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327
Chapter 095화.
민낯을 보니 꼬이고 꼬인 성격이었다.
그게 난감했다.
‘대화가 안 될 거 같은데…….’
철옹성 같은 벽을 두른 닥터 구라모토의 화법에 살짝 피곤함이 느껴졌다.
태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모양이다.
닥터 구라모토가 그걸 핑계 삼아 시비를 걸어왔다.
“감히 집도의가 말하는데 인상을 구기나?”
“아닙니다.”
“한국 흉부외과 기강이 어떤지 몰라도 일본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야.”
“죄송합니다.”
태수는 자세를 낮추며 기회를 봤다.
하지만 닥터 구라모토는 꽁한 마음을 제대로 풀려는지 틈을 주지 않았다.
“닥터 최, 난 자네 같은 시건방진 레지던트들을 정신개조 시키는 걸 아주 좋아해.”
“…….”
“저쪽 가서 식염수 들고 대기해. 내가 부를 때까지 말이야.”
닥터 구라모토는 비릿한 미소까지 지었다.
집도의의 권한이란 핑계로 괴롭히려는 수작을 대놓고 보여줬다.
순간 태수는 갈등했다.
이대로 여기서 버틸까?
그럼 수술실에서 쫓겨날 확률이 높아진다.
수술은 진행될 터였다.
‘그건 안 되고.’
그 다음으로 생각한 건 벌을 서는 방법이었다.
그건 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뭘 잘못했는데.’
아직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시간만 흘러갈 상황이다.
태수는 더 지체하지 않고 그 문제부터 알리기로 했다.
“구라모토 박사님.”
“누가 입 열라고 했나. 저쪽으로 가.”
“……제 말 좀.”
“집도의 말이 말 같지 않나?”
닥터 구라모토가 따박따박 말을 막았다.
어차피 뒤집을 건데.
태수도 더 인내하지 않고 그냥 내뱉었다.
“할 말이 있다면 좀 들어봐라, 이새끼야.”
“…….”
순간 수술실에 정적이 흘렀다.
삐빅, 삐빅.
ECG가 울리는 소리마저 고요함에 눈치를 보는 듯이 느껴졌다.
몇 초의 정적 후 닥터 구라모토가 불 같이 화를 냈다.
“뭐라고? 이런 .%.@$#…….”
얼마나 흥분했는지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태수는 그게 더 짜증났다.
“영어로 씨불이던가.”
“저놈이 내가 누군지 알고.”
“그건 나중에 따지고 바치스타 수술하면 안 돼. 심장종양 환자야.”
태수가 재빨리 소리쳐 알렸다.
그 순간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노려보던 일본 의료진들이 멈칫했다.
스윽.
그들의 시선이 닥터 구라모토에게로 향했다.
태수의 말이 맞는다면 수술이 위험하단 걸 직감한 듯 했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닥터 구라모토 귀엔 닿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증상이…….”
“누가 떠들라고 했나. 저 새끼 끌어내. 당장 수술실에서 내보내.”
닥터 구라모토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정작 태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소독한 상태라 오염이 되면 새로 소독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수술실에서 다툼이 나도 의료진들간에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닥터 구라모토 외에는 그런 룰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처적.
다들 태수를 향해 섰다.
그리고 경계하며 거리를 좁혀왔다.
가장 선임인 닥터 타케시가 차가운 어투로 경고했다.
“서로 힘 빼지 말고 여기서 조용히 끝내자.”
“난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 출신이라. 얌전한 그쪽이 좀 양보하지?”
“말이 안 통하는군. 끌어내.”
닥터 타케시가 싸늘하게 외쳤다.
사삭.
그를 시작으로 제2어시스던트, 간호사들까지 태수에게 다가왔다.
진짜 완력으로 해결하려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완력에 굴할 생각도 없었고, 나갈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때였다.
“어맛.”
와장창.
어지러운 소리와 비명소리가 한데 뒤엉켜 들려왔다.
바라보자 케이시 간호사가 주저앉아 있었다.
“케이시.”
“넘어졌어요. 아흐……. 쓰읍. 아파.”
케이시 간호사는 여기저기를 살피며 쓰라려 했다.
그걸 본 태수의 표정이 묘했다.
아무래도 케이시 간호사가 넘어진 방향과 모습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어시스던트의 의료카트가 같이 쓰러져 있었다.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었다.
‘노렸다?’
그런 결론 밖에 나지 않았다.
바닥에 닿은 모든 의료도구는 여러번 소독할 때까지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어떤 수술이라도 쓸 수 없고, 써선 안 된다.
야전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정규수술실에서는 그 위생관념이 더 깐깐했다.
그럼 케이시 간호사의 행동은?
‘저거다.’
순간 태수의 눈이 환하게 뜨였다.
목 아프게 소리치고, 입 아프게 떠들거 없었다.
수술을 막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했다.
슥슥.
재빨리 먹잇감을 찾았다.
그런 태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는지 닥터 구라모토가 빽 소리쳤다.
“뭐해. 빨리 잡아.”
“이야아.”
다들 태수와 거리를 급격히 좁혔다.
태수는?
눈빛을 빛냄과 동시에 태수는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훕.”
휙.
수술대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수술대를 두 발로 밟는다. 그 자체가 의료진들에겐 상식을 파괴하는 행동이었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틀을 깬다.
