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18
Chapter 186화.
김혁권은 그런 태수의 독특한 분위기에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 모습이야.’
그간 얼마든지 떠날 기회가 있었다.
굳이 찾아보자면 일할 장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사실 훨씬 안전하고 편한 일자리도 많았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태수의 곁을 머무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항상 환자를 생각하는 뚝심을 보이는 일관성이 좋았다.
이렇게 수술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매력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고집스런 태수가 걸어가는 길의 끝이 어딘지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수가 그렇게 모든 걸 잊고 수술에만 전념하던 중이었다.
뜬금없이 정민수가 태수를 뾰족하게 불렀다.
“야, 태수.”
“…….”
“인마, 안 들려.”
정민수가 두 번 다그쳤다.
그 순간 집중하던 태수의 눈동자가 살짝 풀어졌다.
집중이 흐트러진 반응이었다.
그러나 태수는 환부를 향한 긴장을 놓지 않고 입만 열어 대답했다.
“왜?”
“흔들지 마. 바늘이 자꾸 엇나가잖아.”
“흔들린다고?”
의아한 태수는 그제야 힐끔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코에 루페를 걸친 정민수가 날카롭게 쏘아보며 답했다.
“여기 봐봐. 지금도 떨리고 있잖아.”
“난 멈췄어.”
“그런데 왜 떨리……. 이상한데?”
정민수도 무언가 잘못 됐음을 눈치챘다.
이 순간 괜한 반응은 아닐 터였다.
‘쓰읍.’
그걸 직감한 태수는 어쩔 수 없이 환부에서 손을 떼야 했다.
간만에 느껴본 고도의 집중력은 이미 흐트러졌다.
자주 찾아오는 기회가 아니라 씁쓸했다. 그러나 속상해하거나 정민수를 비난하는 언행은 티끌 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수술은 혼자 앞서간다고 능사가 아니다.
호흡이 더 중요했다.
그걸 알기에 태수는 아쉬움을 뒤로했다.
이어서 시선을 돌린 태수는 정민수가 혈관 브릿지를 하던 장소를 바라봤다.
그제야 정민수의 격한 반응이 과하지 않은 걸 직감했다.
파르르.
혈관 주변 근육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움직임이었다. 혈관도 숨었다가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쪽만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반대편에서 보조하던 김혁권의 당혹감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뭡니까. 여기까지 떨리는데?”
“네?”
휙.
태수의 시선이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왔다. 방금 수술하던 그 허벅지 근육도 어느새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문제는 태수는 괴사한 근육을 절제하고 있던 중이란 점이다.
완전히 절제되지 않은 부분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었다.
그걸 본 태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사 반응이 아니다.
수술의 흐름이 계속 끊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예상 밖의 변수들이 튀어나와 계속 진행을 방해했다.
‘후.’
태수는 쓴 숨을 속으로 내뱉었다.
그런데 정민수는 달랐다.
계속 꼬여만 가는 상황에 지쳐 가는지 짜증을 버럭 냈다.
“빌어먹을, 제발 우리 그냥 수술하게 해주세요.”
누구에게 화를 내는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대로 수술 진행이 어렵단 거였다.
정말 안 되는 건가?
절단확률이 지배적인 결과를 뒤집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다채로운 상황들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욕심이 아닐까?
이런 상황들이 환자를 더 힘들게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 자체가 부정적인 생각이다.
예상 밖의 변수가 계속 되고 있어 계속 긍정적이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수는 부정적인 마음을 한 번 더 긍정적으로 돌렸다.
그건 앞서 왕 노인이 해준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또 예전에 스스로 포기란 단어를 사전에서 뺐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와 두 손을 들 순 없었다.
환자의 이상도 분명 원인이 있을 터였다.
그걸 찾으면 이 상황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 믿음으로 힘을 냈다.
‘뭘까?’
태수는 미약한 떨림의 원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환자의 몸은 점점 더 떨림이 커져갔다.
부들부들.
마치 추위를 타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름대로 예측해본 김혁권은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 물었다.
“여기 온도가 낮아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
“닥터 최.”
김혁권이 따갑게 불렀다.
그래도 생각에 잠긴 태수가 반응하지 않자 정민수도 날카롭게 외쳤다.
“야, 최태수.”
“…….”
“젠장, 내가 뭐라도…….”
정민수가 돌연 나서려 했다.
이런 상황마다 태수에게 의지하던 자신의 못된 습관을 과감하게 떨치려 했다.
그런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아직 정민수에겐 일렀다.
정민수가 움직이려는 찰나 태수의 입이 열렸다.
“민수야, 움직이지 마.”
“이 자식아, 넌 넋 놓고 있으면서.”
“생각이란 걸 하고 있었어.”
“무슨 생각? 아니, 언제까지 생각만 할 건데.”
정민수가 소리 높여 따졌다.
그 순간 태수의 시선이 정민수에게로 향했다.
화악.
태수의 깊고 묵직한 눈빛에 정민수가 크게 움찔했다.
“뭐, 뭐?”
“…….”
“그……. 그게 아니라…….”
정민수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게 이상했다.
태수가 보내는 시선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고요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기만 했다.
그럼에도 정민수는 끝까지 마주하지 못했다.
그 경험을 먼저 한 김혁권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심장 떨어지는 눈빛도 진짜 오랜만이네.”
