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861
00864 864화
물론 태수와 김혁권, NGO 의료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아주 코가 삐뚤어져 봅시다!”
“혹시 진짜 삐뚤어지면 한국으로 오세요. 성형은 최고니까.”
“하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모두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술잔을 들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띠링.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울리자 태수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문자 속 메시지는 사진 한 장뿐이었다.
신속대응센터 정문 위에 크게 걸린 플랜카드를 중심으로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플랜카드의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축. 최태수 선생 미국 흉부외과, 외과 전문의 자격증 동시 취득
깜짝 놀란 태수가 서둘러 누가 보낸 메시지인지 확인했다.
박성민의 문자였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밤거리에 선 태수는 바로 박성민에게 전화했다.
“선배님.”
“보자, 보자, 이리 보자, 저리 보자. 어디로 봐도……. 아니지, 어디로 들어도 나의 귀여운 후배 태수의 목소리구나. 음하하하!”
“어떻게 된 겁니까?”
태수가 묻자 박성민은 흥에 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되기는 뭐가 어떻게 돼. 인마,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 다 알아.”
“다 알아요?”
“신문에서 빵빵 때리고, 인터넷 신문에 조회 수 팍팍 올라가고, 댓글 와장창 달리고 난리도 아니라니까.”
“이 늦은 시간에요?”
태수가 황당한 목소리로 묻자 박성민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늦어.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이상하다. 뭐지?”
“아, 한국은 지금 오후죠.”
“그런 거였어? 우리 태수가 이젠 전문의 두 개 취득해서 눈에 아주 뵈는 게 없어서 여기가 낮인지, 저기가 낮인지도 모르는 거였어?”
“선배님은.”
태수가 흘기듯이 말하자 박성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씨빠빠룰라야,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런 일이 있으면 네가 가장 의지하고 존경하고, 어? 그런 사람한테 먼저 알려 줘야지.”
“그래서 아버지께 바로 연락드렸습니다.”
“그, 그래, 잘했어. 아주 잘한 거야. 자식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인마, 아버지께 전화드렸으면 그다음에 생각나는 사람 없어?”
“제임스는 옆에 있는데요.”
태수는 웃음을 꾹 참으며 애써 모르는 척 대답했다.
그러자 결국 박성민이 폭발했다.
“그쪽 말고, 여기 신속대응센터에 생각나는 사람 없었냐고.”
“선배님이 계시죠.”
“그렇지. 딱 좋아. 좋은데, 왜 내가 이 소식을 너의 주둥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쓴 기사로 확인해야 되냐 이거야.”
“이젠 아셨잖습니까.”
태수가 덤덤하게 대답하자 박성민의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지. 아니까 플랜카드 걸고, 사진 찍어서 너한테 문자 보냈지.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니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냐고.”
“선배님이 거셨습니까?”
“아니, 앞에서 잔소리했지. 오른쪽이 삐뚤어졌어요, 하면서 말이야. 팀장님이 소식 접하자마자 센터장님께 보고하고 바로 플랜카드 주문해서 걸었다는 말씀. 이제 됐냐?”
박성민의 목소리가 삐딱하자 태수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제가 전화드리지 않아서 섭섭하셨습니까?”
“섭섭? 하, 자식. 너 이 선배를 뭐로 보고 지금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그 주둥이로 씨불이냐. 이 새끼야, 그래, 섭섭했다. 어쩔래.”
“죄송합니다.”
“……나쁜 놈.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여름이면 더울까, 겨울이면 추울까.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박성민이 말하는 사이 태수가 툭 끼어들었다.
“인턴 때 SICU에 감금하셨죠.”
“그렇지. 내가 SICU에 감금을……. 아, 자식, 진짜 뒤끝 심하네. 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을 건데?”
“하하.”
“좀 예뻐해 주려고 하면 꼭 한 마디씩 해서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그보다 태수야.”
