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77
00680 680화
물론 신속하게 수술을 이어 가야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자그마한 마음의 여유가 다급함을 지우고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환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할 뿐이었다.
미소가 오갈 상황은 아니지만 서로 어르고 다독여 주는 정도는 됐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인물도 있었다.
“누구는 바빠 죽겠는데, 누구는 떠들고 있고.”
“저도 바쁩니다. 선배, 여기도요.”
“저 자식이……. 젠장, 여기 말이지? 너 진짜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들어.”
“그건 이따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이쪽!”
태수가 낮게 외치자 박성민이 으르렁거렸다.
“아, 진짜 더럽게 시켜 먹네. 집도의 바꿔, 새끼야.”
“포지션 체인지 할까요?”
“이렇게 싸질러 놓고 진짜 포지션을 바꾸자고? 나 엿 먹이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요. 선배, 오른쪽 아랫부분에 파인 부분 있습니다. 그쪽부터 부탁드립니다.”
“여기도 급하다, 저기도 급하다, 다 급하면 어쩌라고. 내 손은 두 갠데.”
툴툴 거리면서도 박성민의 손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일부러 가까운 병변부터 순서대로 수술하지 않고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그건 박성민과 손이 겹치거나 꼬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전이라면 그런 부분에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다. 수술만을 생각했기에 다른 부분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초곡리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며 느꼈다.
수술을 하는 의사도, 수술을 받는 환자도 모두 사람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보면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그걸 느낀 태수였기에 그대로 실천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쁘게 손을 놀리던 박성민도 태수의 변화를 느꼈는지 가느다란 미소를 띤 얼굴로 힐끔거렸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직 수술, 정리, 마무리해야 할 부분이 산더미 같았다.
손을 넓게 펼친 정도가 폐의 크기였지만 병변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그 수도 수십 개가 넘어가기에 두 사람만으로 속도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후욱, 후욱.”
박성민의 입에서 약간 단내가 풍겨 왔다.
지금 수술에서 누구보다 신속하고 열정적으로 움직인 터였다.
태수와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마에서부터 턱까지.
땀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쉴 수가 없었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손을 놓게 된다면 다른 모두가 손을 놓아야 할 상황이었다.
게다가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다른 수술에 비해 체력이 상당히 많이 소모됐다.
“…….”
“…….”
한 마디씩 주고받던 말들조차도 다시 사라졌다.
여유란 것도 체력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거였다. 이제는 한마디라도 아껴 수술을 빨리 진행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박성민의 옆으로 정민수가 다가왔다.
정민수는 태수를 바라보며 상황부터 보고했다.
“복강경 뺐어.”
“상황은?”
“일단 네 말대로 임시 조치만 했어. 약물치료만 확실히 되면 보름도 버틸 수 있을 거야.”
정민수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했다.
“박 선배 좀 도와 드려.”
“아주 죽어 가시네.”
정민수가 그렇게 말했지만 박성민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 죽겠으니까 좀 살려 주라.”
“이번 수술 끝나면 저희 오프죠?”
“그걸 지금 왜 나한테 물어. 팀장님한테 물어봐야지.”
“내일도 일해야 된다고 하시면 별로 적극적일 거 같지 않아서요.”
정민수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농담을 건넸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농담까지 받아 줄 여유가 없었는지 박성민이 한 소리 했다.
“야, 수술 좀 하자.”
“대답부터 듣고요.”
“오프는 모르겠고, 수술 무사히 끝나면 술은 사 줄게. 사 준다고, 새끼야.”
박성민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런 순간에도 수술 부위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그만큼 해결해야 할 부분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던 탓이다.
정민수도 더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농담일 뿐이다.
바로 달려들지 않은 건 복강경 수술의 후유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단시간에 너무 집중해서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이내 안정을 되찾은 정민수가 의료 카트를 끌고 다가온 김수진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디바키, 포셉.”
탁!
수술 도구들을 받아 든 정민수가 본격적으로 수술에 뛰어들었다.
“선배님, 그럼 구원투수 등판합니다.”
휙휙.
정민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박성민의 손에 방해되지 않았다.
정민수의 손놀림은 제임스는 물론이고 UCLA에서도 놀란 신속한 손길이다.
특히나 이렇게 광범위하고 조치할 곳이 많은 수술에서 그 속도가 더욱 두각을 보였다.
정민수의 합세로 한결 여유가 생긴 박성민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땀.”
톡톡.
가벼운 느낌과 함께 찝찝함이 사라지자 박성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여간 이 자식 손 빠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지치셨습니까?”
계속 폐를 수술하며 태수가 묻자 박성민이 움찔하더니 바로 반박했다.
“이제 몸 좀 풀리려고 하는데 무슨 헛소리야.”
“그럼 계속 갑니다.”
“아직도 더 남았……. 그래, 해라 해.”
박성민은 기운 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런 반면 몸에 다시 힘을 주고 태수의 손길을 따라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수가 수술, 박성민이 정리, 정민수가 마무리.
이런 순서로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정리와 마무리를 동시에 해야 했던 박성민이기에 할 일이 반으로 줄어들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수술 경험은 태수와 정민수에 비할 바가 아닐지 몰라도 박성민만의 장점이 있었다.
그건 상황 파악 능력과 예리한 눈이었다.
“야, 정민수, 거기 갈비뼈 뽑아내.”
“갑니다.”
