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47
00850 850화
그사이 스미스가 다가왔다.
스미스는 허리와 다리가 뻐근한지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아쉬운 소리를 냈다.
“의자를 준비한다더니 말뿐이었어.”
“필요 없다고…… 하신 줄 알았죠.”
“다음부터는 의자는 하나 준비해 놓도록 해.”
“다음에는…… 교대해 주세요.”
태수가 앓는 소리를 내자 스미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야.”
“서 있는 것도…… 힘듭니다.”
“그래도 저 친구는 자랑스러운가 본데.”
스미스의 말에 따라 태수는 참관실에서 내려다보는 제임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임스는 환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태수는 힘겨운 얼굴로도 억지 눈웃음을 만들어 냈다.
제임스의 격려가 지쳐 가는 그에게 다시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그때 스미스가 말했다.
“이제 뒤처리는 데이먼에게 맡기도록 하고, 닥터 최는 잠깐 쉬었다가 인터뷰하러 가야지.”
“아, 그렇죠.”
태수는 그제야 흉부외과 자격증 테스트 수술이라는 걸 기억해 낸 표정이었다.
스미스는 그런 태수를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곧 수술실을 나선 태수의 시선 끝에 제임스가 보였다.
땀으로 흥건한 수술복 차림이었지만 태수는 비틀거리며 다가가 제임스 앞에 섰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수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지구 반대편까지 들려와서 말이야.”
“괜찮았죠?”
태수가 마른 입술로 미소를 내보이자 제임스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언제 봐도 유쾌한 친구 같으니라고.”
그러고는 태수를 가볍게 안았다.
그 행동에 태수가 조금 당황했다.
“제임스, 땀 냄새가…….”
“그거 아나? 최선을 다한 남자가 흘린 땀은 향기롭다는 걸 말이야.”
“이거 뿌리칠 힘도 없네요.”
태수는 말과 달리 그저 편안하게 제임스에게 몸을 맡겼다. 스승이란 느낌이 마음까지 포근하게 했다.
그런 두 사람의 뒤에서 심사관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제임스 박사님이……. 아까 그 말이 진짜인가 봅니다.”
“도대체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데 저러는 겁니까?”
다들 궁금하지만 감히 다가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주립병원과 종합병원 외과장들도 그만큼 제임스를 어려워했다.
그런 상대와 편안하게 포옹하고 대화하는 태수가 외려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대수술에 지칠 대로 지친 태수는 제임스와 오래 대화할 힘도 없었다.
“좀 쉬게. 나중에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거야.”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안 가. 아니, 못 가.”
제임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길로 수술 대기실에 도착한 태수는 1시간 가까이 그저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약간 기운을 차린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기다렸다.
잠시 후.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수술 준비 사항을 알려 줬던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 말했다.
“인터뷰 준비 끝났답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멋졌습니다.”
척.
그는 엄지와 함께 하얀 이를 한껏 드러낸 미소를 보인 후에야 다시 모습을 감췄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 간호사였지만 그 진심은 마음에 가득 와 닿았다.
그런 인사가 더욱 힘을 돋게 했는지 태수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그럼 가 볼까.”
중얼거림을 마친 태수는 한결 개운해진 걸음걸이로 소회의실로 향했다.
수술장에서 나와 조금 더 걸어가자 멀리 소회의실이 보였다.
어제까지는 수술에 대한 회의 장소였지만, 오늘은 심사관들과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어 찾아가는 길이었다.
태수는 곧 소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잠깐 쉬었다고 해도 피곤함은 여전히 가득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인터뷰였기에 태수는 마음과 몸을 가볍게 하고 처진 몸을 가볍게 풀었다.
양복도 한 번 더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등 기왕이면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을 보이고 싶었다.
이미 실력을 보였다고 해도 처음 만나는 상대에 대한 예의가 그게 아닌 탓이다.
태수는 뿌리까지 한국 사람이었다.
이리저리 자신을 둘러본 후에야 태수는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와요.”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수는 소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회의실은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좌우에 의자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 회의 테이블의 한 자리가 비어 있고 좌우에 참관실에 있던 심사관들이 자리해 있었다.
유일한 빈자리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만한 위치였다.
척 봐도 자신의 자리인 걸 알아챈 태수는 비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심사관들 앞에 선 태수는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태수 최입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한 백인 심사관의 권유를 받은 후에야 태수는 자리에 앉았다.
미국이란 사회는 상대의 지위가 높다고 꼭 바르게 앉을 필요는 없었다.
편하게 앉아서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한번 경험으로 알고있던 태수는 살짝 두 다리를 벌려 안정감 있는 자세를 잡고 심사관들을 바라봤다.
눈에 띄는 건 각각의 자리 앞에 명패가 세워져 있단 점이었다.
태수를 배려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뉴욕주립대학병원 외과장 알프레드라는 명패를 가진 백인 심사관이 첫마디를 꺼냈다.
“우선 긴 시간 수술하느라 고생했습니다.”
“지켜봐 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별말씀을. 형식적인 인사를 다들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알프레드가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우선은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태수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가급적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물론 데이먼이 보고 없이 선조치한 건 쏙 빼고 대답했다.
수술에 대한 인터뷰의 핵심은 역시 바치스타 수술에 관한 거였다.
자신이 질문할 차례가 되자 알프레드가 태수에게 물었다.
“우선 T형 바치스타 수술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선 그 수술을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카슈미르에서 제임스가 집도한 수술에 어시스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수술을 어시스던트했다고 집도를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제 원래 희망 의과는 흉부외과였습니다. 사정이 있어 외과 전문의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자신합니다.”
