 없어 흘겨봤다.
“그래. 난 놀고먹느라 바빴다. 됐냐?”
“하하.”
“웃기는……. 하하.”
핀잔하던 브레드 김도 어느새 웃어 보였다.
반가운 사람과 오랜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났으니 기쁨이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던 태수가 번뜩 떠오른 인물에 대해 물었다.
“브레드, 제임스 박사님 여기 계십니까?”
“팀 원들하고 같이 네팔로 가신지 좀 됐어.”
“또요?”
“의료봉사 중인 지인이 SOS를 청한 모양이야. 도회지 쪽에 의료지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다수 발견됐다는 거 같아.”
브레드 김이 답하자 순간 태수의 머릿속에 성격 괄괄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SOS 청한 분이 혹시 닥터 토프락입니까?”
“음. 어, 맞아. 닥터 최도 알아?”
“ABC 출발지점인 포카라라는 마을에서 만났었거든요.”
“그랬구나. 어쩐지 유독 닥터 조나단이 출발할 때 좋아하던데, 예뻐해주시나?”
브레드 김이 이해가 안 간단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수는 또 한 번 머릿속에 반가운 얼굴을 떠올리며 답했다.
“닥터 토프락의 손녀가 기가 막힌 미인이라서 그럴걸요.”
“기가 막힐 정도로 미인이라고?”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모든 환자들이 닥터 데리야 얼굴 보느라 아픈줄도 모르던데요.”
태수의 추가 설명에 브레드 김이 눈을 끔뻑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미인인데 얼굴 보느라 아픈 걸 몰라?”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만나보세요.”
“나중에. 지금은 한눈팔 정신이 없어서.”
브레드 김이 현실을 말했다.
태수는 오랜만에 만남이라 그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제임스 박사님 수술팀에 들어가고 싶으시다더니, 그건 잘되고 있습니까?”
“머리 아파. 나만 그 자리를 노리는 게 아니잖아.”
“그렇겠죠.”
“그게 문제라고, 전 세계 NGO의사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제임스 박사님 호출만 기다리고 있어.”
“뭐, 박사님에게 배우려는 분들이 많긴 하겠죠.”
태수가 인정한 순간 브레드 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대로라면 10년이 지나도 막막할 거 같아.”
“저런.”
“그래서 다방면으로 머리 굴리고 있어. 눈에 띄면 선택될 확률도 높으니까.”
브레드 김은 편법까지 동원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그게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그래도 태수는 조금 우려되는 부분을 슬쩍 말했다.
“경쟁에만 치중하다가 선을 넘으시면 안 됩니다.”
“제임스 박사님 성품도 모를까봐? 절대 비열, 치사, 암투. 그딴 유혹에 휘둘리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럼 다행이고요.”
태수는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한편으로는 제임스를 볼 수 없단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 마음은 곧 털어냈다.
이번만 기회가 아니 었다.
더 반가운 만남을 위해 인내의 시간도 필요했다.
그렇게 해후를 나누던 중이었다.
어느 천막 입구가 펄럭이며 흑인 간호사가 뛰어나왔다. 그녀는 커다래진 눈으로 좌우를 급하게 돌아봤다.
무언가를 다급히 찾는 느낌이었다.
“오, 갓.”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탄식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가 착용 중인 유니폼에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수와 브레드 김이 동시에 그 모습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 가득하던 미소가 바로 지워졌다.
브레드 김이 먼저 말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야.”
“그럼 가야죠.”
휙.
태수는 말과 동시에 먼저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브레드 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래서 닥터 최가 좋다니까. 같이 가.”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닌 터라 브레드 김도 다급히 그 뒤를 따랐다.
앞선 태수는 곧 간호사 앞에 도착했다.
“무슨. 이런, 한국어가……. 흠흠. 무슨 일입니까?”
브레드 김과 대화 탓인지 한국어가 먼저 튀어나왔다.