형식을 파괴한다.
옭아매고 있던 관념을 자신의 발로 부수고 있었다.
그건 의학계의 이단아로 착실히 성장 중인 태수에게 희열로 다가왔다.
“괜찮은데?”
그리고 반대편을 바라봤다.
닥터 구라모토가 보이자 태수는 지체 없이 그쪽으로 힘껏 뛰었다.
“이얍.”
“헉, 아악.”
닥터 구라모토는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태수가 노린 건 그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 있는 의료카트였다.
턱.
태수의 발끝이 정확히 의료카트를 가격했다.
그 힘에 의료카트는 붕 떠올라 저쪽으로 날아갔다.
와장창.
벽에 부딪친 의료카트에선 의료도구들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수술도구에겐 미안했지만 솔직히 짜릿했다.
“와우, 굿.”
태수의 깽판으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젠 수술할 길이 막혔다.
재정비까지 최소 두 시간은 걸릴터였다.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참극에 닥터 구라모토는 혼란스러워했다.
NGO에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겠단 야심이 날아갔다.
특히 가장 자신 있는 바치스타 수술이 훌훌 날아가 버렸다.
점점 현실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파르르.
닥터 구람보토의 흔들리던 볼이 멈추더니, 두 눈에 독기가 가득 서렸다.
“칙쇼(빌어먹을).”
하지만 태수로썬 이게 최선이었다.
당장 바치스타 수술이 시작된다면 해결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심장종양까지 더해진 상태라면?
사망확률 100퍼센트.
카프레네의 지식이 서포터 해주더라도 그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냉정한 사실이었다.
“쏴리.”
말만 그렇지 별로 미안한 기색은 없었다.
바네사를 살리기 위해 펼치는 깽판이었다.
그리고 이미 판은 벌어졌다.
태수는 대놓고 깽판을 이어갔다.
“어이쿠. 발이 미끄러졌네.”
우당탕.
“닥터 타케시, 하이파이브.”
“어?”
닥터 타케시가 움찔할 때였다.
태수는 손바닥으로 어깨를 그대로 내리쳤다.
퍽.
“큭.”
“이런, 생각이 없으면 피했어야지. 나 혼자 들떴나봐. 미안.”
사과하는 태수의 입가에 속이 후련한 미소가 가득했다.
끝내 한 방 먹였다.
태수의 뒤끝은 절대 복수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장난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뚝.
멈춰선 태수가 천천히 고개 돌렸다.
차가운 눈빛으로 다른 일본 의료진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수술도 땡 쳤는데, 계속 할까?”
“…….”
일본 의료진들은 닥터 구라모토를 힐끔거렸다.
태수의 말대로 이젠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시선을 느낀 닥터 구라모토는 기가 막혔다.
도무지 수습할 길이 없는 상황으로 돌변한 탓이다.
“허어어.”
한껏 부풀렸던 몸이 쑥 꺼진 듯이 쪼그라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태수도 사람이다.
그런 모습까지 보자 약간의 미안함이 감돌았다.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니더라도 수술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건 살짝 양심이 아려왔다.
태수는 천천히 긴장감을 내리며 정중하게 말했다.
“지금을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크흐음.”
“불쾌하겠지만 환자는 살리셨습니다.”
“불쾌? 네놈……. 가자.”
휙.
닥터 구라모토는 이를 드러내보이고는 수술실을 나갔다.
곧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일본 의료진도 같이 철수했다.
닥터 구라모토가 남긴 원망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태수는 슬쩍 밀어냈다.
“이 꼴이 그나마 나으니까 억하심정은 갖지 맙시다.”
말은 그랬지만 이미 억하심정이한 가득인 걸 모르지 않았다.
이젠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평행선을 걷게 됐다.
태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닥터 구라모토가 없다고 태수의 삶에 특별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수술대로 돌아섰다.
휙.
그때 누군가 눈에 비치자 태수는 다시 고개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 전신마취기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마취의 닥터 야마구치였다.
태수는 홀로 남은 그를 바라보며 의아함을 보였다.
“어?”
“마, 마취 중이라서요.”
“당신은 좀 마음에 드는데?”
태수가 찡긋거리며 닥터 야마구치를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까지 마.”
“네?”
“의사라면 응당 그래야지.”
총칼이 눈앞에서 날아다녀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게 당연했다.
그때 케이시 간호사가 일어나면서 수술실을 둘러봤다.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크게 떠올랐다.
“어떻게 수술대만 멀쩡하고 이렇게 엉망이 될 수가 있죠?”
“할 땐 제대로. 후후.”
태수는 싱겁게 웃으면서 멋쩍어 했다.
수술실 난장판 사건.
이건 이슈 중에서도 엄청난 이슈가 될 일이다.
어쩌면 NGO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흑역사로 지정될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소문이 나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왜곡된 소문만 들려왔다.
“닥터 구라모토가 수술 직전에 멈줬다지?”
“환자 심장에 이상함을 감지했다더라고.”
“그래서 전격 수술을 미루고, 다시 하나부터 뜯어보자고 했다며?”
“딱 옹고집처럼 생겼는데, 의외로 생각이 열려 있네.”
방향이 엇나간 소문이지만 늘 그렇듯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입이 모이니 거짓이 사실로 둔갑해버렸다.
여론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