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678
00681 681화
그렇게 모든 확인을 마친 서영우의 목소리가 황당하게 변했다.
“이거 도대체 뭐야.”
“왜 그러십니까?”
“이상이 없어.”
“네?”
태수가 깜짝 놀라 묻는 사이였다.
박성민이 갑갑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이상이 있으니까 환자의 몸이 떨리는 거 아닙니까?”
“누가 그걸 몰라? 그런데 이상하게 이상이 없다고.”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말하는 줄 알아? 아무리 찾아봐도 원인이 없다고!”
서영우가 결국 화를 버럭 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폭발한 모양이다.
수술실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사과를 주고받기보다 상황의 심각성이 먼저 와 닿았다.
태수의 시선은 이미 ECG(심전도 모니터)에 향한 상태였다.
경련하는 환자와 관계없이 그래프가 너무도 평온했다.
혹시 기계가 이상한 건 아닐까?
태수는 바로 환자의 심장에 손을 댔다.
쿵쿵.
약간 투박한 느낌이다.
심근이 충격을 받아 딱딱해졌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서는 박동이 약했지만 그래도 불안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태수가 살피는 사이 다른 의료진도 한 손을 거들었다.
박성민과 이선정 간호사는 왼쪽 옆구리를 통해 폐와 연결된 드레인을 살폈다.
“막힌 데 있어요?”
“전혀요. 기흉 때문에 조치해 놓은 곳이라 출혈도 없어요.”
“잠깐만요. 이거 혹시 헐거워져서 허공에 삽질하고 있는 거 아니야?”
박성민은 직접 드레인 상태를 살폈다.
가볍게 당겨도 보고, 안으로 밀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드레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태수가 얼마나 신경 써서 고정시켰는지 웬만한 충격에는 움직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박성민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뇌까렸다.
“생각해 보니까 허공에 삽질하는 게 기흉 잡는 건데, 제대로 삽질하고 있는데 왜 떨리는 거야?”
박성민의 얼굴에 갑갑함이 떠올랐다.
같은 시각, 정민수와 김수진 간호사는 복강경 수술을 한 배를 확인했다.
“scissors(가위).”
“여기요.”
김수진 간호사가 건네주는 가위를 받은 정민수는 바로 배꼽의 봉합사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틈을 벌려 그 속으로 카메라 라인을 집어넣었다.
복강경 모니터로 카메라가 배 속으로 진입하는 게 생생하게 보였다.
그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덜덜덜.
환자의 경련이 심해지고 있는데도 복강경을 움직이는 정민수는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김수진 간호사가 안달할 정도였다.
“선생님, 조금만 빨리요.”
“저도 급합니다. 그래도 제대로 확인해야죠. 어디에 무슨 이상이 있는지 모르잖습니까.”
“그래도.”
김수진 간호사는 아버지인 김덕현의 수술 후 환자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매사 날카롭진 않았지만 환자가 격해지면 같이 감정이 솟구쳤다.
그렇다고 도를 넘어서진 않았다.
이를 악물고 자제했다.
정민수도 그런 김수진 간호사의 사정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급하게 살핀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모르기에 더더욱 복강경을 움직이는 손길이 신중했다.
정민수가 아무리 느긋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그 시간은 1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사이 태수도 놀고 있진 않았다.
심장의 박동을 확인한 후 다시 수술 지점으로 돌아왔다.
큐렛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긁은 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씨암으로 살펴본 내용들이 머릿속에 생생했다.
하지만 백 퍼센트 신뢰할 순 없었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지난 탓이다. 이미 과거의 데이터가 된 씨암 영상에만 의존할 순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태수는 직접 손으로 폐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여긴 문제없고…….”
겉으로 보기엔 거친 수술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다.
그 증거로 폐 겉면에서 자잘한 출혈이 계속되었지만 폐 자체는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한 병변이 없었다.
그때 송현미 간호사가 크게 말했다.
“소변 배출도 이상 없고요. 손끝, 발끝까지 혈액도 충분히 돌고 있어요.”