“태수야, 무턱대로 잘라 내고 가지만 말고 속도 좀 맞춰. 너만 급한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박성민도 제 페이스를 찾자 수술은 좀 더 체계가 잡히는 것 같았다.
수술 진척 속도는 여전히 빠르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다급한 마음도 다들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5초,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순간이지만 쉴 수 있었다.
의사들의 변화에 간호사들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급할 때는 정신없이 몰아치고, 조금 여유롭게 움직일 때는 또 같이 손이 느려졌다.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 있기에 수술 흐름에 민감했다. 수시로 변화하는 의사들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건 간호사들 모두 수많은 수술을 경험했던 탓이다.
그 경험이 다르기에 송현미 간호사, 이선정 간호사, 김수진 간호사 순으로 여유를 갖는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
이선정 간호사와 김수진 간호사는 틈틈이 송현미 간호사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그 손길과 여유로움까지도 따라 했다.
웬만한 의사들보다 더 수술을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배우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어쩌면 지금 신속대응센터에서도 가장 응급에 강한 정예들만 모여서 진행하는 수술일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서로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정말 오랜만에 투입된 수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이 없었다.
그저 전부터 항상 같이 수술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수술 시작 후 대략 1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혈흉이 심해 굳어진 피와 괴사한 조직이 엉킨 부분을 대부분 잘라 냈다.
보통 2시간 이상 걸리는 과정이다.
그걸 1시간 이내로 줄이기 위해서 의료진들이 쏟은 땀은 욕조를 채우고도 남았다.
그렇게 땀을 흘린 보람은 분명히 있었다.
오른쪽 폐의 가장 난해한 부분들을 거의 수술했다.
물론 아직 남은 과정도 많다.
그러나 뒤로 이어질 수술 중에 난해한 건 없었다.
더 확실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수술 경과로도 1차 수술로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그걸 눈으로 직접 보고 있기에 태수와 정민수, 그리고 박성민의 얼굴이 부드럽게 변해 갔다.
이제 나머지 부분을 잘 마무리한 후 환부를 닫으면 대기하고 있는 2팀과 교대할 수 있었다.
그 과정도 1시간으로는 부족했다.
태수가 지친 의료진들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네가 안 그래도 엄청나게 힘내고 있답니다. 진짜 이렇게 빨리 지치는 수술, 생전 처음인 거 같다.”
“대신에 끝이 빨리 다가오지 않습니까.”
“내 체력의 끝도 겁나게 빨리 다가오고 있으니까 문제지. 낮에 수술한 여파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어.”
박성민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태수를 제외하고 정민수와 박성민은 몇 번이나 수술을 진행했다.
정민수는 응급실에 자리한 시간이 많지만 틈틈이 수술실에 들어가야 했었다. 치프이기에 레지던트의 미진한 부분들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런지 정민수의 안색도 눈에 띄게 질려 갔다.
태수도 또한 그렇게 힘찬 상황이 아니었다.
신경을 날카롭게 한 채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를 계속 분류, 초진, 응급처치까지 했다.
초곡리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숫자를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처리했다.
미리미리 체력을 올려 두지 않았으면 이미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자신이 태수는 만족스러웠다.
“자, 파이팅!”
태수가 느닷없이 낮게 외치자 움찔한 의료진들이 각각 개성에 맞게 대답했다.
“아자자!”
“빨리 하라니까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힘이 남아돌면 그 힘으로 수술이나 하세요.”
“선생님, 아자!”
“할 수 있어요.”
“거의 다 왔어요.”
의료진들이 독려하는 사이였다.
“이 사람들아, 그쪽만 파이팅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니까.”
서영우의 기운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이번 수술의 숨은 공로자다.
급변하는 환자의 상태를 주시하며 적절하게 조치하고 또 문제를 미연에 방지했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이 수술은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터였다.
서영우도 이젠 이들과의 수술에 익숙해졌는지 힘이 들어도 오기부터 부렸다.
“아무튼 최 선생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오기만 하면 항상 이 꼴이야.”
말은 그래도 눈빛은 번뜩였다.
역전의 용사.
위급 상황을 함께 넘겼던 그 경험들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태수는 문득 이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던 이상적인 수술팀.
이들이라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빛 하나로 사인이 오가고.
손짓 하나로 마음이 통한다.
이런 수술팀을 전부터 희망했다.
이들이 함께한다면 꿈을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 사람.’
편 가르기인 줄 알았다.
그래서 싫어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
태수는 그저 자신의 꿈에 한발이라도 빨리 다가가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라면,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을 하는 중에도 수술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들부들.
환자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처럼 움직이던 의료진들이 당혹감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미미하게 느껴지던 떨림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convulsive seizure(경련발작)?”
“갑자기 왜?”
모두의 시선이 서영우에게로 향했다.
“서 선생님.”
“기다려 봐!”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서영우가 빠르게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덜덜.
환자의 몸이 더욱 거칠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는 환자다.
수술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묵직함까지 벗어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환자가 갑자기 떨기 시작하니 모두에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서영우는 노지연 간호사와 함께 하나씩 세세하게 확인했다.
“ventilator(인공호흡기).”
“이상 없어요.”
“혈액은?”
“조금 전에 새로운 수혈팩으로 교체했고요. 수혈 상태도 좋아요.”
그 외에도 알부민이나 다른 약물들을 확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두 좋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