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밝은 회색 머리카락과 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지크와 거의 같은 얼굴이었다.
지크는 성왕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머리 색 빼고는 나랑 똑같잖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크는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 역시 아가멤논 가와 드레이커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외모가 닮아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비슷하다기보다는 거의 유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크는 단순한 우연일 것이라 치부했다.
성왕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크를 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폐하.”
이번에는 성왕이 지크를 물끄러미 보다가 한마디를 했다.
“네 분위기. 테라칸 드레이커. 그자와 매우 닮았구나.”
지크는 생각지 못한 성왕의 말에 당황했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테라칸에 대해 말하는 성왕의 목소리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지크는 성왕의 반응을 보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테라칸이 자신의 친부임을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밝히지 않으니 그 역시 인정을 하지 않은 것이고.’
지크는 왜 테라칸이 자신의 아들인 지오 루베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봤다.
‘클로디아가 자신이 죽인 바하무트 였다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았던 건가.’
생각보다 테라칸 드레이커와 성왕의 관계가 복잡한 듯싶었다.
그때 성왕이 지크를 보며 물었다.
“계승자여. 네 이름은 무엇이냐.”
지크는 고민하다가 이전에 만들었던 가명을 꺼냈다.
“카이 루베른입니다.”
과거로 갔을 때 로라에게 말했던 이름을 다시 써먹은 것이다.
지크의 말에 성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루베른. 그럼 네가 나의 후손이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지크는 인벤토리에서 성유물 중 하나인 아가멤논의 마스크를 꺼내서 성왕에게 보여 줬다.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물입니다. 이전에 한 번 부서질 뻔했지만 요정왕의 축복으로 다시 원상 복구가 되었습니다.”
성왕은 지크가 들고 있는 아가멤논의 마스크를 보고 아까보다 더 놀랐다.
“위대한 현자의 마스크! 이것이 쭉 이어져 내려갔구나! 나 이후로는 제대로 쓸 수 있는 자가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참 다행이군.”
성왕은 잠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가, 무언가 고민을 하더니 이내 지크에게 물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폐하.”
“네가 나의 후손이라면 나처럼 힐러 클래스로 빛의 힘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왕이 유리관 속의 창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성창 롱고미안트는 빛의 힘으로는 신살의 능력을 끌어낼 수가 없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힘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불멸의 힘이 필요하겠지요.”
지크의 말에 성왕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찌 네가 이를 알고 있느냐.”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신룡이신 포세이돈 님을 뵙고 그분의 신체를 봉인하고 있던 창을 뽑았습니다.”
지크는 인벤토리에서 포세이돈의 몸에서 뽑아냈던 투박한 창을 꺼내 성왕에게 보여 줬다.
그 창을 보고 성왕이 깜짝 놀랐다.
“이 창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 네가 정녕 이 창을 뽑은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지크의 말에 성왕이 잠시 눈을 감고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빛의 신이시여. 오늘에서야 드디어 세상을 구원할 진정한 계승자를 만나 이 창을 전해 줄 수 있게 되었나이다.”
지크는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는 성왕을 보며 그에게서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꼈다.
‘나랑 외모가 닮아서 그런 건가.’
지크는 자신의 다른 형제들을 떠올렸다.
모두 모친이 달라서 그런지 그의 형제들은 모두 외모와 성격이 제각각이었다.
칼리와 헬렌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도 남매로서 우애라기보다는 동료나 동맹자로서의 역할이 컸다.
형제 중 하나인 아벨은 심지어 지크의 손에 죽었고, 다른 형제인 바커스는 지크에게 붙잡혀 죽을 뻔했다.
드레이커 가문의 역사상 형제끼리의 골육상잔은 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지크는 직접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 오늘 처음 본, 심지어 영체 형태인 성왕에게 더 큰 친밀감을 느끼는 것에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군.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때 기도를 마친 성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크에게 다가왔다.
“카이 루베른. 짐은 오늘에서야 이 무거운 속박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나를 대신하여 이 성창으로 부활할 마왕을 영원히 소멸시켜다오.”
“폐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하라.”
“앞서 저 역시 마왕의 부활에 대한 예언을 듣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마왕이 부활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예언은 그 자체로 위험하기에 예언가들은 어쩔 수 없이 수수께끼와 같은 말과 운율을 이용해 진실을 숨겨 놓고는 하지. 부활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나락의 마법사들이 사자의 서를 이용해 노란 옷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나락이라는 말이 나오자 성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빌어먹을 족속들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다니는구나. 내가 그토록 열심히 놈들을 보이는 족족 죽였건만.”
놀랍게도 성왕이 있던 시절에도 나락은 존재했던 모양이었다.
지크가 성왕에게 말했다.
“현재는 폐하께서 세우신 신성 제국 시대 이후 약 80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어린아이들이 보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 정도로만 취급되는 세상입니다. 모두가 마왕의 부활에 대한 얘기를 하면 코웃음을 치며 질 나쁜 농담이라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 말에 성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락 놈들의 수법이다. 그 사악한 종자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그렇게 아주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고, 정보를 바꾼다. 때로는 대군을 이끌고 성을 공격하는 것보다 이런 음모들이 더욱 효과를 낼 수 있지.”
