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35
00838 838화
카프레네의 반지를 태수가 쥐고 있는 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세상에서는 자신과 카프레네가 종종 비교되곤 했다.
사람들이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난 카프레네를 아직도 생각하고 있단 이야기였다.
스미스는 그 점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질투심이라는 걸 알지만 그 감정이 쉽게 털어지지 않았다. 이미 고인이 된 친구를 질투하는 자신도 탐탁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프레네의 눈빛을 닮은 태수를 볼 때마다 잘해 줘야겠단 생각과 질투심이 충돌했다.
“그것참.”
스미스가 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스미스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태수는 데이먼과 함께 수술 준비를 이어 갔다.
다방면으로 검토한 결과 2가지 수술 방법으로 압축되었다.
마지막 결정은 역시 수술 전날 환자의 마지막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로 미뤘다.
미국에 온 지 4일째.
태수는 처음으로 환자를 보러 존스홉킨스병원으로 향했다.
수술 전에 환자 한 번 보지 않고 들어간다는 건 응급 상황이 아닌 이상 좋은 일이 아닌 탓이다.
병원에 도착해 가운을 걸치자 안내를 맡은 데이먼이 감탄했다.
“역시 닥터 최에게 잘 어울리는 마크인 거 같습니다.”
“하얀색이 잘 받는 얼굴이라니까요.”
“마크까지 어울리긴 힘들죠.”
데이먼은 은근슬쩍 태수와 함께 의사 생활을 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농담도 잘 통하고, 의견 조율도 수월했다.
그런 모습들이 같이 일하게 되면 최소한 서로 심심하진 않을 거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태수는 예민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스미스 박사님이 또 초대해 주시겠죠.”
“자주 초대해 달라고 해야겠네요.”
“그보다 환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태수가 환자 이야기로 돌아서자 데이먼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쪽입니다.”
태수는 먼저 움직이는 데이먼과 걸음을 나란히 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눈빛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태수는 곧 환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태수는 데이먼에게 일부러 병실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옆에 있어도 특별히 문제는 없지만, 다른 의견이 들려오면 판단에 혼란이 올 수도 있던 탓이다.
태수는 혼자 환자에게 다가갔다.
리카르도.
조금 특이한 이름은 순수 미국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 줬다. 남부 유럽 쪽 남성의 느낌 같이 하관이 넓고 덥수룩한 수염이 특징이었다.
코에만 산소호흡기를 달아 놓은 걸로 보아 아직 대화에 무리가 갈 정도로 악화되진 않은 것 같았다.
ECG(심전도 모니터)의 그래프부터 확인하고 태수는 환자를 다시 바라봤다.
태수는 인종에 대한 차별과 거리가 멀기에 여느 환자와 똑같이 대했다.
“안녕하십니까. 태수 최입니다.”
“리카르도입니다. 듣자 하니 전문의 자격시험 때문에 절 수술해 주신다던데요.”
태수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데이먼에게 이미 환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탓이다.
심장을 수술하는 중요한 일인데 환자에게 사전 허락을 받는 건 당연했다.
태수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혹시 불안하십니까?”
“썩 편하진 않죠. 그래도 절 수술해 줄 의사가 닥터…… 최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리카르도의 목소리가 다소 굳어져 나왔다.
자존심.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이 입으로 나왔다.
자신이 돈이 없어 실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썩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태수가 동양인이라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가장 자유롭다는 미국에서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게 인종차별이었다.
흑인보다 동양인이 더욱 천시받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태수가 기분 나쁘거나 불쾌할 이유는 없었다.
“수술은 잘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그렇게…… 쿨럭, 쿨럭!”
리카르도가 갑자기 기침을 했다.
태수는 그 모습에 살짝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데 기침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침을 한다는 건 주로 기관지에 문제가 있음을 뜻했다.
기존 검사 결과에선 폐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심장의 문제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리카르도의 기침은 몇 번이나 계속된 후에야 멈췄다. 그리고 가래를 휴지에 뱉는 것도 태수는 똑똑히 확인했다.
기침이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리카르도가 슬쩍 눈을 훔치며 말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하시려다가 기침하셨습니다.”
“그렇군요.”
리카르도는 태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보통 의사들은 자존심이 상당히 높았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자부심과 자존심이 높다는 게 통계로 나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태수가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기에 오히려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리카르도에게 물었다.
“기침은 언제부터 하신 겁니까?”
“한 보름 정도 됐는데요.”
“보름이면 입원 시기쯤 되지 않습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날짜를 표시해 놓진 않아서 정확한 건 모르지만요.”
리카르도가 왜 묻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사이 태수는 차트를 확인했다.
열이 조금 높고 맥박이 불규칙했다.
피검사 결과에도 백혈구 수치가 높았다.
그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태수가 보기엔 단순한 감기로 기침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태수는 리카르도에게 좀 더 자세하게 물었다.
“가래도 계속 나옵니까?”
“열 번 기침하면 세 번 정도요.”
“그럼 기침은 얼마나 자주 하십니까?”
“방금처럼 격하게 나오는 건 다섯 번 정도……. 그런데 그게 심장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리카르도가 의아하게 묻자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 심장을 수술하러 오신 분 아닌가요?”
“맞습니다만, 다른 이상도 있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태수의 말에 리카르도는 경계심을 강하게 보였다.