갑자기 박성민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경우가 흔했기에 태수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 선배님.”
“진짜 장하다. 정말이야. 그리고 부럽고 샘도 난다. 하지만 이 박성민이도 노력할 거다. 나도 미국 의사 면허증 있어. 그러니까 틈나는 대로 공부해서 전문의 자격증에 도전할 거란 말씀이다.”
“새까맣게 어리고 선배님께 혼나면서 배운 저도 합격하는 시험입니다. 선배님은 당연히 합격하시겠죠.”
“그 이야기는 나중에 어디 신문사 인터뷰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좌우간 태수야, 이젠 앞만 보고 갈 수 있는 거냐?”
박성민의 차분한 물음에 태수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가라. 꼭 너의 길을 가라. 내가 뒤에서 응원할게. 그리고 내가 받쳐 줄게. 넌 쭉쭉 뻗어나가.”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올라가서 이 선배 쌩까면 죽는다.”
목소리가 다시 장난스럽게 변한 박성민의 말에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이 얼마나 뒤에서 밀어주시는지 좀 보고요.”
“거 새끼. 너 자꾸 그러면 내가…… 이 형이 용돈 좀 보내 줄까?”
“많이요.”
“어떻게 거절을 몰라. 나쁜 자식.”
“하하.”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터졌다.
그때였다.
“태수죠? 바꿔 주세요.”
“안 돼. 이제 끊을 거야.”
“뭘 끊어요. 전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이리 주세요.”
“야, 정민수, 그거 국제전화야!”
시끄러운 소리가 멀어지더니 선명한 정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끼.”
“자식.”
“좋냐?”
“좋다.”
짧게 나누는 대화.
그게 두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대화법이었다.
태수의 대답이 끝나자 정민수가 말했다.
“나도 곧 넘어간다.”
“제임스?”
“물론.”
“기왕이면 흉부까지 취득해라. 너무 뒤처지면 어시스던트 안 넣어 줄 거니까.”
“내가 못할 거 같냐. 딱 기다리고 있어.”
정민수가 포부 넘치게 말하자 태수는 바로 반박했다.
“난 또 앞서 달려가야지.”
“가 봐야 내 손바닥 안이야. 당장은 네가 빠른 거 같아도 결국 내가 따라잡는다고.”
“따라오고 말해.”
“곧 따라가니까 얼른 도망이나 가.”
서로 지지 않는 대화 속에서 축하와 감사, 시기, 질투 등등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태수와 정민수는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사이였다.
통화를 마친 태수는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계속 즐겨 볼까요?”
“빨리 와!”
다들 다가오는 태수를 반기며 즐거운 술자리를 이어 갔다.
다음 날.
숙소에서 깨어난 태수는 의외로 멀쩡했다.
오늘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는 NGO 의료진들이 심하게 무리해서 술을 마시지 않았던 탓이다.
술집에서 그렇게 떠들었던 건 기분을 내기 위해서였지, 더는 없었다.
태수는 시간부터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다들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있을 시간이다.
헤어질 때 인사를 했지만 한 번 더 인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 미련은 곧 털어 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날 사이인 탓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태수는 기지개를 켰다.
“음!”
힘차게 기지개를 켜니 가라앉은 기분이 올라왔다.
상쾌해진 태수는 데이먼을 떠올렸다.
테스트 수술 때 많은 도움을 준 그였지만, 이런저런 일 때문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많이 지체되었다.
더 미루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태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닥터 최, 어제 거나하게 마셨다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데이먼의 밝은 목소리 속에 자그마한 섭섭함도 느껴졌다.
태수는 그런 섭섭함을 바로 풀어 줬다.
“밥 한 끼 사 주십시오.”
“이제 좀 한가하십니까?”
“네. 점심에 시간 괜찮으시면 바로 얻어먹고 싶은데요.”
“그럽시다. 시간 맞춰서 그쪽으로 갈게요.”