그 만큼 태수의 고요한 눈빛이 수술실속 모든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도 환자의 떨림은 더해지고 있었다.
삐비빅, 삐비빅.
ECG의 소리도 달라졌다.
하지만 출혈로 인한 문제는 아니었다.
부정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이 들쭉날쭉 했다.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변화인 건 누가 봐도 확실했다.
지켜보고 생각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그러나 태수는 서두르지 않고 묵직한 목소리로 오더했다.
“정민수, urine(소변) 확인해봐, 그리고 혁권씨는 IV가 막혔는지 봐주시고요.”
사삭.
정민수와 김혁권은 태수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곧 정민수의 보고부터 들려왔다.
“소변은 잘 나오고 있어. 아주 팍팍, 왕창, 이렇게 나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나오고 있다고.”
“IV도 막힘없이 투여 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더 문제 아닙니까?”
김혁권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덧붙여 물었다.
그때였다.
척.
태수가 손을 뻗어 대답을 잠시 미뤘다.
그런 태수의 시선은 ECG에 집중되어 있었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있다?”
속으로 곱씹던 태수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갔다.
거기엔 시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새 수술을 시작한지 6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태수가 멈칫했다.
“젠장.”
“왜, 뭔데……. 헉.”
다급히 질문하던 정민수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 만큼 마주한 태수의 눈빛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태수는 정민수의 소란도 개의치 않고 재빨리 오더했다.
“민수, 마취제하고 수면제 추가해. 어서.”
“어?”
“수술 시간.”
척.
태수가 시계를 가리켰다.
수술시간.
그게 문제였다.
당초 수술시간은 5시간 정도로 예상했다.
마취제와 수면제 용량 계산도 그 수술시간을 기준으로 했다.
통상적으로 마취는 수술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더 유지되게 투여한다.
그런데 환부의 악화로 인해 예정시간은 무의미해졌다.
사방에서 터지는 예상 밖의 상황들에 마취제를 추가해야 하는 걸 망각했다.
태수의 지적대로 수술시간을 확인한 순간 정민수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우, 쉿. 기다려, 준비할게.”
“나도 도울게요.”
김혁권이 빠르게 외치며 같이 움직이려했다.
그건 태수가 막아섰다.
“혁권씨는 대기.”
“…….”
“민수, 마취제 용량은…….”
태수는 잽싸게 계산하고 투여량을 불러줬다.
그 소리에 맞춰 주사제를 준비하던 정민수가 멈칫하며 바라봤다.
“그 용량이면 세 시간 연장하는 거 밖에 안 돼.”
“알아.”
“그 안에 끝내겠다고?”
“못해?”
태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극했다.
그에 정민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발했다.
“지금 날 자극해서 어쩌자고.”
“자극하는 거 아니야. 오더하는 거야.”
“음?”
“이 수술, 앞으로 세 시간 안에 마무리 한다. 그리고 마취제부터 빨리 투여해. 안 그럼 깨어날 수도 있어.”
태수가 다시 상기시켜주자 정민수가 아차했다.
“젠장. 어서, 빨리 좀.”
덜그럭, 턱턱.
마음이 다급해졌는지 정민수의 손길이 자꾸 엇나갔다.
그래도 곧 손길을 안정시키며 마취제와 수면제를 추가로 투여했다.
“투여 끝.”
“대기.”
태수는 쉽게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런 긴장감에 비해 환자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삐비빅.
ECG가 다시 거칠게 울렸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였다.
마취제 추가 시간으로는 적절했지만 환자의 떨림과 크게 연관이 없는 모양이었다.
태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체 뭘까.’
고민의 폭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한편 의아한 정민수는 다시 환자를 바라보다 화들짝 놀랐다.
“뭐야. 마취제를 추가했는데 왜……. 왜 아직도 떨려.”
“다른 원인?”
“그게 뭔데.”
정민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럴 정도로 환자의 떨림이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삐비빅.
ECG도 혈압의 등락 폭이 심해져 소리가 따갑게 변했다.
화를 내고 다급해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도 태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정민수는 정말 속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스스로 낼 아이디어가 없는 자신을 격하게 책망했다.
텅, 텅.
“생각해. 빨리 뭐라도 생각하란 말이야, 이 멍청한 대가리야.”
“…….”
태수는 말없이 생각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도 상반됐다.
급한 성격인 줄 알았던 태수는 너무도 차가워졌고, 소심한 줄 알았던 정민수는 불 같이 반응했다.
이 모습들이 가장 진실 된 성격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침착한 태수는 지금 카프레네의 기억을 더듬는 중이었다.
수술 중 환자의 떨림에 관한 사례가 의외로 많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례를 대입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현재와 일치하는 사례를 찾아야 했다.
몇 가지 사례를 되새기던 중이었다.
엇비슷한 사례가 떠올랐다.
‘이거야.’
찾았다.
태수는 곧장 IV 앞에서 자책 중인 정민수에게 대처법을 알렸다.
“민수, 마그네슘.”
“응?”
“hypocalcemia(저칼슘혈증).”
태수가 외치고야 정민수가 두 눈을 반짝였다.
“마, 맞아. 과도한 소변 배출, 이 멍청이.”
“안 좋은 대가리 괴롭히지 말고, 손발부터 움직여.”
“저, 이씨. 젠장.”
핵심을 꼬집은 지적에 반발 못한 정민수는 얼른 손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