태수는 다소 강하게 자신을 어필했다.
이미 보여 줄 거 다 보여 준 이 상황에서 움츠러들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태수의 대답은 좋았지만 심사관들은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을 거 같은데요.”
“부족한 부분은 제임스와 함께 지내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역시 제임스 박사님과의 친분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겠네요.”
“제가 처음 제임스를 만난 건…….”
태수는 그간의 이야기를 함축해서 했다.
카슈미르의 여러 마을에 의료봉사를 떠난 이야기라든지, 네팔 대지진 현장에 NGO 임시 소속 의사로 파견되어 의료봉사를 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느 정도는 알려진 이야기지만 장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생생한 현장 경험을 들으니 심사관들의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그 외에도 한국에 잠깐 들어와 수술한 이야기라든지, 브레드 김이 신속대응센터에 파견을 나온 이야기도 계속 이어 갔다.
심사관들은 지루한 표정 없이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조금 길어진 태수의 이야기도 이젠 끝이 다가왔다.
“……그래서 저에게는 스승이자 친구 같은 분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다면 제임스 박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무슨 말씀을……?”
“그건 우리가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 거 같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그러니까…….”
인터뷰는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
심장 수술에 이어 폐 수술까지 질문의 폭도 제한이 없었다.
게다가 뭐가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태수의 입장에선 당장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그래도 질문에는 칼 같이 대답했다.
그렇게 꽤나 길어진 인터뷰도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잠깐 질문을 쉰 심사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의견을 나눴다.
한편, 스미스와 제임스도 스미스의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스미스가 제임스에게 말했다.
“자네가 나에게 이렇게 숨기는 게 많을 줄 몰랐어.”
“무슨 소리야?”
“아까 참관실에서 못 봤나? 폐동맥 출혈을 잡아내는 거 말이야.”
“응급 상황에는 정말 강한 의사라고 말했던 거 같은데.”
제임스가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지만 스미스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그럼 T형 바치스타 수술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심장 수술을 T형 바치스타 수술로 했나?”
“자네가 도착하기 전이라서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수술법으로 진행했어.”
“그럼 예전에 나랑 수술한 경험을 살렸나 본데.”
제임스가 대답하자 스미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내가 도착하기 전의 일을 이야기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겠어.”
“그건 그렇지. 좌우간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 보는 게 더 확실할 거고.”
탁.
스미스는 리모컨을 들어 집무실에 있는 TV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그 TV와 연결된 노트북을 통해 태수의 수술 영상을 크게 띄웠다.
본격적인 T형 바치스타 수술이 시작될 즈음부터 수술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상 속 태수가 심장을 수술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그 수술이 어느 정도 진행되던 중이었다.
태수의 손길을 보던 제임스가 눈썹을 크게 꿈틀거린 후 스미스에게 말했다.
“스톱. 그 부분만 다시.”
“…….”
스미스는 제임스가 왜 그러는지 알기에 말없이 되감아 재생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제임스는 어느새 TV를 향해 바짝 몸을 내민 상태였다.
그리고 두 눈으로 진지하게 영상을 확인했다.
“한 번만 더……. 거기. 다시.”
제임스가 계속 요청했지만 스미스는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계속 원하는 대로 해 줬다.
그렇게 몇 번이나 확인한 후였다.
제임스가 TV에서 시선을 떼고 반대편에 앉은 스미스를 바라봤다.
“음.”
“내가 왜 물었는지 알겠지?”
“그래. 카프레네의 손길과 너무 흡사해.”
“카피가 아니라 오리지널 느낌이 들 정도로.”
스미스가 덧붙여 말하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자 스미스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다른 의사라면 카피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그걸 간파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지.”
“그렇지.”
“그런데 자네도 그 이유를 모르나?”
스미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제임스는 어깨를 들썩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몰라. 나도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고.”
“…….”
“카슈미르와 네팔에서 같이 수술하면서 얼핏 느꼈던 부분이야. 그런데 지금 수술 모습은 나도 놀랄 정도로 카프레네와 흡사해.”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진 않았어.”
스미스가 읊조리는 사이 제임스가 계속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카프레네가 닥터 최를 가르쳤다는 건 시기상으로 맞지 않아.”
“두 사람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진 않을까?”
“예를 들면?”
“카프레네가 자신의 수술 영상을 모두 닥터 최에게 보내 줬다든지.”
스미스가 가설을 내보였지만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카피가 오리지널이 될 순 없지.”
“그럼 뭘까.”
“어쩌면 닥터 최가 카프레네를 쫓아가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을지도. 우리가 예상하는 그 어떤 경우보다 더 열심히 말이야.”
“그렇다면 아예 말이 안 되는 모습은 아니지.”
스미스도 그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 같자 제임스가 말했다.
“닥터 최는 볼수록 묘한 점이 많아. 카프레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고 성격도 다른데 이상하게 비슷한 부분도 보여.”
“그렇지.”
“신기한 건 T형 바치스타 수술은 카프레네의 실력을 쏙 빼닮았는데, 폐 수술을 할 때는 또 전혀 달랐어.”
제임스의 말을 스미스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건 닥터 최의 매력이라고 보면 되겠지.”
“자네도 느꼈나 보지?”
“내가 가장 가까이 있었으니까. 그 끈기와 인내심은 놀라울 정도야.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그렇고.”
“아마 그래서 내가 닥터 최를 더욱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지. 자네는?”
제임스가 묻자 스미스의 표정은 조금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