데이먼은 흔쾌히 수락했다.
통화를 마친 태수는 느긋하게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데이먼은 호텔에서 태수를 데리고 나와 조금 멀리 떨어진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규모도 상당히 크고, 자리한 손님들의 옷차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태수가 반대편에 앉은 데이먼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데이먼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여간해서 올 수 있는 음식점이 아닌 거 같아서요.”
“다시 약속을 잡을 수 없을 거 같아서 일부러 무리 좀 했습니다.”
“이거 그 말씀을 들으니까 심장이 콕콕 쑤시네요.”
태수가 멋쩍게 말하자 데이먼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급성심근경색의 초기 증상은 아니겠죠?”
“여기서 더 놀라면 가능도 할 거 같은데요.”
“그럼 존스홉킨스 병원을 이용해 주십시오. 최고의 의료 서비스로 가장 비싸게 모시겠습니다. 하하하.”
데이먼이 자그맣게 웃으며 짓궂은 미소를 보였다. 태수도 농담이라는 걸 알기에 같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씀을 들으니까 싹 나았습니다.”
“그럼 편안하게 주문부터 할까요?”
“제가 잘 몰라서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데이먼은 친절하게 태수를 이끌었다.
식사를 마친 후 디저트가 나올 때였다.
태수는 데이먼을 향해 엄지를 화끈하게 내보였다.
“최고였습니다.”
“모셔 온 보람이 있네요.”
“그보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한 번은 이렇게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이유야 아실 거고요.”
데이먼의 말에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난 일인데요. 그리고 닥터 데이먼 덕분에 저도 수월하게 수술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하네요. 그보다 리카르도가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던데요.”
“어제도 봤는데요.”
“매일 찾아와 줘서 고맙답니다.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이쪽 수술 전문 의사들은 대부분 수술 끝나면 두어 번 찾아가고 말거든요.”
데이먼이 쑥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태수가 정색했다.
“데이먼은 계속 찾아가잖습니까.”
“제가 특이한 거죠.”
“특이한 게 정상적인 거고요.”
태수가 바로 받아치자 데이먼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좋네요. 좌우간 리카르도는 오늘부로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벌써요?”
“누가 수술했는지 아주 회복이 좋아서 일반 병실에서 충분히 케어가 될 거 같습니다.”
“또.”
난색을 표하는 태수의 표정을 본 데이먼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외과 전문의도 합격하셨다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도 그런 의사들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아주 드문 경우죠.”
“그런가요?”
“전문의 자격증 하나면 평생 굶을 일이 없으니까 굳이 다른 전문의 자격증에 눈독 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데이먼의 말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도 그건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으신지.”
“하려는 일이 있다 보니 욕심을 좀 부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는 알죠. 그럼 이제 준비는 끝나신 겁니까?”
“네.”
태수가 대답하자 데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 한국으로 돌아가시겠네요.”
“조만간 그렇게 되겠죠.”
“당장은……. 아닙니다.”
데이먼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태수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캐묻진 않았다.
그 후 데이먼과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데이먼과 헤어진 태수가 잠시 적적함을 느꼈다.
막상 혼자가 되자 이역만리 타국이란 것이 실감났다.
제임스는 세미나에 참석하느라 오늘 하루 만날 수가 없었다.
태수는 한가한 틈을 타 우선 한국에서 챙겨 온 난치병 아이의 상태부터 다시 확인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가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다.
다른 아이들도 있지만 태수가 이 아이를 선택한 건 역시 가장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태수는 성재경과 통화해서 아이 상태를 다시 전해 들었다.
보호자가 없는 아이라 직접 통화를 했고, 아직까지는 별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유가 있기에 태수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한 명의 아이를 수술하는 게 아니라 급하게 진행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제임스와 최대한 이야기를 해서 단 1퍼센트라도 수술 성공 확률을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태수는 이 아이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했다.
아이의 병세를 살피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래도 태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