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736
00739 739화
제일 먼저 유병태가 조금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검사 영상이라지만 참, 말만 한 처녀 사타구니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나도 이상한 생각은 안 해. 여기에 병이 생기고 싶어서 생긴 것도 아니잖아.”
유병태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지영의 병명은 tuberculosis of lymph nodes(림프절결핵)이다.
곤란한 부위였다.
위치는 left inguinal region(좌측서혜부)로, 쉽게 말하자면 왼쪽 사타구니였다.
좀 더 이해하기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왼쪽 사타구니 내부에 결핵성 염증이 생성된 경우였다.
인체에 약 500군데에 위치한 림프절은 결핵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박지영의 경우도 결핵균이 림프절에 침투해서 염증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똑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박지영의 경우 발병 후 상당히 시간이 경과하여 염증이 좀 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더 빨리 수술할 수 없었던 건 그녀보다 더 다급한 아이들을 먼저 수술해야 했던 탓이다.
수술을 미뤘을 뿐,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매일 컨퍼런스 때마다 의사들은 박지영의 경과를 의논했고, 내과 계열에서도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그 증거로 처음보다 염증이 많이 줄어든 것이 명확하게 보일 정도였다.
한동안 말없이 검사 결과를 자세히 관찰한 비뇨기과 의사가 나지막이 말했다. 태수와 동기인 터라 말에는 허물이 없었다.
“역시 염증이 이 이상은 줄어들기 힘든가 봐.”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진 거잖아.”
“그래도 수술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특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이 정도면 들어내야 할 정도 아니야?”
비뇨기과 의사가 묻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거 같아. 그래도 다른 곳으로 전이는 되지 않았으니까 다행이지.”
“그러게. 우측 서혜부는 멀쩡한 게 천만다행이야.”
“약을 잘 써서 전이가 안 된 거지.”
태수가 칭찬하자 비뇨기과 의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특별한 약도 없어. 항염제가 대부분이니까.”
“적절히 썼으니 좋아진 거지.”
“듣긴 좋네.”
“좌우간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하는 걸로 할게.”
태수가 간명하게 결론을 내리자 비뇨기과 의사가 잠시 고민한 후 말했다.
“컨퍼런스 자료는 이쪽에서 만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좀 쉬어.”
“시간 많이 걸리잖아.”
“그러는 그쪽은 아침에 수술 한 건 하고, 오후에 이 아이 수술하는 거잖아. 조금이라도 체력을 아껴 두라고.”
“그럼 부탁해도 될까?”
“당연한 거지. 서로 할 이야기는 다 한 거 같으니까 먼저 갈게. 퇴근 준비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내일 컨퍼런스 발표할 걸 준비해야 되니까.”
툭.
비뇨기과 의사는 태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향해 태수가 한마디 했다.
“고마워.”
“고마우면 수술 깔끔하게 해. 그거면 돼.”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태수가 자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잠시였다.
비뇨기과 의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태수는 유병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수술을 진행할지 계획해 볼까?”
“내 생각에는…….”
유병태는 적극적인 성격만큼 저돌적으로 자기 의견을 밝혔다.
태수는 귀를 기울여 듣다가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은 바로바로 이야기했다.
“내 생각도 비슷한데, 여기 보면…….”
“그럼 이쪽에서…….”
“그게 좀 더 좋을 거 같아. 그렇게 되면…….”
“역시 척하면 척이네.”
태수와 유병태는 진지하게 수술에 대해 토론했다.
두 사람은 안다.
이 순간만큼 스스로에게, 그리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했다.
얼추 수술 진행의 방향을 결정한 태수가 다시 박지영을 찾았다.
박지영이 의아한 얼굴로 태수에게 물었다.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이제 하려고.”
“또 절 보러 오셨구나. 하여간 이놈의 인기는 병원에서도 식을 줄을 몰라.”
박지영은 털털한 성격대로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명랑한 아이라도 불안감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웃고는 있지만 입꼬리가 계속 아래로 처지는 게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는 느낌이다.
태수는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수술 계획부터 이야기했다.
“……그렇게 진행될 거야.”
“그럼 수술 후에 뭘 조심해야 하는데요?”
“상처가 잘 아물게 조심해야지. 예민한 곳이니까.”
“그건 그렇죠.”
왈가닥이라 소문이 자자한 박지영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어려도 여자는 여자였다.
대번에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찼다.
좌측 서혜부, 그것도 안쪽이라 여자로서 가장 민감한 부분을 보여야 했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밝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속옷을 입은 채로 의사에게 환부를 보여서 그래도 수치심이 덜했다.
그러나 수술할 때는 속옷을 입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리 수술 의사들이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스스로 여자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에 느끼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태수는 그런 박지영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였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수술 준비나 잘해.”
“……네.”
“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 그렇게 수술해 달라고 노래를 하더니 막상 다가오니까 겁나?”
“거, 겁나기는요. 수술이 뭐가 겁나요. 빨리 받고 뛰어다니고 싶은데요.”
박지영이 울컥하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씩씩하게 기다리고 있으면 돼.”
“알았어요.”
“괜히 이상한 생각 하다가 잠 못 잤다고 내일 칭얼거리지 말고.”
“선생님이나 술 드시지 마세요. 아침에 봤는데 술 냄새 나면 진짜 화낼 거예요.”
박지영은 애써 원래대로 대화하고 행동하려 노력했다.
태수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니까. 그럼 내일 보자.”
“오늘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감사해요.”
“자식.”
“……”
말문이 막힌 박지영에게 태수가 지나가듯이 한마디 던졌다.