이어서 박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왼쪽 폐도 이상 없고, 골절 부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야.”
뒤따라 정민수도 태수에게 보고했다.
“복강경으로 수술한 곳도 이상 없어.”
다들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덜덜.
환자의 경련은 더욱 거칠어져만 갔다.
이대로는 수술 진행이 힘들다.
아니, 무슨 이상인지도 모른 채 수술할 순 없었다.
일단 안정이 우선이다.
“서 선생님, tranquilizer(신경안정제).”
“이미 투여했어.”
“morphine(모르핀)은요?”
“추가해?”
“네!”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영우가 미리 준비해 둔 강력 진통제인 모르핀을 추가했다.
쭈욱.
IV를 통해 빠르게 모르핀이 투여되었다.
어떤 고통을 느끼든지 이젠 안정이 될 터였다.
그러나 환자는 그런 태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겨 나갔다.
텅텅텅.
얼마나 경련이 심해졌는지 팔다리가 크게 들썩였다.
박성민이 당황한 얼굴로 짜증을 냈다.
“젠장. 이대로라면 허리 작살나겠어!”
“눌러!”
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와 동시였다.
모두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지를 양손으로 꽉 눌렀다. 박성민은 환자의 어깨를 양손으로 강하게 짓눌렀다.
상체와 사지가 억제된 상황이다.
“윽.”
“크윽.”
얼마나 경련이 심한지 강하게 눌렀는데도 몸이 들썩였다.
누르는 데 달려들지 않은 태수는 바로 환자의 얼굴로 다가갔다.
그때 박성민이 투덜거렸다.
“태수, 뭐, 하는, 젠장. 좀 가만히 있으라고!”
결국 환자에게 화를 버럭 냈다.
어떤 이상도 없는데 이렇게 경련하니 걱정과 갑갑함이 동시에 터진 모양이다.
하지만 듣지 못하는 환자의 경련은 변함이 없었다.
그사이 태수는 환자의 눈을 까뒤집어 봤다.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격한 움직임은 태수도 처음이었다.
“흡!”
태수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켜자 다들 깜짝 놀라 바라봤다.
“왜? 무슨 일인데?”
“최 선생님, 왜 그러세요?”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태수는 지금 이유를 설명할 때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동안의 단편적인 경험들이 머리를 자극한 탓이다.
태수는 바로 노지연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2팀 바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emergency(응급)이라고 하시고요!”
“아, 네!”
타다닥.
노지연 간호사가 빠르게 수술실 내 전화기로 향했다.
그사이 정민수가 태수에게 물었다.
“뭐야, 뇌가 문제야?”
“아마도.”
“네가 모르는 증상이 있어?”
정민수가 깜짝 놀라 바라보자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쪽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야.”
“다뤄는 봤잖아.”
“어설프게 판단하고 건드리면 본전도 못 찾아.”
“…….”
정민수가 침묵했다.
태수의 말이 정확했다.
뇌.
이건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부위다.
태수조차도 뇌만큼은 섣부르게 손을 대지 않았다.
뇌를 담당하는 신경외과도 외과에서 분리되어 나온 의과다. 흉부외과와 같이 특수성이 무척이나 강했다.
태수는 카프레네의 지식과 제임스의 가르침, 그리고 두 사람의 임상 기록으로 흉부외과와 외과, 정형외과까지 아우르는 의사로 거듭났다.
그 두 스승조차도 뇌란 분야를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했다.
태수 또한 카슈미르에서 닥터 막스밀리언을 통해 토론하며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전문적이진 못했다.
워낙 다루기 까다롭고 케이스도 드물었다.
모두 살펴봐도 이상이 없다면 폐와 더불어 가장 문제인 뇌일 거라 추측했을 뿐이다.
그때였다.
수술실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이동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대기실에서 상황은 확인했어. 들어갈 준비 하고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빨리 오셔야 할 거 같습니다. 생각하시는 거보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
이동원의 진중한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통화가 종료된 순간 태수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얼마나 더 버티라고.