“다른 이상이 발견되면 어쩌자고요.”
“제가 집도할 환자분이니까 꼼꼼하게 확인하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난 추가로 수술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심장이나 똑바로 확인하고 수술해 주세요.”
리카르도의 힘없는 한마디가 태수의 귀에 들렸다.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이다.
호의를 베풀어도 결국은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드러낼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았다.
“일단 내일 마지막으로 검사하고 결과를 같이 확인하시죠. 그게 우선인 거 같습니다.”
“…….”
“제 질문에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럼.”
태수는 사과하고 즉시 환자의 곁에서 벗어났다.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ECG(심전도 모니터)의 혈압이 올라가고 맥박이 불규칙하게 변한 탓이다.
심장 수술을 앞두고 심전도 그래프가 자주 변하는 건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물러났을 뿐, 태수는 여전히 기침과 가래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병실에서 나오자 데이먼이 다가왔다.
“금방 나오셨네요.”
“그보다 환자 MRI 영상을 볼 수 있을까요?”
“스미스 박사님이 주신 서류에서 캡처한 사진들을 보셨을 텐데요. 신경 써서 캡처한 거라 심장의 이상은 모두 담아 드렸습니다.”
“그건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원래 영상을 좀 봤으면 합니다.”
“닥터 최가 집도의니까 그건 해 드려야죠. 이쪽으로.”
데이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안내했다.
태수는 간호사실에 마련된 노트북으로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에 보관된 MRI 영상을 확인했다.
제한된 사진이 아니라 원래 영상으로 확인하니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까지도 볼 수 있었다.
흉부를 촬영한 MRI였기에 태수는 심장이 아니라 좌우 폐를 확인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데이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폐는 왜 보십니까?”
“환자가 기침을 많이 해서요.”
“그렇군요.”
데이먼의 목소리가 순간 작아졌다.
태수는 그것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MRI 화면에 집중한 상태였다.
탈칵, 탈칵.
몇 번 마우스를 놀린 태수가 변화한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양쪽 폐에 자그마한 하얀 점들이 보였다.
태수가 데이먼에게 그 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제 눈에는 inflammation(염증)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알고 계셨던 거 같은데요. 폐렴이라면 전염성 질환일 경우에…….”
태수가 말을 이어 가는 사이 데이먼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왔다.
“비전염성 폐렴이라는 건 확인했습니다. 화학물질에 의한 감염이고, 직장에서 폐에 침투한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직장에서 화학물질이 폐로 들어오다니요. 도대체 그분 직업이 뭡니까?”
“대형 건물만 전문으로 청소하는 청소 업체 직원입니다.”
데이먼의 대답을 듣고야 태수는 이해가 되었다.
복도나 사무실을 청소할 때는 그럴 일이 없지만, 대리석이나 미관을 위해 전시한 전시품을 닦을 때는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거기서 기도로 흡입된 화학물질이 폐에서 염증을 생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연 치유가 되면 모르고 넘어가는 거고, 염증이 커지면 이렇게 폐렴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부분은 이해가 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다 아시는데 왜 저한테는 비밀로 하셨습니까?”
“…….”
“닥터 데이먼.”
태수가 나지막이 부르자 데이먼이 복잡한 얼굴로 생각하다 이내 대답했다.
“수술할 돈이 없는 환자니까요.”
“음.”
“차트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antibiotics(항생제)를 하루 두 차례 투여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트에 기록하지 않고요?”
“원칙적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
“전 존스홉킨스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원칙대로만 진행하면 그 외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데이먼이 말하는 사이 태수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자 데이먼은 이어서 말했다.
“아직 초기 단계라서 antibiotics(항생제)로 어느 정도 진정시켜 놓았지만, 솔직히 악화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
“혹시 이 일을 스미스 박사님도 알고 계십니까?”
“전혀 모르십니다.”
“만약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요?”
태수가 묻자 데이먼이 침묵했다.
태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러자 외려 데이먼이 안절부절못했다.
“저기, 이게 알려지면 저는…….”
“알릴 생각 없습니다. 저도 미국의 병원 시스템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닥터 데이먼, 한 가지만 물어도 됩니까?”
태수의 물음에 데이먼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뭡니까?”
“꿈을 이뤘는데 계속 이 병원을 고집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
“오해는 마시고요. 병원은 아니지만 더 좋은 단체를 알고 있는데, 거기에 더 어울릴 거 같아서요. 일단 숙소로 돌아가죠.”
태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데이먼이 다시 안내했다.
하지만 태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직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태수는 고심에 빠졌다.
데이먼이 환자에게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환자는 지금보다 폐렴이 훨씬 악화되었을 터였다.
심장 수술보다 폐 수술을 우선으로 진행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 데이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병원을 바꿀 수 없어서 제 나름대로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그 말이 이젠 이해가 되었다.
스미스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모른다고 했다.
알면 어떻게 될까?
결론을 내리고 싶지않았다.
스미스도 결국 존스홉킨스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해도 운영방침을 거스르긴 힘들다.
그렇다면 태수가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옳았다.
고개를 흔든 태수 생각이 다시 환자에게로 돌아갔다.
막말로 심장이 아픈 사람이 자기를 수술해 줄 의사가 흉부외과 자격증을 받기 위해서 왔다는데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순 없는 일이다.
경계와 두려움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