“그리고 수술실에서 부끄러운 일은 최대한 막아주마.”
“선생….님.”
툭툭.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며 미소를 지어 보인 후에야 태수는 시선을 돌렸다.
주미성과 함께 자리한 이선정 간호사와 눈을 마주쳤다.
태수가 힐끔 병실 밖을 턱짓하자 이선정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성아, 내일 보자.”
“안녕히 가세요.”
“그래. 저기 지영이 언니 위로도 해 주고. 수술은 네가 언니잖아.”
이선정 간호사가 가볍게 다독인 후 태수에게로 향했다.
곧 나란히 선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려 할 때였다.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희미하게 들려오는 주미성의 목소리.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가 멈칫하며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주미성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지만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에게로 얼굴이 향해 있었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두 사람의 시선이 이번에는 박지영에게로 향했다.
박지영은 주미성을 턱짓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듣긴 했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단 뜻이 담겨 있었다.
태수가 아주 작게 이선정 간호사에게 물었다.
“미성이가 선생님이라 부르나요?”
“아뇨.”
대번에 나온 이선정 간호사의 대답이다.
태수도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인사는 했다.
“그래. 푹 쉬고 내일 보자.”
“……네.”
“간다. 지영이도 쉬어.”
태수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이선정 간호사와 함께 병실을 나왔다.
복도에 서자마자 이번에는 이선정 간호사의 질문이 빨랐다.
“선생님, 혹시 저 몰래 미성이한테 뭐 가져다주셨어요?”
“제가 그럴 주변머리나 됩니까?”
“아니죠.”
“사실이긴 한데 그렇게 단호하게 인정하시니까 마음이 좀 쓰리긴 하네요. 그보다 이 간호사님이 뭐라고 말씀하신 건 아닙니까?”
태수가 반대로 질문하자 이선정 간호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요.”
“거참, 이상하네.”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그 순간 태수가 밝은 목소리를 냈다.
“미성이가 이제 절 안 두려워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거 김칫국 먼저 퍼마시는 거 아닌가 몰라요.”
“네? 호호.”
이선정 간호사가 활짝 웃었으나 태수는 심각했다.
‘그래야 할 텐데.’
내심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린 말이다.
저녁이 되자 회의실에서 의사들과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회의가 끝나고 이젠 퇴근길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고생했어.”
“내일 뵙겠습니다.”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들은 힘찬 목소리로 인사하고 멀어져 갔다.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려 힘들 법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만의 노력이었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도 그들과 같이 밝게 인사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문득 걸음을 멈춘 태수가 잠시 생각하다 이선정 간호사에게 말했다.
“잠깐 중환자실에 들렀다 가시죠.”
“누구 신경 쓰이는 아이가 있으세요?”
“남궁석이요.”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도 이미 들었던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더 가 보는 게 좋긴 할 거 같네요.”
“그럼 가시죠.”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와 함께 중환자실로 향했다.
곧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간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간호사실에 도착했다.
그러나 당직 의사는 보이지 않고 간호장교가 맞았다.
“오셨습니까.”
“오늘 당직이 서 선생인데, 어디 있습니까?”
“저쪽에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태수는 가볍게 인사하고 간호장교가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이선정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오세요.”
함께 가지 않겠단 뜻이었다.
“그럼.”
태수는 손을 가볍게 흔든 후 혼자 중환자실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남궁석의 병상이 가까워질 무렵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제가 그냥…….”
병상과 병상을 가린 커튼을 넘어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태수는 커튼 뒤를 힐끔 쳐다봤다.
오늘 당직인 서 선생과 남궁석이 대화하는 장면이 시선에 들어왔다.
아침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아직 깔깔거리며 대화할 정도로 마음을 터놓은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남궁석이 애쓰며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서 선생 또한 그런 남궁석의 노력을 알고 있는지 이야기를 경청하며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태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이 순간에 자신이 다가가는 게 현명한지 고민하고 있었다.
곧 결정을 내린 태수는 바로 돌아섰다.
남궁석이 누군가와 대화할 어떤 계기가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태수가 빨리 돌아오자 이선정 간호사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자요?”
“아니요. 수다 중입니다.”
“어머.”
“우린 퇴근하죠. 수고하십시오.”
태수가 먼저 간호장교에게 인사하고 중환자실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놀란 표정을 한 이선정 간호사가 옆으로 바짝 다가와 말했다.
“역시 애들이라 그런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네요.”
“모든 아이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죠.”
“미성이는 케이스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도 조심스러운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퇴근하는 겁니까, 출근하는 겁니까?”
태수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러나 이선정 간호사는 바로 알아들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신속대응센터 의료진을 두고 하는 질문이다.
싱긋 미소를 지은 이선정 간호사가 대답했다.
“전 퇴근인데, 선생님은 출근이실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피곤하시지 않을까 걱정돼요.”
“내일은 수술이 있다는 걸 어제부터 말했으니까 적당한 시간에 놓아줄 겁니다. 그래도 집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나쁘진 않네요.”
태수는 미소를 지으며 이선정 간호사와 함께 걸어갔다.
차를 몰고 병원을 나선 태수는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속도를 현저하게 줄이며 주변을 계속 둘러봤다.
그건 이선정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박 선생님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전혀 모르겠어요.”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됩니다.”
“박 선생님은 다 좋은데 장난이 너무 심한 게 흠이라니까요.”
“나름대로의 애정 표현이긴 한데, 가끔 버겁긴 하죠.”
대화를 하면서도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계속 주변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