지크는 성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사람들은 해방전쟁을 두고 여전히 바하무트가 일으킨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잘못된 정보와 역사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고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
성왕이 지크에게 말했다.
“나락이 마왕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마와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사자의 서, 다른 하나는 그 영혼을 담을 그릇이다.”
“사자의 서는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그릇은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마왕의 영혼이 강림할 육신. 그것이 준비 되어야 한다.”
지크는 성왕의 말에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제가 듣기로 마왕의 강한 힘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용의 육체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바하무트에게 마왕의 영혼이 들어갔던 것 아닙니까.”
성왕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해방 전쟁 이후 용의 개체 수는 거의 멸종이라 할 만큼 사라졌지. 그래서 나락 놈들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다른 방법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용인.”
지크는 성왕의 말에 깜짝 놀랐다.
“용인이라니. 설마 용인을 만들어 그자에게 마왕의 영혼을 강림시킨다는 것입니까?”
“그렇다. 용의 힘을 가졌으면서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존재. 마왕을 강림시키기 가장 적합하지.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필요하다.”
“어떤 조건 말입니까?”
“본래 용인이란 계약용이 자신의 계약자에게 스스로 심장의 일부를 내주고 이를 이식해 억지로 인간의 육체를 강화시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용에 비하면 한없이 약하니 계약자와 더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용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속임수지.”
지크는 이전에 호쉬가르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호쉬가르도 용인의 존재는 카르마를 속여 만든 편법이라고 했지.’
하지만 이 방법 역시 결국에는 용의 도움이 필요했다.
더욱 의문에 빠져드는 그때 성왕이 입을 열었다.
“나락의 흑마법사들은 용의 도움 없이 용인을 만들어 낼 방법을 알아냈다.”
“예? 그게 가능합니까?”
“그래, 용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들이 죽으면서 남긴 드래곤 하트들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흑마법사들은 인간에게 억지로 드래곤 하트를 이식해 용인을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
지크는 성왕의 말을 듣고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벨. 분명 놈도 용의 힘을 사용했다.’
성왕의 말대로라면 나락의 마법사들이 아벨을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용의 심장을 이식한 것이 틀림없었다.
‘미친놈들이군. 인간의 몸에 용의 심장을 이식할 생각을 하다니.’
덕분에 아벨은 단숨에 흑색 기사의 경지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점차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에는 그 힘에 먹혀 마물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만약 지크 역시 시스템의 힘 없이 저주받은 광룡의 심장을 그대로 흡수하려 했다면 아벨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성왕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용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 자체가 쉬울 리가 없었다. 나락 놈들의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지.”
지크는 성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 지닌 거대한 힘의 원천이 바로 용의 심장인 드래곤 하트였다.
온전한 드래곤 하트가 지닌 힘은 결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크가 성왕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락이 오랫동안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마왕의 봉인을 풀 수 없었던 것이군요.”
“그릇도 그릇이지만 일단 사자의 서를 되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을 테니 쉽지는 않을 거다.”
지크는 성왕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자의 서는 이미 나락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걸 해석하고 힘을 얻기 위해 모인 놈들이라 알고 있었는데요.”
그 말에 성왕이 고개를 저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락이라는 놈들은 해방 전쟁 이후 마왕의 영혼이 봉인된 사자의 서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진 마왕의 추종자들에 가깝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 곳곳에 흩어져 숨어 있었기에 나는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그놈들을 퇴치할 수밖에 없었지.”
지크는 성왕의 연대기에 왜 그렇게 흑마법사들과 리치들을 대적해 싸운 내용이 많았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나락의 흑마법사들과 싸운 흔적들이었던 것이다.
성왕은 나락의 흑마법사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지독한 놈들이 80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니. 그때 더 깨끗하게 쓸어버렸어야 했는데…….”
그러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놈들은 위험할 때는 몸을 숙이고 있다가 때가 오면 다시 몸을 일으키는 독버섯 같은 놈들입니다. 성왕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 말에 성왕이 지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구나.”
성왕을 따스한 미소를 보던 지크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폐하의 말씀대로라면 그때는 사자의 서를 가지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시 가졌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자 성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예?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성왕이 지크의 눈동자를 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사자의 서는 놈들은 물론 그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으니 나락 놈들도 섣불리 이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지크는 성왕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락 놈들도 찾지 못할 곳이라는 그 장소가 도대체 어디입니까?”
성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계승자인 네게는 말을 해 줘야겠지.”
그렇게 말했음에도 망설여지는지 성왕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후의 용들은 사자의 서를 봉인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내던져 하나의 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탑의 가장 깊숙한 곳에 책을 봉인해 두었지.”
“용들이 만든 탑에 사자의 서가 봉인되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위대한 현자와 용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마왕의 영혼은 영원히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크가 성왕에게 물었다.
“그 탑이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성왕이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답해 주었다.
“암흑해 너머.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버려진 대륙. 최후의 탑은 바로 그곳에 있다.”