아니, 버티는 게 아니라 억누르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제 와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문제가 태수의 미간을 좁혔다.
‘제발.’
이동원이 빨리 들어와 상황을 안정시켜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원인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다만 확신하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도드라지자 태수의 눈빛이 안타까움으로 짙게 물들었다.
이동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환자의 상태는 시시각각 악화되어 갔다. 자칫 실수라도 이어진다면 그길로 끝이었다.
이 위기를 온전히 이겨 내야 하는 건 의료진들의 몫이었다.
“윽, 끙!”
“버텨, 버티라고.”
“젊은 친구가, 힘이, 장난 아니네. 이 힘을 왜, 지금 우리한테 쓰냐고. 빌어먹을 병이랑 싸우라고.”
박성민의 목소리에 다급함과 안타까움이 번갈아 교차했다. 그도 이 상황이 못내 싫고 마주하기도 지긋지긋했다.
인정하고싶지않지만 의사라면, 특히 외과의라면 수도 없이 겪어야 할 현실이다.
그때였다.
설상가상으로 환자의 얼굴과 목까지도 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덜덜덜.
경련하는 목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안면 근육까지도 뒤틀렸다.
“젠장!”
환자를 살펴보던 태수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있었다. 얼른 시뻘건 피가 가득한 수술 장갑으로 환자의 목과 턱을 감싸듯이 잡았다.
발작이 심하다.
보통 힘으로는 경련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억눌렀다.
“끄으응.”
환자의 얼굴이 장갑에 묻은 피로 덧칠되어 갔지만 멈출 수 없다. 태수가 시선을 돌려 서영우에게 부탁했다.
“서 선생님, 어떻게 좀…….”
서영우도 이마가 번질거렸다.
상당히 당황한 모습이었으나 노련하게 이 위기를 맞이했다.
“나는 놀고 있는 줄 알아?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신경외과 선생들이랑 수술 좀 해 놓을 걸.”
“선생님.”
“알아. 나도 보고 있어서 안다고. 노 간호사, 칼륨, 마그네슘도 더 추가해요.”
서영우가 다급하게 말하자 노지연 간호사가 얼른 물었다.
“조금 전에 추가했는데 또 해도 돼요?”
“이 상황 안 보여요? 그거 더 추가한다고 환자 안 죽어!”
“준비할게요.”
“빌어먹을.”
텅!
서영우는 의료 카트를 강하게 내리쳤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을 맞자 의사로서 이 상황이 서럽도록 안타까웠다.
이제부턴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모른다.
태수는 물론 누구도 서영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빨리.
그저 빨리 2팀 신경외과 의사들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젠장. 대기하고 있다는 녀석들이 왜 아직도 안 쳐들어와!”
박성민이 참다못해 버럭 소리쳤다.
그뿐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도 힘겨운 상태였다. 강하게 경련하는 환자를 억누르느라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지쳐 갔다.
물론 태수를 비롯한 수술팀 모두가 안다.
신경외과 수술팀, 그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는 준비할 절차가 많았다.
수술 대기실에서부터 뛰어와 개수대에서 손을 씻는 등 몇 가지 기본적인 절차가 있었다.
그걸 모르는 의료진은 없었다.
연락하고 난 후 아직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단지 환자의 상황이 안 좋아지는 만큼 초조함이 짙어질 뿐이다.
태수는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 2팀이 들어올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그냥 이렇게 무턱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인이라도 다시 제대로 파악하는 게 옳았다.
원인을 안다면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고 소생확률도 높아진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태수는 다급한 마음을 누르고 환자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덜덜덜.
자유를 찾은 환자의 목이 좌우로 격하게 흔들렸다.
이 급박한 상황에 혼자 여유로운 태수의 모습에 박성민이 한 소리 했다.
“인마, 넌 안 누르고 뭐 해!”
“선배.”
“민수, 넌 또 왜?”
“…….”
스윽.
정민수는 말하지 않고 태수를 턱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