얼른 정정해 영어로 다시 묻자 간호사가 태수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봤다. 평상복 차림이라 의구심부터 보였다.
“닥터?”
“닥터 최태수입니다.”
“닥터 최?”
간호사는 갸웃거렸다.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갑자기 다가와 의사라고 하니 쉽게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때 또 다른 검은 머리 동양인이 다가왔다.
브레드 김이다.
그는 안면이 있는 간호사인지 바로 물었다.
“엘런, 닥터 최 몰라요?”
“처음 뵙는 분인 거 같은데요.”
“아무튼, 의사니까 상관없습니다. 같이 들어가죠.”
“저기…….”
그녀가 또 막아서자 브레드 김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응급 아닙니까?”
“응급은 맞는데요. 소속 의과가 불분명하면 수술에 참여할 수 없는 규정이 있잖아요.”
“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인데 소속의과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엘런 간호사는 난감해했다.
브레드 김은 그런 그녀가 답답한지 버럭 소리쳤다.
“이잠바크의 영웅 몰라요?”
“카르힘?”
그녀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 소리에 태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카르힘.
사비의 형이다.
태수는 재빨리 물었다.
“카르힘을 아십니까?”
“그 수술에 저도 참여……. 어, 어? 맞아. 카르힘이 그랬어요. 딱 봐도 고집 셀 거 같은 인상이라고. 진짜 그 닥터 최가 맞나요?”
“뭐. 아, 이거.”
태수는 얼른 주머니를 뒤적여 자그마한 ID카드를 내밀었다.
NGO 회원증이다.
네팔 파견이 결정됐을 때 제임스가 만들어준 거였다.
꺼낼 일이 없어서 이제야 기억해냈다.
그런데 엘런 간호사는 아니었다.
태수 신분증을 확인함과 동시에 간호사의 두 눈이 커질 대로 크게 떠졌다.
그렇게 경악한 엘런 간호사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꺄악, 정말이요?”
“이잠바크에서 고집 좀 부렸던 의사라면 제가 맞습니다.”
태수가 은근히 뒤끝을 담아 답했다.
그러나 엘런 간호사는 상관없었는지 얼른 천막 입구를 가리켰다.
“들어가세요. 얼른요.”
“네? 어어.”
“빨리 들어가세요. 빨리.”
턱, 턱.
엘런 간호사는 거칠게 태수를 떠밀기까지 했다.
태수는 황당했지만 아무튼 출입 허락을 받았단 사실이 더 중요했다.
브레드 김까지 모두 서둘러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내부는 2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기는 쉽게 말해 수술 준비실과 같았다.
진짜 수술실은 저기 보이는 두 번째 가림막을 들춰야 했다.
하지만 둘 다 바로 수술실에 들어갈 순 없었다.
태수는 평상복이었고, 브레드 김도 평상복에 가운만 걸친 상태였다.
엘런 간호사가 태수에게 처음 의사냐고 물어본 이유도 옷차림 때문일터였다.
아무튼 수술에 들어가려면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때 엘런 간호사가 수술실 쪽으로 소리쳤다.
“외과3팀 닥터 브레드 김하고, 닥터 최 데려왔어요.”
“브레드하고 누구요?”
“이잠바크의 영웅이요.”
천막 내부 가득 태수의 별명이 울렸다.
태수가 쑥스러워할 틈도 없이 안쪽에서 높은 대답소리가 들려왔다.
“닥터 최가 왔다고요?”
태수를 아는 듯 했다.
그 반응에 오히려 태수가 의아해했다.
들어본 목소리인데 바로 떠오르는 얼굴이 없던 탓이다.
“누구지?”
그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엘런 간호사는 안에서 들려온 질문에 대답했다.
“네, 그 사람이요.”
“오. 얼른 둘 다 준비시켜서 들여보내세요. 어서.”
“알았어요.”
엘런 간호사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태수를 떠밀었던 우악스런 손길로 수술복을 건네며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